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73화 (73/116)

# 73

첫 사랑 그 느낌(4)

최종 관객수 1072만, 충무로 일대는 신생제작사인 DH 미디어의 역사적인 성공을 부러워했고 질투했다.

초반 스크린을 독점했던 것도 아니고 광고를 빵빵하게 하지도 않았다.

주혁이라는 톱스타가 참여하긴 했지만, 그는 악역이었고 오히려 메인 주연은 황정훈이라는 이제 막 떠오르는 중견신인(?)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악질형사의 성공은 한국 상업영화에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을 만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언론과 충무로의 관심이 집중된 건 당연한 것이기에 동훈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하루도 거를 수 없을 정도였다.

질문은 언제나 비슷했다.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됐는지,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어떻게 되는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 예정인지 등등...

처음에야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지만, 나중에 가서는 보도자료를 뿌리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도망쳐 다녔다.

그리고 사실 바쁘다는건 핑계가 아니었다.

이제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한강의 괴물’과 관련해서 배급사인 ‘빛그림’과 배급 일정 및 마케팅에 관해 끊임없는 회의가 이어졌고 명진이의 차기작에 자신의 차기작을 준비하는 것까지...

진심으로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포스터는 이걸로 합시다.”

“너무 단조롭지 않을까요?”

“시선이 분산될 수 있으니까 오히려 이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어차피 초반 관객들은 흔한 괴수영화라고만 생각할테니까 그걸 타겟으로 가는게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걸로 갈게요.”

동훈은 사무실로 찾아온 양지원 대표와 함께 마케팅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일정은 언제로 잡았어요?”

“이번에 악질형사 개봉시기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절묘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설날이 끝나는 2월 중순이 어떨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흠... 2월 중순이라... 그때 맞상대할 작품들이 뭐가 있어요?”

“몇 개 대작이 있기는 해요. 1월 말에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기대작이 2편 정도 되고 한국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가 하나 있어요. 그리고 2월 중순에 헐리우드 액션영화가 하나 개봉하는데, 엑스맨 시리즈 아시죠?”

“알죠. 당연히...”

“그것 때문에 어지간한 기대작들은 전부 3월 중순이나 4월 초로 밀렸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형 액션블록버스터는 관객수 5백만을 넘긴게 거의 없고 설사 넘겼다고 해도 우리가 개봉할때쯤은 끝물에 다가설 시기이기 때문에 아예 겹치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5백만이라고 가정할 땐 그렇겠네요.”

“진짜 걱정되는건 정면으로 붙게 되는 엑스맨 시리즈인데 이것도 한국에서 3백만 관객을 넘은적이 없어서... 정면으로 부딪친다고 해도 승산이 있을 것 같아요.”

김영웅 감독이 있던 곳에서도 엑스맨 시리즈는 한국에서 그닥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미국에서 잘나가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안 먹히는 몇 가지 시리즈가 있는데 대표적인게 바로 스타워즈와 스타트렉, 그리고 엑스맨 시리즈였다.

그녀도 그걸 알고 있기에 정면승부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는 거였다.

“애니메이션쪽은요?”

이번에 악질형사 초반 스크린 확보에 최대 걸림돌이었던 애니메이션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 때문에 이번에 극장주들하고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됐어요. SHOW는 우리를 무시했지만... 솔직히 다른 배급사들도 다 저희를 무시하겠죠? 하하하!”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어대더니 말을 이었다.

“예전엔 규모가 작은 극장이 많았는데 이제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주들이 대부분이라 우리도 많이 어려울거라 예상했었어요. 그런데 아직 우리를 잊지 않고 계시는 극장주들이 많으시더라구요.”

“아... 그거 참 다행이네요.”

“그래서 의외로 쉽게 합의해 주셨어요. 물론 구두상이긴 하지만...”

“뭐라고 하던가요?”

“특별히 해당 애니메이션이 엄청난 흥행돌풍을 일으키지 않는 한, 최소 50% 이상 영화쪽 스크린 점유율을 넘기지 않으시겠대요. 어지간해서는 절반 이상은 영화쪽에 남겨두신다는 거죠.”

