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화 (3/651)

제3화: 왔다(1)

“이때쯤이면 지나갈 때가 됐는데.”

휘익!

자동차들의 진입로를 통해 걸어 올라간 권영감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익숙한 트럭을 향해 몸을 던졌다.

“으허헉!”

불칼이 소스라치며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늦었다.

콰아앙!

트럭에 부딪힌 권영감의 몸은 허공을 날아가 내부간선도로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 * *

홍제천은 어제 내린 비로 수위가 매우 높아져 있었다.

첨벙!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일어나며 권영감이 떨어졌다.

수위가 높아져 산책로 출입이 통제되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30여미터 가까이 얼굴을 물속에 박은 채 둥둥 떠내려가던 권영감이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으헛!”

주위 상황을 살피더니 재빨리 헤엄쳐 뭍으로 다가갔다.

푸어!

입에 들어간 물을 뿜어내면서 소스라쳤다.

“아뿔싸!”

몸이 달라졌다.

자신의 몸에서 힘이 나고 손등을 덮고 있던 거친 피부는 뽀송뽀송했다.

“서...성공이다.”

‘2015 빅뱅 잠실공연’

회귀가 분명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해주듯 때마침 빅뱅 공연 광고가 붙은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스무 살, 그러니까 55년 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삐뽀삐뽀!

그때 누가 신고를 한 듯 119와 경찰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피해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경찰은 무조건 피곤한 놈들이다.

몇몇 사람들이 물에 젖은 차림으로 걸어가는 권영감, 아니 권총수를 바라보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다시 20세로 돌아왔는데 쳐다본들 그 정도가 무슨 대수인가.

멈칫!

자신의 몸 상태를 분명하게 보기 위해 공중 화장실을 찾던 권총수의 걸음이 멈췄다.

길바닥에 USB 한 개가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버린 것이겠다 싶어 지나가려는데 묘하게 끌린다.

결정적인 건 노란색이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노란 금속은 모조리 금으로 보인다.

슥!

허리를 구부려 USB를 주워들었는데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언뜻 봐서는 금 같았다.

순금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확한 건 따로 자세히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았다.

USB를 주머니에 넣고 길가 공원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텅 비었는데 재빨리 거울 앞으로 다가간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성모님!’

천주교 재단 보육원을 다닌 탓에 자신도 모르게 성모 마리아를 찾고 말았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불과 30분 전 주름살로 도배가 되었던 늙은 소매치기 영감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잘 먹지 못해선지 피부가 뿌옇기는 했지만 주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짧은 스포츠머리에 제법 다부진 얼굴의 언젠가 세상 무서운 줄 몰랐던 스무 살 권총수로 돌아온 것이다.

“우히히히히!”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웃자 화장실을 들어서던 남자가 흠칫한다.

“아엠 쏘리!”

남자에게 가볍게 거수경례를 하며 화장실을 나온 권총수의 발걸음이 가볍다.

기억을 더듬어 그 시절 자취방으로 들어섰다.

다세대 주택 지하지만 얼마 전 살던 곳과는 격이 다르다.

기억이 맞다면 친구 유병칠과 같이 돈을 모아 얻은 방이었다.

“흐흐!”

미소가 절로 나왔다.

거울을 보고 또 봐도 55년전 권총수였다.

꼬르륵- 소리에 싱크대 위 서랍을 뒤지자 컵라면 한 개가 있었다.

전기 주전자에 수돗물을 받아 채우고 코드를 꽂았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켰는데 때마침 화면에서는 빅뱅이 나와 자신들의 히트곡 뱅뱅뱅을 노래하고 있었다.

‘찌질한 분위기를 전환해 광기를 감추지 못하게 해

남자들의 품위 여자들의 가식 이유 모를 자신감이 볼만해’

권총수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난 보란 듯이 너무나도 뻔뻔히 니 몸속에 파고드는 알러지

이상한 정신에 술렁이는 천지. 오늘 여기 무법지“

다다다닥 소리를 내며 전기 주전자의 물이 끓고 있었다.

권총수는 라면에 물을 부은 뒤 나무젓가락으로 주둥이를 눌러 놓고서 계속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오늘따라 노래도 잘 된다.

인생이 오늘 같기만 하다면 살아 볼만했다.

옆구리에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라면을 먹고 깜빡 잠이 든 것 같았는데 눈을 뜨자 험상궂은 한 청년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병칠아.”

보육원 친구이자 같이 자취를 하는 친구 유병칠이었다.

이제 막 일을 끝내고 돌아온 듯 어깨에 작업복 가방을 메고 있었다.

“총수야 취직했어?”

“일단 좀 앉아.”

“일자리 얻었냐고 묻잖아 자식아. 너 지금 몇 달째 놀고먹는 줄 알아?”

“알아. 알아. 그래서 내가 항상 미안해 하잖아. 너무 미안해서 요즘은 네 얼굴 똑바로 못 보잖아.”

유병칠은 의지와 집념이 강하다.

보육원 시절부터 뭐든 작심하면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고 마는 무자비한 녀석이었다.

그는 부모 형제도 없고, 가진 것 배운 것도 없는 우리가 좋은 일자리 얻기는 애초에 글러 먹었다면서 망설임 없이 공사판 질통부터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벽돌 담 표면에 시멘트를 바르는 미장공 시다를 하고 있었다.

녀석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뛰어난 미장공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난 녀석이 반드시 대한민국 제일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녀석은 충분히 해낼 놈이었으니까.

“어! 여기 놔둔 라면 어디 갔어?”

싱크대 위 서랍 문을 열어 보던 유병칠의 눈이 번들거린다.

“아, 그거. 내가 먹었지.”

“내놔!”

유병칠이 손을 내밀었다.

“뭘?”

“뭐긴 뭐야 임마. 내가 사다 놓은 라면을 먹었으면 돈을 내놔야 할 것 아냐.”

“친구야. 내가 지금 돈이 어디 있냐? 오늘 한 번만 봐주라. 곧 갚을게.”

“언제?”

“갚는다고. 정말 우리 우정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냐?”

“보증금에서 깐다.”

“뭐?”

“보증금 오백, 그중 네 돈이 오십 만원 들어갔잖아. 그 오십 만원에서 컵라면 값 천원 뺀다고.”

“아 자식, 그래 까까.”

쾅!

유병칠은 컵라면을 사러 나가는 듯 문을 닫고 사라졌다.

권총수는 닫힌 문을 보며 피식 실소를 짓고 말았다.

친구지만 공사가 차가울 만큼 분명했다

유병칠은 후루룩 소리를 내며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야 힘쓰는 놈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 되겠냐?”

“네 걱정이나 해라.”

“쌀 떨어졌던데?”

“나와 무슨 상관이야?”

더 이상 뒹굴며 노는 권총수를 먹여주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내일 아침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 얘긴 막노동을 할 놈이 아침부터 라면 채워 넣고 가면 하루 종일 힘들어지기 때문에 묻는 거지.”

“난 상관없어. 컵라면으로 충분해.”

“힘든 노동일수록 잘 먹어야 하는 건데.”

어떻게 해서라도 유병칠이 쌀을 사 오도록 만들기 위해 사정도 하고, 인격과 품격을 높여주고, 심지어는 읍소에 가깝도록 매달렸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그동안 나란 놈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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