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109화 (109/116)

# 109

이거 완전 흥행의 신?(4)

노을이 진 저녁시간, 동훈은 양지원 대표와 회사 근처의 고깃집에서 마주앉아 있었다.

“화끈하시네.”

동훈은 양지원 대표를 보며 미소지었다.

설마 했는데 이렇게 간 크게 사고칠 줄은 몰랐었다.

“제가 또 한 성격하거든요. 저 어렸을 때부터 성격 별로라는말 얼마나 많이 듣고 자랐는데요?”

“그랬어요?”

“그럼요. 오죽하면 우리 아빠도 저더러 피곤한 성격이라고 했겠어요?”

양지원 대표는 자신의 성격이 안 좋다는 말을 굉장히 뿌듯한 표정으로 했다.

“하하, 특이하네요.”

“어쨌든 고마워요. 대표님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세게 나갈 수 없었을거예요.”

“나한테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라고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을 한 건 아니니까요.”

3년간 빛그림에 독점 배급권을 준 이유는 해외 배급 때문이었다.

빛그림이 A&P를 통해서 해외에 많은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 통로를 가지고 있는 점은 예전에는 큰 강정이었지만 이번에는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앞으로 빈센트 리치 앤 컴퍼니의 투자를 받아 대작 영화를 만들게 되면 미국을 비롯해 해외에 판매해야 하는데 그 중간다리를 A&P에 맡기기 보다 빛그림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해외업체인 A&P와 직접 계약한다면 지금까지 많은 일을 같이 해 온 빛그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아무래도 합이 잘 맞는 빛그림이 A&P를 대신해 좋은 해외 판매 루트를 가지길 바랐다.

한마디로 국내 배급과 해외 배급을 전부 빛그림이 맡게 된다면 제작사 입장에서 배급사에게 주어야 할 수수료는 적어지고 매출은 더 올라갈 것이라는게 결론이었다.

서로가 잘 커가면 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3년 독점 계약을 해주는데 있어서 큰 고민은 없었다.

적어도 이 정도는 해줘야 빛그림도 장기적으로 많은 투자를 통해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대표님한테도 LS엔터와 등을 지는건 불편한 일이잖아요. 이해해주셔서 고마워요.”

“솔직히 LS엔터랑 등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도 아마 우리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겁니다.”

“하긴 그렇겠죠.”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그럴만한 사정이 있고 나라도 그랬을 겁니다. 한번 된통 당해야 저들도 앞으로 남들한테 저런 짓을 하지 못하겠죠. 이 정도로 세게 나갈 줄은 몰랐는데 막상 듣고 나니 통쾌하네요. 잘 하셨어요.”

양 대표는 동훈이 너무도 쉽게 이해해주자 감동했는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해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어느 정도 얘기하셨던 내용이잖아요. 이렇게 강하게 할 줄은 몰랐지만... 그건 그렇고, 메가플렉스에서 LS엔터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양지원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있게 말했다.

“그럼요. 메가플렉스 대표님이 할아버지한테 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거든요. 그때는 미안했다고, 이번에는 꼭 우리편 들어주겠다고 하셨어요.”

“음... OS시네마는요?”

“그쪽은 안 돼요. OS시네마는 기본적으로 대기업 계열사고 지금 대표로 바뀐지 1년도 안 됐어요. 그렇다고 씨알도 안 먹힐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이 많이 커질 것 같아요.”

“그럼 그냥 메가플렉스만?”

“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요. 메가플렉스에서 500개 넘게 따오면 전체 상영관이 최소 1500개는 넘을 테니까 이 정도면 스크린 확보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차피 입소문 타면 스크린 수는 더 늘어날테니까. 이제 전 장동훈 감독님만 믿을게요. 아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메가플렉스까지 DH미디어만 바라보게 된 거 아시죠?”

“하하하, 빛그림은 몰라도 메가플렉스는 우리만 바라본다기엔 좀...”

“말이 그렇다는 거죠. 혹시 알아요? LS엔터에서 메가플렉스에는 영화 안 준다고 할지?”

“안 그럴겁니다. 제작사에서 팔짝 뛸 거예요.”

