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39화 (39/116)

# 39

흥행감독이 되면?(1)

듣는 순간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건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작사를 맡긴다는게 자신이 이해하고 있기론 제작사의 대표를 맡는다는 건데 덥썩 그런 자릴 준다는게 말이 안되는 일이었고, 또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말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해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

“제작사를 맡기고 싶다구요. 들으시는 그대로예요. 뭐, 전화로 할 이야긴 아니니까 만나서 이야기하는게 어때요?”

“뭐... 그럽시다.”

“그럼 오늘 저녁 괜찮죠?”

번갯불에 콩 볶아먹는다고 당일에 괜찮냐고 물어본다.

보통 이런 때는 윤슬기 쪽에 더 바빠야 할 텐데 말이다.

“상관없습니다만 제가 술을 좀 해서요.”

“그럼 사우나에서 한숨 주무시고 나오세요. 어차피 저녁까진 시간이 꽤 남았으니까. 주소 문자로 보내 드릴게요. 그럼 저녁에 뵐게요.”

“네, 그때 뵙죠.”

전화를 끊으니 명진이 물어본다.

“무슨 전환데 그러세요?”

“어? 어... WAS 고은숙 대표였어. 오늘 저녁에 한 번 보자네.”

“무슨 말을 하려고 부르신대요?”

“글쎄... 만나보면 알겠지 뭐.”

일단 말을 아꼈다.

만나서 자세히 들어봐야 자초지종을 정확히 알 것 같아서였다.

“일단 황정훈 씨한테 문자는 보내 놨어요.”

“시나리오도 안 보고 답을 줄까?”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시나리오를 주고 캐릭터와 자신의 연기를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한게 일반적이다.

상당수의 배우들은 시나리오에서 더욱 많은 손을 거친 트리트먼트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며 드라마의 경우에선 최소 4회나 6회 분량의 대본을 미리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감독의 명성이나 신뢰가 상당하다면 시나리오도 안 보고 캐스팅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긴 한데 과연 황정훈이 답을 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경우가 밝으신 분이니까 시나리오를 보고 결정하고 싶으면 달라고 할 거예요. 무작정 거절하실 분은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뭐, 네가 알아서 해.”

“옛썰! 그럼 저녁에 약속 있으니까 이쯤에서 파할까요?”

“그러자. 난 사우나에 가서 씻고 자야겠다.”

그렇게 명진이와 헤어져 사우나에서 한 숨 자고 일어났을 때 핸드폰에 수많은 전화와 톡, 문자들이 와 있었다.

깜짝 놀란 동훈은 혹시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건지 놀라서 내용을 살펴보니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가득했다.

[감독님, 대박! 왕의 눈물 터졌어요!]

[유병세 감독 불쌍해서 어쩌나... 감독님, 핸드폰 보시면 기사 좀 확인해보세요]

대략 이런 문자들이길래 다행히 우리 영화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인터넷에 들어가 기사들을 확인해보니 한바탕 난리가 난 상태였다.

[이시은 매니저의 에니매이션 비하 폭언]

[왕의 눈물에 찬물을 끼얹는 막말 사태]

기사 내용을 보니 유병세 감독이 참 재수가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배우의 매니저가 실수한 것인데 이게 영화에 똥을 끼얹는 상황이 됐으니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을까.

그것도 개봉 이후에 한참 관객을 끌어모으고 난 다음, 단물이 빠진 이후에 터졌다면 큰 손해가 없었을 것인데 개봉 후 첫 무대인사에서 일이 터졌으니...

“얘도 참... 그러게 평소에 마음을 곱게 써야지...”

동훈은 혀를 끌끌 차곤 사우나를 나와 약속장소로 향했다.

씻고 개운한 몸으로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취기가 싹 가셔 발걸음도 가벼웠다.

약속장소는 평소 동훈이 발길도 들여놓기 힘들었던 고급 갈비집이었다.

1인분에 10만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갈비집을 다오게 되니 이제야 성공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어서오세요.”

미리 예약된 방에는 고 대표와 윤슬기, 그리고 나이가 쉰은 넘어 보니는 장년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거의 벗겨진 머리를 한쪽으로 가지런히 정리한 모습이 인상적인 그는 살집이 넉넉한 푸근한 동네 아저씨 같았다.

