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DH미디어의 원투 펀치(2)
[장동훈 감독의 인터뷰 때문에 영화계와 애니메이션계에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우선 장동훈 감독의 발언 때문에 영화계와 애니메이션계가 많이 시끄러워진 것 같다. 하지만 난 그 시끄러움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작품을 만든 후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우리 배우들이지만 가장 고생하는건 스태프다. 그런 스태프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건 당연하며 지금 이렇게 논란이 된다는건 그만큼 모두가 스태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거다. 나 역시 장동훈 감독의 발언에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
[전적으로 장동훈 감독의 발언에 동의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개인적으로 장동훈 감독을 어떻게 생각하나?]
[천재라고 생각한다. 장동훈 감독과 촬영을 할 때는 불필요한 컷을 찍은 적이 없다. 모든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있으며 그 가운데 내가 최선의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특히...]
내용이 좋긴 한데 당사자인 동훈이 봤을 때 민망할 정도로 칭찬이 가득해서 더 읽지 못하고 핸드폰을 다시 명진이에게 돌려줬다.
“이현재 씨가 굳이 이렇게 인터뷰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아래 댓글 안 보셨죠? 네티즌들이 열받아서 영화계나 애니메이션계 힘 있는 사람들을 성토하는 댓글들을 주르륵...”
“됐다. 나 감독님하고 얘기하니까 일하고 있어.”
“옙! 알겠습니다.”
명진은 머쓱하게 인사하곤 문을 닫고 사라졌다.
“일이 곤란하게 된 줄 알았는데 잘됐네. 나도 마음이 놓여.”
“걱정하셨습니까?”
동훈이 웃으며 물어보니 그 역시 멋쩍게 쓴웃음을 지었다.
“제작사 대표가 욕먹는데 감독이 걱정스럽지 않으면 거짓말이지. 다음에 투자도 못 받는거 아닌가 솔직히 좀 쫄았다.”
바늘에 찔려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표정을 달고 사는 사람이 양호민 감독인데 그런 그가 쫄렸다고 하니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크크큭... 감독님이 쫄았다고 하니까 진짜 웃기네요.”
“감독 입장에서 작품 엎어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군대가는 꿈보다 작품 엎어지는 꿈이 더 소름끼쳐.”
“맞는 것 같습니다. 작품이 엎어진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죠. 어쨌든 오늘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밖에 추운데...”
양호민 감독은 아직도 차를 끌고 다니지 않는다.
공포영화 감독이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냥 스스로의 강박증인건지 운전을 하면 이상하게 사고를 낼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로케이션 헌팅을 할 때처럼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직원이 딸린 회사차로 같이 움직였고 지금처럼 가까운 거리는 항상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하곤 했다.
“이 정도로 춥긴... 내가 강원도 폐가에서 촬영할 때랑 비교하면 그냥 선선한 거야. 하여간 네가 고생이 많았다. 메일로 각본 보내주는거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
LS엔터테인먼트 제작기획실.
유병세 감독은 다리를 달달 떨며 긴장된 얼굴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 뜯으며 밖을 힐끔거렸다.
그때, 딸깍하는 문소리와 함께 서른도 안 돼 보이는 젊은 청년이 밝은 미소와 함께 들어섰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야. 괜찮아, 윤 대리.”
윤 대리라고 불리는 청년은 씨익 웃더니 가지고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
“만드느라 고생하셨어요. 아주 재밌더라구요.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로맨스, 크~ 좋다. 내가 막 연예를 하고 싶더라니까요.”
“반응은 괜찮았어?”
“아유, 말도 마세요. 다들 이번 각본이 상당히 재밌다고 난리에요. 성질 더럽던 남주가 여주를 만나서 변화하는 과정이 너무 웃기고 재밌다고...”
유병세 감독은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는 윤 대리의 말을 끊었다.
“아니아니... 결과가 잘 나왔냐고. 응? 내가 궁금한건 감상이 아니라 제작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정이 났느냐는거야.”
초조함에 성질이 올라온 유 감독이었지만 억지로 화를 내리눌렀다.
윤 대리는 지금 그에게 있어서 갑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갑인 그의 회사를 대리해 앉아있는 것이었지만.
윤 대리는 유병세 감독의 심경을 이해하는 건지 아니면 모른척하는 건지 알 수 없게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리가 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유병세 감독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것 같았다.
“결정이 안 났다는거네?”
윤 대리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고 했지만 그런 미사여구는 그저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 뜬구름 잡는 소리일뿐이다.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으면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줬을거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제작을 하기 애매하다는 거였다.
“결정의 과정에서 많은 참고사항을 고려하고 있을 뿐입니다. 영화 하나 만드는게 한 두푼 들어가는 일이 아니잖아요.”
“시나리오 검토했고 트리트먼트 보완한거 다시 검토했고 이번에 각본까지 줬는데 또 참고사항을 고려하고 있다고?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안 했잖아?”
유병세 감독의 짜증이 윤 대리의 성질을 건드렸는지 웃는 얼굴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전 작품인 ‘왕의 눈물’이 잘 안 됐잖습니까.”
무덤덤하게 내뱉은 윤 대리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맞다. 전작인 ‘왕의 눈물’은 제작비의 절반도 채 건지지 못하고 망해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시은의 매니저 죽빵을 후려갈기며 손해본 제작비를 토해내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 모든 잘못이 오로지 이시은 매니저에게 있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영화가 정말 재밌었다면 그 논란을 모두 딛고 영화는 성공했을테니까.
최소한 손익분기점이라도 넘었을게 분명했다.