“하긴... 배급사야 투자된 돈이 거의 없으니 부담될게 없지만 제작사와 투자자는 엄청난 돈이 걸린거라 자기 마음대로만 할 수 없겠어요. 그러면 더욱 좋은 상황이구요.”

동훈은 적당히 익은 고기를 양지원 대표의 앞에 놓아주고는 말했다.

“이번 영화 잘 마무리하고 다음 작품이 진짜 시작입니다. 그때는 정말 잘해야 해요.”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부터 아시아 시장 전체 현지 배급사와 접촉하고 있고 헤드헌팅 회사 통해서 인력수급도 시작했어요. 회사 제대로 키워볼 생각으로요.”

“빛그림이 지금보다 훨씬 커져야 우리도 빛그림 믿고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3년이 지나고 또 계약 연장해서 더 커나갈 수 있으니까요.”

“믿어주시는 만큼 더 성장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자, 여기 술 받으세요.”

양지원 대표의 미소에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

[흥행돌풍! 한국형 액션의 신기원]

[주말 이틀만에 100만 돌파, 미친 흥행속도!]

[신인배우 꽃미남 윤종빈의 파격 액션이 충격을 선사하다]

‘동네 아저씨’는 개봉하자마자 엄청난 관객몰이를 시작했다.

특히 이번 영화가 주연 데뷔작인 윤종빈은 신인 같지 않은 표정연기와 액션으로 관객들에게 어디서 이런 괴물같은 배우를 데려왔는지 놀라움을 안기게 하기 충분했다.

이렇게 되니 윤종빈의 현 소속사는 뒤늦게 후회했다.

개봉 전부터 슬금슬금 예능 프로가 들어올 때만 해도 쿨하게 거절하며 깔끔하게 정리하려 했는데 각종 CF와 출연제의가 들어오자 윤종빈에게 그동안의 섭섭함을 잊고 재계약을 제의했던 거다.

하지만 이미 떠난 마음이 다시 되돌아올리 만무하니 재계약은 거부되었고 윤종빈의 소속사는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광고를 계약하는 것으로 쓰린 속을 달래야 했다.

이 와중에 윤종빈의 소속사 대표보다 속이 더 쓰린 사람이 있었다.

바로 유병세 감독이다.

장동훈 감독의 ‘동네 아저씨’ 때문에 스크린 수는 대폭 줄어들었고 안 그래도 떨어진 예매율은 더욱 떨어지니 흥행추세가 더욱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런 와중에 그는 역삼동의 유명 룸싸롱의 빈 방에 앉아 초조하게 대원파트너스 김강우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씨발...”

앞에 놓인 고급 양주와 그림같이 조각해놓은 과일 안주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서비스로 나온 녹차만 벌컥벌컥 들이키며 긴장을 해소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육중한 덩치에 정장을 입은 김강우 대표가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어, 그래.”

여느 때 같으면 빈말이라도 ‘잘 지냈지?’ 정도의 인사말이라도 있을텐도 오늘은 그저 굳은 표정으로 상석에 철푸덕 앉았다.

“내가 말했었나? 마누라랑 딸래미가 영화 잘 봤다고 하더라고. 보고 감독을 받았때나 어쨌때나.”

“하하, 감사합니다.”

“난 그냥 그렇던데, 여자들 취향인가 봐.”

“네...”

“확실히 우리 유 감독 작품이 취향이 갈리긴 해. 알지?”

정곡을 찌르는 말.

지금까지 내놓은 영화 중에 흥행을 좀 한다 하는 영화라고 해도 항상 대박을 친 적은 없었다.

최고 흥행작이 480만 관객을 불러들였었고 그 다음 흥행작이 430만을 불러들였다.

그 두 개의 작품으로 흥행감독의 반열에 올라섰고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흥행수치는 꽤나 인정받는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장동훈 감독이라는 희대의 괴물이 나오고 나서부터 이상하게 자신이 기록해놓은 스코어는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 버렸다.

700만, 천만이라는 스코어가 우습게 찍혀버렸다.

