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112화 (112/116)

# 112

헐리우드에 가고 싶은 사람들(2)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연속적인 시리즈의 영화를 찍을 가능성까지 생각하면서 배우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빨리 드라마 제작을 손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언젠가는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헐리우드의 대형 제작사인 플랜 B와 연결되면서 소속 배우들과 스태프는 더 좋은 기회를 얻으려고 할 게 분명했다.

그럼 헐리우드에 가지 못한 배우들과 스탭들에게 최소한 일이 없는 상황은 만들어 주면 안되는 거다.

가장 좋은건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한 명의 감독이 1년에 한 편을 만드는 것도 어려웠다.

이것도 DH미디어처럼 회사에서 무조건적으로 지원해줘서 1년에 한편 만드는것도 어렵다는거지 보통 2년이나 3년마다 한 편씩 만들어주면 감독치고도 쉬지 않고 작업하는 감독이라고 인정받는다.

동훈이 충무로에서 괴물 취급받는건 계속된 흥행능력도 그렇지만 1년에 한 편 이상씩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드라마를 만든다고 해서 지금 하는 일에서 크게 부담을 주는건 아니기에 현주의 말은 생각해볼만 했다.

“그래요?”

“이 바닥 매니지먼트 사장들 모아놓고 꿈이 뭐냐고 물으면 열에 대여섯은 제작사 대표가 되고 싶다고 할걸요? 아, 그런데 요즘은 다르겠다. 워낙 살아남기 힘드니까.”

“음... 일단 고민해볼게요. 꼭 현주 씨 말을 들어야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아서요.”

“뭐, 그러세요.”

현주는 어깨를 으쓱이며 너 하고싶은대로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일단 박강효 감독 건으로 진행되는게 있으면 얘기해줄게요. 그리고 넌 뭐 나오면 바로 가지고 오고.”

명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넵. 감사합니다.”

“아직 결정 안 된거야. 감사할거 없어.”

동훈은 벌써부터 김칫국부터 마시는 명진에게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좋은 결과물을 가지고 오리라는건 의심하지 않았다.

*

‘동네 아저씨’가 개봉 4주차에 접어들며 관객수가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19금 액션영화에 이정표를 세웠다.

빛그림에서 예상하는 최종관객수는 850만 정도.

비록 천만 관객은 넘지 못했지만 이 정도 흥행스코어도 굉장한 성적이라는걸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렇게 되니 회사에 지원하고자 하는 스탭들은 늘어만 갔고 현재 소속사와 계약이 끝나가는 배우들이 은근히 먼저 접촉해오기까지 했다.

동훈은 배우 전속 계약에 관해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선에서 김태현 실장에게 일임을 해놓은 상황이기에 신경쓸 일은 없었다.

그리고... 가장 기다리고 있었던 소식이 들려왔다.

“누구?”

“론 하워드요! 다빈치 코드!”

유지은 팀장은 흥분된 얼굴로 소리쳤다.

“정말? 으음...”

“왜요? 별로 안 기쁘세요?”

유 팀장은 동훈이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이자 의아했나보다.

“안 기쁘다기보단 음... 내가 너무 기대했었나 봐요.”

“론 하워드 감독도 굉장히 이름있는 감독 아니었어요?”

이름값으로 보면 대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낸 감독이니 말이다.

“맞아요. ‘뷰티풀 마인드’는 아카데미 감독상까지 받을 만큼 정말 길이 남을 명작이기도 했고... 그런데 그 감독이 스포츠 영화는 만든 적이 없어서 그게 좀 걱정이긴 하네요. 그리고 경력이 너무 화려하고 나이도 많아서 협업을 잘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아... 그러셨구나. 플랜 B에서도 무슨 생각이 있으니까 론 하워드 감독을 선임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그랬을거예요. 그런데 그게 뭔지를 모르니... 어쨌든 언제 오라고 해요?”

“최대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던데요?”

“알겠어요. 그럼 박 감독에게 알려주고 스케줄 잡아봅시다.”

동훈은 일단 걱정이 되긴 했지만 총연출자를 선정하는건 플랜 B의 권한이니 따지고 들 생각이 없었다.

잠시 후, 박광효 감독이 대표실로 들어왔다.