윤 대리는 눈동자도 잘 보이지 않게 다시 눈웃음을 지으며 계속 유병세 감독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시은 매니저가 그렇게 했을땐 저희도 정말 난감했지만 그래도 잘 이겨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논란이야 좀 있겠지만 영화 자체가 문제가 있었던게 아니었고 스크린을 많이 확보했으니 입소문만 조금 타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후에 어떻게 됐습니까?”
“...”
유 감독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예매율은 갈수록 줄어드니 극장주들은 스크린 수를 줄여버렸죠. 입소문이라도 탔다면 예매율이 올라서 줄어든 스크린 수를 다시 회복해갔을텐데 바람빠진 풍선처럼 힘이 푹 빠져서 회복할 기미를 안 보이니까 결국 극장에 한 달도 못 걸리고 바로 IPTV 시장으로 빠진 거잖아요. 뭐, 좋아. 그건 초반에 재수없게 똥물에 튀어서 그럴수도 있다고 쳤습니다. 위에서는요.”
윤 대리는 검지를 위로 향하게 세웠다.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위에서는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건데 말투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그 결정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VOD에서도 수익이 별로 안 나왔어요. 그거라도 좀 나오면 영화에서 손해본거 좀 만회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감독님, 왕의 눈물로 손해본 금액이 20억이 넘습니다. 20억이요.”
“그건 내가 미안하게 생각하는데...”
“누가 감독님 돈 20억 날려버리면서 미안하다고 하면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내가 용서할게요.’ 하면서 용서가 되던가요? 20억이란 돈이 그런 무게밖에 안 될까요?”
“내가 다음 작품으로 만회할 수 있게 도와주면...”
막 변명하려는 차에 윤 대리는 언제 비난했느냐는 듯 다시 사람좋은 얼굴로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그럼요. 뭐, 이번에 처음으로 실수하신건데 저희도 그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하하하!”
‘이 개새끼가 사람을 놀리나...’
유병세 감독은 탁자 밑으로 주먹이 부들부들 떨면서도 윤 대리가 웃음을 멈출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로서도 이전과 다르게 심도있게 다방면으로 확인 과정을 과정을 거치는건 너무 당연한 과정이라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네요. 그래도 다들 작품이 참 좋은 것 같다고 좋아합니다. 저도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하하하!”
“아... 그래.”
“그리고 그거 보셨죠?”
“응? 뭐?”
“장동훈 감독이 영화 프로그램 나와서 헛소리 한 거 말이에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찍찍 싸던데 요즘 그것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파요.”
유병세 감독은 솔직히 장동훈 감독을 미워하지만 그의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대한민국 영화계가 감독에 대한 대우가 안 좋은건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바였다.
감독에 대한 대우가 제일 쓰레기인 일본이 잘 나가다가 망한 이유가 그것인데 한국은 일본에 비해서 조금 나은 정도가 아닌가?
스태프에 대한 대우를 좋게 해주겠다는 건 현실을 모르는 얘기지만 감독에 대한 대우를 좋게 해줘야 좋은 작품에 나올수 있다는 말에는 공감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걸 드러낼만큼 멍청하지는 않다.
“으응, 그래? 좀 이해가 안 되는 소리를 한 건 봤는데...”
“우리가 강진주 감독의 ‘파도 속으로’ 준비하고 있는거 아시죠?”
“알지. 강진주 감독이 굉장히 야심차게 준비한 걸로 알고 있는데.”
여성 감독인 강진주 감독은 ‘소소하면서도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영화관이 뚜렸한 색채를 지니고 있는 감독이었다.
안타깝게도 흥행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종종 해외영화제에 출품하는 경우가 많아 제작사에서도 꽤 많이 만들어주는 감독중에 하나였다.
“지금 스탭들 계약하다가 전부 보류 됐어요.”
“왜?”
“지들도 표준계약서인지 나발인지 해달라고 어거지를 부리더라니까요? 지랄들 하고 있네 진짜... 마음 같아서는 애니메이션만 제작하고 생까버리고 싶은데 위에서 하도 지랄해서 어쩔 수 없이 도와주는 셈치고 계약해주니까 아주 그냥 제작사가 호구로 보이나 봐. 이걸 바로 ‘물에 빠진 놈 구해줬더니 보따리 달라는 심보’라고 하는거 아닙니까?”
“그렇지, 그렇지.”
“지금 이것 때문에 아주 곤란해요. 그리고 이것 때문에 감독님이 주신 시나리오, 감독님은 제작비 60억 잡으셨던데 표준계약서 적용해서 스탭들 고용하면 최소 70억 이상 들어요.”
“10억이나 올라간다고?”
조금은 오를거라 생각했지만 10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아유, 감독님이 뭘 모르시네. 임금만 더 주고 끝내는게 아니에요. 일주일에 근로시간을 명확하게 기재해야 한다니까? 그럼 석달에 끝나는 촬영을 넉달이 넘게 끌고 갈 수도 있어요. 말 그대로 최소 10억 더 잡은거지 20억이 될수도 있고 30억이 될수도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독님 작품을 덥썩 하겠다고 계약합니까. 특히나 감독님은 컷 많이 찍기로 유명하잖아요. 뉴스도 안 보시나.”
“그런 문제가 있었나.”
장동훈 감독이 재수없기는 했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아주 잘못된 발언이었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조금 기다리세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시나리오는 좋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후... 그래, 알겠어.”
유병세 감독이 허탈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윤 대리도 따라서 일어났다.
“점심이라도 같이 하실래요?”
“아니야, 괜찮아. 윤 대리 맛있게 먹어.”
그는 윤 대리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는 힘없이 회의실을 나갔다.
그런 그를 잠시 뒤돌아본 윤 대리는 문이 닫히자 조용히 중얼거렸다.
“윤 대리, 윤 대리, 지껄이고 있네. 내가 지랑 친군가, 쉬벌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