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성공해야 하는 이유(4)
“긴장되지 않아?”
“긴장되기야 하죠. 그런데 뭐... 잘 되겠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또 가을을 앞두고 있었다.
악질형사의 촬영이 모두 끝나고 개봉을 앞둔 지금 언론시사회에 갔어야 할 동훈은 CG업체인 ‘ACE 픽처스’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양호민 감독과 후반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래도 감독이 안 가면 되겠어?”
“솔직히 내가 거기에 있으면 더 떨릴 거 같아요.”
“시사회 처음도 아니잖아. 이번에 하면 세 번째인가?”
“전에는 망해도 내 돈이 아니라서 그런지 내 실력에 대해 후련하게 심판받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실패하면 그냥 망하는거라 부담감의 크기가 완전히 달라요. 아우...”
동훈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게 처음 회사를 차리고 영화를 제작할때까지만 해도 자신감에 차서 뭘 해도 성공할 것 같고 특히 악질형사는 절대 망할 수가 없는 작품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촬영이 끝나고 후반부 작업을 하면서 개봉이 점차 다가올수록 가슴이 답답해지고 입맛도 딱 떨어지는게 마치 영장을 받고 입대를 앞둔 기분이 드는게 아닌가?
분명히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제작사를 차리고 언론에 자기가 무슨 영화계의 선구자인양 지껄여 놨는데 이번 영화가 망한다면 그저 실력도 없는 놈이 입만 나불거린게 되는지라 하루하루가 피가 바짝바짝 말라갔다.
이 모습에 유지은 팀장도 처음에는 ‘감독님도 걱정을 하세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지만 그녀도 개봉을 며칠 앞두고서는 몸무게가 3kg나 빠쪘다고 토로했을만큼 같이 긴장하고 있었다.
영화가 망하면 회사가 흔들릴 것이고 그럼 그녀도 직장을 잃을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언론시사회 참석을 극구 거부했던 것도 양호민 감독과 ‘한강의 괴물’ CG 작업을 도와줘야 한다는 핑계를 댔지만, 솔직히 말하면 차마 기자들과 같이 영화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자들에게는 장동훈 감독의 건강상 참석이 어렵다고 했기에 별다른 말은 없었다.
“장동훈 감독님, 여기 이 부분은 어때요?”
“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우지긴 했어도 그래도 좀 튀는 느낌인데... 어, 여기. 음식물을 집어 삼키는 동작에서 꿀렁꿀렁하게 움직임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너무 뻣뻣한데요? 이 부분에 생동감을 넣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화면이 너무 어둡네. 조명은 나쁘지 않았는데 이거 손을 댄거죠?”
“네. 아무래도 지하수로의 느낌을 주려고 배경을 좀 어둡게 했는데 좀 밝게 할까요?”
“네. 화면이 너무 어두우면 관객들이 답답해 해요.”
“그럼 괴물의 움직임이 도두라져 보일 수 있어서... 자칫 관객이 봤을 때 어설프다고 느끼게 되면 몰입감이 깨지지 않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충분히 괜찮으니까 우리 자신감을 가집시다.”
CG를 담당하는 프로듀서가 동훈의 말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전부 받아 적는다.
그렇게 한동안 양 감독과 같이 하나하나 손보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을 때 쯤 동훈의 핸드폰으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감독님, 우리 살았어요. 이제 투병 그만하셔도 될 듯 합니다. ㅋㅋㅋㅋ]
유지은 팀장에게 온 문자.
그걸 본 순간 동훈은 가슴 위에 올려져 있던 안 보이는 돌덩이 하나가 툭 떨어져 나감을 느꼈다.
“후... 하하...”
“왜? 반응 괜찮았대?”
“네. 그런가봐요.”
“그럼 여기 있지말고 가봐. 어차피 여기 일도 거의 끝났으니까 나머지는 내가 체크할게.”
“그래도 될까요?”
“괜찮아. 몇 씬 안 남았잖아.”
“감사합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십쇼!”
“그려, 고생하고. 그리고 축하해!”
“감사합니다.”
아직 유 팀장의 문자만 받았을 뿐 정확히 상황을 알기 어려웠다.
일단 사무실로 방향을 잡고 유 팀장에게 블루투스로 전화를 걸었다.
“감독님, 일 끝나셨어요?”
