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62화 (62/116)

# 62

정면승부(2)

언론 시사회와 VIP 시사회, 그리고 일반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한 유료 시사회까지 반응이 너무 좋다보니 개봉 첫날, 예매율은 당연하게도 대작 애니메이션 진격의 카프리모 다음인 2등으로 출발했다.

물론 진격의 카프리모는 예매율이 70%를 넘는 미친 반응을 보였지만 그래도 상업영화치고 53%의 예매율은 상당히 좋은 성적이었다.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 장동훈 감독은 믿고 보는 감독이 될 듯]

[영화 내내 시원시원하고 재밌었음. 별 다섯 개 드려요!]

[알바 아니다. 엄청나게 잘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냥 돈주고 보기 아깝지 않았다. 별 네 개 반 준다]

[완전 취향저격. 진짜 재밌음]

네티즌들의 평을 보면 전부 알바를 풀거나 직원들이 써놓은 것처럼 호평 일색이었고 실제로 주변에서 보고 온 사람들 역시 돈 안 아까운 오락영화였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놀랍게도 월요일인 개봉 둘째날에는 평일임에도 예매율이 10% 밖에 떨어지지 않은 42%를 기록하며 기세를 이어나갔다.

“대박을 위하여!”

“위하여!”

이렇게 분위기가 좋다보니 회식이 빠질수가 없었다.

특히 배우들치고 술 싫어하는 사람이 몇 없다보니 지금처럼 개봉 후 무대인사를 돌며 흥행을 체감하고 있을때는 스케줄이 끝났다고 누구하나 빠지는 일 없이 매일 술이 이어진다고 보면 됐다.

“나는 관객들이 날 싫어하지 않아줘서 너무 고맙더라구요. 난 영화 보면서 내가 너무 꼴뵈기 싫던데...”

“아니 근데 악역인데 마지막에 많이 맞기는 하잖아. 그래서 그나마 넘어가준게 아닐까?”

“대신에 나도 많이 맞았어. 아오... 그때 강남 한 복판에서 뒤지게 맞는데...”

얼큰하게 취해 붉게 달아오른 얼굴의 주혁과 황정훈, 그리고 수많은 주조연 연기자들은 다시금 촬영때의 추억을 되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반명 동훈은 연출부와 한쪽 구석에서 열심히 고기를 집어 먹으며 명진이와 이야기에 열중했다.

“그래서 좀 빠질 것 같아?”

“일단 좀 기다려봐야 하지 않을까요? 생각만큼 분위기가 좋은 것 같지만은 않은데다가 아무래도 평일이라... 예매율이 확 떨어져서 이제는 진짜 진검승부 같은 느낌이거든요.”

연출부 중에 애니메이션에 가장 정통한 인재(?)라고 할 수 있는 명진이었기에 진격의 카프리모에 대해 조금 궁금한게 생기면 언제든 그를 호출했다.

“확실히 많이 빠지긴 했더라. 44%였나?”

유지은 팀장이 파전을 입에 쏙 넣으며 말했다.

“44.7%요. 우리랑 거의 차이가 없어요.”

평일 기준으로 예매율이 40%를 넘는다는 것도 대단하긴 했지만 일단 60%를 넘나들던 목표가 바로 눈앞까지 내려온 판국이라 희망이 보였다.

“SHOW에서는 뭐래요?”

사실 예매율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건 DH 미디어보다 배급사인 SHOW였다.

이번에 스크린을 800개 밖에 확보하지 못해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이었는데 예매율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으니 아마 발에 땀나게 돌아다니고 있을 터였다.

“김 부장이 어떡해서든 상황 뒤집겠다고 지금 계속 극장주들 상대로 설득하고 있는 중이래요. 우리 영화가 이틀차 예매율이 많이 낮아졌으면 아예 씨알도 안 먹힐텐데 그래도 선방하는 추세라 말은 해볼 수 있다구요.”

“월요일인데 40%를 넘으면 대단한거지...”

명진이 투덜거리자 동훈이 타박했다.

“이제 이틀째다. 그것도 이틀이 다 지난것도 아니고. 일주일 정도 계속 이래야 그쪽도 말에 힘이 실리지.”

“그래도 관람객들 반응 딱 보면 모르나?”

“당장 눈에 보이는게 있어야지. 상대쪽 예매율이 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학생들 비중이 많은 애니메이션이라서 이건 예매율이 떨어졌다고 하기도 뭐해. 네 말대로 영화가 너무 어렵고 이상하면 예매율이 조금씩 떨어지겠지. 조금만 기다려보자.”

