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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8화 (18/651)

제18화: 파라다이스(1)

두 달이 넘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일요일 다운 일요일을 즐겨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일요일은 분명히 있고 훈련도 없다.

바깥세상과 똑같이 푹 쉬는 날이다.

하지만 어떤 건수를 잡아서라도 두 다리 뻗고 쉬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군대에서 털자고 마음먹으면 배겨낼 재간 없다지만 정말 쉬고 싶었다.

1,2소대 합쳐 39명이 이번 일요일만큼은 확실히 쉬어보자고 결심하며 생활관을 광내고 개인 관물을 벽돌처럼 정리했다.

그러나 여유로운 일요일을 보내겠다는 꿈은 깨졌다.

오늘만 벌써 3번째 구보다.

아침에 실시되는 기상구보는 휴일과 상관없이 하는 것이므로 넘어가겠다.

두 번째 구보는 화장실 상태 불량이 빌미가 되어 뛰었다.

누군가 볼일을 보고 깜빡 잊고 물을 내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세 번째는 똑똑하고 잘난 오민철이 구강상태 불량에 걸린 것이다.

한 마디로 이빨을 닦지 않아 또 뛴 것이다.

외인부대는 프랑스란 나라에 어떤 긴급 사태가 발생하면 1순위 파병군이며 최정예 신속대응군이다.

공식 특수전부대는 아니지만 사실상 특수전부대 대우를 받을 만큼 훈련의 강도가 센데, 그 중심에 걸핏하면 군장무게 20킬로를 지고 8킬로를 50분 내에 주파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여기 있는 줄도 모르게 좆 빠지게 찾았잖아.”

옥상에서 운기조식을 마치고 일어나려는데 오민철이 나타났다.

“또 그거 했냐. 운칠기삼.”

“내 머리도 돌이지만 형 머리도 진짜 만만찮다. 지금 노름해? 운칠기삼이게. 운기조식이라고 몇 번을 가르쳐 줘야돼?”

“어린노무새끼 성질하곤, 콱 그냥.”

한 대 때릴 듯 주먹을 쳐들었다가 내린다.

“이빨 닦았어?”

권총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닦았어. 봐라 봐”

오민철은 이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빤스 빨아 놓고 닦는다는 걸 그만 깜빡했지 뭐냐. 진짜 미안하다.”

털썩!

오민철이 옆으로 주저앉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처럼, 딱 한 잔만 했으면 좋겠다.”

오민철은 소주가 생각나는 듯 입맛을 다셨다.

몰래 술 먹다 걸리면 곧바로 퇴소다.

“앞으로 뭣뭣 남았냐?”

“많이 남았지. 내일부터 산악 훈련 들어가고, 막판 150킬로 전술행군이 고비일 것 같은데.”

흐음, 오민철이 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총수야 5년 뒤에는 뭐 할래?”

외인부대 복무기간은 5년이다.

의무복무기 때문에 무조건 5년은 채워야 하는 것이다.

이후 본인의 의사에 따라 6개월씩 연장근무를 신청할 수도 있고 제대를 해도 상관은 없다.

외인부대를 지원하여 5년 근무하고 군복을 벗는 율이 채 5퍼센트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거의가 오랫동안 근무하기를 소원한다는 뜻이다.

특히 동구권 사나이들은 백퍼센트 가까울 만큼 말뚝을 자랑했다.

“형은 5년 후에 뭐할 건데요?”

“5년 후.”

오민철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계획이 있지.”

“어떤 계획?”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자식! 차차 알게 된다. 아차 너에게 부탁할게 있어서 왔는데 그냥 내려갈 뻔 했다.”

“말해보세요.”

“운기조식인가 뭔가 하는 것 나 좀 가르쳐 주면 안 되냐?”

“안돼요.”

“왜 안 되는데?”

“그냥 안돼요.”

“권총수 너 이럴 거야. 한국도 아니고 이역만리 프랑스 땅에서 동포끼리 돕고 살아야지.”

“왜 배우려고 그러는데요?”

히죽!

오민철이 야릇하게 웃었다.

“너 그것 어디서 배웠냐?”

“그건 알아서 뭐 할 건데요?”

“너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 느끼지? 처음 훈련소 들어왔을 때와 두 달이 지난 네 모습은 한마디로 하늘과 땅이야.”

오민철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내가 특전사 출신이기 때문에 체력훈련에 대해 좀 아는 편 아니냐. 체력 훈련만큼은 외인부대도 뒤지지 않아. 체력 훈련은 다른 것과 달리 어느 정도 기본 와꾸가 갖춰지지 않으면 따라가기 벅차다는 거지. 더구나 넌 체구도 작은데다 군 생활 경험도 없기 때문에 더욱 허우적거려야 하는게 정상이야.”

