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90화 (90/116)

# 90

액션의 신기원(1)

양지원은 컴퓨터로 마지막 송금 확인을 클릭했다.

“꺄약!”

“어머, 깜짝이야.”

“대표님, 왜 그래요?”

지원의 괴성에 놀란 직원들이 돌아보며 눈치를 주었지만 지원은 덩실덩실 춤을 추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동안 무반주로 어깨춤을 덩실거리던 그녀는 직원들이 모두 자신을 주목할때쯤 브이자를 그리며 말했다.

“빚 다 갚았지롱~”

“어? 정말요?”

“대박!”

회사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아는 직원들은 놀라움에 서로를 돌아보았다.

“27억 6천만 원, 일시불로 처리했습니다. 우리 이제 빚 없어요. 깨끗해.”

“우와아!”

“수고하셨습니다!”

직원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이들 대부분 회사가 어려웠을 때 월급 한, 두달 밀리는 것도 감수하고 버터낸 이들이었다.

사장이 악질이라 회사가 괜찮음에도 월급을 주지 않았다면 당연히 뛰쳐 나와 노동부에 신고했을 테지만, 직원들은 회사를 살리려는 양지원을 믿고 있었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어 오다가 이제 빚을 모두 청산했다고 하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오늘 당연히 회식 있습니다. 빠지는 사람 알아서해.”

“메뉴는 소고기?”

한 직원의 눈치를 보며 묻자 양 대표가 살짝 시선을 피했다.

“아무리 빚 다 갚았다고 해도 소고기는 선을 많이 넘은 거지. 회식은 돼지갈비가 어떨까 싶은데... 다들 괜찮죠?”

“네!”

양 대표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회사가 어려워진 이후로 기분 좋은 회식 자리를 가진 적이 없었는데 이제 직원들과 우울한 이야기가 아닌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술자리 할 수 있게 된게 너무 뿌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지원은 애써 기쁜 마음을 내리눌렀다.

직원들은 몰라도 자신은 이제 한 걸음 내딛었을 뿐이라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수신자를 확인해보니 DH미디어 장동훈 대표였다.

자신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라 그런지 이름만 봐도 반가웠다.

“장 대표님~ 어쩐 일이세요?”

괜히 콧소리가 나오는건 그래서일 터였다.

“다름 아니고 이번 유명진 감독 영화가 이제 촬영이 마무리 돼가거든요. 그래서 배급에 관해서 이야기 좀 해보려구요.”

“어머, 그런거면 유지은 팀장님이 전화 주시지 않구요.”

“그리고 부탁하고 싶은게 좀 있어서요.”

“제가 다른 분이면 몰라도 장동훈 감독님 부탁이라면 뭘 못해드리겠어요. 어떤 건데요?”

“하하, 그렇게 말하시면 제가 좀 부담스럽긴 한데... 어쨌든 헐리우드 투자자를 좀 알고 계시나 해서요.”

“헐리우드요?”

“네.”

“헐리우드쪽 투자자는 왜요?”

“아무래도 우리 자금만 가지고 해서는 매출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요.”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다른 사람 통해서 알아볼수도 있긴 한데 아무래도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 양 대표님 같아서요.”

양지원은 찢어지려는 입을 애써 모으며 말했다.

“아하하, 제가 좀 신뢰가 있긴 하죠. 아우, 여긴 정말 못 믿을 사람 천지에요. 아시죠? 우리 회사 원래 이렇게 힘든 회사 아니었던거. 그런데... 말해 뭐해요. 어쨌든 어떡해든 남의 것 뺏어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들 천지에요.”

“맞습니다. 그래서 누구한테 알아봐달라고 부탁할까 생각하다가 양 대표님이 생각나더라구요.”

“네. 걱정마세요. 저희가 최대한 빨리 확인해서 이번 ‘건축학 원론’ 배급 계획까지 같이 브리핑해드릴게요.”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네~ 들어가셔요~”

전화를 끊은 양지원 대표는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다가 직원 하나를 콕 찍어 말했다.

“해주 씨, A&P쪽에 연락해서 할리우드 쪽에 아시아 시장 관심있는곳이 있는지 물어봐주시구요. 리스트 되는대로 추려주세요. 자본금이 최소 500억 이상은 돼야 하구요. 미국 전역에 배급할 수 있는 배급능력도 있으면 더 좋아요. 배급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투자한 영화가 미국 전역에 개봉한 전력이 있어야 해요. 음... 또 뭐있더라? 아, 꼴랑 몇 백만 달러 투자하고 간보려는 쪽은 안 돼요. 최소 영화 하나에 5백만 달러이상 투자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해요.”