“다행이네요.”

구두상이라서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50%를 지켜준다고 한 것만으로도 조금 안심이 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강의 괴물이 나머지 50%를 다 먹을 수 있는건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말이다.

나머지 50% 내에서도 적당히 공존할 수 있다면 스크린 수는 초반에 적게 가져간다고 해도 나중에 입소문만으로도 충분히 앞지를 수 있었다.

이번 악질형사처럼 상대할 애니메이션 성적이 지지부진하거나 완성도가 못 미치면 나중에 스크린 수를 압도적으로 가져갈 수 있으니 초반에 이렇게만 해줘도 안심이었다.

“그래서 시기를 딱 2월 중순으로 잡았어요. 대작 애니메이션도 맞상대를 한다기보단 조금 이른 타이밍에 개봉하기 때문에 맞상대가 거북할 정도는 아니고... 뭔가 애매하긴 한데 그렇다고 3월로 너무 미루면 가족 단위 관객이 많이 찾지 못할 것 같아서 이 타이밍이 딱 적당한거 같아요.”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여겨졌다.

마음 같아서는 빨리 개봉해서 관객들의 평가를 받고 싶지만 개봉 시기는 영화를 얼만큼 잘 만드느냐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기에 조금 늦더라도 충분히 기다려줄 수 있었다.

“그럽시다. 개봉은 그때로 하고, 만약에 이번 영화 성적이 좋으면 앞으로 계속 좋은 관계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벌써부터 이런말하기 이를 수 있지만 이번에 A&P를 통해서 해외 판매하는 과정을 보면 정말 흡족하기 이를데 없었다.

아직 정산이 들어온건 아니지만 각 나라별 판매현황과 가격, 특수조항까지 세세히 알려주는 걸 보면서 유 팀장은 감탄하기까지 했었다.

국내개봉만 생각할거라면 모르지만, 앞으로도 해외 판매를 생각한다면 빛그림과의 협업은 어쩌면 필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당연하죠. 현재 국내 배급은 조금 부족하지만 앞으로 차츰 늘려갈 수 있으니까 아마 이번 영화 성공하면 다음 스크린 확보는 지금보다 훨씬 쉬워질거예요. 해외판매는 뭐... 하하하!”

동훈은 호탕하게 웃어제끼는 그녀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그때 똑똑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대표님, 은정 씨 오셨는데요?”

“아, 그래요? 알겠어요.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세요.”

누가 왔다는 말에 양 대표가 서둘러 일어났다.

“손님 오셨으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유, 안 그러셔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우리 앞으로 더 친해져야 하잖아요? 하하하!”

시끌벅적한 그녀가 가고 난 뒤 은정이 유지은 팀장과 함께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안녕하셨어요?”

“어, 왔어? 앉아. 마실거라도 뭐 줄까?”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녀는 화장기 없는 수수한 차림으로 왔지만 그럼에도 그 미모는 어디가지 않았다.

“명진이랑 얘기는 해봤어?”

“네, 감독님께서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어요. 각본 주시면서 캐릭터 잡는 것도 많이 조언해 주셨구요.”

은정은 이번 명진의 영화에 캐스팅 되었다.

그것도 아주 예상치 못하게 캐스팅 되었는데 이유는 은정을 추천한 사람이 바로 현주였기 때문이다.

이유를 전해 들으니 자신의 젊었을적 모습을 연기할 사람은 자신이 추천한 사람으로 하고 싶다고 말하며 은정이가 꼭 자신이 처음 데뷔할때와 상당히 흡사하다고 하며 추천했다.

그 말을 듣고 은정을 보니 현주가 처음 데뷔했을때의 청초한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현주가 데뷔 초기 볼살이 조금 있었을땐 지금처럼 도도해 보이기보다는 귀여운 이미지도 어느정도 있었고 말이다.

화장으로 조금만 손대면 확실히 비슷해보이기도 했기에 명진이도 그 말을 듣고 바로 오케이했다.