명진이도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다 마음이 급해져서요.”

“괜찮아, 인마.”

동훈은 명진의 어깨를 쓰담으면서도 자신 또한 급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

조현준 실장이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건 3일차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예매율이 아주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걸 보고 나서 부터였다.

월요일 예매율이 빠졌을땐 평일이라 그런거라고 생각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3일차 DH 미디어의 악질경찰과 예매율이 아주 미세한 차이로 역전된 이후 자신이 생각했던 흐름과 달라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경록이 들어와 봐.”

인터폰으로 직원을 호출하고 난 뒤 약간의 시간이 흘러 경록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왜 불렀는지 알겠지?”

“네.”

며칠 전만해도 자신만만하던 그의 얼굴은 많이 자신감을 잃어버린게 티가 나 보였다.

“뭐야? 예매율이 왜 떨어져?”

“주말에서 평일로 바뀔때는 보통 이 정도로 예매율이 떨어지긴 합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의 경우는 워낙 잘 만들어져서 다른 작품처럼 이렇게 비슷하게 떨어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뭐야, 네가 그렇게 칭찬을 한 이번 작품이 다른 시리즈와 큰 차별점이 없었다는 말이야? 그런거야?”

“아직 사흘째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추이를 지켜보는게...”

조현준 실장은 경록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잘라먹고 소리질렀다.

“이거 정신 못 차리고 있네? 야! 드라마 시청률도 마찬가지고 예매율도 마찬가지야. 한 번 꺽이기 시작하면 다시 올리는게 얼마나 힘든건지 몰라서 그래? 관객들 반응 확인했어?”

“반응은 진짜 장난 아닙니다. 역대급 명작이 나왔다고 난리인데... 그리고 포털사이트 평점만 봐도 별 다섯 개가 주르륵 달렸습니다. 전 이 상황이 도저히...”

“도저히 모르겠다는 말이 입에서 나와? 당장 나가서 원인 파악해서 보고해. 알았어?”

“알겠습니다.”

한경록 대리가 방을 나가자 조현준 실장은 답답한 마음에 넥타이를 풀어버렸다.

그리고 포털사이트 영화 평점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평점은 별거 없는데...”

별거 없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맹목적인 종교나 다름없어 보였다.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었고 별도 4개 이하는 가끔 가도 눈에 띨 정도였다.

조윤혁 실장은 칭찬은 건너뛰고 안 좋은 평을 쓴 것만 읽어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중반까지 지루함. 개인적으로 별 3개 반 주겠음]

[개똥철학만 아니면 더 재밌게 봤을텐데 아쉬움]

[이 영화 나만 별루임? 애니메이션도 공부하면서 봐야 함?]

[힘을 너무 준 거 같음. 카프리모 시리즈 중에 유일하게 보다가 잠들뻔 했음]

조현준 실장은 입술을 깨물며 하나하나 전부 읽었다.

그렇게 평점을 살펴보기를 삼십여분 정도 했을 때 한경록 대리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왜 벌써 들어와?”

“그게... 일단 문제가 뭔지는 알 것 같습니다.”

“뭔데?”

“아무래도 너무 매니아적으로 만든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데?”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진보된 세계관을 설명하는 부분이 길었고 그러면서도 그 가운데 관객들이 쉴만한 포인트를 만들어주지 못한 것 때문에 지루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던 걸로...”

“야, 지금 그건 너무 기초적인 문제 아니었어? 그런것도 생각 안하고 만든 거야? 내가 방금 전에 평점 댓글만 보고도 알 수 있는걸 넌 이제야 알았다고? 진짜 그게 문제의 핵심이야?”

한경록 대리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런 거 같습니다.”

“같습니다?”

“아니, 그게 맞습니다.”

“아우... 넌 딱 평론가 재목이지 크리에이터 재목은 아니다. 네가 방금 지적한 부분은 실력 있는 연출자라면 기본적으로 깔고 가야하는 구성의 기본이야. 네가 도와준다고 손대는 바람에 연출자가 흔들려서 이렇게 된 거 아니야?”

“그것까지는...”

조 실장은 허탈한 표정으로 의자에 풀썩 앉았다.

잘못 생각했던게 분명했다.

