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55화 (55/116)

# 55

DH미디어의 원투 펀치(4)

동훈을 다시 앉힌 고은숙 대표는 다짐하듯 물었다.

“감독님, 이거 기회가 확실하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맞습니다. 괜히 농담으로 하는 말 아니에요. 이거 기회 맞습니다. 단, 아시겠지만 한국영화는 세계로 진출하기 힘들어서 한류스타라고 해도 큰 덕을 보긴 힘듭니다.”

“그건 어차피 드라마 찍으면서 충분히 덕 보고 있어요. 우리한테 필요한 건 흥행 영화배우라는 타이틀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영화배우 안해도 톱스타들은 먹고 사는데 큰 지장 없어요. 하지만 아시잖아요? 배우들은 영화배우를 놓고 살 수 없으니까... 흥행 영화배우 타이틀은 그들에게 자부심이 될 수 있고... 하여간 우린 놓칠 수 없어요.”

그녀 좋자고 붙잡은게 아니라 배우들을 위해 잡았다는 말이다.

물론 배우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이후 계약 연장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지만 일단 돈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말이다.

“누구를 생각하시는데요?”

지상파나 케이블 메인시간대 드라마 주연을 톱스타라고 통칭하기는 해도 급이 나뉘어져 있음은 분명하다.

같은 미니시리즈 주연이라고 해도 회당 출연료가 천만 원대부터 억대가 넘어가니 말이다.

동훈으로써는 고은숙 대표가 마음에 두고 있는 배우가 누구인지가 가장 중요했다.

“우진이요. 김우진.”

몇 년 전에 혜성처럼 떠오른 하이틴 스타이자 최고의 한류스타 중 하나인 김우진은 동훈도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배우다.

지금껏 로맨틱 코미디를 주로 해왔고 얼마 전에 규모가 상당한 사극 영화에 출연하긴 했지만 그 역시 여주와의 로맨스가 주된 캐릭터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정극연기를 보여준 적 없는 배우가 김우진인데 이 배역에 김우진을 염두해두고 있었을 줄이야...

“혹시 물어 보셨어요? 시나리오는 보여 주셨고...?”

“그럼 장동훈 감독님 회사에서 만드는 건데 설마 시나리오도 안 보내주고 거절을 했겠어요? 물론 걔가 제대로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황당하긴 했지만, 이해가 안 가는건 아니었다.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갈 수는 있어도 마시는 건 말의 마음 아니겠는가?

“그럼 대표님이 강권하신다고 무조건 되는게 아니잖아요?”

“감독님, 되는 작품이라고 확신이 들면 캐스팅이 되게 만들어야죠, 의논을 하는건 언제나 시간 여유가 있고 상대방과 대화가 통할때나 하는 거예요.”

“어째 김우진 씨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리네요.”

고 대표는 똥 씹은 듯 한 얼굴로 말했다.

“대화가 안 통하는 배우가 어디 우진이 하나 뿐이겠어요? 신인은 신인이라 말이 안 통하고, 스타는 스타라 말이 안 통해요.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게 없어요. 사실 우진이가 전에 영화를 찍을때도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난 개인적으로 말렸는데...”

“왜 말렸습니까?”

“드라마만 해도 충분히 좋은데 영화를 굳이 손 댈 필요가 있나 싶었으니까요. 게다가 그 영화가 흥행을 할지 확신하지도 못했고... 그런데 조금 있다가 올 그 양반이 이번 영화는 무조건 된다면서 애 허파에 바람 잔뜩 집어넣어 놨는데 막상 언론시사회 날에 딱 보니까 우진이 보기에도 너무 아닌 거예요.”

“아...”

그런 경우가 상당히 많다.

배우는 촬영할 때 감독의 디렉팅대로 연기를 하지만 이게 어떤 그림으로 나올지 확신하지 못한다.

특히 CG가 필요한 장면이라 블루스크린 앞에서 허공에 대고 연기를 할 때면 감조차 잡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막상 처음 영화를 볼 때 극장에 돈내고 온 관객보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관람을 하게 되는데 자신이 생각했던 영화가 아닌 경우가 종종 있어 놀람을 넘어 충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때부터 애가 완전히 틀어져서 무대인사 나가는 스케줄 펑크내고 잠수타고 사라져서 찾지도 못하고... 내가 그때 너무 속상해서 걔 다시는 안 볼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화가 난다고 어른인 내가 계속 화만 낼 수는 없잖아요.”

“그럼요.”

