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흥행감독이 되면?(3)
강남 논현동 작은 사무실에 위치한 썬 엔터테인먼트는 거의 일인 기획사나 다름없는 작은 회사다.
젊은 사장인 최영준 대표는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 실장이던 시절 무명의 양준기를 데리고 나와 작은 엔터회사를 차린게 바로 이 회사였다.
이후 양준기가 드라마 한 편으로 톱스타가 되면서 회사는 상당한 돈을 벌었지만 아직까지 양준기 하나를 잘 케어하기 위해 거의 일인 기획사처럼 운영하고 있었다.
[한국형 느와르의 신기원, 새로운 세계 700만 돌파]
[스타 감독으로 떠오른 장동훈 감독, 충무로를 사로잡다]
인터넷 기사를 흘낏 보던 최영준 대표는 소파에 누워 핸드폰 게임에 열중인 양준기에게 말했다.
“슬쩍 찔러 볼까?”
양준기는 최 대표의 말에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에이, 모양 빠지잖아.”
“그건 인정인데 궁금하잖아. 아, 궁금해 미치겠네.”
“거짓말 아니야? 작년에 한 편 찍고 바로 또 찍었잖아. 그게 지금 극장에서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차기작에 내 이름이 거론된다고? 씁... 이상한데... 이거 반응하다가 아니라고 하면 형 나 완전 바보 되는거 알지?”
“아니까 고민하는거 아니냐.”
둘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형제처럼 가까워 보인다.
“진짜 나랑 하고 싶으면 연락이 왔겠지. 이렇게 떠볼려고 할까?”
“괜히 쫄아서 그러는건 아닐까?”
“그건 좀...”
게임에 열중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하던 양준기는 순간 벌떡 일어났다.
“형, 그러지 말고 그냥 거기 회사에 물어보면 안 돼? 건너서 물어보면 쪽팔리는 짓인데 다이렉트로 물어보면 어디 말이 돌지도 않을 거 아니야?”
“나도 그걸 생각해 봤지. 그런데 연락처가 없어.”
“어? 뭔 소리야? 제작사가 연락처가 없다고? 뭐 그런 회사가 다 있어?”
“영화 세상 쪽에다가도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안 가르쳐주더라고. 말투가 좀 짜증내면서 하길래 나 되게 민망했어.”
“형이라고 말했는데 짜증냈다고?”
“아니... 그냥 전화 받자마자 물어봤는데 그러더라고.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끊었지. 그냥 소문이 나온 투자사에 한 번 물어봐?”
최영준 대표가 슬쩍 물어보자 양준기는 다시 소파에 털썩 누웠다.
“그러다 기사 나온다.”
“그래, 깔끔하게 포기하자. 그런데 왜 여기는 제작사 전화는 물론이고 감독 연락처도 어디 흘리고 다니질 않네. 두 작품만에 비싼 몸이 돼 버리셨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최영준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준기 맞은편 소파에 떨썩 앉았다.
그리고 게임에 빠져있는 양준기에게 말을 걸었다.
“재밌냐?”
“응, 엄청.”
“좋겠다. 재밌어서...”
양준기는 최 대표의 얼굴을 슬쩍 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 왜 또 갈구고 그래?”
“일은 안 할 생각이야?”
“아니, 방금전까지 일 얘기 한 거 아니었어? 나 장동훈 감독 제의오면 진짜 긍적적으로 검토 한 번 해볼게. 진짜야.”
“그건 당연한 거고...”
“그럼?”
“콘서트 안 갈 거야?”
양준기는 인상이 팍 찌그려뜨리며 짜증을 부렸다.
“아, 콘서트를 내가 왜 가? 내가 가수야? 드라마 찍는다고 OST 한번 해줬으면 됐지, 왜 날 가지고 노래를 못 불려서 안달이래?”
“니 음색이 좋은걸 어떡하냐? 그리고 그게 누구 콘서트야? 너랑 같이 드라마 출연해서 같이 잘 된 김유나 아니냐.”
“형, 말은 바로 하자. 걘 원래부터 잘 된 애였잖아. 걔 내 상대역으로 온다고 했을 때 형도 얼씨구나 했어. 기억못해?”