원래 어떤 작품이든 훈수를 많이 두면 작품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연륜이 많고 경험이 많다고 해도 주변에서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또 그 의견이 자신이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더 좋다고 판단되면 계속 그 방향으로 생각이 쏠릴 수밖에 없다.

결국 처음 구상했던 방향이 틀어지고 작품은 흔들리게 된다.

분명 알고 있었는데... 장동훈 감독에게 한 방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시야가 좁아졌던게 틀림없었다.

아마 총 연출자는 결과물을 보고 흡족해 했을게 틀림없다.

본인이 보기에도 작품의 완성도가 만족스러웠을테니까.

“됐어. 일단 추이를 더 지켜보자.”

“알겠습니다.”

“예매율이 역전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기세가 나쁘지 않으니까 LS엔터에 스크린 뺏기지 말라고 확실히 말해놓고.”

“네.”

경록이 굳은 표정으로 나가고 난 뒤 조현준 실장은 입술을 깨물며 모니터로 시선을 고정했다.

아무래도 요 며칠 일찍 퇴근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개봉 5일차.

[악질형사, 입소문 타고 예매율 상승]

[주혁, 이렇게 잘생기면서도 재수없는 악역이라니]

[황정훈을 충무로로 끌어올린 장동훈의 눈을 주목하라]

연속해서 올라오는 좋은 기사들에 DH 미디어 사무실은 연일 걸려오는 전화를 처리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지금 대표님이 자리 비우셨습니다. 오시면 메모 남겨드릴게요.”

“현재 차기작 일정은 잡힌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네. 진짜에요.”

“한강의 괴물 1차 예고편 공개는 다음달로 잡혀 있어요. 네. 정확한 날짜는 빨라도 다음주는 되야 나올 것 같은데요.”

악질형사가 잘 되니 기자들은 평소 궁금해하지도 않던 것까지 회사로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물론 직원들은 바쁘기는 해도 다들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 작은 제작사가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누가 회사문을 빼꼼히 열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30대 초반으로 정장을 입고 있던 그는 왁스로 깔끔하게 정리한 머리와 하얀 피부를 가진 잘생긴 청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네? 어디서 오셨죠?”

경리로 채용한 여직원이 묻자 그가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명함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오렌지튜브라는 배급사에서 나왔습니다.”

“오렌지튜브요?”

경리여직원은 유지은 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들어본 적 없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뭔데?”

유 팀장이 묻자 그가 얼른 유 팀장에게 다가가 똑같이 명함을 건네주며 인사했다.

“오렌지튜브? 그런 배급사가 있었나?”

“안녕하십니까. 오렌즈튜브 도경민 대리라고 합니다. 저희 대표님이 LS엔터에서 근무하시다가 새로 회사를 차렸습니다.”

“반가워요. 그런데 대표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장덕수 대표님 되십니다.”

“아... 알아요. 장덕수 전무님이 회사를 그만두셨다는 말은 들었어요. 일단 이리로 오시겠어요?”

유지은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회의실로 이끌었다.

“회사 설립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반년 정도 됐습니다.”

“으음... 그렇구나. 그런데 알고 오신거예요?”

유 팀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사실 양호민 감독의 한강의 괴물을 두고 아직 배급사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제작이 거의 끝난 상황에서 배급사 결정이 안 됐다는건 너무 늦은감이 있었지만 말이다.

사실 이번 영화도 SHOW와 계약을 하려 했는데 이번 스크린 부족 사태를 처리하는 일처리를 보곤 마음을 돌렸다.

다음 영화는 SHOW가 아닌 다른 배급사와 하겠다고 동훈이 선언했고 이후 SHOW를 비롯한 배급사들끼리 경쟁이 붙은 상황이었다.

“물론입니다. SHOW와 배급계약이 안 되셨다고 들었거든요.”

“흐음... 좋아요. 그럼 우리가 다른 대형 배급사 대신에 그쪽과 계약해야 하는 이유가 어떤게 있을까요?”

장덕수 대리는 빙그레 웃으며 들고 온 서류가방에서 영문으로 된 서류를 꺼내놓았다.

“이건 뭐죠?”

“150개국 해외 배급과 판매를 주도하는 ‘A&P’라는 회사와의 계약서입니다. 물론 사본이구요. 우리와 계약하신다면 사전 판매로 무려 해외 150개국에 선판매를 추진할 수 있습니다. 아마 개봉도 하기 전에 최소 70억 이상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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