“알겠습니다.”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양지원은 DH미디어가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이번에도 그 도전이 성공하기를, 그리고 그 성공을 빌어 자신의 회사가 재도약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

최호성 대표는 홍한규 실장이 내민 자료를 검토하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내가 이런 자료 받으려고 며칠 동안 기다린거야? 그런거야?”

“죄송합니다.”

“결국 장동훈이 모가지 잡을만한 건덕지를 잡기 어렵다는 말이잖아. 그 얘기를 뭘 5페이지나 만들어와?”

“...”

홍한규 실장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장동훈이건 그렇다 치고 빛그림의 그 미친년 잡을건?”

“죄송합니다. A&P 쪽에서 받기 어려운 요구를 해와서...”

“뭐야? 그래서 못 가져온다는 거야?”

“일단 그쪽에서는 우리쪽 제안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 원하는건 국내에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수수로 대폭 인하를 요구했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저희는 되려 남 좋은일 해주고 남는건 없게 됩니다. 오히려 인력과 시간을 낭비한 셈이니 상당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새끼들... 욕심이 너무 과하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 정도 조건이 아니면 굳이 빛그림을 손절하고 우리와 독점공급을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독점으로 가져가는건 어려울 듯 싶습니다.”

“시팔,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네.”

최호성 대표는 서랍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들더니 불을 붙였다.

“후... 홍 실장.”

“네. 대표님.”

“우리도 장동훈 같은 감독을 한번 키워볼까?”

얼마 전에는 장동훈을 잡으라고 해놓고 이번에는 말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그처럼 하자고 하니 황당할법도 하건만 오히려 홍한규 실장은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 바랐는지 화색을 띠며 말했다.

“가능할까요? 창작자를 지원한다는건 돈은 물쓰듯 들어가면서도 결과물은 좋게 나오기 힘들지 않습니까.”

“지금껏 그래서 확실한 경력 가진 연출자 아니면 돈 투자 않했었지. 그러다 지금 이 상황까지 왔잖아. A&P에 쓸 돈이면 차라리 그 돈 가지고 영화 감독이든 애니메이션 감독이든 지금보다 더 지원해보는게 어떤가 해서 말이지.”

홍한규 실장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괜찮은거 같습니다. 지금도 제대로 된 기회가 없어서 작품을 못 만드는 연출자들이 한 둘이 아니니까요. 공모전 형식으로 끌어모으면 수백, 아니지. 수천 명이 몰려들 겁니다. 그럼 그 중에서 다시 걸러야하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직원들도 이제는 사람 볼 줄 아는 전문가들이 상당합니다. 단지 돈이 꽤 많이 들 거라는건 확실합니다.”

“얼마나 들까?”

“이번 프로젝트를 얼마나 크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영화나 애니메이션 정도는 제작해야 되니까 최소 백억까지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 하나, 애니메이션 하나, 이렇게 말이지?”

“네.”

“큰 돈이긴 한데 어차피 그거 아니라고 해도 작품은 만들 예정이었고 만약 정말 실력있는 감독들 수급하게 되면 남는 장사 아니야? 우리도 장동훈이네처럼 아예 전속계약을 해버리자고. 설마 대한민국에 연출에 재능있는 사람이 장동훈이 하나겠어?”

“그건 아닐 겁니다.”

“그럼 잘 만들어서 가지고 와 봐. 우리가 장동훈이보다 강점인 부분이 뭐야? 사이즈가 크다는거 아냐? 우린 더 크게 놀아보자고.”

“알겠습니다. 확실히 준비하겠습니다.”

“빨리 나가.”

최 대표는 홍 실장이 나가는 것도 보지 않고 그대로 의자를 돌려버렸다.

*

동훈은 컴퓨터로 동양상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 모습에 유지은 팀장이 물었다.

“왜요? 이번에도 마음에 안 들어요?”

“조금 나아지긴 했어요. 딱 봐도 뭔가 노력은 한 거 같은데... 그런데 마음에 들지가 않네요.”

“그럼 어떡해요?”

“혹시 액션스쿨 여기 말고 다른데 없어요?”

“대한민국에서 액션스쿨하면 ‘쎈 녀석들’이 제일 알아줘요. 그리고 다른 액션팀도 사실 ‘쎈 녀석들’에서 일하다가 나간 사람이 차린게 대부분이구요. 액션에는 큰 차이가 없을 거예요.”