물론 입고 있는 옷은 한눈에 봐도 명품 같아 보였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이분은...”

“소개드릴게요. 에스원 투자법인의 황대철 상무님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장동훈 감독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두 편이나 흥행시킨 스타 감독님이라 직접 만나뵙게 되니 떨리네요. 허허...”

그는 말과는 달리 전혀 떨리지 않는 얼굴로 명함을 건네줬다.

“별말씀을요. 그리고 아직 두 편이 흥행을 할 건지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기세면 손익분기점을 넘는건 기정 사실이니 그리 겸양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고기를 미리 주문해놨는데 따로 드시고 싶은게 있다면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다 잘 먹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리고 이 집 고기는 다들 맛있어 하시니까 먹을만 할 겁니다.”

“비싼데 그렇겠죠.”

동훈이 자리에 앉으니 윤슬기가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감독님, 오랜만이에요.”

“회식 때 봤으면서. 잘 지냈어?”

나이가 조금 있는 배우들은 존대를 해줬지만 그녀는 얼마전 회식자리에서 존대가 불편하다며 극구 말을 놓아달라고 했었다.

“그럼요. 잘 지냈죠. 요즘 인터뷰 때문에 정신없기는 한데 그래도 전부 좋은 내용으로 하는 거라서 기분이 좋아요. 어제 예전 아이돌 멤버들이랑 만났는데 영화가 잘 돼서 그런지 다들 얼굴이 좋아 보인다네요. 하하. 그리고 회식때는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도 그때는 배우들이 너무 많아서 따로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괜찮죠?”

평소에는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어본적 없었기에 그녀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지 몰랐다.

“그럼. 괜찮지.”

“많이 드세요. 오늘은 대표님이 아니라 제가 쏘는 거니까 정말 많이 드셔야 해요.”

이건 조금 의외였다.

당연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낸다니...

그렇다고 그녀에게 굳이 그러지 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어지간한 중소기업 사장님보다 그녀가 더 많이 벌 것은 분명했으니까.

“그래? 아이고 그럼 많이 먹어야겠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하는 중 적당히 배가 불러올 때 고 대표가 이야기를 꺼냈다.

“아시겠지만 헐리우드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치여서 한국 영화계가 그리 좋지 못해요. 10년 전에 스크린쿼터가 사라진 이후부터 자국 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과 헐리우드 영화가 스크린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투자가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관계로 어떻게 영화는 계속 만들어오긴 했는데 사실 결과가 좋았던 작품은 많지 않았죠.”

고 대표의 말을 황대철 상무가 받았다.

“그나마 애니메이션이 꾸준히 흥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투자에 인색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눈감고 헤엄치기 일수도 있었죠.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세계 어디를 내놔도 잘 먹히니 더 많은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찾아가 투자 좀 받아달라고 간청할 정도니까요. 그 돈이 돌고 돌아 영화계로 상당한 금액이 빠져나오는데 마음놓고 투자할 곳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요?”

“들어보니까 ‘영화 세상’에 가서 한바탕 뒤집어 놓으셨다구요? 남들은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전 그 얘기가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어쩌면 우리로써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좋은 투자처가 새로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죠.”

동훈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고작 한 편 성공하고 이제 또 한 편 성공할까 하는 감독의 말을 듣고요?”

황대철 상무는 빙그레 웃었다.

“누가 이야기를 했든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더군다나 그 의견을 말한 사람이 일년에 영화 두 편을 흥행시킨 감독이라면 더더욱 신뢰할만 한 건 부정할 수 없지요. 그리고 사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근 삼년간 만드는 것마다 족족 실패를 한 ‘SH 미디어’의 실력에 난 강한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에요.”

“아...”

결국 앞의 얘기는 허울좋은 말일 뿐이고 진짜 이유는 실적부진이었던 거다.

동훈의 실망한 표정이 읽혔는지 황대철 상무는 웃는 표정을 유지하면서 말을 이었다.