“어떻게 됐습니까?”
“하하하, 이제 잠수 끝내셔도 되요. 우리 감독님 은근히 간이 작으시네.”
“떨려서 그랬어요, 떨려서. 반응은요?”
“솔직히 말하면 너무 가볍기만 한 거 아니냐는 말이 있긴해요.”
“그거야 뭐...”
웃긴게 상업영화를 한다면서 영화 스토리를 너무 가볍게만 하면 평론가나 기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었다.
그래서 상업영화에 평론가들이 너무 많은 점수를 주면 배급사나 제작사에서 아주 좋아하지만은 않는다.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낮은데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는 순간 대중성과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기자들이 너무 가볍기만 하다는 말은 크게 아쉽지 않았다.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고 선과 악의 대립이 너무 뚜렷해서 초반만 봐도 뒷부분이 다 그려진다는 사람도 있었구요. 그런데 웃긴건 다들 재미는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저렇게 말한 사람들도요.”
“그럼 됐네요. 하하하!”
진짜 살았다 싶었다.
상업영화에서 재미는 있었다는 말은 그 어떤 칭찬보다 훨씬 와닿는 것이었고 특히 제작사의 대표의 신분이기도 한 동훈에게 이보다 더 안심이 되는 말은 없었다.
“오늘은 참석 못하셨으니까 모레 VIP 시사회에 참석하실래요? 가서 기자들한테 얼굴도 좀 보여주고.”
“그렇게 합시다. 아무리 아팠다고는 해도 오늘 참석 안 한게 계속 마음에 걸리니까.”
“그래도 감독님이 건강상의 문제로 참석하지 못했다고 하니까 아무도 뭐라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괜찮아요. 대신 VIP 시사회 끝나고 기자들한테 좀 시달릴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
“좋은 의미로 시달리는 거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하하하!”
핸들을 쥔 동훈의 손길은 오늘따라 가볍기 그지 없었다.
*
[유쾌하고 통쾌한 형사들이 왔다! 악질형사!]
[기득권을 향한 통렬한 한 방! 시원하게 풀어내는 액션!]
[장동훈 감독. 클리쉐와 캐릭터를 주무르는 마술같은 능력을 선보이다]
최영준 대표는 소파에 누워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양진기의 시선을 피했다.
“기사가 좋더라고. 형도 봤지?”
“언론 시사회 날에 기사 안 좋게 나는 영화도 있냐? 원래 이날은 다들 띄워주고 난리도 아니야. 너도 알잖아?”
“두상호 기자 알지? 나랑 친하잖아. 그런데 오늘 그거 보고 오더니 아주 주혁이 포스가 아주 쩔었다고 막 그러더라고. 내가 했으면 훨씬 더 잘했을건데 어쩌고 하면서 지껄이는데 내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물었어. 영화 잘 될 것 같냐고. 그랬더니 뭐라고 했는줄 알아?”
“뭐라는데?”
“별로래. 재밌기는 한데 너무 가볍데. 막판에 반전이 조금 있기는 한데 그것도 그리 충격적인건 아니고... 그냥 저냥 딱 시간 때우기 좋은 영화래.”
“그래?”
최 대표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질 찰나 양준기의 말이 이어졌다.
“나도 그런가보다 했지.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처음 장동훈 감독의 6급 공무원때 그 기자가 예전에 그랬거든. 내용도 가볍고 감독이 뭘 말하려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저냥 시간 때우기는 좋은 영화라고. 당시엔 장동훈 감독이 신인이라서 아예 이런 감독은 오래 못 가고 이 바닥 뜰거라고 그랬나? 하여튼 혹평을 했었지. 그리고 새로운 세계 때는 15세 관람가 치고 너무 잔인하고 피가 난무하는 싸구려 조폭 물이라고 했었어. 그럭저럭 시간 때우기 좋기는 하지만 대부에 비해선 깊이가 없는 영화라고 했었나? 뭐 하여튼 그런 식으로 말했던거 같아.”
“아... 그랬구나.”
최 대표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뒤끝이 장난 아닌 양준기가 한번 뿔이 돋았을땐 알아서 고개를 숙여줘야 하는게 다년간 준기를 케어하면서 얻은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졸라 웃긴건 그 새낀 꼭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내가 너무 가볍지 않냐고 물으면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에 왜 깊이를 따지냐고 되묻더라니까? 웃긴 새끼야 아주...”
