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57화 (57/116)

# 57

성공해야 하는 이유(1)

[130억 대작 ‘한강의 괴물’에 김우진 캐스팅 확정!]

포털사이트 연예면에 마치 도장이 찍힌 것처럼 굵은 글자로 올라간 기사는 순식간에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물론 댓글 수 역시 엄청났다.

「김우진이 또 영화를 한다고? 또 말아 먹는거 아니야?」

「오빠 괴물 나오는 영화는 좀... 그래도 파이팅!」

「아무리 봐도 괴수 영화에 김우진이라... 망한 듯」

「본격 130억 날리기 프로젝트 가동!」

김우진은 자신의 기사 댓글을 확인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 이거 잘한거 맞지?”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술집의 룸.

누가 보기라도 하면 놀라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살펴볼 만큼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들이었다.

“글쎄다, 난 대답을 못 해주겠다.”

김우진과 절친이자 동료인 양준기가 스트레이트에 담긴 양주를 마시며 답했다.

“장동훈 감독 제작사라며. 그럼 괜찮은거 아니야?”

과일 안주를 집어 먹으며 이시은이 물었다.

“제작자가 장동훈이지, 연출은 양호민 감독이잖아. 아, 맞다. 너 양호민 감독 영화로 데뷔했잖아.”

이시은은 아이돌 생활을 하다 양호민 감독의 공포영화 ‘죽음의 0교시’로 데뷔했었다.

원래부터 최고의 아이돌이었기에 공포영화의 데뷔는 일종의 연기자로 변신한다는 선언과 같았다.

이후 그녀는 미니시리즈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되고 운좋게 시청률 높은 작품에 함께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게 됐었다.

그러다 바로 얼마 전, 유병제 감독의 작품에서 무대인사를 하다 그 불상사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영화 흥행성적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을 거였다.

“그랬지. 그 감독님은 뭐랄까... 좀 무석고, 엄격하고, 칼 같고...”

“다 까다로운 것들 뿐이네?”

김우진의 인상이 확 찌그러지자 이시은이 살포시 웃음 지었다.

“오빠 연기 잘 하잖아. 난 그 때 진짜 연기 젬병이었단 말이야. 지금 생각하면 혼날 만 했지. 그리고 그 때 많이 배웠어. 양 감독님한테 그렇게 혼나면서 배우지 않았다면 다음 드라마에서 좀 힘들었을거야. 체력적으로도 힘든데 정신적으로도 고통 받았으면 아휴...”

그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니까 디렉팅 만큼은 확고하다는거지?”

“그런 편이었어. 어떻게 보면 너무 고집스러울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영화가 잘 나온다는 보장은 없잖아? 나 전에 드라마 찍을 때 꼭 그런 스타일의 감독이 연출했는데도 시청률은 개똥망으로 나왔거든. 내 생각은 이래. 스타일은 스타일일 뿐이고, 흥행은 다른 거라고.”

“그건 맞다. 괜한 거 물어 봤다.”

김우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양주를 들이켰다.

그 모습을 시은이 빤히 보다가 물었다.

“요즘 술마시는거 가지고 회사에서 뭐라고 안해?”

“하지.”

“그럼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야?”

“휴... 오늘은 술 마시겠다고 보고했다. 내가 씨... 이게 뭔 꼴인지. 군대도 아니고 하나하나 보고해야해.”

“오빠는 좀 그래야 할 필요가 있어. 내가 고 대표님이라고 해도 불안하겠다.”

“넌 꼭 이 자리에서 그 꼰대 편을 들어야겠냐?”

“편을 들만 하니까 들지.”

그렇게 둘이 투닥거리고 있을 때 양준기가 슬쩍 물어본다.

“그런데 장동훈 감독 만나봤어?”

“장 감독? 응. 한 번.”

“언제?”

“캐스팅 되고 며칠 후에 식사자리에 나왔었지. 아우, 근데 눈빛이 날카로워. 날 그냥 보는데 막 째려보는건가 착각하게 한다니까. 하여튼 눈빛이 다른 감독들하고 좀 달랐던 것 같아.”

“괜히 어깨에 뽕만 잔뜩 들어간거 아니야?”

“그건 잘 모르겠네.”

양준기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우진의 어깨를 툭 쳤다.

“어쨌든 잘 해봐라. 그거 내가 포기한거다.”

순간 우진의 표정이 아주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풀렸다.

양준기는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보지 못했지만 이시은은 순간적으로 우진의 표정이 변화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거 너한테도 갔었구나? 아니다. 사실 그거 다 돌아다녔었잖아. 너한테 안 갔으면 그게 이상했지.”

