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7화 (7/651)

제7화: 소림사(2)

“누구셔?”

“어디서 그렇게 술을 처마셨어요?”

순간 김지출이란 사내의 눈이 움찔했다.

사내는 아랫도리를 툴툴 떨더니 지퍼를 끌어 올렸다.

“택시 기사 말을 들어보니 강남 페이퍼 룸살롱에서 탔다던데?”

“당신 뭐야?”

김지출의 눈이 빛난다.

“사장님, 돈 없다고 간조는 안 해주면서 룸살롱에서 술 처마시는 건 또 무슨 경우죠?”

그러더니 어둠속을 보며 말했다.

“그만 나와.”

어둠속에서 유병칠이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병칠이?”

김지출의 눈이 커졌다.

“돈 쓸데 많습니다. 당장 방세도 내야하고.”

유병칠이 더듬거렸다.

“며, 며칠 일했지?”

김지출이 지갑을 꺼냈다.

“팔 일요.”

“팔 일이면 얼마야?”

흘깃!

고개를 들었다가 새파란 눈으로 노려보는 권총수를 보고 움찔했다.

“그러니까 2, 8은 16이고.”

유병칠의 눈이 번쩍했다

20만원씩 계산한다는 건 기술자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겁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

“통장 계좌 좀 적어줘. 내일 오전까지 꼭 넣을 테니까.”

김지출은 자꾸 권총수를 훔쳐봤다.

노동판만 20년을 전전하며 수많은 사람을 봐왔지만 이토록 살벌한 눈은 보지 못했다.

말 그대로 오금이 저린다.

마음은 굳혔다.

누구보다도 체력은 자신 있었다.

역시 난관은 영어였다.

프랑스어와 영어 두 개 중 하나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둘 모두 백지라고 해도 무리가 없었다.

그나마 영어는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귓등으로라도 들어는 보았지만 프랑스어는 단 한마디도 모른다.

결국 선택지는 영어 하나였다.

문제는 상대와 의사소통이 될 만큼의 영어 수준이 되려면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사흘 전 돈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요즘 며칠은 편하게 지내고 있지만 유병칠의 마음이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혹시 몰라 전번에 금을 팔고 받은 62만원중 50만원은 아껴두었다.

물론 학원비나 영어 학습을 위한 경비가 아닌 프랑스 가는데 필요한 비행기 표값이다.

3,4 시간 경유 하지만 저가 항공으로 잘 고르면 편도는 충분할 것 같았다.

물론 절대 시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배수의 진을 쳤을 때의 일이다.

권총수는 천장을 보고 누워있었다.

등이 방바닥에 닿는 순간 곯아떨어지는데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는다.

유병칠의 코고는 소리 때문도 아니다.

‘외인부대’

생각할수록 더욱 가고 싶다.

이왕 태어났으니 한 세상 불덩이처럼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외인부대를 알게 된 이후 더욱 그런 마음이 커지고 있었다.

벌떡!

할 수 없이 일어나 앉아 버렸다.

유병칠이 깰까 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후우우!

자정이 넘은 세상은 조용했다.

담배를 몇 모금 빨던 권총수 눈이 빛났다.

툭!

갑자기 담배를 담 밖 골목으로 버려 버리고 방으로 들어와 결가부좌했다.

‘대력금강심법이라고’

갑자기 그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일단 설명이 된대로 해보고 싶었다.

‘들어 마심(吸)은 곧 뱉음(出)이다’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지. 숨을 들이마시면 일단 뱉어야지. 밥도 먹으면 밑으로 싸야 하고.”

그러다 한순간 꿈틀 눈썹을 움직였다.

“가만, 세상의 모든 이치가 마시고 뱉는 거잖아.”

꼭 숨 쉬는 일이 아니어도, 어떤 행위를 하면 반대적 행위 역시 숙명처럼 따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결국은 죽는다.

부르르!

한순간 눈앞이 훤해지는 기분이 들면서 그만 몸을 떨고 말았다.

“설마 내가 해탈!”

그러다 피식 웃고 다시 심법의 내용을 떠올렸다.

‘대력금강심법은 호흡이다. 즉 안나(安那)와 반나(般那)의 연속이니라. 안나는 들숨이고 반나는 날숨이니 얼마만큼 마시고, 뱉어내느냐에 따라 내공이 성장할 것이다’

권총수의 눈썹이 다시 꿈틀거렸다.

‘내공이라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오래전‘맙소사 이런일이’란 텔레비전 프로에서 자칭 기공사라는 사람이 출연해 3미터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두 손바닥으로 넘어뜨리는 걸 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는 질문에‘기(氣)라는 보이지 않는 내공을 손바닥을 통해 발산하여 상대를 넘어뜨린다고 했다.