“그래서 결국 용서하고 넘어갔어요. 지도 잘못한 건 아는지 그래도 한국 들어와서 그 이후로 사고 안치고 드라마 하나 했는데 그게 또 성적이 신통치가 않아서... 요새 계속 어깨가 축 쳐져 있는게...”

그때 밖에서 누가 문을 똑똑 두드린다.

“대표님, 들어가도 될까요?”

“어, 들어와.”

고 대표의 눈치를 보며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동훈을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박대진 상무입니다.”

“장동훈입니다. 토요일인데도 회사에 계셨군요.”

“대표님이 회사에 나오는데 제가 집에서 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면서도 고 대표의 눈치를 힐끗 살핀다.

“왔어? 그만 앉고, 여기 장동훈 감독님이 양호민 감독 작품 그거... 왜 괴물 나오는거 있잖아?”

“한강의 몬스터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거. 그거 때문에 오셨어. 우진이가 그거 제대로 읽었어?”

박대진 상무는 잠시 동훈의 얼굴을 스치듯 바라보다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게... 완전히 다 읽고 분석한 다음에 결론을 내려준건지 아니면 대충 읽고 집어... 아니, 잘 읽지 않고 거부한 건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걸 정확히 알 도리도 없구요.”

“그렇긴 해. 우리가 우진이 엄마, 아빠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

“아마 엄마, 아빠도 모를 겁니다.”

“그러니까 박 상무 느낌을 물어본 거야. 어때 보였냐고.”

박 상무는 떨떠름한 얼굴로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껏 우진이가 시나리오를 보면서 심도있게 분석한 적은 한 번도 없었죠. 작품보는 눈이 우리 회사 내에서 가장 떨어지지 않습니까. 직원까지 통틀어서요.”

“그렇긴 하지. 귀도 얇아서 이게 좋다고 하면 좋은가보다 했다가 또 저게 좋다고 하면 저게 좋은가 했다가... 걔가 만약 이진혁처럼 말도 많고 아는척 심했으면 생각만 해도 골이 지끈거린다.”

고 대표는 이마를 짚고 고개를 흔들더니 동훈에게 말했다.

“들었죠? 상황이 이렇긴 해요. 그래서 우진이 설득하는게 아주 안 되는 것만은 아닌거죠.”

이 말을 듣고 있던 박 상무가 끼어들었다.

“어? 누... 아니, 대표님. 우진이를 그 영화에 캐스팅 시키시려고 마음 먹으신 겁니까?”

“잠깐 기다려봐.”

고 대표는 박 상무의 말을 막고 동훈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정말 이 작품 잘 될 수 있는거 확실한 거죠?”

“네. 잘 될 겁니다. 확실해요.”

국내 영화시장이 헐리우드 영화와 애니메이션 때문에 상당히 위축된 상태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CG에 대한 기술력 만큼은 알아주는 수준이다.

또한 애니메이션이 인기가 많은 만큼 헐리우드산 괴물영화에 대한 선호도 역시 굉장히 높았다.

이런 환경에 선보이는 한강의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과 괴물류를 즐기는 관객들에게 상당한 어필을 할 것임이 분명했다.

“어느 정도나 잘 될 거라고 보시는데요?”

“흠... 이거 제작비가 대략 110억 정도 보고 있는데요. 최소 세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 배요? 가만있어 봐, 계산 좀 해보자.”

그녀는 혼자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더니 땡그래진 눈으로 놀라 말했다.

“최소 7백에서 8백만 이상을 본다는 얘기네요?”

“네. 그 정도는 나올거라고 봅니다.”

사실 어느 정도는 희망사항이 담긴 이야기다.

다만 이렇게 자신감 있게 얘기하지 않으면 고 대표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 같아 어느 정도 연기를 더했다.

뭐, 김영웅 감독이 있던 곳에서 천만도 넘은 영화인데 안 될 것 없다는 생각도 한 몫 했다.

“들었지?”

고 대표의 물음에 박 상무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서 우진이 설득시켜봐. 혼자 힘들 것 같으면 데리고 나오고.”

“대표님께서 찾는다고 하면 도망치지 않을까요?”

“도망치면 다리 몽둥이 분질러 버릴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해.”

서슬 퍼런 고 대표의 기세에 박 상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가 확~실히 우진이 마음을 잡고 오겠습니다.”

“믿어.”

그렇게 박 상무가 대표실을 나가자 고 대표가 등받이에 푹 기대며 말했다.

“난 몰라, 이제... 감독님만 믿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연출하는 것도 아닌데 정말 이거 확실히 되는거 맞아요?”

