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소림사(1)
인도의 어떤 사람이 120살까지 살았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은 있지만 이백쉰한 살이라니.
권총수는 피식 웃으며 읽어 내려갔다.
‘달마께서는 편하게 살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흔적 없이 죽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워낙 사태가 위중하여 비장한 마음으로 이렇게 남긴다’
‘대력금강심법(大力金剛心法)’
‘소림 무공의 시작이고 끝이다. 달마조사 이후 누구도 깨우치지 못한 대력금강(大力金剛)의 뜻을 난 완전히 달통하고 말았다’
‘백보신권(百步神拳)’
아무리 강한 적도 백보 안이면 모두 죽일 수 있다
‘불영보(佛影步)’
18명의 부처께서 하늘과 땅(天地)을 차지할 것이다.
‘무상각(無上脚)’
소림 각법의 총아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 번 발길질에 소실봉이 흔들린다.
‘단금인(斷金印)’
금강석에 손바닥(掌印)을 찍을 수 있다.
멈칫!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금강석은 다이아몬드로 알고 있다.
잘 아는 보육원 출신 형이 그쪽 바닥에서 일하고 있어서 적지 않은 지식이 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보석이라고 했다.
‘이 사람 이빨 예리한데.’
실소를 지으며 마지막 글귀에 시선을 고정했다.
‘소림 창건 이래 봉문은 처음이다. 소림의 상징 녹옥불장이 마교의 손에 넘어갔다. 노납은 그대와 나의 만남을 하늘이 맺어준 천연(天緣)이라 여긴다. 그대에게 엄숙히 명한다. 나 공공은 그대를 소림의 99대 장문인으로 명한다. 부디 노납이 깨우친 졸기(拙技)를 배워 위기의 소림을 구하거라’
권총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장문인(掌門人)은 또 뭐지?’
한참을 뚫어져라 보았다.
‘내용을 보면 날더러 자기 뒤를 이어 소림사 장문인이 되라는 말 같은데’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당혹스러워 할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아직 멀었어요?”
김모진이 옆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뭐 하나 보려고 하자 재빨리 화면을 꺼버렸다.
“끝났다.”
USB를 뽑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다!”
권총수는 USB를 손에 쥐고 바깥으로 나왔다.
‘소림사’
입안에서는 계속 소림이라는 단어가 맴돌고 있었다.
‘장문인’
낯설고 생소한 단어이다.
“아 몰라!”
짜증스럽게 고개를 흔들며 때마침 정류장에 멈춘 버스로 뛰어 올랐다.
차비가 없다.
이럴 때는 무조건 숙이고 보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다.
“아저씨, 죄송한데 솔직히 제가 차비가 없거든요. 오늘 한 번만 태워 주십시오.”
기사가 씨익 웃었다.
“맘에 드네. 학생이야?”
“아뇨.”
“그렇게 화끈하게 형편을 얘기하면 우리도 편해.”
“감사합니다.”
권총수는 힘차게 인사를 하고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남대문 시장에서 내려 허름한 삼층 건물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3층에 올라선 권총수는 복도 끝에 있는 문 앞에 섰다.
‘정은공방’
녹슨 철문을 가로질러 붙은 팻말이 시선을 잡았다.
쓰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쇠를 깎는 그라인더 소리가 온 몸을 파고든다.
군복 상의를 걸친 한 사내가 불꽃을 피워내며 쇠붙이를 갈고 있었다.
“형!”
사내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총수!”
탁!
사내는 그라인더를 끄며 돌아앉았다.
“웬일이야?”
“여전히 바쁘네.”
같은 보육원 출신 선배 전민구였다.
남대문에서 작은 보석 공방을 운영하는데 한 때 꿈이 축구선수였던 적이 있을 만큼 축구에 소질을 보였지만 시설 출신이라는 환경의 한계에 부딪혀 포기하고 기술로 전향했다.
보육원 출신치고는 성공한 편에 속한다.
탁!
권총수가 USB를 꺼내 놓았다.
USB를 이리저리 살피던 전민구가 물었다.
“18인데? 웬 USB?”
자신도 금으로 된 USB는 처음 본다는 듯 자세히 살핀다.
그러더니 컴퓨터에 꽂아 넣고 화면을 끌어냈다.
“대박!”
화면에 글씨가 나타나자 놀라는 표정을 했다.