“론 하워드 감독이 선임됐다면서?”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우와! 나 이제 론 하워드 감독이랑 촬영하는거지?”

“맞아요.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박광효 감독은 손을 흔들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말도 마. 나 요즘 고등학생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니까. 그런데 머리가 완전히 쌩쌩했던 시절에는 영어 단어가 그렇게 머리에 안 들어오던데 이상하게 요즘에는 영어가 머리에 들어오는 것 같아. 신기하지 않아?”

“그때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때였으니까 그런가봐요.”

“맞아. 네 말이 맞는건 같아. 영어를 막 배워야 당장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급한 마음에도 영어가 머리에 들어오더라고.”

“저도 그래요. 평생 영어공부라고는 수능때 빼곤 해본적도 없는데 이 나이에 하려니까 아주 죽겠습니다. 그래도 머리에 억지로 집어넣고는 있는데 조금씩 늘긴 하는 것 같더라구요.”

“흐흐... 난 아직도 잘 실감이 안 나. 헐리우드 스타들에게 막 디렉팅 하면서 연출을 해본다니... 주연배우는 누가 될까? 브래드 피트가 주연으로 출연하지는 않겠지?”

박광효 감독의 눈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해보였다.

“비슷한 영화인 머니볼에서 주연으로 나왔으니 이번에는 출연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배우가 할 것 같은데 일단 미국 가서 캐스팅에 관해 상의하면 대충 윤곽이 드러나겠죠.”

“너랑 캐스팅 상의한대?”

“그럼요. 제가 연출은 하지 않아도 프로젝트 디렉터 아닙니까. 총연출자도 제 허락없이는 주연 캐스팅 못해요.”

“오오...”

본래 프로젝트 디렉터로 계약하면서 작품의 각본 수정을 최종 감독하고 주연배우의 캐스팅까지 협의하는 권한을 맡게 되었다.

플랜 B에서 동훈에게 원하는 건 간단했다.

연출만 하지 않았지 작품을 진두지휘해서 이번 작품을 반드시 성공시키라는 거였다.

그래서 동훈은 론 하워드 감독이 선임된게 더 의외였다.

차라리 이름값이 좀 떨어지더라도 스포츠 영화에 더 특화되어 있는 감독이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

그런데 스포츠 영화는 만들어본적 없는 감독인데다가 경력도 화려해 과연 의견조율이 잘 될지 의문스러웠다.

“일단 각본 어디까지 나왔어요?”

“어? 여기... 헐리우드로 배경이 바뀌어서 네가 말한 대로 캐릭터 성격을 좀 바꿨어.”

“어디 봐봐요.”

동훈은 박 감독이 수정한 각본을 천천히 살폈다.

본래 구상했던 박 감독 특유의 조금 찌질한 주인공의 성격이 한국영화일때는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할 것 같아 긍정적이고 활기찬 성격으로 바꾸었지만 헐리우드 배경으로 바뀌고 나니 본래 구상했던 주인공의 성격이 더 맞다고 생각해 바꾸자고 했다.

“괜찮은데요?”

“그래?”

“네. 일단 가서 협의해봐야겠지만 이대로 쭉 수정해요. 유 팀장님이 일정 결정되면 말해줄거니까 그때까지는 바쁘더라도 각본 수정하는거랑 영어공부에 집중하시구요.”

“그럼, 그럼. 당연하지.”

그렇게 시간을 보대던 동훈은 2주가 지난 후 박광효 감독과 같이 미국으로 떠났다.

플랜 B와 함께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

커다란 빌딩의 로비 한 구석에 그림같이 아름다운 미녀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넌 안 가?”

세연의 물음에 은정이 고개를 흔든다.

“내가 왜 가?”

“그래도 장 감독 가면 거기에서 한참 동안 있을거 아니야?”

“에이... 그래도 내가 따라가는건 아니지. 그리고 내가 따라간다고 하면 언니부터 도시락 싸고 말릴거 아니었어?”

“당연하지.”

“그런데 왜 물어봐?”

“안 따라간다고 하니까 그것도 신기해서. 내가 네 성격 모르는것도 아니잖니.”

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언니 말도 맞기는 한데 나도 이제 애 아니야. 그 정도 사리분별도 할 줄 안다구.”

