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훈련소(1)
한국인으로서 외인부대를 경험한 사람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러나 현재 근무 중인 사람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청바지에 낡은 바이커자켓을 걸친 185센티미터 정도 되는 건장한 사내가 어금니로 담배를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한국이오?”
권총수는 이마를 찌푸렸다.
담배를 씹으며 건들거리는 사내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그렇습니다만?”
“아, 이거 반갑네. 이런 곳에서 동포를 만나다니 악수합시다.”
사내는 큰 소리로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난 오민철이오.”
“권총숩니다.”
“권총수, 이름 대박. 빠방!”
오민철은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쳐 감싸며 권총 쏘는 시늉을 했다.
“진짜 반갑네. 외인부대 박을라고?”
“예!”
“같이 잘 박아 봅시다. 나이가?”
“스물입니다.”
“난 서른, 형이라고 불러.”
“네...네!”
오민철은 어깨를 토닥거렸다.
오민철은 특전사 707을 나왔다고 했다.
제대 후 소방공무원이나 경찰 쪽 특채를 노리고 지원한 것이다.
707이 출신이란 이름은 틀림없이 그에게 가산점을 부여했지만 필기시험 성적이 워낙 저조하여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시험을 보지 않고 들어가는 특채도 있지만 선발 인원이 너무 적었다.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한 번도 사무실에 앉아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체질적으로 뛰고 달리고 부딪히는 육체적 노동이 좋았다.
그런 자신에게 소방관과 강력계 형사는 매우 매력적인 직업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계속된 실패에 결국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외인부대는 어제를 기억하지 않는다.
만 17세에서부터 40세까지 건장한 남자면 무조건 오케이였다.
그가 예전에 무엇을 했든 어떤 인물이었든 철저히 무시된다.
이른바 특혜나 특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외인부대는 수시로 지원자가 몰리고, 이곳 오바뉴 뿐만 아니라 프랑스 여러 곳에 센터가 존재하고 찾아온 지원자들은 모두 여기로 보낸다.
이곳 오바뉴는 행정부대(우리나라의 보충대)로 훈련소로 보내기 전 지원자들의 신체와 정신적 합격유무를 가려주는 곳이었다.
오바뉴에 모인 지원자들은 신체검사를 포함한 철저한 신원조사가 이뤄진다.
과거 외인부대는 죄를 짓고 도망 다니는 범죄자들의 도피처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인터폴을 통한 범죄이력 조회까지 이뤄진다.
육체와 정신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훈련소가 있는 카스텔노다리 훈련소행 기차를 타는 것이다.
오민철은 쉬지 않고 떠들었다.
자신의 군대 경험을 자랑하듯 말했는데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결론은 아무리 외인부대 훈련이 빡쎄다고 707만큼 하겠느냐였다.
“주목!”
녹색 베레모를 쓴 군인 한 명이 나타났다
“난 교관 세르죵(Sergent: 하사)안토니오다. 지금부터 나를 따르도록!”
안토니오는 마른체격에 19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흑인이었는데 매우 날카로운 눈매를 갖고 있었다.
부대를 통과하여 넓은 체육관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세르종 계급장을 단 군인 십여 명이 지원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 알게 된 일이지만 이들 모두 교관들이었다.
안토니오가 단상에 올라가더니 힘주어 말했다.
“앞으로 2주 동안 몸과 마음의 검사가 이뤄질 것이다.”
어쩌면 강도 높은 훈련보다 더 두렵다는 외인부대 신체검사가 시작된 것이다.
20명씩 1개 소대를 이뤄 내무반으로 인도되었다.
권총수는 1소대로 분류되었고 오민철은 2소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둘은 헤어졌다.
오민철은 무척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잘해보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돌아섰다.
피식!
권총수는 돌아서서 걸어가는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이미 한 번의 군 생활을 한 탓인지 오민철은 그다지 긴장해 보이지 않았는데 서툴지만 프랑스어도 제법 됐다.
첫날은 부대를 소개하는 영화 상영이 체육관에서 있었다.
외인부대의 역사와, 외인부대가 참여했던 세계적인 전쟁, 그리고 빛나는 투혼과 전승을 기록한 영화였다.
권총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영화를 시청했다.
