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왔다(3)
PC방 아르바이트 김모진은 카운터에 앉아 졸고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눈을 뜨며 바라보다 대번에 인상을 쓴다.
“또 뭐에요?”
“이 자식 엉아만 보면 인상이야. 사람 별로 없으니까 기계 하나 쓰자.”
“안되는데요.”
“게임 안 해. 뭣 좀 인터넷으로 찾아볼 게 있어서 그래 임마.”
“진짜요?”
“못 믿겠으면 네가 옆에서 지켜보든가?”
권총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을 눌렀다.
이윽고 인터넷 화면으로 들어가더니 주머니에서 어제밤 메모 해놨던 외인부대 홈페이지 주소를 창에 치고 엔터를 쳤다.
화면이 변하고 붉은 탁자 위에 잘려진 사람의 손목 하나가 떡 하니 나타났다.
나중에 화면을 장악하고 있는 손의 주인이 외인부대의 전설 중 한 명인 당쥬 대위의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게 뭐예요 형?”
어깨너머로 게임을 하는지 정말로 인터넷에 뭔가를 찾는지 감시하던 김모진이 눈을 크게 떴다.
화면은 영어로 도배가 되었다.
(나중 한글 번역지원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적당한 통밥과 구글 번역기 도움을 얻어가며 조금씩 읽어 가기 시작했다.
나이조건은 17세부터 40까지인데 추가된 내용이 있었다.
(만 17살 6개월 부터 39살 6개월까지만 지원자격이 있다. 39살 7개월부터는 무조건 불합격이다. 그러나 17살 5개월 이하의 연령은 부모 또는 후견인 동의서가 있으면 가능하다)
“누가 보면 형 굉장히 영어 잘하는 줄 알겠다.”
등 뒤에서 지켜보던 김모진이 웃음을 지었다.
“모진아, 살인은 우발적이란다”
“농담도 못해.”
한참을 읽어 내려가던 권총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군대에 최종학력 증명서까지 요구하는 거야?”
“형 외국군대 가려고? 형은 고독한 존재라 군대 안가잖아.”
“이 새끼가 진짜!”
홱!
고개를 돌리자 김모진이 재빨리 물러선다.
“알았어. 셔터 아웃! 진짜”
김모진은 입술을 힘주어 깨물었다.
대충 번역된 내용을 프린터 했다.
내용을 살피는 권총수의 이마가 갈수록 좁혀진다.
“임플란트를 했거나 충치가 있으면 안 된다. 결핵을 앓은 적이 있어도 결격사유이고, 안경 착용자는 그때 그때 상황을 판단하여 합격여부를 결정한다. 후유증이 있는 어떤 병도 걸려서는 안 되며, 최소한 신체만큼은 완전 무결해야 한다. 한마디로 완전 새것 아니면 안 된다는 거잖아.”
다행스럽게 고아로 태어났지만 몸 하나 만큼은 아픈 곳 없고 이빨도 멀쩡하고 시력도 좋다.
계속 내용을 번역하며 살피던 권총수의 눈이 번쩍 섬광을 발했다.
처우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1300유로면 우리 돈으로 얼마냐?”
김모진이 재빨리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 검색을 하더니 계산기를 두드렸다.
“한화 180만원 정도 되는데.”
지급되는 수당까지 계산하면 대략 200만원은 넘는다.
그리고 눈에 띄는 문장 하나가 있었다.
‘프랑스 밖으로의 파병이 되면 봉급은 유동적이다. 분쟁지역일수록 위험수당이 더해지면서 기본급의 서너 배, 많게는 다섯 배까지도 수령 할 수 있다’
세배만 되어도 600이다.
비록 광고라는 것이 확장성, 과장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500이 넘으면 적은 돈이 아니다.
특히 원한다면 프랑스 밖으로의 파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번역된 종이 내용과 화면을 10여분 번갈아 보다가 컴퓨터를 껐다.
“총수 형 외인부대 가게?”
“이상하게 땡긴다. 담배 있냐?”
“없어!”
“훑어서 나오면 게임 한 시간 공짜?”
“그런게 어딨어요.”
김모진이 눈을 흘겼다.
“모진아, 너 저기 중앙교회 다니지?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냐. 가급적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잖아, 지금 너에게 이웃은 이 엉아야. 빨리 사랑해야지.”
“담배 좀 사가지고 다니세요. 진짜.”
김모진이 담배 한 개비를 뽑아 건넸다.
“여기서는 안 돼요.”
“당연하지.”
권총수는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PC방이 입점해 있는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이다.
1층은 규모가 상당히 큰 마트이고 이층은 중국집이며 3층은 당구장이었다.
그리고 가게 앞으로는 왕복 4차선의 도로가 나 있다.
