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83화 (83/116)

# 83

욕심이 많은 사람들(1)

유지은 팀장은 미간에 내천자를 그리며 동훈의 앞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뭔가 이상해요. 일단 해당 작가들쪽에 문의해보려 했는데 출판사 쪽에서 이상하게 제 연락을 피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다른 출판사 통해서 보통 어떤식으로 계약을 하는지 알아보려고 하니까 표준계약서를 하나 줬어요.”

“이게 그거에요?”

“네. 자신들은 이렇게 한다고... 원래 이런 계약서는 외부에 내보내지 않는 거라고 하는데 장동훈 감독님 팬이라면서 거기 대표님이 우리만 보라고 주셨어요.”

“내 팬이라구요?”

“감독님 다음 작품 너무 기대된다는 말은 그냥 립서비스 같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었어요. 혹시 자기네 작품 중에서 관심있는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 하더라구요.”

서류 봉투에 큼지막히 ‘도서출판 뉴월드’라고 쓰여 있었다.

“음... 여기 작품들도 그럼 한 번 봐야겠네.”

비록 이번에 판권을 계약하게 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지만 그래도 판권 구입은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기 괜찮은 작품 많더라구요. 우리가 계약했던 ‘Blue Books’보다 많은 작품을 가진건 아니지만 이름만 들으면 아는 작품들 꽤나 많이 있던데요?”

“그래요? 흐음... 어쨌든 하던 이야기 마저 해봐요.”

유지은 팀장은 서류봉투에서 계약서를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통 표준계약서에 2차 판권에 대한 내용을 기재해놓고 작가들한테 물어본대요. 웹툰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2차 저작물에 관한 권한을 자신들에게 위임해주면 자기네들이 업체와 협상을 진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걸 설명한다는 거죠.”

“작가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은요?”

“사실 이걸 해도 되고, 안 해도 기존 저작물로 받는 수수료 구조가 달라지거나 하지 않는다고 해요. 어지간하면 출판사쪽에서 권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조항을 속여가면서 넣을 이유가 없다고 하네요. 어차피 출간된 작품의 99%는 2차 저작물로 만들지도 못하는 작품이 대부분이고 작품은 대부분 초기에 계약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고 하던데요?”

“우리 상황을 이야기해줬어요?”

“네. 그래야 계약서를 보여줄 것 같아서요. 그러지 말았어야 했을까요?”

“아니요. 잘 했어요. 어쨌든 그쪽에서도 이 상황을 이해못하겠다고 하는 거죠?”

“네. 작가가 이걸 몰랐을리도 없고, 설사 몰랐다고 해도 보통 이런 경우는 자기가 만든 작품에 도움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될 수가 없는 상황이라 오히려 출판사에게 적극 협조해서 계약을 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래요. 그런데 영화로 만들겠다는데 싫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 겪는 일이라고 하던데요?”

“그런데 뉴스 보면 가끔 제작사와 작가간에 저작권 분쟁이 생기잖아요?”

동훈은 지금까지 조감독으로 일해오면서 원작 판권을 가지고 각색한 작품을 해본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들이 다 생소한 경험이었다.

“그런 경우도 대부분이 제작사에서 판권계약을 다 체결하기도 전에 제작에 넘어가서 그런 거라고 해요. 출판업체에서는 돈도 안 받았는데 그걸 가지고 제작에 들어가니까 화가 나서 소송전에 들어가는 거죠. 그런데 저도 예전에 작은 제작사에서 일했지만, 중소 규모 제작사들은 돈이 없어요. 만들지 안 만들지도 모르는 판권을 우리처럼 미리부터 사놓는 경우는 흔치 않아요.”

“그건 알고 있어요.”

“우리가 조금 특이한 경우긴 해요. 투자업체도 아니고 중소 규모 제작사가 판권을 미리 사놓는 거니까. 어쨌거나 제가 알아본 바로는 ‘블루 북스’가 아주 일을 이상하고 하고 있다는 겁니다.”

“흠... 알겠어요. 일단 정식으로 항의하고 정 안되면 포기하도록 합시다.”

“네? 포기요?”

