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85화 (85/116)

# 85

욕심이 많은 사람들(3)

한강의 괴물, 최종 관객수 1025만 명.

DH미디어에서 내놓은 작품 두 개가 초 대박을 터뜨렸다.

악질형사까지는 운 좋게 대박을 터뜨렸다는 반응에 가까웠다면 한강의 괴물이 천만 관객을 넘겼을때는 장동훈 감독을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에 비교하기 시작할 정도였다.

당연히 수십년을 회자될만큼 명작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낸 스티븐 스필버그의 비교기사에 네티즌들이 연달아 욕을 달아놓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거였지만 그만큼 한국 영화계에 일으킨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DH미디어에서는 당장 천만 관객을 두 번 돌파하면서 법인통장엔 5백억이 넘는 자금이 들어 왔다.

이 말은 곧 그보다 더 많은 돈이 영화계에 뿌려졌다는 것이고 영화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그만큼의 돈을 벌어들였다는 거다.

충무로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주식이고 도박이고 일단 돈맛을 보면 멈출 수 없는게 사람 실리인 것처럼 영화계에 투자자들의 자금이 일시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DH미디어가 있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죄송하지만 다음 작품과 관련해서 아직 확정난게 없습니다. 네. 결정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유지은 팀장은 한숨을 푹 쉬고는 동훈에게 말했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에요. 감독님 다음 작품도 투자 없이 하실거냐고 계속 물어와요.”

동훈은 머리를 긁적였다.

“곤란하네... 이번에도 투자 없이 우리 돈으로 하려고 했는데...”

명진이가 이번에 입봉하면서 들어간 ‘건축한 원론’은 투자금을 일체 받지 않고 제작에 들어간 터라 나중에 투자사들 사이에서 섭섭하다는 말이 나왔었다.

악질형사가 천만을 넘겼다고는 하지만 그건 장동훈 감독이 연출한 것이고 건축학 원론은 유명진 감독이 연출하는 것이라 당시에는 그렇게 심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양호민 감독이 천만영화를 터트리면서 장동훈 감독이 직접 연출하지 않아도 일단 DH미디어에서 제작하는 영화라고 하면 기대감부터 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되니 건축학 원론에 투자하지 못한 아쉬움에 이번에도 투자하지 못하면 대박이 확실한 기회를 눈앞에서 또 놓치게 되는 조급함까지 겹쳐 계속해서 연락이 오는 중이었다.

문제는 DH미디어의 입장에서는 법인통장에 돈이 한가득 쌓인 마당에 굳이 투자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언제 실패할지 모르기에 아무리 통장에 돈이 많이 있다고 해도 만약을 대비해 리스크를 분산해야 하는게 맞긴 하지만 동훈은 이번에도, 또 다음에도 흥행에 성공시킬 자신이 있었다.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유 팀장의 말처럼 그게 쉽지 않은 것은 내 이익만 챙기기에는 받은게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 경력도 없는 감독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투자자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단연코 아니었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나 혼자 다 먹겠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어쩔 수 없네. 그럼 제작기획서를 다시 만들어봅시다. 대신 사이즈를 조금 더 키우구요.”

원래 ‘동네 아저씨’라는 작품은 액션 영화이기는 해도 제작비를 엄청 들인 작품은 아니었다.

자동차 추격씬도, 폭파장면이나 건물이 무너지는 것 따위의 장면도 없었다.

거의 모든 액션 장면이 다 사람과 사람과의 액션이었기에 제작비가 크게 들 일이 없었다.

“그럼 각본을 좀 수정하시게요?”

“몇 군데 손을 보죠. 사실 조금 더 화려하게 하면 좋을 장면도 있기는 했습니다.”

사실 원작에 충실하고 싶어서 손을 안 댄 것 뿐이지 지금에 와서는 손대고 싶은 장면들이 몇 군데 있었다.

어차피 총격씬이 있는 영화라서 더 화려하게 하면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럼 손익분기점이 훨씬 높아질텐데요?”