최 대표는 말로는 못 이기겠다고 생각했는지 이마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어쨌든 김유나 쪽에서 일단 요청 했으니까 가서 한 번 불러주고 오자. 네가 한 번 불러줘야 이번에 중국쪽 쇼케이스 행사 무사히 치러질 수 있는 거 알지?”
“그거 확실하긴 한 거야? 진짜 임수지가 중국 쇼케이스 오면 그 배불뚝이가 확실히 밀어준대?”
“그렇다니까!”
“아... 이거 괜히 일만 만드는거 아니야? 내가 뚜쟁이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뚜쟁이라니! 너 순수한 팬심을 그렇게 모독하면 안 된다.”
“흥! 이 바닥에 연예인 만나면서 순수한 팬심 가지고 만나는 사람 있어? 신기하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왜 내가 지금까지 한 번을 못 만나 봤을까?”
“시끄럽고 할 거야? 말 거야.”
최 대표가 재촉하자 양준기는 소파에 다시 몸을 던졌다.
“알았어. 하면 되잖아. 나 진짜 가서 한 곡만 부를 거야. 가서 앵콜 요청하면 못 들은 척 그냥 내려올 거니까 형이 뒤는 알아서 처리해줘.”
그제야 최 대표는 세상 너그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당연하지. 내가 그런 일 하라고 돈 받는 사람 아니냐. 그리고 초대가수한테는 앵간해선 앵콜 요청 안 한단다. 걱정 마시고 목이나 잘 관리하셔. 응?”
최 대표는 희희낙락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 걸 봤다.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모든 전화를 받는 최 대표는 이번에도 거리낌없이 전화를 받았다.
이런 전화들의 90% 이상이 각종 인터넷 변경, 보험. 대출 전화였지만 간혹 일에 관련된 전화들이 올때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DH미디어 제작 프로듀서 맡고 있는 유지은 팀장이라고 합니다. 혹시 최영준 대표님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만...”
최 대표는 DH미디어라는 말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양준기 씨에게 트리트먼트를 보내고 싶은데요. 메일 주소는 알지만 혹시 DH미디어를 모르셔서 스팸메일로 보내실까봐 미리 연락 드렸어요.”
“아, 그러셨구나. 알겠습니다. 보내셔도 되는데... 혹시 누구 트리트먼트인지 알 수 있을까요? 드라마 작가인지, 아니면 영화 감독님인지...”
“어머, 죄송해요. 제가 가장 기본적인 것도 말씀 안 드렸네요. 장동훈 감독님이 쓰신 거예요.”
“장동훈 감독님이요?”
최 대표가 반문하자 양준기가 게임을 하다 말고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리고 핸드폰을 내려놓은 채 최영준 대표 앞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네. 맞아요.”
“근데 DH미디어는 처음 듣네요?”
감독이 누구인지 알았으니 제작사에 대한 것도 쉽게 물어볼 수 있었다.
“장동훈 감독님이 이번에 새로 세운 제작사에요. 우리 회사 첫 작품인 거죠.”
“아... 그런 거군요. 그래서 DH구나.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거 언제까지 답을 드려야 하는 건가요?”
최영준 대표는 그래도 최대한 버팅길 생각이었다.
아무리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라고 해도 양준기 체면이 있는데 덥썩 하겠다고 달려들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죄송한데 빨리 답을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저희가 일주일 뒤에 이차 컨택이 있는데 그때까지 답을 안 주시면 기획서 내용을 수정해야 하거든요.”
“예? 그 기획서가 혹시 제작기획서를 말씀하시는...”
“네. 맞아요.”
최 대표는 황당했지만 일단 왜 일을 그 따위로 진행하냐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 그렇단 말이죠? 알겠습니다. 일단 메일로 보내주세요. 보고 우리 준기랑 상의한 다음에 연락 드릴게요.”
“너무 급하게 진행하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최 대표는 속으로 ‘아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아닙니다. 일을 하다 보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죠. 그럼 수고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전화를 끊은 최영준 대표는 바로 소리를 질렀다.
“미친 거 아니야? 아니, 얘네는 캐스팅도 안 해놓고 벌써 1차 미팅을 했나봐?”
“그럼 투자사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진짜였던거네?”
