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34화 (34/116)

# 34

두 번째 작품(2)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일단 윤슬기를 데리고 나오며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기자들은 부산스럽게 방금 전 상황을 기록하며 기사를 내보내려고 했고 직원들과 윤슬기의 소속사는 어떡해든 상황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물론 오늘의 행사를 준비한 배급사와 제작사 관계자들에게는 연신 죄송하다고 사죄를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동훈은 유지은 팀장에게 슬쩍 다가가 물었다.

“왜 저러는 거예요?”

“내가 알아요? 윤슬기가 감독님이랑 작업했지, 나랑 했나? 난 윤슬기 얼굴도 몇 번 못 봤어요.”

“그런데 아까 보니까 좋아하던데요?”

“내가요? 으음... 티났나?”

그녀는 팔짱을 끼고 배시시 미소짓는다.

“오늘 언론시사회 완전 망친 거 아닙니까?”

동훈의 걱정에 그녀가 검지를 세워 천천히 흔들었다.

“감독님은 연출은 잘하는데 마케팅이 좀 안되시네요. 오늘 언론시사회 끝나고 기사가 어떻게 나갈 거 같아요?”

“뭐... 재미있게 봤으면 재미있었다. 기대된다.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가지 않았겠어요?”

“그쵸? 그런데 그런 기사 너무 많아요? 언론시사회 기사들 보면 하나같이 다 똑같아. 그쵸?”

“그렇긴 한데...”

“생각해보세요. 만약 조연급 여배우 하나가 눈물을 쏟았으면 저 이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여배우 한 명이 감정 터져서 눈물 쏟았다. 끝! 그런데 윤슬기잖아요. 오늘 윤슬기 눈물 쏟았다는 기사 나가면 조회수가 어느 정도나 나올지 짐작이 가세요?”

“아...”

그제야 동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아시겠죠? 아무리 영화가 재밌어봤자 시사회 기사만으로는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원동력이 떨어진다구요. 근데 윤슬기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열심히 했어요. 꼭 보러 와주세요’ 이러면? 일단 그녀 팬덤이 오고 안 오고를 떠나서 일반 관객들이 기사를 보고 클릭해보지 않겠어요? 나 같아도 궁금해서 클릭해보겠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자신도 그 기사는 무조건 클릭해 볼 것 같았다.

“그렇긴 하겠네요.”

“만약 윤슬기가 안 좋은 뜻으로 눈물을 흘렸다면 모르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오히려 우리한테는 무조건 호재가 된 거예요. 두고 보세요. 기사 뜨고 나면 실검에 윤슬기가 1위, 새로운 세계가 2위를 하고 있을걸요?”

그녀는 호언장담을 하며 윤슬기의 상태를 보러 총총 걸어갔다.

시간이 지나 금방 진정된 윤슬기는 언제 울었냐는 듯 아이돌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단상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이후 진행된 기자와의 문답 시간에선 기자들도 감독과 톱스타를 배려해 동훈과 주연배우에게 먼저 질문을 했고 대충 해야 할 질문이 모두 끝난 다음에야 윤슬기에게 차례가 돌아갔다.

“영화가 윤슬기 씨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서 방금 전에 감정이 복받쳐 올랐을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녀는 담담히 마이크를 들었다.

“음... 소속사를 옮기고 아이돌 생활을 포기한 후부터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많이 노력했는데, 어... 춤과 노래를 배우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연기도 역시나 어렵더라구요. 생각대로 잘 안되는 것도 있었고... 그런데 장동훈 감독님께서 연기하기 쉽게 너무 잘해주셔서 갑자기 눈물이 났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이 너무 잘해주셨거든요. 하하, 저도 조금 어이 없긴 했는데요. 원래 제가 눈물이 좀 많아요. 헤헤. 우리 영화 너무 재밌으니까 꼭 보러 와주세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데 팬이 아닌 자신이 봐도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만약 팬이 저 모습을 본다면 영화는 관심이 없어도 한 번 쯤은 보러 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1시간이나 이어졌던 긴 질문시간이 마무리되고 드디어 영화가 시작됐다.