연기도 나름 준수하고 미모야 말할 것도 없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약간의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바로 은정이 아직까지 소속사를 구하지 못했다는 거였다.

“음... 그래, 잘했네. 오기 전에 들었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계약을 진행할때는 예민한 문제들이 많아. 출연료부터 촬영시간 조율이나 촬영에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들까지. 지금까지는 배역이 작았고 출연료도 적었기 때문에 어찌어찌 넘어갔었지. 사실 한강의 괴물 찍을때도 단역이라고는 할 수 없어서 우리가 계약을 잘 설명해주긴 했지만 그래도 원래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아직 소속사를 구하지 않았어?”

그녀는 별다른 이유가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연기공부에 매진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사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작품이 계속 있었던 편이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아...”

소속사를 구하지 않아도 작품이 계속 있었으니 굳이 소속사가 필요했나 싶었던 것 같았다.

“언니가 많이 벌텐데... 아직 어려워?”

“사실 예전에는 좀 그랬는데 많이 좋아졌어요.”

소속사를 구하면 다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소속사도 먹고 살아야 하니 당연히 작품 계약을 하면 소속사와 수입을 배분해야 하는데 눈치를 보니 그게 아까워 아직 소속사를 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작품이 안 들어왔으면 모르겠지만 작품도 끊이지 않는데 굳이 회사와 수입을 배분하면서까지 회사를 구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거다.

“이번에 널 부른건 회사가 혹시 필요하면...”

“추천해주시려구요?”

“응, 싫으니?”

동훈이 조심스럽게 물으니 그녀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감독님이 추천해주시면 저야 안심할 수 있어요. 솔직히 전 다 사기꾼들로 보이거든요. 언니네 회사도 마음에 안 들고...”

“거기 회사 대표가 언니 남친이라며?”

“그게 제일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죠.”

은정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동훈은 편하게 말했다.

“음... 사실 우리 회사가 제작사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 배우 매니지먼트도 생각을 하고 있어. 그러니까 추천해준다는 회사가 우리 회사인 거지. 웃기지?”

“어? 매니지먼트사를 만드는 거예요?”

“응, 드라마나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드는데 필요한건 좋은 컨텐츠가 우선이지만 긴 장편을 만든다고 가정할 때 캐스팅 안정이 필수거든, 생각해봐. 예를들어 16편짜리 형사물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던거야. 그래서 2편을 만들려고 보니까 1편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다 다른 작품을 생각하는거지. 몸값도 오르고... 그래서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은 이후 작품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되는... 그런 안 좋은 결과가 이어지니까 그걸 방지해보고 싶어.”

“그렇구나.”

“그래서 좋은 컨텐츠를 꾸준히 만들기 위해선 캐스팅이 문제가 없어야 되니까 아예 우리가 배우 매니지먼트까지 같이 할까 생각중이야.”

“우와~ 대단해요.”

은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런데 이건 꼭 너한테 좋은게 아닐수도 있어. 오로지 너만 생각한다면 더 높은 출연료로 다른 작품에 갈 수 있으니까. 우리 회사는 배우들의 선택도 존중하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컨텐츠를 길게 가져가기 위한 바탕을 세우려는 거기 때문에 출연료 부분에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 있어. 뭐, 네가 싫다면 억지로 권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음... 좋아요.”

은정은 동훈의 권유에 너무도 쿨하게 승낙했다.

“그렇게 쉽게 결정하지는 말고, 집에 가서 천천히 생각...”

“집에 가서 생각한다고 별다른 결론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아요.”

“나중에 후회할수도 있어.”

“후회하지 않아요. 재벌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많이 벌면 좋기는 하지만, 아주 많이 버는 것보단 조금 많이 버는걸 목표로 할게요. 히히. 그리고 전 감독님하고 같은 회사에 다닐 수 있다는게 너무 기대되는데요?”

“진짜 후회 안 해?”

“됐으니까 얼른 계약서나 가지고 오세요. 지장으로 해도 되죠?”

그녀는 엄지를 휘두르며 유 팀장에게 얼른 계약서를 가지고 오라고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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