“괜찮아요. 원래 제작비 자체가 그렇게 높았던 작품도 아니었잖아요. 해봤자 ‘한강의 괴물’ 만큼도 안 나올텐데. 이번에 잘 돼서 ‘위 아더 월드’ 해봅시다.”

“후훗, 그래요. 그럼 수정된 트리트먼트 나오면 그거 가지고 제작기획서 만들어볼게요.”

“아참, 윤종빈 집은 구했대요?”

“그러고보니 그 연락은 못 받았네요. 한번 연락해볼게요.”

유 팀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한참동안 대화하더니 당황한 얼굴로 동훈에게 다가왔다.

“이걸 어쩌죠? 윤종빈 씨가 다시 대전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요?”

“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로 집을 옮길거라고 돈 구해서 서울 온다던 배우가 왜 다시 대전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지금 연락도 안 된다고...”

“하... 어떻데 된 상황이래요? 아무 이유없이 저러지는 않을거 아닙니까?”

“자기네들도 모르겠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진 것 같아요.”

“안 되는데...”

다른 배우는 몰라도 윤종빈은 안 된다.

애초부터 윤종빈이 다른 직업으로 다르게 살고 있었다면... 아니, 아예 눈에 띄지 않았다면 모를까 당장 눈앞에서 연예인으로 살겠다고 계약까지 했다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시려구요?”

동훈은 바로 점퍼를 챙겼다.

“대전으로 가봐야겠어요. 주소는 알고 있죠?”

“네? 아, 네. 윤종빈 씨가 다니는 연기학원이 어딘지 알고 있으니까 그쪽에 한번 물어볼게요.”

“소속사에다가 물어보지 않구요?”

유지은 팀장은 눈썹을 씰룩이며 묘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혹시 모르잖아요.”

“네?”

“일단 가세요. 제가 주소 문자로 찍어 드릴게요.”

유 팀장은 알쏭달쏭한 말을 끝으로 핸드폰을 다시 들었고 동훈은 빠르게 주차장으로 내려와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잡생각을 지우고 바로 대전으로 출발했다.

*

하늘거리는 붉은 원피스에 머리칼을 찰랑이며 리셉션장에 도착한 양지원의 미모는 눈부시게 화사했다.

평소 꾸미고 다니질 않아서, 그리고 입만 열면 깨서 그렇지 그녀의 미모에 관해서는 주변 사람들도 다들 인정할 정도로 아름다웠는데 오늘은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어? 빛그림 양지원 대표 아니야?”

“어머, 안녕하세요. 이사님.”

오늘 행사는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서 주최한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한 간담회’였다.

당연하게도 오늘 이 자리에는 영화계에서 내노라 하는 실력자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본래 양지원은 매년 열리는 이 행사에 참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대받았던 적조차 없었다고 봐야했다.

그런데 이번에 빛그림이 한강의 괴물 배급으로 천만 영화 배급에 성공하면서 국내 배급 시장을 흔들어 놓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자리의 주인공은 협회장도, 매년 거액의 회비를 내는 대기업 그룹사도 아닌 바로 양지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양지원이 오늘 새벽부터 빡세게 꾸민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눈앞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이는 할아버지와 절친했고 양지원도 몇 번 얼굴을 본 적 있는 영화계 원로 장길수 이사였다.

60년도부터 90년도까지 영화 감독으로 살다가 이후 연출봉을 놓고 협회에서 후배를 양성하는데 힘쓰고 있었다.

“요새 일이 잘 돼서 그런가? 미모가 아주 물이 올랐네.”

“호호호,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DH미디어 다음 작품도 빛그림 거라는 말이 있던데 그거 사실이야?”

“뭐... 호호호!”

양지원은 당연한거 아니냐는 듯 고개를 살짝 꺽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가 이렇게 자신 만만할 수 있는건 이번 영화가 잘 된 것 뿐만이 아니라 현재 촬영중인 ‘건축학 원론’ 계약은 물론이고 드디어 장동훈 감독의 차기작인 ‘동네 아저씨’ 마저도 배급 계약에 관해서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됐기 때문이다.