황당하기는 양준기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뭐야. 이 사람들... 집에 사채업자가 찾아오나? 아니, 사채업자가 문을 두들긴다고 해도 그렇지 왜 이렇게 일을 이렇게 진행해? 앞, 뒤가 바뀌었잖아.”
“형 이거 완전 그거 아니야? 예전에 정주민 회장이 조선소도 없는데 배 만들겠다고 돈 받아서 조선소 세우고 배 만든거? 나 예전에 이거 선생님한테 들었는데, 맞지?”
“잘났다. 좋은 거 찾아냈네.”
“내가 머리가 좋은게 확실해. 내가 성적이 안 나온건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거거든. 그런데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 막 생각나잖아?”
“그런데 대본은 왜 못 외우세요? 대본 외우는 것도 흥미가 없어서 그래?”
자신이 불리해지자 양준기는 슬쩍 고개를 돌리고 소파로 돌아갔다.
“그래도 내가 배우들 중에는 못 외우는 편은 아니야.”
“그래, 우리 준기 최고다. 어쨌거나 이거 일주일안에 결정내려줘야 한덴다. 어? 잠깐... 일주일내에 결론 내려달라고 한 거면...”
“혹시 다른데에도 시나리오 준 거 아니야?”
“설마...”
최 대표는 설마 했지만 왠지 자신의 예감이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누구한테 줬을까?”
“몰라, 아직 메일 오지도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데 어디로 갔을지 내가 어떻게 아냐?”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냥 물어본 건데... 씨...”
양준기는 이럴땐 최 대표 성격을 건들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조용히 메일이 올 때까지 핸드폰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게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괜히 전전긍긍하는 최 대표의 심기를 건드려봐야 좋을게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게임에 몰입하려는데...
“왔다!”
“나도, 나도 봐.”
“기다려 보세요.”
최 대표는 능숙하게 파일을 열어 바로 2부로 출력을 했다.
하나는 자신이 보고 하나는 준기에게 주기 위함이었다.
시나리오를 보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야, 이거 주연이 아니었네? 하하하, 와... 미치겠네.”
최영준 대표는 황당함에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존재감은 장난 아니겠는데? 원래 악역을 잘해야 대스타가 되는...”
“네가 지금 존재감 따지면서 작품 들어갈 급이냐? 주연을 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장난하나...”
최 대표는 짜증이 치미는지 시나리오를 확 던져 버렸다.
“아니, 재밌을 것 같은데...”
양준기는 호기심이 동하는지 계속 시나리오를 살펴보았다.
그 모습에 최 대표 다가가 시나리오를 확 뺏어버렸다.
“됐어. 이거 할 시간에 CF 몇 개를 더 찍겠다. 괜히 이거 찍고 급 떨어질 일 있냐? 너 잘들어. 중국에서는 악역 결코 좋아하지 않아. 걔들은 병적으로 선한 역에 열광한다고. 그런데 경찰에 맞서는 역을 한다? 너 이 영화 찍고 중국에서 인기 급락이야. 명심해.”
“알았어.”
“시나리오 다른데 갔을까봐 괜히 걱정했다. 제발 누가 이거 물어가줬으면 좋겠네. 주혁이 이거 딱 해줬으면 좋겠다.”
주혁은 양준기와 비슷한 급의 한류스타로 양준기보다 나이는 조금 더 어리고 연예계 데뷔도 조금 느렸다.
그럼에도 급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차세대 한류스타였기에 최 대표는 항상 주혁을 신경쓰고 있었다.
물론 양준기는 아니었다.
“아, 이거 주기 아까운데...”
“아깝긴 뭐가 아까워? 스토리 너무 뻔하지 않냐? 돈 많고 졸라 나쁜 새끼 잡는 형사. 이런 작품이 어디 한 둘이야? 나오면 아마 백만에서 2백만 조금 넘다가 소리소문없이 들어갈걸? 아마 네 얼굴 스크린에서보다 IPTV로 더 많이 보게 될 거야. 그러니까 우리 이 작품에서 신경끄자.”
“알았어. 관두자.”
양준기는 아쉽지만 최 대표의 말이 그가 생각해도 일리가 있었던지라 바닥에 굴러다니는 시나리오에 눈을 떼고 다시 핸드폰 게임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