“어이구, 다 컸네.”

“난 그렇고, 언니는 이제 어떡할거야?”

“나? 글쎄...”

세연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장동훈 감독을 떠나 새로운 둥지를 찾은 이후 모든 일들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때는 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더 잘되는 길이라고 여겼고 특히 그녀의 전 남자친구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다.

그의 말을 거부할 이유도 없었고 거부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모든 선택들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문제는 비록 전남친과의 관계는 끝났지만 아직 소속사와의 계약기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는 거다.

악감정이 남아서인지 소속사 대표인 전남친은 세연의 일거리를 잡아주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어?”

“예능 하나 해보지 않겠냐고 하던데?”

은정의 표정이 와락 구겨진다.

“예능? 무슨 예능?”

“일반인 남자랑 소개팅하는 예능.”

“헐... 회사가 완전히 미쳤구나? 아니, 진짜 돌았나? 언니가 무슨 한물간 여배우도 아니고 이제 완전 톱으로 올라가는 배운데...”

“솔직히 말해서 탑배우는 아니지.”

은정은 속상한 표정으로 손톱을 깨물려다가 네일케어가 되어 있는걸 보곤 다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봐. 우리 회사에서 조만간 드라마 제작할거래.”

“드라마? 영화 말고 드라마?”

“응.”

“무슨 드라만데? 작가는 누구고?”

세연은 동공을 확장시키며 은정에게 확 다가왔다.

“그건 아직...”

은정이 미안한 얼굴로 손을 들었지만 언니가 실망할까봐 재차 말을 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바로 시작할거라는 말이 있어. 왜냐면 언니도 알겠지만 감독님이 플랜 B랑 영화를 만들기로 했잖아. 그런데 지금 그것 말고 바로 진행하려고 준비하는 영화가 양호민 감독님 작품이라고 하거든. 그런데 지금 우리 회사에 이 두 작품만으로는 남는 인력을 소화할 수가 없대.”

“그렇게 스탭이 많아?”

“응, 엄청 많아. 유명진 감독님이 하나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은 들리는데 막상 크랭크인 들어가려면 못해도 반년 가까이는 걸린다고 해서 드라마 하나를 해보자고 하더라고.”

“그런데 드라마도 막상 준비해서 들어가려면 오래 걸리잖아.”

“유지은 팀장님이 그러는데 현재 시놉이 준비된 작가를 데리고 와서 제작하는 방법으로 하면 석달 이내에 들어갈 수 있을거래. 피디는 스탭 구하듯이 구하면 되는 거구.”

“편성은?”

“편성은 늦게 되도 상관없대.”

“왜? 편성이 제일 중요한거 아니야?”

한국에서 드라마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언제 어느 방송사로 편성되느냐다.

그 편성을 잡기 위해 탑스타를 캐스팅하는 것인데 편성이 늦게 결정나도 상관 없다는게 이해가 안 가는 거다.

“나도 그런걸로 알고 있는데 유 팀장님이 그렇지 않대. 편성이 안 잡히면 사전제작으로 만들어서 나중에 넣겠다는데?”

“와... 니네 회사 진짜 돈 많구나?”

“히히... 우리 감독님 능력이 좀 되잖아. 이번에 ‘동네 아저씨’로 또 엄청 벌었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드라마 하나 제작한다면서 돈 걱정을 안 하는구나.”

편성이 안 잡히면 방송국에서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PPL도 잘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

사전제작을 한다 어쩐다 하다가 엎어진 드라마가 한 둘이 아닌 까닭이다.

제작을 완료하고 나서도 스탭들 임금을 못 주고 날라버리는 회사도 있으니 말 다 한거다.

“어쨌든 그러니까 괜히 이상한 예능 출연하지 말고 조금만 있어 봐.”

“진짜 그래도 되나?”

“그렇다니까. 내가 언니 주인공으로 팍팍 밀어볼게.”

“네가 연출하니?”

“이거 왜 이래? 나도 이제 회사에 발언권이 좀 있어.”

은정은 허리를 쭉 펴고 가슴을 내밀며 제법 호기를 부렸다.

세연은 동생이 일부러 언니를 위해 과장한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웬지 이번 만큼은 동생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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