거의 DH미디어에서 제작하는 영화를 독점 배급하는 형태나 다름없어 졌기에 그녀의 어깨에 한껏 뽕이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빛그림 양지원 대표 맞으시죠?”

“네.”

지원은 환하게 웃던 표정에서 마치 대기업 사모님이 된 듯 도도함을 풍기며 분위기를 일변했다.

“반갑습니다. 나 LS엔터테인먼트 최호성이에요.”

“양지원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다분히 사무적인 태도.

오히려 옆에 서있던 장길수 이사가 당황하며 말했다.

“하하, 양 대표가 최 대표를 보고 긴장했나보네.”

그런데 양지원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긴장은요. 같은 대표끼리... 안 그래요?”

아무리 같은 사장이라고 해도 동네 구멍가게 사장이랑 전국구 단위 마트 사장의 권위가 같을 수는 없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말하는건 일종의 도발.

“하하하, 맞습니다. 빛그림 대표나 저나 다 같은 대표인데 긴장할게 뭐 있겠습니까.”

양지원은 호탕하게 웃어 제끼는 최호성 대표의 얼굴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최 대표는 그런 양지원을 향해 빙긋 미소지으며 말했다.

“전 패기만만해 보이는 모습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드려요. 그런데... 할 이야기가 있으신 것 같은데 맞나요?”

할 이야기가 없으면 꺼지라는 말을 돌려 말한 거였다.

이번에는 잠시 멈칫한 최 대표가 입을 열었다.

“혹시 DH미디어 작품을 계속 빛그림이 담당하게 되는게 맞는 건지 궁금하군요.”

이 질문은 양지원이 이곳에 오기 전에 아마 수십번 받게 될 거라고 예상했던 대표 질문이었다.

지원은 그걸 하필 저 인간에게서 가장 먼저 듣게 된 상황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당분간 그렇게 될 것 같은데요?”

“당분간?”

“네. 당분간.”

“기간이 애매하군요.”

“애매할 수밖에요. 다음 작품인 ‘건축학 원론’이 우리 쪽에서 배급하게 될 거라는건 다들 아시는 것일 테고, 장동훈 감독의 차기작인... 아, 이건 아직 모르시겠구나.”

“장동훈 감독의 차기작? 지금 준비중입니까?”

양지원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모로 꼬고 말했다.

“음... 전 배급사이기 때문에 제가 이 부분을 언급한다는건 제작사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네요.”

“준비중이라는 말이군요.”

지금까지 ‘동네 아저씨’의 제작에서 가장 빨리 진행된 부분은 바로 남자주연 캐스팅인데 그것도 아직 도장도 찍지 않은 상황이었다.

동훈이 윤종빈 소속사에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까지 함구를 요청한 상황이고 소속사에서도 아직까지 반신반의하고 있는 관계로 ‘동네 아저씨’에 관한 내용은 의도치 않게 비밀유지가 아주 잘 되고 있었다.

“글쎄요. 어쨌든 이야기가 된 작품이 하나인데 계속 우리가 담당하게 될지는 모르는거 아니겠어요? DH미디어랑 우리가 전속 관계도 아니고...”

제작사가 배급 업무까지 같이 하는 LS엔터 정도가 아니면 어느 한 배급사가 제작사에서 나오는 영화를 독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이를테면 어느 한 배급사가 해외 판매에 압도적인 성과를 보여준다던가 하는...

“우리 같이 삽시다.”

그래서 최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양지원에게도 충격적이었다.

“방금 잘 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같이 먹고 살자는 말입니다.”

“하핫! 쉰도 넘은 대표님이 어린 처녀한테 동거하자는 말은 아니실테고... 협력 해보자는 말이겠죠?”

“그래요.”

양지원은 최 대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내가 왜요?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회사 잡아먹으려고 했던 당신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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