“그거 웃긴 새끼네...”
양준기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쳐다도 안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최영준을 빤히 보다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스토리가 너무 뻔할 거라며? 돈 많고 졸라 나쁜 새끼 잡는 형사물... 이런 작품 한 둘이 아닐 거라고 했었지?”
“내가 그랬었나? 크흠...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응. 그랬지. 이 말도 덪붙였어. 나오면 아마 백만에서 2백만 조금 넘다가 소리소문없이 들어갈 거라고. 이미 내 얼굴 스크린보다 TV에서 더 많이 볼거라고 했었지.”
“흐음... 잘 기억이 안 나는데...”
“했었다고!”
버럭 소리를 지른 준기 때문에 화들짝 놀란 최 대표가 드디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그를 돌아보았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냐?”
“망할 거라며?”
“야, 이제 시작도 안했어. 개봉관에 걸려 있지도 않다고. 너 너무 오버하는거 아니냐?”
양준기는 최영준 대표의 항변을 무시하고 머리를 뜯으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씨발 그냥 내가 한다고 우겼어야 했는데... 어째 느낌이 이번에도 잘 될 것 같았어. 무조건 내가 한다고 했어야 했는데...”
“아직 개봉 하지도 않았다고!”
“느낌이 딱 왔다니까! 영화 잘 나온거 같단 말이야!”
최 대표는 한숨을 쉬다가 물었다.
“그럼 직접 볼래? VIP 시사회 초청 왔는데 너 한번 가볼거야?”
“내가 거길 왜 가?”
보통 VIP 시사회는 출연한 배우들과 사적으로 친한 연예인들이 주로 간다.
확실한 건 자신과 주혁이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니 자신이 가면 주혁이 이상하게 생각할게 뻔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가면 괜히 언론에 이 영화에 대한 주목도만 더해질게 분명했다.
“그럼 이번에 너랑 친한 애들중에 누구 하나 갈건데 한번 물어봐.”
“그럴까? 흐음... 누가 가지?”
준기는 핸드폰을 들고 한참동안 카톡을 하더니 말했다.
“이시은이 간다는데?”
“걔는 온데 안 끼는데가 없어. 어쨌든 가서 감상평 좀 부탁한다고 해.”
“그럴까? 흠... 아니다, 됐어, 간다고 얘기 했으니 지가 입이 근질거려서라도 말하겠지. 아, 씨. 했어야 했어. 아, 나한테 먼저 온 건데!”
최영준 대표는 다시금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는 준기를 보며 인상을 쓰다 말했다.
“내가 말했지? 너 악역하면 중국에서 인기 확 떨어져.”
“드라마도 아니고 영환데 어때. 우리나라 영화 중국에 잘 들어가지도 않잖아. 그리고 주혁이 이 새끼가 나중에 연기력이 어쩌고 캐릭터가 어쩌고 하면서 잘난척 할 걸 생각하면 아후... 진짜 이번에 이거 잘 나가기만 해봐. 다음엔 형 말 안 들을거야.”
“야, 걱정마. 이거 망해. 그리고 너 알지? 이번에 ‘진격의 카프리모’ 개봉하는거? 배급사에서 그것 때문에 스크린 못 잡아서 난리라는거 얘기 못 들었어?”
“헐... 그건 또 언제 들었대?”
“인마. 내가 다 알아봤지.”
장동훈 감독의 악질형사 때문에 쫄리고 있던건 최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이게 잘 되면 어쩌나 하면서...
그래서 아는 제작사를 통해 슬쩍 물어보니 예상치 못한 난관이 저들을 기다리고 있었던거다.
“스크린 못 잡은거 확실해?”
“아직 7백개 밖에 확보 못 했다더라. 네가 극장주면 스크린 많이 주겠냐?”
“오... 이런 희망적인 얘기는 진작에 좀 해주지!”
“아직 모르잖아. 확정난 건 아니야. 지금도 배급사에서 똥줄타게 확보하는 중이래. 그런데 뭐... 잘 될까 모르겠다.”
“그러게... 아유, 잘 되야 할 텐데.”
양준기는 마음의 짐을 털어낸 듯 풀석 소파에 몸을 누이며 게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