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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3화 (13/651)

제13화: 해보자(2)

다행히 고문관 노릇은 제식훈련 하나로 막을 내렸다.

권총수는 빨리 적응을 하고 있었다.

이후 이어지는 여러 과목에서 동기들의 실수로 기합을 받았을 뿐 아직 자신의 부족함으로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 혼자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었다.

같이, 우리, 함께였다.

전우는 결코 나눠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른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함께 사는 것이었다.

거울 속 눈이 벌겋다.

피로가 누적되면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단 하룻밤도 풀로 재워주지 않았다.

잠이 들만하면 비상을 걸어 연병장에 집합을 시켰고, 야간 구보를 하기 일쑤였다.

월등한 신체 조건을 갖고 있는 동구권 친구들도 바닥난 체력으로 허우적거렸으며 부족한 잠은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을 불러왔다.

그러나 반짝거리는 빛나는 눈을 가진 이도 있었다.

그들은 신속했고 모든 훈련에서 앞섰는데 권총수와 세르게이였다.

특히 체격이 작은 권총수의 기민한 움직임에 교관들이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갈수록 대박’

권총수는 자신의 몸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정확히 말하면 대력금강심법이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파김치가 되어 생활관에 들어갔다가도 잠시 운기조식을 취하면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진다.

대력금강심법의 신비함을 체험하고 깨달을수록 아무리 바쁘고 쫓겨도 아침저녁으로 반드시 운기조식을 하여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대력금강심법이 아니었다면 실패할 수도 있는 도전일 만큼 훈련은 혹독했다.

마침내 탈락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 2주차 제식훈련이 끝나고 3주차 총기 다루는 과목이 끝날 때쯤이었다.

제식 훈련에서 모자랐거나 총기 과목 이수의 성적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탈락 사유는 뜻밖에도 체력 부족이었다.

어떤 과목이든 훈련 10분에 기합이 50분이었다.

기합이 훈련이고 훈련이 기합인지 헷갈리는, 말 그대로 하루 종일 돌아야 하는 뺑뺑이다.

더욱이 매일 아침 뛰어야 하는 4킬로미터의 전투구보에 상당 수 훈련병들이 주저앉았다.

미군이 자랑하는 네이비 씰은 훈련중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는 황금종(golden bell)을 쳐서 스스로 탈락을 공표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외인부대는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돈을 벌 목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뒤쳐져도 내 발로 걸어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3주까지는 지켜본다.

그러나 4주째에도 크게 개선되거나 나아지지 않자 그때부터 싸그리 쳐내는 것이었다.

4주차에 들어서자 수류탄 투척과 기본전투(각개전투) 훈련이 시작되었다.

모의 수류탄을 가지고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한 투척 훈련을 했지만 진짜를 던진다는 사실에 모두가 긴장한 얼굴이었다.

권총수는 지급 받은 외인부대 제식총기 파마스F1(FAMAS F1)을 등 뒤 대각선으로 메고 호기심과 조금의 긴장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파마스 소총은 5.56 × 45 mm NATO탄을 사용하는데 1분에 900-1000발을 쏟아 부을 수 있다.

25발짜리 직선형 탄창을 사용하고 유효사거리는 약 300미터 정도 된다.

“1소대 일어섯!”

소대 교관 앙드레 하사가 차갑게 명령했다.

일렬로 늘어선 훈련병들을 쭈욱 훑는다.

“배운 대로 던지면 아무 문제 없다. 질문있나?”

“지원병 쑨양, 있습니다.”

“뭔가?”

“안전핀이 뽑히지 않을 경우 어떡합니까?”

꿈틀!

앙드레 하사의 눈썹이 출렁거렸다.

“뽑힌다!”

앙드레 하사는 짧게 뱉고 돌아섰다.

쿵!

콰가강!

수류탄이 터지면서 굉장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때?”

권총수는 앞서 던지고 온 세르게이에게 물었다.

세르게이는 가타부타 아무런 말도 없이 빙긋 웃기만 했다.

볼수록 괴이한 친구다.

말이 없고, 말을 걸면 가벼운 미소만 짓는다.