유지은 팀장은 동훈의 입에서 포기한다는 말이 너무 쉽게 나왔다고 생각했다.

아직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쉽게 물러나버리면 ‘블루 북스’쪽에서 완전히 호구처럼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네. 괜히 법정 싸움 가서 소란 만드느니 깔끔히 포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저들 하는게 영 이상하잖아요. 정말 몰라서 그랬다면 모를까.”

“아니까 더 빨리 포기하자는 겁니다.”

“네?”

“저렇게 나오는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그냥 뒤통수를 치지는 않았을겁니다. 일단 계약서 있으니까 포기한다는 식으로 나가면 저들이 다음에 그 판권을 가지고 누구랑 계약하는지 확인해 보자구요. 그럼 이 짓거리를 꾸민 사람이 누군지 나올 테니까.”

“오~ 정말 그렇겠네요.”

동훈은 왠지 이번 낚시에 하나 걸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

“후욱... 후욱...”

땀을 뻘뻘 흘리며 격한 숨을 토해내는 이는 놀랍게도 살을 많이 뺀 강호였다.

날렵한 턱선이 드러낸 그의 얼굴은 그의 부모라도 순간적으로 몰라보지 않을까 싶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아직 완벽히 살이 다 빠진 모습은 아니었지만 예전의 그 뚱뚱하고 비대한 몸뚱이는 어디가버리고 이제는 당당한 체구의 청년처럼 보였다.

한참이나 숨을 몰아쉰 강호는 눈앞에 보이는 건물로 들어섰다.

이곳은 강호가 평소 다니는 연기학원.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목소리로 들어선 강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드러나 있었다.

예전 한국 콘텐츠 박람회에서의 덩치큰 쭈그리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어, 강호 왔구나. 오늘도 딱 맞춰서 왔네.”

강호를 반기는 이는 이곳 연기학원의 강사이면서 중년연기자인 이혜숙이었다.

연기경력만 20년이 넘는 그녀는 이곳 연기학원에 일주일에 이틀 와서 강호를 비롯한 연기지망생들에게 교육을 해주었다.

물론 비용은 상당히 비쌌지만 강호 어머니는 흔쾌히 학원 수강료를 내주었다.

만약 강호가 전속계약을 맺으면 비용을 모두 DH미디어에서 대기로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강호 어머니는 조금만 더 생각해본다며 학원 수강료는 자신이 댄다고 했다.

아무래도 전속계약을 함과 동시에 몇 년간 묶이는 몸이 된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다는걸 짐작할 수 있었지만 DH미디어는 굳이 더 권하지는 않았다.

유지은 팀장은 저러다 다른 회사로 가면 어떻게 하냐고 했지만 동훈은 뭐 그러면 어떻냐는 식으로 말했다.

동훈은 강호를 믿어서 그런게 아니라 굳이 자신이 데리고 있지 않아도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이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일 뿐이었다.

물론 강호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생각을 하든 장동훈 감독과 계약을 할 생각이었다.

아직 미성년자이기에 혼자서 계약할 수 없어서 미뤄졌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네. 저 위에서 씻고 올게요.”

이 건물에는 연기학원 말고도 헬스장이 더 있는데 이곳 연기학원 원장님과 굉장히 친한 사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창 다이어트에 열중인 강호가 헬스장 샤워실을 이용하는걸 너그럽게 인정해주고 있었다.

“응, 금방 씻고 와. 너 기다리는 사람 있어.”

“네? 누구요?”

“일단 씻고 와.”

강호는 고개를 갸웃하다 금방 샤워하고 미리 챙겨온 여벌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학원으로 내려갔다.

이혜숙 선생님은 강호를 보자마자 말했다.

“놀라지 마. ‘드라마 박스’라고 알지?”

“엄청 큰 소속사 말씀하시는 거죠?””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안에 꼽을 만큼 큰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드라마 박스였고 연예계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두 번은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회사이기도 하다.

“그래, 거기서 네 연기를 보고 찾아오셨어.”

“어... 전 전속회사 생각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요?”

“너 아직 계약 안 했던데?”

이혜숙이 몰랐다는 듯 물어보자 강호는 순간적으로 어머니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걸 느꼈다.

