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DH미디어의 원투 펀치(1)
유명진 조감독은 동훈 앞에서 핸드폰을 보며 기사 타이틀을 읊조렸다.
“‘장동훈 감독, 실무를 전혀 모르는 어린아이 동화책 읽는 소리’ 이건 장명일보였구요. ‘현실을 모르는 망상, 시장을 죽인다’ 요건 태원일보. ‘흥행감독이라고 모든 걸 아는게 아니다, 그의 꿈은 오히려 많은 스태프의 희망을 앗아갈 것’ 요건 영화세상 박만규 대표 인터뷰.”
“더 있냐?”
“사실 영화쪽보다 애니메이션 쪽 반응이 더 안 좋아요. ‘애니메이션 한류에 찬물을 끼얹는 장동훈 감독’ 요건 주간스포츠, ‘아마 애니메이션과는 상관없는 말을 한 것일 듯’ 요건 송현목 애니메이션 감독의 트윗이에요. 이분 되게 유명하신데... 애니메이션은 대게 트윗쪽에서 반응이 극렬해요. ‘다 죽으라는 말을 졸라 좋은말로 포장해놨네’ 요건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제이아웃의 정대철 대표가 트윗으로 한 말이네요. 이 새끼 말 기분나쁘게 하네.”
“너 지금 나 놀리는 것 같다?”
“놀리긴요? 난 걱정되서 그러는 거예요.”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데?”
“기분 탓이겠죠.”
“크흠... 됐고, 내일 현장 준비는 다 끝냈지?”
“그럼요. 유 팀장님이 잘 챙겨 주셨지만 그래도 제가 장비 하나하나 다 점검 끝냈고 현장 대여 문제 다시 확인 끝냈습니다.”
“주차장은?”
“주변에 공용주차장 위치 알아놨구요. 트럭 허용 가능하다는거 확인했습니다. 종일권으로 구매하면 조금 싸게 가능할 것 같아요.”
“배우들 콜타임에 늦지 않게 관리 잘하고. 촬영 첫날이라고 방심하지 마. 원래 지각하는 배우들은 첫날이나 마지막날이나 계속 지각하니까.”
“네. 바짝 조이겠습니다.”
“말은... 그래, 그럼 너만 믿는다.”
동훈은 명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사무실 한 켠에 마련된 회의실로 들어갔다.
원래 전 회사에서 사장실로 쓰던 곳이었는데 회의실 또는 손님 접대용 응접실로 만들었다.
“오셨어요?”
“어. 내일 촬영이라 바쁘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양호민 감독이었다.
이제는 감독만이 아니라 제작사 대표이기도 했기에 양호민 감독의 작품도 차질없이 진행시켜야 했다.
“저보다 명진이가 더 바쁘죠. 저야 이래라저래라 시키기만 하는데.”
“그걸 잘 시켜야 좋은 감독인거지. 시키는데로 잘 해주면 좋은 조감독인거고. 그런데 참 이상하네. 사실 난 네가 6급 공무원으로 입봉했을 때 처음 알았거든.”
“하하, 그러셨어요?”
“그래, 보통 싹수가 보이는 조감독은 내가 기억해둔단 말이야. 그럼 몇 년 지나서 꼭 인상적인 작품으로 입봉을 해. 작품성이 인상적이든 흥행이 인상적이든... 아 그런데 넌 기억속에 없었단 말이야. 그렇다는건 조감독 시절에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다는건데 참 신기해.”
양 감독의 말이 비난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정말 신기해서 하는 말임을 아는 까닭에 동훈은 빙그레 웃음 지었다.
“저도 신기하긴 합니다. 조감독 시절에는 연출에 자신감도 없었고 현장을 이렇게 잘 통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막상 감독이 되니까 달라지더라구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건가? 신기하네?”
아무리 좋은 플롯과 대사를 알고 있다고 해도 막상 촬영장에서 배우들과 스탭들을 컨트롤 할 수 없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배우들과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수십명의 스탭들의 눈이 집중된 가운데 정확한 디렉팅을 내리고 현장을 통솔한다는건 김영웅 감독의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거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감독에 재능이 있었나봐요.”
“재능 없이 감독 할 수 있나? 노력으로 안 되는게 예술인데.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고 인맥과 학벌만으로 올라가야 했으면 난 죽어도 너한테 작품 좀 만들게 해달라고 안 했을거야.”