하지만 기술자답게 화면의 내용보다는 금으로 된 USB에 관심을 가졌다.
“어디서 난 거야?”
바라보는 전민구의 눈이 빛난다.
권총수의 손버릇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버스 안에서 남의 지갑을 꺼내는 걸 몇 번 본적이 있었는데 버스에 달린 CCTV까지도 잡아내지 못할 만큼 교묘하고 빨랐다.
이것 또한 그렇게 얻은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이거 주웠는데, 진짜 아냐?”
“임마, 18K USB가 흔하냐? 보나마나 돈 좀 있는 놈이 뽀대 나게 일부로 금을 씌웠는데 뭘? 솔직히 말해 자식아. 너 이제 이런 짓 안 하기로 했잖아.”
“한 번만 믿어줘. 거짓말이면 내가….”
주위를 둘러보던 권총수가 자기 손으로 그라인더 스위치를 눌렀다.
애애앵!
웬만한 쇠도 순식간에 잘라버리는 그라인더가 험악하게 돌기 시작했다.
“거짓말이면 내 손가락 한 개 걸게.”
금방이라도 잘라 버릴 듯 새끼손가락을 가까이 대는 권총수를 보며 전민구가 한숨을 쉬었다.
“지랄한다. 기계나 꺼 임마.”
“진짜라니까.”
“알았으니까 기계 끄라고.”
권총수 성질을 잘 안다.
욱 하면서 손가락을 대버릴 수도 있었다.
툭!
기계가 꺼졌다.
“금 쪼가리만 좀 벗겨 내줘.”
두 사람의 눈빛이 엉켰다.
금방 주인은 한참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러더니 더듬거리며 입을 연다.
“음! 62만원입니다.”
생각보다 가격이 불만족스러웠지만 권총수는 오케이 했다.
“주세요.”
금방 주인이 금고에서 5만원권 12장과 만원권 두 장을 꺼내 주었다.
돈을 받아 쥔 권총수는 곧장 금방을 나와 사라졌다.
유병칠이 퇴근을 하고 돌아왔다.
삼겹살에 상추까지 씻어 화려한 저녁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던 권총수는 시큰둥하며 전혀 놀라지 않는 유병칠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친구야. 표정이 왜 그렇게 슬프냐? 씨바, 널 위해 이 엉아가 죽어라 준비했다고.”
“개자식!”
유병칠이 손가방을 휙 던지며 욕지거리를 내뱉자 권총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이 엉아는 아닐테고?”
“씹 새끼가 왜 안 주는 거야?!”
홱!
순간 뭔가 생각났다는 듯 권총수는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6월15’
“가만 오늘 간조(노동판에서 중간 임금 계산을 하는 날)잖아?”
“돈 없대.”
“누가?”
“누군 누구야 오야지 김사장이지. 아무래도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애.”
“일부러? 약점 잡혔냐?”
“이제 난 데모도가 아니야. 웬만한 부분은 내가 직접 미장을 한다고. 그런데 기술자가 아닌 데모도 일당으로 계산하겠대, 그건 그렇다 쳐도 돈이라도 제때에 주면 좀 좋아. 드러운 새끼.”
“무슨 개소리야. 시멘트 쳐 바르면 기술자인거지? 그런게 어딨어?”
권총수의 눈이 푸르게 타올랐다.
택시 한 대가 골목길에서 멈췄다.
뒷문이 열린 듯 하더니 다시 닫혔고, 재차 열리는가 싶더니 다시 닫힌다.
보다 못한 듯 앞문이 열리고 기사가 내려 뒷문을 열어주었는데 40중반 가량의 사내가 비틀 거리며 내렸다.
“넌 뭐야 임마?”
“기삽니다. 문을 못 열어서 내렸죠.”
“가 짜샤.”
“예 갑니다.”
기사는 재빨리 운전석에 올라가 차를 몰고 현장을 떠났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브레이크 등이 들어왔고 웬 사내가 운전기사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편 택시에서 내린 사내는 비틀거리며 길가 담벼락으로 다가가더니 아랫도리를 꺼내 볼일을 보았다.
쏴아아!
한 손으로 벽을 짚고서 볼일을 보고 있을 때 누군가 옆에서 나란히 섰다.
술 취한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사내는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내며 물었다.
“김지출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