“혹시 우리 엄마가 말했어요?”

“하하, 아니야. 내가 그냥 알아봤어. 전속계약 돼 있으면 협회에 등록 되거든.”

“아... 그렇구나.”

“원장님께서 혹시 몰라서 어머니한테 연락을 먼저 할까 하다가 너두 다 컸고 저쪽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굳이 어머니 가슴에 바람 넣기만 하고 실망하실까봐 아직은 말 안 드렸대.”

“잘하셨네요.”

강호는 어머니가 알았다면 얼씨구나 달려와서 조건부터 들어보자고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직 미성년자이기에 이렇게 계속 신경써야 한다는게 아쉬웠지만 조금만 지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거라고 위안하면서 물었다.

“그런데 미안하다고 말씀드려주세요. 저 전속계약 약속한 데가 있거든요.”

“어딘데?”

강호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응접실 문이 스르륵 열리며 30대 초반의 여성이 나왔다.

강호는 요즘 연기학원을 다니며 배우를 꿈꾸는 연기 지망생들을 자주 보기에 살아오면서 이처럼 미인을 많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의 여성은 그런 여배우 지망생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안녕. 네가 강호구나?”

강호는 자신을 보며 반기는 사람들을 보곤 흠칫 놀라 뒷걸음쳤다.

무서워서라기보단 그냥 처음 보는 사람들이 반갑다고 다가오니 괜한 경계심이 든 까닭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유, 생긴거와는 다르게 부끄러움이 많네. 일단 와서 앉을까?”

“저기... 죄송한데 저는 전속계약할 회사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요.”

“거기가 어딘데?”

“DH미디어라고...”

그런데 눈앞의 여자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자 강호가 재차 말을 이었다.

“장동훈 감독님이 세운...”

여기까지만 말했는데 여자는 손뼉을 짝 치며 알았다는 듯 웃었다.

“아! 미안. 장동훈 감독님이 전속회사를 세운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 거기 1회 연기자가 신은정이지? 뉴스 봤는데도 깜빡했네. 그런데 어떻게 그 회사랑 알게 된 거야?”

“감독님이 저한테 살빼면 연기 시켜주신다고 했거든요.”

“정말? 그렇구나. 어쨌든 일단 와서 앉아서 얘기하자. 누나 다리 아퍼.”

그녀는 머뭇거리는 강호의 손목을 붙잡고 응접실로 데려와 앉혔다.

그리고 아주 작은 백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곤 강호에게 내밀었다.

“송지연 팀장님?”

“그래 그게 내 이름이야.”

짧은 치마를 입은 터에 그녀가 소파에 앉자 치마가 말려 올라가 안쪽이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광경을 연출했다.

강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혈기왕성한 청소년인 까닭에 얼굴이 붉어지고 머릿속에는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런 강호의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은 송지연 팀장은 다리를 척 꼬면서 말했다.

“네가 어떤 사정으로 장동훈 감독과 같이 하려고 마음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막 결정하는게 아니다? 내가 친누나 같아서 말해주는 거야. 좋은 회사에서 빵빵한 지원 받으며 해보고 싶은거 다 해보고 살아도 짧은 인생이거든.”

“네?”

아직 송지연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 강호가 되물으니 그녀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강호의 옆에 앉았다.

코로 확 들어오는 그녀의 향기에 강호는 더욱 어쩔 줄 몰라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여자도 많이 만나보고 싶지 않아?”

“네?”

“후후... 귀엽네.”

그녀는 강호의 볼을 스윽 만지더니 강호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힘주어 말했다.

“잘 생각해. 인생 고달프게 살지 말고 한 번에 스타되서 인생 즐기면서 살면 된단다. 배고픈 예술보다는 배부른 왕자님이 더 좋지 않겠어?”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백을 챙겼다.

“그럼 다음에 보자. 연락해.”

송지연 팀장은 자신 있었다.

보통 이렇게까지 하면 어느 남자라도... 특히 아직 여자 경험이 많이 없는 어린 남자들은 백이면 백 무조건 넘어왔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똘똘한 놈을 계약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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