“제 말을 다 믿지 않으시는군요. 그렇다면 좀 돌아가보죠. 솔직히 이유가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장동훈 감독님께서 이후 제작하는 작품마다 감독의 재량과 더 나은 흥행수당을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죠. 지금 러닝게런티가 흥행수익의 0.5%인가요?”

“네. 저도 이번 작품을 그렇게 계약했습니다.”

김영웅 감독이 있던 곳도 흥행감독의 경우 약 2% 정도였다.

전체 매출이 아니라 손익분기점을 넘은 흥행수입이 10억이라면 약 2천만 원 정도가 러닝게런티였던거다.

“장동훈 감독님이 제작사 대표가 되면 이사회를 거쳐서 흥행수당을 지금보다 훨씬 올려드릴 수 있도록 바꾸죠. 또한 스태프 인건비와 처우도 개선시키겠습니다. 아마 우리 회사가 영화계에서 가장 헐리우드와 비슷해지겠군요.”

좋다. 다 좋아보였지만 한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게 있었다.

“만약 나중에 회사를 다 키워놓고 억지로 물러나게 되는 억울한 일이 생긴다면요?”

황대철 상무는 이미 대답을 준비했는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했다.

“지분을 드리죠. 단, 흥행성적에 비례해 스톡옵션을 걸겠습니다.”

“어떤 방식의 스톡옵션이죠?”

“단계적으로 흥행수익을 초과 달성할때마다 지분율을 더 드리는 거죠. 이건 우리 회사가 제작사의 80%의 지분을 가지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제안입니다. 회사를 성장시키고 나중에 상장까지 시킬 정도로 키울수만 있다면 최대 30%까지 지분을 드리겠습니다. 정확히 29.9%가 되겠네요.”

“아...”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스톡옵션을 달성할만큼의 흥행수익을 올리긴 쉽지 않을 겁니다. 천만 영화를 일년에 두 편 정도 만들어 내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흠... 많이 준비하셨네요. 일단 이 자리에서 확답을 드리긴 어렵고 조금 생각해 본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무렴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명함에 적힌 연락처로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네. 그럴게요.”

그렇게 황대철 상무의 용건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윤슬기가 나섰다.

“감독님, 이제 무거운 이야기 그만하고 후식 드세요. 냉면 드실래요?”

“그럴까?”

“물냉 좋아하세요? 아니면 비냉 좋아하세요?”

“난 비냉.”

“역시... 감독님과는 뭔가 통하는게 있다니까요.”

윤슬기는 후식으로 비냉 두 그릇을 시키고는 말했다.

“혹시 다다음주에 시간 되세요? 화요일에...”

“다다음주 화요일? 나야 아무 스케줄도 없는데, 왜?”

윤슬기는 그 예쁜 얼굴로 몸을 비비꼬아댔다.

“저기 죄송한데... mbs 영화사냥이라는 프로그램에 같이 나가주실 수 있으세요?”

영화사냥은 지상파 방송사 중에 대표적인 영화소개 프로그램이다.

“거기에 내가 필요해?”

“감독님이랑 배우들이랑 나와서 코멘트 하는거 있잖아요. 얼굴은 안 나오고...”

“아... 알겠다. 나도 본 적 있어. 그런데 난 mbs에서 연락온 적 없는데?”

그녀는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은 mbs 영화사냥 작가님이 제가 꼭 있어야 한다고 하셔서요. 저만 된다고 하면 다른분들 스케줄을 물어보겠다고 하셨는데 전 감독님이 안 나가면 안 할려고 했거든요.”

“왜 안하려고?”

“에이... 감독님 없이 제가 영화프로그램에 나가서 무슨 이야기를 해요. 다 감독님이 만들어주신건데... 헤헤.”

연기는 참 못했었는데 말하는거나 행동하는게 참 예쁘긴 하다.

이것도 아이돌을 하면서 연습된 것인지는 궁금했지만 어쨌든 나가서 나쁠리 없다.

“그래, 좋아. 거기 작가한테 연락달라고 해.”

“헤헷! 알겠습니다! 아싸!”

좋아하는 그녀를 보며 문득 그 방송을 녹화할 때가 되면 관객수가 얼마나 되어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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