한 마디로 동훈의 재능을 인정했다는 말을 빙빙 돌려서 한 거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그럼 이제 쓸데없는 말은 치우고 일 얘기 하자. 너 악질형사 들어가면 이제 정신 없잖아. 그래서 일단 제작기획서는 나랑 유 팀장이랑 같이 짜볼게.”
“유 팀장한테 다 맡기지 않으시구요?”
“유 팀장도 정신 없더라. 현장에서 촬영하는 것만 일이겠어? 제작비 수십억짜리 일정 펑크 안 내려면 얼마나 바쁘겠냐?”
“그렇죠.”
“그래서 나도 좀 도와야지. 내 작품인데. 그래서 스탭은 내가 알아서 맞춰볼게. 촬영, 조명이랑 그 밖에 필요한 스탭들 거의 다. 그리고 어제 뉴스 봤다. 표준근로계약서 쓴다고?”
“네.”
양호민 감독은 깊은 숨을 내쉬고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있잖아. 네가 하는 생각은 나도 동의해. 유 팀장한테 들어보니까 감독 러닝게런티도 2%나 준다면서? 솔직히 그 얘기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회사가 커지면 더 올릴 생각이에요.”
“아유 그럼 좋지. 좋은데... 제작비가 엄청나게 튀어 오른다. 그거 알고 인터뷰 한거지?”
“그럼요.”
“그럼 이거 90억에 안 돼. 내가 지금 이거 대략 75회에서 80회차 정도로 생각하는데 보통 촬영 들어가면 90회차 넘어가. 100회차도 넘을때도 있다고. 표준근로계약서에 맞추면 제작비가 최소 120억이 넘어갈건데 감당할 수 있겠어?”
“어렵겠지만 더 많은 관객이 올 수 있게 만들어야죠.”
“하... 알겠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긍정적으로 생각을 한번 바꿔 봐야겠다. 사실 네 말이 다 맞아. 그렇게 하는게 맞는 거지. 근데 무섭잖아. 수십억이 왔다갔다 하는데... 하여튼 뭐 그래보자.”
“네. 투자는 제가 책임지고 따낼게요.”
양호민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럼 각본은 어쩔건지 생각해놨나?”
“네. 어느 정도는...”
“그래, 함 들어보자.”
동훈은 미리 준비했던 새로운 트리트먼트를 꺼내 회의용 테이블에 올렸다.
오늘 양 감독과의 미팅 때문에 일주일 내내 퇴근하면 자기 전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이것에 매달렸다.
아예 봉준명 감독의 괴물을 그대로 가져갈거라면 쉬웠을텐데 이미 양호민 감독이 만들어놨던 틀에 괴물의 좋았던 부분을 도입하는 과정은 머리에 쥐를 나게 할 정도로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한번 겪고 나니 새로운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김영웅 감독이 있었던 곳의 흥행영화들도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고 아쉬웠던 부분을 조금 고친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던 거다.
아직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이제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김영웅 감독이 있었던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될 날이 아주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일단 보시고 말씀을 해주세요. 제가 말로 꺼내는 것보다 직접 보시고 말씀하시는게 더 나을 것 같아요.”
“그렇겠지?”
양호민 감독은 조금은 미심쩍은, 그리고 조금은 기대어린 눈빛으로 새 트리트먼트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글자 하나하나를 씹어먹을 것처럼 천천히 읽는 그는 자신의 펜을 꺼내 줄도 긋고 이해가 안 되는 자신만의 표시도 했다.
그가 트리트먼트를 다 읽고 내려놓았을 땐 빳빳했던 종이가 구겨지고 온갖 낙서가 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때요?”
“네가 나보다 낫다. 좋네.”
갖은 미사여구 없이 짤막한 대답이었지만 동훈은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었다.
양 감독이 마음에 안 든다고 무작정 자기가 원하는 시나리오를 고집했다면 정말 일이 힘들어 질 수밖에 없음을 아는 까닭이다.
“감사합니다.”
“이래 재능이 있으니까 영화 두 개를 연속으로 흥행시켰네. 완전히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 기존에 있던걸 더 좋게 고치는게 훨씬 어려운건데... 장동훈 감독. 진짜 인정이다.”
마침내 그가 엄지를 치켜 세웠다.
동훈은 절로 감동해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각본도 어느 정도는 써놨어요. 선배님께서 보시고 손 댈 부분이 있으면 손대셔도 괜찮아요.”
