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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7화 (17/651)

제17화: 무대뽀(2)

미소를 짓고 주위를 살폈는데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책상과 의자들이 있고, 쌓인 서류더미와 컴퓨터가 있었다.

한쪽 벽에 째깍 거리면서 돌아가는 둥근 벽시계가 있고 그 위로 사훈인 듯 (the creative itch: 창조적 욕구)보이는 글씨가 쓰인 액자가 걸려 있었다.

눈에 보이는 의심스런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숨어 자신을 노리고 있을까.

숨이 막힐 만큼 조용했다.

매의 눈으로 살피고 토끼의 귀로 듣는다.

팟!

한순간 권총수의 눈이 섬광을 토해냈다.

‘바로 그것이다’

재빨리 대력금강심법을 운용했다.

‘마음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존재한다. 있다(有)라고 하는 건 꼭 형체가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바람의 소리(風音)가 보이더냐. 그러나 귀는 듣는다.’

듣는다.

움직임에는 반드시 소리가 있다고 했다.

듣지 못하는 건 너무 소리가 작기 때문이다.

대력금강심법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지만 의심될 만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귀가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기까지는 아직 심법의 수준이 오르지 못한 건가’

권총수는 반대편 출구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스으!

거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쯤 권총수는 돌아섰다.

혹시 발견하지 못한 적이 등 뒤를 노릴 수도 있고, 입구에서 뒤통수를 깠던 1차 관문에서의 경험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드르륵!

돌아섬과 동시에 F1(소총 파머스의 약칭)이 불을 뿜었다.

좌측 창문 쪽에서 가죽 자켓을 걸친 마네킹이 아무소리 없이 올라왔다.

권총수는 계속 실내를 훑으며 뒷걸음으로 3번째 관문을 벗어나고 있었다.

통제실 사람들 모두 권총수의 움직임을 숨죽이듯 지켜보고 있었다.

권총수는 4번째 어린이 놀이터 구간을 통과하고 5번째 시장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다.

좌우로 많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수많은 마네킹들이 시장 사람들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시장바구니를 들고 걷는 마네킹,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가는 마네킹, 오렌지 한 개를 들고 주인과 흥정하는 모습의 마네킹, 호객 행위를 하는 듯 지나가는 행인의 옷소매를 잡고 떠드는 흑인 소년 등 다양했다.

거기에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시끌벅적한 시장 특유의 소음이 흘러 나왔다.

남대문 시장이 따로 없었다.

저벅 저벅!

권총수는 자세를 낮추고 양손에 F1을 움켜쥔 채 좌우를 노려본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혀 놓은 마네킹들이 헷갈린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후우!”

숨을 한 모금 토해냈다.

대력금강심법을 끌어 올렸지만 아직 시끄러움 속에서 특정 소리를 찾아내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팟!

불현듯 대력금강심법의 한 구결이 떠올랐다.

‘일체(一體)가 청정(淸淨)하면 번뇌(煩惱)도 청정(淸淨)하여 눈(眼)이 열려(開) 보지 못할 것이 없다’

‘마음을 고요하게 갖추라는 뜻’

긴장을 누그러뜨려야 하는데 상황이 상황이니 쉽지 않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무념무상은 아니어도 비슷하게라도 만들어야 했다.

스으으으!

갑자기 시야가 넓어졌다.

그렇다고 수평으로 180도 위 아래로 약 60에서 70도를 볼 수 있는 인간의 눈이 카멜레온처럼 360도 마구잡이로 도는 건 아니었다.

‘설마 내가 심안(心眼)의 경지’

말도 안 되는 얘기였기에 이내 피식 웃었지만 어쨌든 시야 각도가 넓어진 건 분명했다.

빙글!

권총수의 몸이 왼쪽으로 돌아서며 방아쇠를 당겼다.

좁은 골목에서 회색 자켓을 걸친 마네킹이 나타났다가 F1에 박살이 났다.

권총수는 자세를 낮추며 살얼음판을 걷듯 걸었다.

가브리엘 대위의 입술을 비집고 신음인지 경탄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왔다.

시장을 통과하고 있는 권총수가 지금 세 번째 마네킹을 박살내고 있었다.

지켜보는 일부 교관들도 마른침을 삼켰다.

