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107화 (107/116)

# 107

이거 완전 흥행의 신?(2)

사실 윤종빈에 대한 홍보는 DH미디어의 소관이 아니라 현재 윤종빈의 소속사에서 진행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현재 윤종빈의 소속사와 윤봉빈과는 조금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전에 윤종빈이 서울에 집을 구하려 하다가 소속사와 틀어지고 난 뒤 이번 작품을 끝으로 계약연장이 어렵다는걸 윤종빈으로부터 듣게 된 그의 소속사는 이후 일체 그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안 그래도 소속 배우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대전까지 내려갔던 경험이 있는데 이제는 아예 나갈 사람이 된 상황에서 굳이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돌리며 배우를 홍보할 이유가 없어졌던 거였다.

저들의 일처리 방식을 보면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배우 매니지먼트를 하고 싶은 것 같은데 그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윤종빈에 대한 홍보가 전혀 진행되지 않아 동훈이나 유 팀장, 그리고 배급사인 빛그림에서도 우려했었다.

주연 배우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면 영화 홍보에 좋은 영향을 끼칠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하고 싶다고 쉽게 막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윤종빈의 현 소속사에서 걸고 넘어질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예고편 동영상에 나온 윤종빈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은 커져갔음에도 본의 아니게 신비주의 컨셉처럼 별다른 기사 하나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버리고 말았다.

보통 개봉을 앞둔 영화의 주연배우들이 한창 잡지 인터뷰나 예능출연 스케줄 때문에 정신없는 거와는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 되버린 거다.

이제는 동훈이나 유 팀장도, 그리고 빛그림 쪽에서도 굳이 윤종빈에 대한 홍보를 하지 않기로 하고 그저 시사회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별한 건 없던데요?”

유지은 팀장은 경쟁작인 ‘트루 러브’의 예고편 동영상을 확인하곤 별거 아니라는 얼굴로 말했다.

“나도 봤는데 확실히 눈에 확 들어오는 부분은 없었던 것 같아요. 빛그림 쪽에서는 뭐래요?”

“양지원 대표가 올라온 예고편을 보고 아주 좋아 죽던데요? 이건 무조건 잡을 수 있다구요.”

“흐음... 그랬으면 좋겠는데...”

동훈은 예고편을 보고 적잖이 마음을 놓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벌써부터 축배를 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로맨틱 코메디라는게 액션영화와 아주 달라서 예고편으로 보여줄 수 있는게 한정적이고 특히 플롯과 캐릭터의 색깔을 얼마나 잘 살렸느냐에 따라 그리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는걸 알고 있었다.

제발 폭망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는게 아닌지라 만약 유병세 감독이 작품을 잘 만들어냈다면 초반 관객 몰이에 상당히 고전할 수 있는걸 예상해야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양지원 대표가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상대로 스크린을 최대한 확보해보겠다고 큰소리 쳤거든요.”

“그래요? 그럴수가 있나?”

양지원 대표를 무시하는게 아니라 전에 개봉했을때도 해외판매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국내 배급은 천천히 입소문으로 끌어보자는 전략을 세웠던게 괜히 그랬던게 아니었다.

빛그림이 하락세를 타며 국내배급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다가 이제야 다시 올라서기 시작했는데 이미 국내 배급을 꽉 잡고 있는 LS엔터를 제치고 초기 스크린 점유율을 끌어올린다는게 쉽지 않을 거라는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상이다.

“어떤 방법으로 하겠다는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해보겠다고 하니 말릴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알겠어요. 그냥 두고 보죠. 유 팀장님 말대로 굳이 말릴 이유가 없으니까.”

“맞아요.”

“빈센트 리치 앤 컴퍼니 측에서는 어떻게 진행하고 있대요?”

전에 빈센트 리치 앤 컴퍼니 쪽 대표가 한국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 동훈과 박광효 감독, 그리고 빛그림 쪽 양지원 대표와 해외 배급을 담당할 과장 한명, 이렇게 네 명이 맞았었다.