“그래도 좀 찾아주세요. 아무래도 이대로 갔다가는 크랭크인 들어간 다음에 후회할 것 같아요.”

“음... 알겠어요. 아, 잠시만요.”

유 팀장은 자신의 자리로 가서 한참 뒤적거리더니 종이 한 장을 쏙 뽑아들었다.

“이거 좀 보실래요?”

“뭔데요?”

종이를 받아들고 보니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보내는 자료였다.

“거기 보시면 올해 새로 등록된 영화 협력업체들이 나열돼 있거든요. 제가 전에 거기서 무술팀이 새로 등록된 걸 본 것 같아서요. 분명 봤었던 것 같은데...”

“어, 여기 있어요.”

작은 글씨들로 업체명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액션팀 업체명에 ‘싸움꾼’이라고 쓰여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업체명 대표의 이름이 조금 특이했다.

“데니스 창?”

“외국사람 같죠? 한국계 미국인인가?”

“일단 이쪽 연락해볼래요?”

“알겠어요. 그런데 ‘쎈 녀석들’이랑 계약한건 어떻게 하길거예요?”

“만약 ‘싸움꾼’이라는 업체 실력 보고 괜찮으면 ‘쎈 녀석들’은 해지하는게 좋겠어요. 위약금이 얼마나 되죠?”

“아직 크랭크인에 들어가진 않아서 그렇게 많지 않아요. 이번에 처음으로 액션 콘티 보내달라고 한 거니까...”

“그럼 문제 없겠네요.”

“그리고 아까 양지원 대표한테 헐리우드 투자사 알아봐달라고 하셨잖아요.”

“네.”

“그럼 이번에 제작하실 영화부터 바로 들어가는 거예요?”

“아니에요. 이번 영화는 한국 영화잖아요. 한국인들이 나오는 한국 영화는 어지간히 잘 만들지 않고서는 흥행에 한계가 있어요.”

“그럼 박광효 감독님이랑 제작하실 야구 영화부터?”

“그것도 아닙니다. 만약 그걸 제작할거면 한국 프로야구가 아니라 메이저리그를 배경으로 만들어야 할 거예요. 그건 아직 생각해본적이 없어요. 아마 한국 제작사에서 한국 감독이 자기네 메이저리그로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협조도 잘 안 해줄걸요?”

“그럼 어떤 영화 만드실려구요?”

“그건 생각 중이에요.”

사실 염두해 두고 있는 작품이 있었지만 아직 말을 꺼낼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음... 궁금하네. 일단 바로 연락해볼게요. 이번에도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실 거죠?”

“맞아요.”

유지은 팀장은 궁금함을 참고 협회에 등록된 업체에 연락했다.

그리고 메모지에다가 주소를 적어서 동훈에게 건네주었다.

“감독님께서 직접 오시는거냐고 물어보길래 그럴거라고 했어요. 아주 긴장한 목소리던데요?”

“바로 오면 된다고 하던가요?”

“네.”

“그럼 일어나 볼까.”

동훈은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차키를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싸움꾼’이라는 무술팀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강남 한 복판.

도착해보니 꽤나 커다란 건물의 지하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아무리 지하라고는 하지만 임대료가 장난 아닐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느 체육관처럼 커다란 링과 각종 기구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공간에는 이미 동훈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열 댓명의 사람이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아유, 깜짝이야. 저 오는거 기다리고 있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아니, 무슨 군대도 아니고...”

이때 대열 중간에 서 있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걸어나오며 손을 내밀었다.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싸움꾼에서 대장 맡고있는 데니스 창입니다.”

“반가워요. 장동훈이에요. 이런데에 무술팀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의외네요.”

“가까우니까 좋지 않나요? 하하하.”

“아... 네.”

그는 사각턱에 다부진 체격이었지만 호탕함이 과해 조금 부담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어떤 스타일 원하시나요? 제가 방금 감독님께서 오신다는 이야기만 들어서 말이죠.”

“본 시리즈 같은 액션 보여주실 수 있나요?”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크라브마가요?”

그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네”

“이거 국내에 할 줄 아는 분 몇 없으실 겁니다. 잘 찾아오셨어요. 하하하! 큼... 사실 우리 팀에서도 몇 안 됩니다. 제가 애들 교육시킨지 얼마 안 됐거든요.”

“원래 무슨 일을 하셨어요?”

“헐리우드 액션팀에서 일했습니다.”

액션을 보기도 전부터 기대감이 팍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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