‘설마 이것이 내공을 연마하는 그런 비책’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감고 설명을 떠올렸다.

‘들숨과 날숨이 안정되면 수(數)에 이르고, 호흡을 따라 생각이 같이 움직이면 상수(相隨)를 얻는다. 마침내 마음이 호흡을, 호흡이 마음을 의식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머무른다(止). 마음이 머무르면 정신이 집중되어 세상을 보는(觀) 경지에 이르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고요한 청정(淨)의 세계에 도달하므로 마침내 운기조식(運氣調息)에 이를 것이다’

팟!

감겼던 권총수의 눈이 뜨였다.

어둠속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형형한 눈빛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별 것 아니잖아’

다시 한번 내용을 떠올렸다.

‘결국 운기조식이라는 걸 배우기 위해서는 그런 식으로 호흡을 해야 한다는 얘기고’

자신이 보기에는 너무 쉽고 쏙쏙 머리에 들어왔다.

그런데 공공선사라는 사람은 자신이 남긴 소림의 심법이 굉장히 어려워 아무나 깨우치기 어려울 것 같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

‘아아! 남기면 뭐 하겠는가. 복잡하고 심오하여 그 깊이에 접근하는 이가 거의 없을 진데’

탄식을 하며 결코 타고난 천재가 아니면 뜻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라면서 덧붙였다.

‘만일범(萬日凡), 천일재(千日才), 백일천(百日天)

이라 했다.

보통의 자질을 갖고 있다면 심법을 배우는데 만 일이 걸리고,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는 재능 있는 사람이라면 천 일이 걸릴 것이며, 두뇌가 영민하고 근골이 하늘의 기운을 얻었다면 백 일을 고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자신은 한번 읽음으로써 그 속뜻을 간파했다.

‘나 같은 돌대가리도 그냥 이해가 되는데 뭐가 어렵다고.’

쉽다.

최소한 권총수의 눈에 대력금강심법의 구결은 유치원에 처음 들어가면 배우는‘선생님 안녕하세요.’정도의 수준밖에 안 된 것이다.

예로부터 소림의 무공은 그 깊이가 없다고 했다.

배울수록 어렵고, 경지가 오를수록 더욱 난해하며, 깨우칠수록 더 넓어진다고 했다.

즉 완성이라는 과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무공이지만 누가 펼치느냐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는 것이다.

달마 이후 최고의 인물로 꼽히는 공공선사가 지금 살아서 권총수의 비아냥에 가까운 중얼거림을 들었다면 소스라쳤을 일이었다.

아무튼 권총수는 잠잘 생각이 없는 듯 계속 결가부좌 한 채 입술을 달싹거렸는데 심법 내용을 외우면서 그대로 호흡을 실행하고 있었다.

재밌다.

태어나 아직까지 어떤 일에 이토록 흥미를 느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각 08시면 작업에 들어간다.

최소한 30분 전에는 현장에 도착하여 작업복으로 환복해 있어야 했다.

핸드폰 알람 소리에 유병칠은 눈을 떴다.

허걱!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켠 유병칠은 소스라쳤다.

방 가운데 권총수가 떡하니 결가부좌 한 채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씨이!”

얼마나 놀랐는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뱉었다.

“야, 권총수, 총수야.”

큰 소리로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얌마!”

툭!

권총수 어깨를 손으로 밀었다.

그제서야 권총수가 눈을 떴는데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 뭐 하는 거야?”

“일어났냐? 몇 신데?”

“6시잖아.”

“벌써 그렇게 됐어? 시간 졸라 빠르구만.”

“설마 너 밤새 그러고 있었던 건 아니지?”

“친구야 오늘도 무사히! 난 아침 운동이나 나가야겠다.”

권총수는 추리닝 바지를 걸치고 밖으로 사라졌다.

닫힌 문을 보며 유병칠은 고개를 갸웃했다.

집에서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가면 조그마한 체육공원이 있었다.

철봉을 비롯해 평행봉과 바디스톤, 윗몸일으키기, 거꾸리. 크로스컨트리를 포함한 십여 가지가 있는데 대낮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여 직업이 없는 권총수의 독차지가 되었다.

외인부대의 체력측정은 굉장히 빡센 편이었다.

턱걸이는 팔꿈치를 쭈욱 펴서 10개를 해야 하고, 수영으로 30미터 이상을 가야했다.

1분 내 20미터 거리의 왕복달리기 7회, 10분 안에 2000미터 달리기를 포함해 만만찮다.

하지만 걱정 않는다.

항상 머리가 문제였지 몸은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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