물론 벙어리는 아니었다.

“다음!”

권총수 차례가 되었다.

교관 앙드레 앞으로 걸어갔는데 탁자 위 수류탄 박스에 수류탄이 가득 들어 있었다.

“권총수 훈련병, 긴장되는가?”

“아닙니다.”

권총수는 쩌렁하게 소리쳤다.

“배운대로 하면 된다.”

앙드레가 수류탄 한 발을 건네주었다.

실제 수류탄과 동일한 크기와 무게의 모의탄으로 연습을 했는데도 기분 때문인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수류탄을 쥔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치며 1미터 높이의 벽돌을 쌓아 만들어진 참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안전핀 뽑아!”

뒤에서 앙드레 하사가 소리쳤다.

권총수는 왼쪽의 둥근 고리를 잡아 당겼다.

툭!

안전 손잡이를 놓지 않는 한 터지지는 않는다고 배웠지만 가슴이 제법 두근거린다.

“적이 보이나?”

“예!”

“어디에 있나?”

“원형의 참호 안에 있습니다.”

“몇 명인가?”

“네 명입니다.”

“분명한가?”

“확실합니다.”

앙드레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투척!”

20여 미터 쯤 떨어진 곳에 움푹 패인 구덩이에 정확히 던져 넣어야 한다.

사실 수류탄을 던질 정도의 상황이면 그 전쟁은 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배웠다.

그만큼 적이 내 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휘익!

길게 심호흡을 한 뒤 수류탄을 던졌다.

팟!

하는 소리를 내며 안전 손잡이가 몸체에서 떨어져 나간다.

안전손잡이가 떨어지면서 안의 뇌관을 때릴 것이고 수류탄은 폭발할 것이다.

지원병들 대부분이 수류탄을 던지자마자 몸을 숨기는 데 급급했으나 권총수는 달랐다.

수류탄이 구덩이로 정확히 들어가는지 끝까지 주시하고 나서 상체를 숙였다.

지켜보던 앙드레 하사의 두 눈이 반짝 빛난다.

쿠쿵!

굉음이 울리며 수류탄이 터졌다.

* * *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는 피우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담배 피우다 걸리면 어떤 처벌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고 교관들도 모른 체 해 주었다.

어쩌면 프랑스가 세계 최대 애연 국가이다 보니 유독 담배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푸는지도 몰랐다.

야외 흡연실에서 십여 명의 지원병들이 담배를 피우는데도 누구 한 사람 떠들거나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백인들도 햇볕에 얼굴이 탄다는 걸 알았다.

검은 것이 아니라 새빨개졌다.

지원자들 상당수가 동구권이었는데 이상하게 말들이 없었다.

특히 보스니아에서 온 친구들은 거의 입을 닫고 살았다.

같이 땀을 흘리며 땅바닥을 구르는데도 입에서 힘들다는 말 한 마디 내뱉지 않았다.

원래 고독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지독히 내성적인 성향으로 고통과 아픔을 좀체 외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말없이 조용하다는 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는 의미였기에 권총수는 그들의 모든 것을 더욱 존중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권총수 자신도 그렇지만 이들 또한 돈을 벌기 위해 왔다.

외인부대 월급이면 러시아나 동구권 직장인들의 1년 연봉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1년 연봉까지는 아니어도 분명한 건 외인부대 월급 정도면 자기나라에서 굉장히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지원병들이 출신 국가에 따라 약간씩 특징들을 갖고 있었다.

서유럽 즉,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일찍 발달한 나라의 출신들은 사생활을 중히 여겼고 누구와도 잘 어울렸다.

그에 반해 동구권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지내는 경향이 강했다.

모였다고 해서 왁자지껄 하지도 않았다.

그냥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다.

또한 러시아권의 이름은 대개‘예프’로 끝나는 반면, 폴란드를 포함한 그쪽은 ‘스키’로 끝난다는 걸 알았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하는 이름이고, 폴란드쪽은 레반도프스키, 머르네프스키가 그러했다.

그때 2소대 생활관 쪽이 웅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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