솔직히 배급사에서 편집본을 주고 상영했을땐 긴장되지 않았는데 지금 만큼은 긴장을 감출수 없었다.

차마 관람석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와 초조하게 서성이는데 누가 팔꿈치를 툭 건든다.

누군가해서 돌아보니 은정이었다.

“왜 영화 안 보고 나왔어요? 오늘 처음으로 보는 걸 텐데?”

“못 보겠어요. 너무 떨려서 볼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하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은정 씨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연기 잘 했고, 은정 씨 분량도 잘 나왔으니까.”

“그래도 못 보겠어요. 아니, 드라마 배우들은 어떻게 자기가 연기한거 자기가 모니터를 할 수 있어요? 막상 관람석에 앉으니까 막 얼굴이 부끄러워서 도저히 앉아 있을수가 없겠던데요?”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간혹 배우들중에 자기가 출연한 작품 못 보는 배우들도 있으니 말이다.

신은정이 딱 그런 경우인 것 같았다.

“그럼 저기 앉아서 끝날때까지 기다려요. 지금은 못 볼 것 같아도 나중에 흥행되면 궁금해서 보게 될 테니까. 원래 그런 성격있는 사람들 드라마든 영화든 잘 안 되면 더 보기 싫고 잘 되면 자연스럽게 고쳐져요.”

“정말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차나 마실래요?”

“어! 좋아요! 제가 살게요.”

“아니에요. 여기 앉아 있어요. 내가 사올테니까.”

그렇게 둘은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상영시간이 끝나길 기다렸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어느새 사라졌다는 건 인지하지 못했다.

*

[윤슬기의 눈물로 빚어낸 영화 새로운 세계]

[윤슬기가 시사회에서 눈물을 흘린 이유는?]

[새로운 세계, 해외 선판매 돌풍 이유 있었다]

[11월 관객들의 발길을 붙잡을 바로 그 영화 새로운 세계]

“아니, 이게 뭡니까? 실시간 검색이 완전 새로운 세계로 도배가 됐는데...”

유병세 감독은 황당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중년의 여성은 짜증난다는 얼굴로 서류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윤슬기 기사 말하는 거죠? 저도 그 기사 봤어요. 의도한 거면 연기 천잰데 그럴리 없다는 거 이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 없고, 재수없게 일이 그렇게 됐다고 봐야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흥분할 필요 없어요.”

“허... 지금 흥분하지 않게 됐습니까? 우리 시사회가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이러면 완전히 지고 들어가는거 아니에요?”

그녀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그럼 시사회를 일주일이나 뒤에 하는데 선점 효과까지 누리려고 했어요? 유병세 감독님 생각보다 욕심이 과하시네?”

“욕심이 과하다구요? 이 영화가 얼마짜린지 알고나...”

그녀는 유병세 감독의 말을 끊었다.

“감독님. 알고 있어요. 80억이 넘게 들어간 영화잖아요. 그런데 일정을 문제 삼으려면 촬영을 빨리 끝내셨어야죠.”

“그건 어쩔 수가 없는 문제 아닙니까?”

“그래요. 그래서 촬영 늦게 끝냈다고 제가 감독님한테 뭐라 한 적 있나요? 없죠?”

당연히 할 말이 있을리 없다.

“...”

“그리고 저 감독님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해요. 이건 진심이에요. 감독님의 깊이있는 연출이랑 개성있는 캐릭터는 볼 때마다 감탄하거든요. 그런데요. 연출과 마케팅은 다른 영역이에요. 제가 감독님 연출에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감독님도 우리 회사 마케팅 가지고 자꾸 뭐라하시면 저 굉장히 불쾌해져요.”

너무도 똑소리나는 답변 때문인지 순간 유 감독은 시선을 회피했다.