그러니 500만이 안 되는 관객은 뭔가 탑 연출가라고 인정되기에 부족하게 보이는게 사실이었다.

천만 관객은 정말 꿈의 숫자라고 해도 최소 700만 관객 이상을 끌어모으려면 대다수 관객의 취향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김강우 대표의 말은 이제 자신이 이곳 충무로에서 손가락에 꼽을만한 최고 감독의 반열에서 제외시키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당연히 반발심이 튀어나왔다.

“대표님, 아직 흥행 분위기 괜찮습니다. 장동훈 감독이 역작 하나 들고 나왔지만 그래도 제 영화 괜찮아서 벌써 두 번, 세 번 관람한다는 매니아까지 생겼구요.”

“알았어. 뭘 또 그렇게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그래? 미안하게 말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거 참, 미안하게 됐어. 말 가려서 해야 하는데 말이지.”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저렇게 말하니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께서 오해하시는 듯 싶어서 내 나름의 항변을 한 것이지 대표님의 말씀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정말?”

“그럼요. 물론입니다.”

김강우 대표는 비릿하게 웃었다.

“난 또 우리 유 감독이 이제는 나를 아주 x으로 보나 했다니까? 내가 오해한거지?”

“아유, 그런 말씀 마십쇼. 제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합니까.”

“흐흐흐... 마셔.”

김강우 대표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술을 따라주었고 유병세 감독은 황송한 표정으로 잔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유병세 감독이 마시는걸 지켜본 김강우 대표는 고개를 모로 꼬며 말했다.

“지금 흐름으로 가면 대략 300만 가능하나?”

만약 ‘동네 아저씨’가 그저 그런 작품이었으면 자신있게 300만 관객은 돌파할 수 있을거라고 말했을거다.

하지만 지금 예매율 차이가 50%나 벌어져 있어 300만 관객을 돌파한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김강우 대표는 어설프게 속여 넘길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솔직히 250만 관객은 무조건 넘겠지만 300만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250만 관객이라고 해도 손익분기점은 넘기는 거잖아?”

“맞습니다.”

기대했던 수준의 흥행은 아니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건 손익분기점은 넘길 작품이라는 것.

유병세 감독은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흐음... 고민이네.”

“대표님, 큰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해도 어쨌든 투자한 것 이상은 뽑아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이러면 계산이 달라지지 않겠어? 다시 말하지만 50억은 큰 돈이야.”

유병세 감독은 저 빌어먹을 돼지새끼가 결국 지분을 더 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후... 그럼 어쩔 수 없겠군요. 안타깝지만 저 혼자 조그맣게 시작해보도록 해야겠습니다.”

50% 이상의 지분을 김강우 대표에게 준다면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유병세 감독은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유 감독이 더는 물러설 수 없음을 밝히자 김강우 대표는 눈썹을 씰룩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왜 이래? 계산이 너무 일방적 아니야?”

“죄송합니다. 대표님께서도 어쩔 수 없는걸 알기에 대표님께 섭섭함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진심입니다. 저 혼자라도 열심히 일으켜 보겠습니다.”

말로는 이렇게 해도 서로의 마음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김강우 대표는 한동안 말없이 술을 들이키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투자는 그대로 가지.”

결국 김강우 대표가 물러섰다.

이럴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건 몰라도 자신만큼 그가 원하는 여자를 구해줄 수 있는 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럴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유병세 감독은 안도하며 미리 준비한 여자를 불렀다.

*

“꺄아악!”

은정이 비명을 지르자 사무실 사람들이 일제히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벌레라도 나왔어?”

유지은 팀장이 황급히 달려오자 은정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대박! 나 샤넬에서 전속모델 제의 왔대요! 대박!”

“정말요? 완전 대박이다!”

은정은 유 팀장은 얼싸안고 방방뛰다가 얼른 사무실을 뛰어나가 동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독님, 감독님! 나 샤넬...”

은정은 말을 하다가 누군가가 회사를 들어오는걸 보고 홀리듯 멈추었다.

“브, 브레드 피트?”

놀랍게도 은정에게 싱긋 윙크를 보이며 들어오는 이는 헐리우드 스타 브레드 피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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