이 각본을 만든다고 그리 고생했던거다.
“각본도 가지고 오지, 왜?”
“조금 덜 된 부분이 있어서요. 원하시면 제가 메일로 따로 보내드릴게요. 어차피 오늘은 트리트먼트만 보기로 했으니까 가져오지는 않았어요. 만약 이게 틀렸다고하면 각본 다 완성시켜놓고 싹다 갈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긴 하지. 괜찮아. 이제는 장 감독... 아니, 장대표 각본이 궁금해. 얼른 보내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독으로 불러주시는게 편해요.”
그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봐주니 너무도 다행스러웠다.
“알겠다. 그럼 트리트먼트는 이대로 가고, 누구로 캐스팅할까?”
“하고 싶은 배우 있으세요? 아, 일단 여기 양궁 국가대표였던 김혜선 역은 신은정을 추천할게요.”
“신은정?”
“네. 잠시만요, 가서 프로필 사진 가지고 올게요.”
동훈은 나가서 은정의 프로필 사진을 들고 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말을 이었다.
“신인인데 얼굴이 예쁘면서도 성격이 은근 다혈질이라 이렇게 거친 역할을 잘 소화할 것 같아요.”
“너무 예쁜거 아니야?”
“그것 때문에 고민을 좀 했어요. 만약 톱스타였다면 아무리 중요한 배역이라도 다른 주요 배역을 가려버릴 것 같아서 무조건 안 된다고 했을텐데 신인이라 주연을 잡아먹지 못할 것 같아서 오히려 괜찮을 것 같아요. 오히려 가끔 나올때마다 집중을 시켜줄 것 같아서 더 좋을 수도 있겠죠.”
“그건 얘 연기가 받쳐줬을 때 얘기지. 연기가 안 되면 오히려 몰입감을 깨뜨리잖아.”
“맞아요. 그래서 일단 한번 오디션이라도 보세요.”
“개인 오디션?”
“네. 따로 한번 불러서 연기 보시고 결정하세요. 주연 정해진 다음에. 결정은 감독님이 하시고.”
“흠... 그러자고. 주연은 박노진 어때?”
서른 중반의 연기파 배우인 박노진은 주로 드라마를 해왔고 영화는 얼굴을 내비친 적이 별로 없었다.
그 몇 안되는 작품도 전부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라 오히려 영화를 더 꺼리는 것 같았다.
“좋죠. 인상도 정말 동네 아저씨 같고, 연기력도 출중하면서 마스크가 다양해서 주연으로 쓰기 딱일 것 같습니다.”
“근데 티켓파워가 없는데 괜찮을까?”
티켓파워가 없다는 말은 투자받기 어렵다는 말과 같았다.
“장남을 박노진으로 하고 차남을 좀 이름값 있는 A급으로 하죠. 연기력 좀 되면서 키랑 얼굴이 너무 모델같지 않은 배우중에 하나로.”
“그래, 그건 내가 한번 생각해볼게. 장 감독이 다 해놔서 어차피 시간 여유는 있으니까.”
시간여유는 곧 각본이 마무리될때까지의 시간.
본래대로라면 각본이 다 완성되는데 꽤 오랜시간이 걸려야겠지만 이미 동훈이 상당한 분량의 각본을 만들어놨기에 시간 여유는 충분했다.
오히려 더 빨리 제작할 수 있는걸 동훈의 악질형사 제작을 고려해서 페이스를 늦춰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하시죠.”
“고생했어. 언제 시간나면 막걸리라도 한 잔 하자. 촬영 끝나야 시간이 나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겠죠?”
내일부터는 아마 정신없는 나날이 지속될 거다.
그런데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리며 명진이 얼굴을 쓱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감독님.”
“어? 뭔데?”
“감독님, 이거 좀 보세요.”
명진이 휴대푠을 쓱 내밀었다.
“뭔데? 또 안 좋은 기사 떴어?”
아무래도 전에 했던 인터뷰 때문에 또 안 좋은 기사가 떴나 걱정하니 명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현재 씨가 오늘 기자랑 인터뷰를 했거든요. 거기서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완전 대박. 지금 상황 제대로 반전 됐잖아요.”
뭔지는 몰라도 하여튼 나쁜 기사는 아니라고 하니 안심하며 기사를 살폈다.
기사 타이틀은 이랬다.
[이현재 소신발언, 장동훈 감독 같은 사람이 더 많아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