“그런데 아니라는 거야?”

권총수가 웃는다.

“운기조식 그것 때문이라고 본다. 내 말 틀렸냐?”

“그만 내려갑시다.”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오민철이 앞을 가로막았다.

“야 이럴 거야.”

“형 머리로는 가르쳐 줘도 못해. 비켜!”

권총수가 휙 지나가자 오민철의 눈이 사팔뜨기로 찢어졌다.

“싸가지 드럽게 없는 새끼.”

오민철이 투덜거리며 뒤를 따랐다.

사실 처음 배우고 3개월 가까이는 몸속에서 어떤 반응이나 변화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니까 8월, 외인부대 지원을 위해 본격적인 체력단련과 학원선생 아들을 구출해주고 영어를 배우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운기조식을 하는데 단전이 꿈틀거렸다.

공공선사의 말에 의하면 내공이란다.

내공이 쌓이면 정신이 맑아지고 힘이 세어지는 것은 물론 추위, 더위, 배고픔도 덜 느끼게 된다.

태양혈이 튀어나오고 눈빛이 형형(炯炯)해진다.

그렇게 신체에 변화가 시작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눈과 귀가 밝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걸 체감했다.

특히 이곳에 온 이후 더욱 열심히 수련하였다.

사실 오민철의 싸움에 끼던 날 휘두른 주먹은 백보신권이었다.

그냥 설명대로 휘둘렀을 뿐인데 거구들이 나가떨어진 것이다.

* * *

피레네 산맥 제4외인 연대 산악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암벽 등반과 하강을 위한 레펠과 줄을 타고 절벽과 절벽을 이동하는 줄타기 훈련이 이어졌다.

장비 착용법과 하강에 대한 시범과 실습이 이뤄졌고 곧이어 가장 기본적인 후면 레펠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몇 번은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교관이 오른손은 그저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일 뿐이며 레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왼손이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묘하게도 막상 낙하할 때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오른손은 추락하는 내 몸을 절대 정지시키지 못한다.

모든 정지와 출발 버튼은 왼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인지하기까지 상당히 애를 먹었다.

더욱이 후면 레펠은 대여섯 번 왕복하면서 금세 자리를 잡아갔지만 역 하강 레펠은 결코 쉽지 않았다.

후면 레펠은 절벽을 보고 내려가지만 역 하강 레펠은 거꾸로 엎드리다 보니 절벽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다.

그건 굉장한 고소공포였다.

모두가 긴장을 하였고 교관의 협박과 엄포에 내려가긴 했지만 하나같이 꼼지락거리는 수준일 만큼의 느린 속도였다.

물론 그런 훈련병들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가혹한 기합이 주어졌다.

겨울인데도 땀이 솟아나고 온몸에서 열기가 푹푹 쏟아질 쯤 되면서 조금씩 영화 속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이곳에서도 오민철은 돋보였다.

엉성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하고도 강렬한 포스에 교관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세르게이와 오스카르 역시 훈련병들의 시선을 충분히 사로잡았다.

다만 그들과 오민철의 차이는 성품이었다.

오민철은 활달하여 시종 떠들고 앞장서는 스타일인 반면 그 둘은 침묵이었다.

필요 없는 말은 결코 입 밖으로 뱉어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오민철이 유난히 더 시선을 끌게 되는 것이다.

2주간의 레펠과 줄타기 훈련이 끝나고 곧바로 산악 스키 훈련이 시작되었다.

한 번도 타보지 않았고, 텔레비전 스포츠 뉴스에서만 보았던 6,70도 경사면을 시속 백 킬로가 넘는 속도로 내려오는 스키어의 모습은 멋지다 못해 화려했다.

쿵!

퍼억!

여기저기서 채 십 미터도 미끄러지지 못하고 나뒹굴고 넘어졌으며 곳곳에서 비명이 터졌다.

권총수 역시 온몸이 눈과 흙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훈련병들과 달리 차이가 있다면 빠르게 스키어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력금강심법’

갈수록 신비하고 놀라울 뿐이었다.

심법의 경지가 오르면서 조금씩 훈련에 접목을 시켰다.

경사진 눈길을 빠르게 내려가는데도 몸의 균형은 완벽했다.

촤악!

츄아아아!

더 이상 넘어지지 않았다.

200미터란 짧은 거리지만 부드럽게 출발하여 안전하게 도착했다.

도착지점에서 테블릿 피시를 이용해 훈련병들의 상태를 기록하며 살피던 교관 앙드레의 고개가 조금씩 끄덕여진다.

12주째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 성적 순위 10위 안에 든 훈련병 중 군대 미필자는 권총수가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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