딸칵!
권총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버스 정류소와 상당히 거리를 두었는데도 바람에 담배연기가 날아가는 듯 일부 여자들이 흘깃거렸다.
세상에 무능한 사람은 없다.
단지 그 직업이 자신의 체질에 맞지 않을 뿐이다.
성공한 인생의 80퍼센트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들었다.
내 적성은 뭘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랫동안 외인부대 광고를 이 잡듯 살피고 깊이 파악했을까.
‘내가 군대 체질?’
고아 출신이기 때문에 병역의무는 자동적으로 면제가 되었다.
한때 특전사나 해병대를 지원할까 했다. 의무병역이 아닌 직업 군인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혈혈단신 고아는 그것 또한 안 된다고 하여 포기했다.
치열하게 공부하여 대학을 나왔어도 들어갈 곳이 없는 현실을 비아냥거리며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자신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평가할 만큼 꿈을 위해 머리 싸매고 대학입시에 밤을 세보지 않아 잘 모른다.
자신이 누구보다 분명하게 알고 있는 건 딱 한 가지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즉 대한민국은 돈이 만법에 우선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20년을 살아오는 동안 자신보다 더 많은 싸움을 한 또래 아이들은 없을 것이다.
보육원 출신은 무조건 싸워야 하는 환경이다.
초등학교 때는 보육원 출신이라는 놀림에 맞서 싸웠고, 중고등학교 때는 놀림과 주먹까지 더해진 승부였다.
작은 체구지만 아직까지 누구에게 맞지 않았고, 두들겨 맞으면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기어이 항복을 받아내는 투지와 독기에 모두가 눈을 내리깔았다.
대개가 시비를 먼저 거는 쪽은 상대였고, 자신은 정당방위 차원에서 저항했을 뿐인데도 항상 나쁜 놈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대한민국 룰을 터득해 버린 것이다.
슥!
담배꽁초를 버리려는데 때마침 경찰차가 도착하여 두 명의 제복경관이 내렸다.
어쩔 수 없이 꽁초를 주머니 속에 넣다가 멈칫했다.
꺼낸 것은 어제 주운 USB였다.
깜빡 잊고 있었다.
순금은 아니지만 18K일 가능성은 높았다.
가짜는 절대 아니다.
어려서부터 손버릇이 좋지 않아 자주 금을 만졌다.
그러다 보니 다른 건 몰라도 금이라는 보석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해박한 지식을 지녔다고 자부한다.
겉만 입혔는지 아니면 USB기능을 제외한 전부가 18K라면 꽤 값이 나가는 물건이다.
24K를 나타내는 995라는 숫자도 18K와 14K를 뜻하는 750, 585라는 숫자도 보이지 않았다.
미친 듯이 수돗물을 마셨다.
돋보기로 살피고, 그것도 모자라 시금석을 놓고 문질러 금 성분을 검사하는 시약을 부었는데도 노란 흔적이 지워지지 않았다.
USB는 18K가 분명했다.
손으로 무게를 가늠해 보건데 족히 다섯 돈 이상은 되어 보인다.
훔친 것도 아니고 길바닥에서 주운 것이므로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물론 재수 없으면 점유이탈물죄 운운하며 파출소에서 오라 가라 하겠지만 그렇게 말려 들어갈 만큼 바보는 아니다.
소대가리 사장이 떡 버티고 있었다.
작은 체구에 비해 머리통이 굉장히 커서 모두가 소대가리로 부르는 PC방주인이다.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컴퓨터를 얻어 쓰자면 아르바이트생 김모진이 일하는 저녁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 * *
김모진과 소대가리 사장이 교대를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들어섰다.
“이번에는 또 뭐야?”
김모진은 대뜸 인상을 썼다.
“컴퓨터 좀 쓰자. USB에 뭐가 들었는지 좀 살펴보려고.”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슬쩍 보여주었다.
“빨리 끝내.”
김모진은 큰 시혜나 베푸는 듯 눈을 한 번 내리깔며 빈 테이블 청소를 시작했다.
뭐가 들었을까.
누가 사용하던 것이기에 금으로 USB를 만들었단 말인가.
꿈틀!
내용을 끌어내고 화면을 살피던 권총수의 눈썹이 모아졌다.
‘나 소림의 공공이 남긴다’
“소림!”
처음 듣는 단어다.
권총수는 계속 화면에 나타난 글씨를 읽기 시작했다.
‘내 나이 이백하고도 쉰한 살, 헛헛 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 정말 빠르구나. 엊그제 사부이신 천금신승의 손에 이끌려 숭산을 들어선 것 같은데 벌써 이백 하고도 오십 일 년이 흘러가다니’
권총수는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251살을 살았다는 얘기 같은데.’
피식!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