드르륵!

시장 끄트머리에 이르렀을 때 과일을 고르는 사람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있던 마네킹이 돌아섰고 동시에 F1이 불을 뿜었다.

“반사신경이 굉장합니다”

1소대장 앙드레가 가브리엘 대위를 보며 말했다.

가브리엘 대위는 아무 말도 않고 다음 관문으로 이동하고 있는 화면 속 권총수를 바라보기만 했다.

마지막 7번째 관문인 주택가로 들어섰다.

서울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그런 구조였다.

개가 짖었고, 마리 있니? 마리, 하며 딸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 담 넘어 어느 집에서는 뜻 모를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권총수는 아마 프랑스 가요일 것이라고 생각 했다.

월월월!

진짜 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녹음해 놓은 소리다.

적당히 시끄럽고, 그럴싸한 활기로 사람이 살고 있는 분위기를 한껏 살려 놨다.

시가지 전투 과목이 끝나면 외인부대 훈련 절반이 지나간다.

휘익!

F1이 다시 비명을 토했다.

좌측 담벼락 위로 마네킹 머리가 올라 온 것이다.

“우훗!”

권총수는 다급성을 터뜨리며 총구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두더지처럼 오른쪽 주택 용마루 위로 마네킹 머리 두개가 나타났다.

드르륵!

드륵!

전광석화와 같은 응사에 마네킹과 기왓장들이 부서졌다.

주택가 지역의 남은 거리는 채 이십 미터가 되지 않아 보였다.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귀를 쫑긋 세우고 대력금강심법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눈과 귀를 동시에 열었다.

‘10미터’

조금씩 흥분으로 호흡이 가빠진다.

‘5미터!’

마라톤 선수의 결승점 골인 순간이 이런 기분일까.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덮는다.

긴장이 극에 이르렀다는 징조였다.

‘1미터!’

마지막 왼발을 내디뎠다.

‘뭐야’

막판에 강한 매복이나 어떤 함정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조용히 마무리 되자 조금은 허탈한 생각마저 들었다.

“후우!”

권총수는 길게 숨을 쉬었다.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데도 얼마나 긴장하고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온몸이 땀으로 후줄근했다.

“게이 형!”

한 사내가 텅 빈 공터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내가 잘하는 게 기분 나빠?”

권총수가 인상을 쓰자 세르게이가 빙긋 웃었다.

“놀라워.”

“뭐가 놀라운데?”

“몇 번 맞았어?”

세르게이 시선이 손목에 차고 있는 러버워치를 바라보았다.

슥!

권총수는 왼팔의 러버워치를 내밀었다.

제로(0)였다.

그건 단 한 발도 고무탄 공격에 맞지 않았고 마네킹들을 2초 안에 제압했다는 뜻이었다.

“총수, 군대 경험 없다고 했지?”

“응!”

“정말 대단해.”

“별 것도 아닌 걸 갖고 뭘 또.”

권총수가 히죽 웃었다.

“지금 우리가 통과해온 시가지 전투 훈련 코스는 외인부대가 독창적으로 만든 것이 아냐. 외인부대가 처음 창설되었을 때는 시가지 전투라는 따위의 개념이 없었으니까. 1979년 소련의 비밀경찰 KGB 예하부대 스페츠나츠(지금도 존재함)의 시가지전투 훈련소를 본떠 만들어졌어.”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스페츠나츠는 미국의 네이비 씰과 비교되는 부대지. 그런 부대가 만든 훈련코스를 단 1점의 가감 없이 통과했다는 것은 경이적인 일인거야.”

“흐흐흐!”

권총수는 흐뭇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에 둘은 고개를 돌렸다.

“오스카르!”

브라질의 최정예 B0PE(Batalhão de Operações Policiais Especiais: 대테러 임무를 전담하는 브라질 국가 헌병대 특수부대)출신이었다.

그 역시 실점 없이 통과했다.

이번 기수에는 날고 긴다는 특수부대 출신들이 많았다.

오스카르 역시 권총수를 극찬했다.

“정말 왜들 이래요.”

권총수는 목을 한 바퀴 돌렸다.

시가지 전투에서 10명이 떨어졌다.

54명이 입소해 9주째 되던 날 서른아홉 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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