당시 투자사 대표는 중심가 호텔에서 국내 드라마 및 영화시장의 규모와 제작 환경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적극적인 투자를 약속했었지만 어떤 계약을 진행하지는 않았었다.

이후 세부적인 계약사항을 메일을 통해 조율했고 이제 도장만 찍으면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음주에 들어온다고 하더라구요. 일단 인천공항에 발을 딱 디디면 계약이나 마찬가지죠.”

“알겠어요. 그리고 강호 요즘에 뭐해요?”

이강호와 전속계약을 맺기는 했지만 은정이처럼 매니저와 차량(벤)을 지원해주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직 잡지 촬영 한번 한 적 없고 배워야 할게 많아 연기수업에만 매진하며 대학 연극영화과 지원도 같이 준비하고 있었다.

“어? 그건 김태현 실장한테 물어볼게요.”

“물어보시지 말고 그냥 들어오라고 하세요. 직접 물어볼게 몇 가지 더 있으니까.”

“네.”

유지은 팀장이 나가고 김태현 실장이 들어오자 동훈이 물었다.

“강호는 지금 계속 연기학원 다니고 있죠?”

“네.”

“혹시 체크해보셨어요?”

“연기력이요?”

“네.”

“아직... 다음 작품에 캐스팅 하실 생각이십니까?”

“연기력에 따라서요.”

아무리 재능이 많은 친구라고 해도 아무 경험도 없는 어린 친구를 단번에 주연으로 쓸수는 없는 법이다.

마침 이번 영화는 야구선수에 관한 영화라 젊은 연기자가 다수 필요했고 연기력에 따라 꽤 비중이 있는 조연까지는 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연이 아니시죠?”

“당연하죠. 그리고 주연으로 쓰고 싶어도 주인공 나이가 스물 여덟이라 강호를 쓸수는 없어요. 강호 액면가가 조금 들어 보이긴 하지만 이십대 후반까지는 보이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일단 학원쪽에 물어보고 체크 해보겠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해야 할 것 같으니까 스타일 관리랑 스케줄 관리가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동훈의 말은 이제 강호를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활동시키겠다는 뜻이었다.

김태현 실장은 바로 알아들었다.

“알겠습니다. 매니지 한명 채용해서 강호에게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스케줄은 당분간 제가 관리할거구요. 샵에 강호 이름도 올려놓겠습니다.”

“부탁드려요. 잘만 크면 진짜 괜찮은 배우가 될 수 있으니까 잘 키워야 합니다.”

김태현 실장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대표님은 강호에 대한 확신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확신이 없을수가 있나?

이미 대스타로 성장해서 아시아 시장을 씹어먹고 있는걸 목격했는데 말이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번 ‘동네 아저씨’ 주연인 윤종빈도 그렇고, 은정 씨도, 은정 씨 언니인 세연 씨도 감독님 대표님이 발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배우를 딱 보면 그냥 느낌이 오시나요? 이 배우는 대박 나겠다. 엄청난 포스가 있다. 이런 느낌이 오는 겁니까?”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순간 난감했다.

거짓말을 하자니 괜히 찔리고 그렇다고 무작정 말을 돌리는것도 조금 이상했다.

결국 얼굴에 철판 깔고 대답했다.

“윤종빈 봐봐요. 누가 봐도 잘 생겼잖아요. 세연 씨나 은정이는 누가 봐도 예쁘고. 그냥 예쁘다고 하기도 부족할 정도로 완전 여신급인데 당연히 배우 권유를 할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김태현 실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맞는 말씀이신데 그러면 강호가 이해가 안 되네요. 들어보니까 강호가 대표님 처음 만날 때 100kg이 넘었다고 하던데 아닙니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정도로 뚱뚱한데 얼굴이 저렇게 선명한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남자는 눈썹부터 코까지 이어지는 T존이 제일 중요한거 아시죠? 얼굴이 살이 쪄서 넙대대한데 신기하게 T존이 제대로 살아있더라니까요. 얘 살빼면 대박이겠다 생각했죠. 그리고 뭐... 잘 안 되면 조연이라도 하면 되는 거니까. 안 그래요?”