“맞아맞아. 그때 좀 생각해보고 그냥 안 한다고 했었어.”

“왜?”

“괴수물하고 나하고 안 맞는다고 영준이 형이 계속 말리더라구. 생각해보니까 그럴거 같아서 그냥 깔끔하게 포기했지.”

빙빙 돌렸지만 하고 싶은 말은 영화가 망할 것 같다는 말이었다.

“하긴, 너 원래 네가 원톱 아니면 절대 작품 않하잖아. 최영준 대표도 그렇고... 그런데 이번에 장동훈 감독 작품 주혁이가 하는데 그거 대박나면 좀 배아프겠다?”

양준기는 어깨를 으쓱하며 코웃음을 쳤다.

“난 솔직히 장동훈 감독 잘 모르겠던데? 작품 두 개 성공하고 너무 띄워주는거 아닌가? 솔직히 드라마 작가들도 두 편 연속 성공했다고 이렇게까지 오버해서 띄워주는 작가 없어.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탄 것도 아니고 천만 영화를 찍은 것도 아니잖아?”

이시은이 물었다.

“지금까지 천만 영화는 두 편 밖에 안 되는데 천만 영화까지 바라는건 너무 간 거 아니에요? 7백만 넘은 것도 사실 대단한건데...”

김영웅 감독이 있던 곳처럼 천만영화가 1~2년에 한 편씩 나왔으면 이곳 영화시장은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을 거다.

“대단하긴 하지. 그런데 지금까지 이룬거에 비해선 너무 오버들 한다는 거야. 난 그래서 이번에 주혁의 선택이 굉장한 모험이었다고 생각해.”

“그래서 넌 뭐 하기로 했는데? 계속 놀 건 아니잖아?”

“어. 송혜진 작가가 자꾸 치근덕대서... 같이 해볼까 생각중이야.”

이시은은 놀라 상체를 확 앞으로 기울였다.

“어머, 송혜진 작가? 대박이네? 몇 년만에 작품 하는거야?”

“3년만이었나? 나랑 꼭 하고 싶다고 영준이 형한테 직접 전화했더라고. 그래서 뭐... 생각해본다고 했지.”

김우진은 피식 웃었다.

연락이 왔다면 분명 두 말할 것도 없이 하겠다고 했을거다.

그 자존심 강한 송혜진 작가가 생각해본다는 따위의 말을 듣고서 다시 연락할 사람이 아닌건 여기 누구보다 최영준 대표가 가장 잘 알 테니까.

“오올~ 대단한데? 오빠 그럼 이번에 시청률 20% 넘는거 아니야?”

“그럼 다시 중국가서 황사머니 쏘옥~ 빼먹고 오는거지. 하하하! 아, 마셔! 오늘은 내가 쏠게. 술이 좀 약한가? 야! 웨이터!”

양준기가 호탕하게 웃으며 비싼술을 더 시키려는 걸 보면서 김우진은 남몰래 전의를 다졌다.

어떡해서든 이번 영화가 잘 돼서 저놈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줘야겠다고 말이다.

*

[꺄약! 저 합격했어욧! 감독님 감사합니다. 진짜 열심히 해서 좋은 연기로 보답하겠습니당~! 헤헤 ^.^v]

동훈은 은정의 문자를 보곤 피식 웃었다.

요새 은정이 오디션을 보기 전까지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 연기학원에서 배운 연기를 동영상으로 보내주는 열성을 보여주며 어필했기에 어지간하면 합격될 줄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 오디션에 낡은 체육복과 어디서 얻어왔는지 국제경기용 활과 화살을 들고 나타나서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들었었기에 탈락을 했다면 아마 그게 더 이변이었을거다.

가지고 있는 미모가 상당함에도 이렇게 노력하는 친구니 분명 나중에 큰 스타가 될게 틀림 없어 그저 보고만 있어도 뿌듯한데 이렇게 계속 연락해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뭔데 그렇게 실실 웃고 계세요? 야동이라도 왔어요?”

명진이 묻자 동훈은 들고 있던 보드판으로 그의 머리를 탕 때렸다.

“아!”

“요새 아주 편하지? 다른 감독들처럼 갈궈줘?”

“헤헤... 편하긴요. 아주 죽겠습니다.”

“네가 인마, 다른 감독 밑에서 개처럼 굴러보지 않아서 그래. 나니까 이렇게 쉽게쉽게 일하게 해주지.”

