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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화 (4/651)

제4화: 왔다(2)

나도 취직하고 싶다.

나라고 왜 취직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고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99.99프로가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는 곳 말고는 없었다.

난 그게 기분 나쁘다.

그렇다고 내가 게으른 사람으로 착각할지 모르는데 그건 오산이다.

머리가 멍청하다 보니 공부는 뒤에서 서성거렸지만 몸으로 때우는 일은 자신 있었다.

중요한 건 몸뚱이가 부서지도록 일을 해도 책상에 앉아 자판 두들기는 놈보다 수입이 적다는 것이다.

더욱 기분 나쁜 사실은 노동판에 굴러서는 절대 성공한 인생을 꿈꿀 수 없다.

막노동판 출신이 대기업 총수 되고, 국회의원 되고, 검사 되고, 기자되었다는 말 듣지 못했다.

수입도 적고 미래도 없는 분야에서 일한다는 건 멍청한 짓이다.

보육원 출신이지만 나에게도 꿈이 있다.

이제 결정의 시간이 왔다.

현실을 인정하여 성질 죽이고 고된 노동의 길로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든지, 아니면 공부를 하여 학력이 필요치 않는 공무원 시험에 덜컥 합격 하든지 해야 한다.

어렵게 잡은 회귀다.

두 번 다시 권 영감으로 늙지는 않을 것이다.

녀석이 잔다.

피곤했던 듯 유병칠은 코까지 골며 곯아 떨어졌다.

권총수는 슬며시 일어나 벽에 걸린 유병칠의 윗도리와 바지를 뒤졌다.

역시 예상대로 없다.

권총수는 망설이지 않고 밖으로 나가더니 뒤 굽이 거의 낡아 뒤틀린 유병칠의 구두 바닥 창을 들어냈다.

있다.

오천 원 짜리 한 장이 반으로 접혀 있었다.

보육원 시절부터 숨어 있는 뭔가를 찾아내고, 상대 심리를 파악하여 허점을 간파해내는 능력에 대한 주위 칭찬은 뜨거웠다.

권총수는 오천 원권 지폐를 주머니에 넣고 곧장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갔다.

오늘따라 PC방이 만원이다.

“짜증나네.”

권총수가 인상을 쓰자 아르바이트생 김모진이 히죽 웃었다.

“형 조금만 참아요. 금방 자리 납니다.”

빨리 해야 한다.

혹시라도 유병칠이 자다 말고 일어나 돈이 사라진 걸 알면 당장 이곳으로 쫓아 올 것이다.

그전에 한 게임이라도 더 즐겨야 한다.

“비켜봐!”

김모진을 밀어내고 카운터 의자에 앉았다.

“게임 깔렸지?”

“카운터 컴퓨터는 만지면 안 됩니다. 사장님 알면 저 죽습니다.”

“그럼 죽어.”

그러면서 마우스를 놀려 꺼져 있는 화면을 살려냈다.

“안 된다니까.”

“5분만 한다니까.”

화면에는 오늘 매출액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장부처럼 찍혀 나왔다.

툭!

마우스를 눌러 화면을 끄자 파랑색의 바탕화면이 나왔고 인터넷 창을 띄우려는데 불쑥 광고 하나가 가운데서 나타났다가 오른쪽 상단으로 이동했다.

스으으!

워낙 붉은색의 자극적 화면이었기 때문에 권총수는 자신도 모르게 광고를 쫓았다.

꿈틀!

광고를 보던 권총수 눈이 찌푸려졌다.

커다란 도끼 하나가 힘차게 떨어지는 그림을 배경으로‘외인부대’란 자막이 홀리듯 나타났다.

‘외인부대는 당신을 존중 합니다. 위풍당당한 세계최강의 부대, 프랑스군 대표 브랜드에 관심 있으면 지금 즉시 신청하십시오. 우리는 그대를 기다립니다’

‘외인부대’

한참을 바라보던 권총수는 재빨리 메모지를 꺼내 홈페이지 주소를 적었다.

바로 그때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1층 PC방 문이 열리고 유병칠이 뛰어들었다.

“병칠이 형!”

김모진의 눈이 커졌다.

“야, 그 개자식 왔지?”

“누구?”

“누군 누구야? 어딨어? 그 시벌 놈?”

그 순간 권총수는 재빨리 카운터 밑으로 쭈그려 앉았다.

유병칠이 두 눈에 라이트를 켜고 게이머들의 얼굴을 수색할 때 권총수는 소리없이 PC방을 빠져나갔다.

유병칠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두 눈은 파랗게 빛났고 손에는 붉은 벽돌이 쥐어져 있었다.

흠칫!

알미늄 샷시로 된 문을 열려다 자신의 구두 옆에 놓인 낡은 운동화를 발견한 유병칠의 눈이 커졌다.

“개새끼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불을 켰다.

권총수가 코를 골며 큰 대자로 뻗어 있었다.

“죽어 새끼야!”

번쩍!

바로 그 순간 잠을 자던 권총수의 눈이 뜨였고 재빨리 옆으로 굴렀다.

딱!

그러자 벽돌이 권총수가 조금 전 누워있던 자리를 찍었다.

“너 미쳤어?”

권총수는 벌떡 일어서서 외쳤다.

“나야 임마. 너 친구. 권총수!”

“내 돈!”

“돈이라니? 무슨 개소리야? 왜 그러는데?”

“네놈이 내 돈 훔쳐 갔잖아. 내 구두 속에 숨겨 놓은 오천원. 뒈지기 싫으면 내놔.”

유병칠이 달려들자 권총수는 날쌔게 피하며 외쳤다.

“친구야, 진정해.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오해?”

“내가 무슨 돈을 훔쳤다고 이성을 잃고 이러는데? 네가 엄청 날 무시해도 이해할 수 있고 섭섭하지도 않아. 그러나 도둑놈으로 몰아붙이면 그건 괴로워.”

“그런데 왜 내 돈이 없어? 왜 없냐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임마. 다시 잘 찾아봐.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권총수가 더욱 핏대를 올렸다.

그러자 유병칠이 멈칫 하더니 자신이 흥분하여 제대로 살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듯 주춤하며 밖으로 나갔다.

“꼼짝 말고 있어.”

잠시 후 밖으로 나간 유병칠이 들어오는데 표정이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아직도 없어. 왜 그러는데? 나 정말 안 가져갔다니까? 경찰에 신고할까.”

“미안하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오천 원짜리를 꺼냈다.

“내가 너무 이성을 잃은 나머지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널 의심했다.”

“그런다고 남자가 고개를 숙이냐? 우린 친구야 임마. 그럴 수도 있지. 짜샤, 오해가 풀려 정말 다행이다. 하마터면 뒈질 뻔 했잖아.”

그러면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자리에 누웠다.

유병칠은 돌아누운 권총수를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 * *

유병칠은 아침 일찍 나갔다.

필시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 한 개로 아침을 해결할 것이다.

자는 척하고 있던 권총수는 유병칠이 나가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쌀이 떨어졌는데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건 자신을 향해서는 절대 돈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유병칠의 옷가지를 뒤졌지만 라이터 뿐이다.

재떨이로 사용하는 소주병 속을 살폈지만 철저히 필터까지 태운 꽁초 밖에 없었다.

권총수는 주위를 한번 훑고 나서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었다.

촤아아!

한참 동안 쏟아지는 수돗물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권총수는 밥그릇 한 개를 들고 수돗물을 받았다.

이윽고 밥그릇 가득 채워진 물을 단숨에 비우고 트림을 한다.

“끄억! 맛있다!”

수돗물을 잠근 권총수는 문을 열고 밖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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