“뭐 안 되는건 아닌데... 대단하시네요.”

“사실 엄청난 확신을 가지고 한 건 아니에요. 세연 씨도 당시에 처음 봤을 때 밤에 본 거라서 현장에 와서 카메라 테스트를 해보자고 했는데 진짜 괜찮더라구요. 은정이는 세연 씨 동생이라고 들었는데 딱 보니까 너무 예뻐서 카메라 테스트를 안 해볼수가 없었구요. 그냥 운이 좋았던 겁니다.”

“다행입니다. 그렇게 운이 따르는 사람이 제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대표님이라서요. 이 바닥 일이라는게 실력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실력 만큼이나... 아니, 어떨때는 실력보다 운과 인맥이 훨씬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럼요. 인정합니다. 그 인맥 한번 만들어보려고 별짓 다하기도 하니까요.”

김태현 실장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다가 문득 생각난 얼굴로 말했다.

“아, 제 친한 후배가 ‘용마가 간다’ 직원으로 있습니다. 아시죠?”

“그럼요. 영화감독이 ‘용마가 간다’를 모르면 안 되죠.”

이름도 희한안 ‘용마가 간다’는 드라마, 영화 제작업체 이름이다.

무려 90년대 중반에 세워진 회사로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켰으며 지금도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해에 한 편씩은 흥행작들을 만들어 오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워낙 오래된 회사라서 그런지 ‘용마가 간다’ 사무실에는 종종 거장 감독이나 경력이 오래된 감독들이 그냥 놀러가기도 한다는걸 들어본 적 있었다.

“이상한 이야기가 돌고 있대요.”

“무슨 이야기요?”

“유병세 감독이 이번 영화를 마지막으로 제작사 대표가 될 거라는 소문이 돈다는데요?”

“네? 그 인간이 제작사 대표를 한다구요? 왜?”

다른건 몰라도 유병세 감독이 얼마나 노는걸 좋아하는지는 동훈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연출할때도 자신이 할 일은 최소한으로 한 채 일하는 감독이고 귀찮은 일은 절대 손에 대지 않는 그 인간이 회사의 대표가 되겠다니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황이 상당히 구체적이라 아무래도 헛소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요?”

“네. 얼마 전에는 감독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대표가 되면 DH미디어처럼 좋은 복지를 기반으로 인기 없는 단편영화도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다고 장담까지 했다는데요?”

“와... 진짠가 보네? 그런데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지?”

동훈도 지금 다른 감독들에게 단편영화를 제작 지원해주겠다는 말은 해주지 못하고 있다.

회사 통장에 수백억이 들어 있음에도 쉽사리 내뱉을 수 없는 이유는 한 작품을 지원하면 이후 계속해서 다른 단편영화를 지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는 지원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면 결국 뒷말이 나올 수밖에...

한 번 시작하면 장기적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건데 국가에서 세금으로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수익을 내야 하는 일개 기업이 어떻게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아마 LS엔터 같은 대기업도 쉽사리 하기 힘들 일일 것이다.

그런데 짠돌이에 밴댕이 소갈딱지인 유병세 그 인간이 그걸 한다?

정말로 믿기 힘들었다.

“소문에는 투자자가 하나 붙었다고 하네요. 뭐, 누군지는 당연히 모르고요.”

“쩝, 뭐 알 필요도 없는 이야기긴 한데 괜히 누구 등처먹으려고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그것도 이번 영화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야 가능하지, 대표님 작품이랑 붙어서 박살나면 제작사 설립도 쉽지 않을 겁니다. 투자자가 바보도 아니고...”

하긴, 생각해보니 이번 영화가 망하면 제작사고 나발이고 당분간 좋은 시나리오가 나올 때까지 페르소나에 처박혀 있어야 할게 분명했다.

“지가 알아서 하겠죠. 어쨌든 알겠습니다. 수고해주세요.”

잠깐 우려했었던 동훈은 가뿐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병세 감독에 대한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버리고 이제 동훈의 머릿속에는 점심 메뉴 선정에 관한 고민만이 가득차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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