“양호민 감독이 지금까지 공포영화만 인정 받았지만 앞으로는 아닐 겁니다.”

“후... 그랬으면 좋겠네요.”

*

띵동! 띵동!

박대진 상무는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반응도 없는 문을 보며 짜증스럽게 문을 쾅쾅! 두들겼다.

“김우진! 김우진!”

조금 있다 문이 벌컥 열렸다.

부스스한 머리에 술냄새가 확 끼치는게 분명 새벽까지 술마시다 계속 자고 있었던게 분명했다.

“상무님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아, 자고 있었는데...”

“잠깐 들어가자.”

우진은 기겁하며 박 상무를 막았다.

“갑자기 왜 이래요? 나가서 얘기해요, 나가서...”

“안에 여자 있냐?”

“무슨 여자가 있다고 그래...?”

“시끄러. 너 대표님이 한번만 더 여자 사고치면 거시기 짤라버린다는 말 잊었어?”

“아니 대표님은 무슨 농담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시나 몰라. 여튼 기다려요. 씻고 나갈테니까.”

“시끄러. 비켜.”

고은숙 대표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얌전하던 박대진 상무는 사람이 바뀐 것처럼 무서운 얼굴로 우진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상무님! 아, 형!”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서니 방안은 온통 빈 양주병과 먹다남은 안주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도망간 건 아니지?”

“도망갈데가 어디에 있어.”

“다행이네. 너 연애하는거 가지고 뭐라 하는거 아니야. 여자를 만날거면 정상적으로 연애해. 여자 불러다가 놀고 그지랄한거 나중에 기사라도 터지면 그때는 너 죽고 나도 죽는거야. 알지?”

“상무님, 나 진짜 안 그래요. 그때 딱 한 번 그랬던 거라니까. 딱 한 번.”

“믿는다.”

박 상무는 우진에게 경고하며 지저분한 소파를 치우고 앉았다.

“그런데 토요일에 갑자기 왜 오셨어요?”

“너 양호민 감독 트리트먼트 다 읽었냐?”

“내가 싫다고 했잖아요, 그거.”

“다시 한 번...”

“아, 싫어요! 안해.”

사생활은 몰라도 일단 작품에 관련된 일은 어거지로 강요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특히 김우진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잘 설득해야 하는 거다.

“그거 장동훈 감독이 만든 제작사에서 하는거 알지?”

“상무님은 내가 장동훈 감독 좋아할거라고 생각해서 그런말 하는거예요?”

김우진이 출연한 영화 ‘역적’을 밟아버린 작품이 ‘6급 공무원’ 아니었던가.

아무래도 그 앙금이 아직까지 남아있나보다.

“그만큼 능력 있다고 볼 수 있잖아.”

“능력은 있는거 인정. 그런데 재수 없어. 그냥 같이 하기 싫어요.”

“오늘 장동훈 감독이 회사 찾아왔었어.”

“왜요?”

“배우 때문이지 다른게 있겠어?”

“흥, 그래서? 나 꽂아달래요?”

우진은 비릿하게 웃으면서도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그 모습에 박 상무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를 콕 찝은건 아니었고... 대표님이 널 추천했지.”

“날? 내가 장동훈 감독 싫어하는거 모르지 않을텐데?”

“장동훈 감독이 관객수를 걸고 무조건 그 이상 흥행시킨다고 장담했거든.”

“얼마나?”

“8백만.”

“흥...”

박 상무의 대답에 우진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박 상무는 우진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눈치챘다.

“말도 안 돼. 8백만이 애 이름인가...”

“나도 설마 그 정도까지 나올까 의심이 되긴 해.”

“그렇죠?”

“솔직히 내가 너한테 역적 추천하고 잘 안되서 더 이상 작품을 강권할 입장이 아니긴 한데... 이번에 장동훈 감독 7백만 넘겼잖아. 두편 연속으로 성공시켰고... 너 이번에 안 한다고 했다가 만약 진짜로 8백만 넘기면 졸라 배아프지 않겠냐?”

우진은 더는 웃지 못하고 슬그머니 박 상무에게 시선을 돌렸다.

“확실해? 진짜 8백만 넘을 수 있대?”

“본인 입으로는 장담을 했어. 그런데 너 그 트리트먼트 제대로 보기는 한 거야?”

“아, 당연히 봤죠.”

“정말 제대로 잘 읽어 봤어?”

“읽어 봤다니까... 아주 자세히는 아니고... 그게 어디 있더라.”

우진은 박 상무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엉덩이를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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