명진이는 감독으로 에로영화 감독으로 입봉하고 난 뒤에 계속 그쪽에서 감독으로만 일해왔었기에 상업영화 조감독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지 모를거다.

말로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겠지만 그게 어디 체감이 되던가?

군대가기 전에는 얼마나 힘들지 수십, 수백번을 들고 마음의 준비를 하지만 막상 경험해보면 듣던 거와는 천양지차로 다르다는걸 경험하고는 한다.

마찬가지로 주변 스태프들이 다른 조감독에 비해 얼마나 쉽게 일하고 있는지 알려줘도 명진이는 아마 체감하고 있지 못하고 있을게 틀림없다.

“그저 감사할... 어? 무슨 차지?”

명진이 저 멀리 세트장 밖, 주차장으로 유유히 들어오는 세단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전문 영화 세트장에서 촬영하는 것이기에 현장에 볼일이 없는 사람이면 결코 이곳에 올 사람이 없었다.

동훈도 저 멀리 주차장으로 고개를 돌려 살피니 회색 세단에서 커다란 덩치를 지닌 남자 하나와 반대로 아주 조그마한 체격의 중년여성이 내려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

중년 여성은 누군지 몰라도 저 덩치큰 남자는 누군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최고의 한류스타 기대주인 이강호가 분명했는데 어째 다가오는 폼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중년 여성의 눈치를 보며 주춤주춤 걸어오고 있었다.

“누군지 아세요?”

“강호네. 내가 전에 말했지?”

“아... 대본리딩 때 왔던 친구요? 그런데 여기 어떻게 알고 왔지?”

이때 연출부 막내인 지수가 지나가다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침에 전화온게 있었는데요... 현장 주소를 좀 알고 싶다고...”

“그래서 알려줬어?”

“감독님하고 아시는 사이시라고 하셔서...”

“야, 넌 누군지 확인도 안하고 막 알려주냐?”

명진이 화를 내려 하자 동훈이 말렸다.

“아니야. 됐어. 강호 어머니 같은데... 잘 알려줬어. 볼일 봐.”

“알겠습니다.”

지수가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듯 사라지고 난 뒤 조금 있다가 중년 여인이 기세등등한 발걸음으로 현장에 들어섰다.

“여기 장동훈 감독이라고 있죠? 누구죠?”

동훈은 속으로 참 목소리도 크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더 크게 말한것일지도 몰랐다.

“누구신지...”

스탭 중 하나가 신분을 물어보려 할 때 동훈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강호는 다가오는 동훈을 보며 민망한 얼굴로 얼른 고개를 숙였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제가 장동훈입니다. 가서 일 보세요. 강호 왔구나. 이분은...”

동훈이 미쳐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 여인은 동훈의 위 아래를 훑고는 고개를 홱 치켜들었다.

“나 우리 강호 엄마에요.”

“안녕하세요. 그런데 여긴 어쩐일로...”

그녀는 다짜고자 검지를 치켜 세우고 하늘을 향해 찔러대며 말했다.

“우리 강호한테 헛바람을 잔뜩 넣어셨던데 왜 그랬어요?”

“아... 뭔가 오해가 있으셨나봐요.”

“오해라니! 오해라니! 얘가 하던 공부는 안 하고 살을 뺀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강호 어머니가 화를 내는데 강호가 그녀를 말리며 말했다.

“엄마, 나 원래 공부 안 했잖아. 성적도 원래 안 좋았는데 무슨 소리야.”

“원래 안 좋긴! 네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서 그런거지. 제일 중요한 시긴데 온통 헛바람만 들어와가지고 말이야!”

그녀는 다시 동훈에게 고개를 홱 돌리곤 말을 이었다.

“그리고 뭐, 감독? 허... 이봐요. 어딜봐서 얘가 배우를 할 얼굴이야? 당신 감독 맞아?”

그녀는 강호의 턱을 쥐고 흔들며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볼살이 푸들푸들 흔들리는 지금의 모습만 보고 있자면 그녀의 말은 너무도 설득력이 있어서 차마 반박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때, 구세주가 등장했다.

“감독님. 무슨 일 있어요?”

남자가 봐도 홀려버릴 듯 잘생긴 외모의 주혁은 정말 배우는 이래야 배우구나 할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런 주혁이 나타나니 강호의 어머니는 순간 입을 열지 못하고 동훈과 주혁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동훈에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여기 이 사람 주혁 맞아요?”

“네.”

“어머, 왠일이야...”

그녀는 열여섯 소녀가 된 듯 두 손을 꼬옥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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