외인부대의 기상은 대단했다.
특히 알제리 독립 전쟁에 투입된 제1외인공수연대의 혁혁한 전과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지휘관이 맨 뒤가 아니라 선두에 서서 공격 앞으로 지시를 한다는 것이었다.
지휘관이 사망하면 아무리 강한 부대일지라도 사기가 떨어지고 패퇴할 위험이 높다.
그래서 일반 부대의 지휘관은 필요에 따라 자리를 이동하는데 외인부대는 무조건 선두였다.
2시간가량의 기록영화가 끝났다.
“어때?”
어느새 오민철이 다가와 묻는다.
“멋있는데요.”
군대를 다녀와 보지 않은 권총수로서는 그저 감탄스럽고 흥미로울 뿐이었다.
“완전 뻑이 간 모양이구나? 자식.”
오민철은 권총수가 귀엽다는 듯 씨익 웃으며 자기소대로 돌아갔다.
추풍낙엽이다.
체력측정 첫 코스로 턱걸이가 진행되었는데 팔꿈치를 일자로 편 상태로 10개를 하는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때로는 비명을 지르고,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온몸을 흔들면서 발악을 했지만 10개를 채우지 못한 지원자들이 수두룩했다.
체구가 큰 서양인들에게 턱걸이는 쉬운 운동이 아니었다.
턱걸이만 놓고 본다면 체구가 작은 동양인에게 이득이었다.
중국인 세 명과 일본인 다섯 명 모두 가뿐하게 턱걸이에 합격한 것이 그 증거였다.
턱걸이 한 종목에서 무려 21명이 떨어졌다.
이튿날 2000미터를 10분 내에 들어오는 달리기 측정이 시작되었다.
보통 사람이 2000미터를 십분 안에 들어오기란 쉽지 않다.
최소한 두세 달은 꾸준히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해야만 10분을 끊을 수 있다.
그런데 달리기에서는 의외로 탈락자가 적었다.
모두가 여유 있게 들어왔고 탈락자는 고작 세 명이었다.
확실히 오민철은 눈에 띄었다.
교관들까지도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랄 만큼 그의 체력은 단연 앞섰다.
20미터 왕복달리기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적을 보여줬고, 30미터 수영은 가히 압권이라 할만했다.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 펴기를 포함한 여러 종목에서 오민철은 선두권을 유지했다.
닷새간에 걸친 체력측정이 끝나고 남은 인원은 67명이었다.
지원자 아흔아홉 명에서 무려 32명이 무더기로 떨어진 것이다.
이어 지병검사에 들어갔다.
엑스레이를 포함한 내과의 여러 검사를 받고 나서 치과를 들어섰다.
외인부대 신체검사 중 가장 엄격한 것이 치아라고 했다.
충치는 무조건 결격사유이다.
이는 빠짐없이 달려있어야 하며 임플란트를 한 적이 있거나 하나라도 비어 있으면 탈락 사유가 된다.
결핵을 앓은 적이 있어도 탈락이다.
권총수는 엑스레이 결과도 깨끗했고, 청력, 시력 모두 통과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것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왼쪽 복부에 난 흉터였다.
권총수는 교통사고로 수술한 상처라고 말했다.
외과의사까지 동원되어 흉터의 크기와 상태 모양을 자세히 살폈다.
어떤 지병에 의한 수술 흉터라면 이 또한 탈락 사유가 된다.
“패스!”
한참동안 회의를 열더니 군의관이 나와 웃으며 말했다.
“후우!”
권총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된 흉터냐고 묻는 오민철에게는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화악!
칼을 맞았다는 말에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봤다는 표정이었다.
신체검사가 모두 끝났다.
최종 합격자는 54명이었다.
99명이 지원했으니 절반 정도가 떨어진 것이다.
물론 떨어졌다고 재수 삼수를 못 하는 건 아니다.
5수만에 합격한 사람도 있다.
예방접종을 맞았고 신분증에 붙일 증명사진도 찍었다.
또한 훈련소에서 입을 훈련복을 맞추었고, 외인부대 박물관 관람을 끝으로 오바뉴에서의 2주 생활이 끝났다.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 남서쪽 피레네 산맥 북부에 있는 카스텔노다리 훈련소를 향해 기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