“내가 부장님한테 뭐라고 한게 아니라...”

“알아요. 지금 감독님 마음 급하고 저기 밖에서 우리 애들 닦달하는 제작사 직원 마음 급한 것도 알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손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땐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기를 바래야해요.”

유병세 감독도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고 느꼈는지 찬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시사회에 우리도 뭔가...”

그녀도 이번에도 유 감독의 말을 끊었다.

“아뇨. 뭐든 억지로 뭘 하려고 하면 꼭 탈이 나거든요. 연기는 카메라 앞에서 해야 진짜 연기죠. 카메라 밖에서 하면 그건 사기에요.”

여자의 일침에 유병세 감독은 한숨을 푹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너무 흥분했나보네요. 담배나 피면서 머리를 정리해야겠습니다.”

“좋아요. 그리고 말했듯이 나 감독님 실력 믿어요. 어차피 마케팅으로 관객 끌어모으는 건 한계가 있거든요. 영화판에서 입소문보다 더 효과있는 마케팅은 지금까지 나온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감독님 스스로를 믿고 기다리세요.”

“후... 그래요.”

그제야 유병세 감독은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유병세 감독이 나가자마자 회의실에 20대 중반의 여직원이 쪼르르 들어왔다.

중년의 여자는 직원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서랍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쭈욱 빨아들였다.

“후... 하여튼 예술한다는 것들은 그쪽으로만 머리가 발달해있어서 문제라니까. 꽉 막혔어요, 꽉!”

“너무 그러지 마세요. 잘생겼잖아요.”

“하긴... 남자는 잘생겨야 좋고 여자는 예쁘면 좋지. 좋겠다. 젊고 예뻐서.”

“히히... 그런데 이번에 부장님 예상 스코어는 어때요?”

“너희는?”

“우리는 ‘왕의 눈물’ 5백만 이상에 걸었어요. 총 50만 원. 부장님은요?”

부장이라는 그녀는 지갑에서 수표 다섯 장을 꺼내더니 바로 책상에 내려놓았다.

“난 반대에 오십.”

“헐... 쑈에 걸다니 LS엔터 사람으로서 너무하신거 아니에요?”

“뭘 너무해? 우리 회사가 판돈 대 준다니? 그리고 난 우리 회사 사랑해. 단지 그냥 내 느낌일 뿐이야.”

“편집본 괜찮았잖아요.”

“괜찮았지. 그런데 아까 유병세 감독 얼굴 봤어?”

“네...”

“그저 잘생겼지?”

“헤헤... 그런데 유 감독님 얼굴이 왜요?”

“난 유 감독 저렇게 불안해 하는거 처음 보거든. 너도 내 나이 먹으면 알 거야. 아무 근거는 없는데 가끔 이 요상한 감이 딱 들어맞을 때가 있거든. 내가 지금 유병세 감독 얼굴을 보니까 그냥 느낌이 그래. 감독이 자기 작품에 확신이 없어 보이네. 분명히 편집본 봤을 때 나쁘지 않았는데 왜 그런지 나도 조금 이상하긴 해.”

“어쨌든 그래서 ‘5백만 돌파 안 된다’에 50만 원 거신 거죠? 바로 접수합니다.”

여직원은 책상에 놓여있는 수표를 달랑 집어갔다.

홀로 남은 여자 부장은 수표가 떠난 자리를 가만히 보다가 나직이 숨을 쉬었다.

*

유병세 감독의 문제작인 ‘왕의 눈물’ 언론시사회가 있던 날, 동훈은 전작에서 스크립터로 호흡을 맞췄던 유명진과 낮부터 막걸리에 파전을 곁들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안 가보셔도 돼요?”

“가긴 어딜 가?”

“배급사 사무실요. 가서 언론시사회 반응 어땠는지 확인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기사로 보면 되지. 당장 내일 우리 개봉일인데 뭘 그걸 신경써.”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그럼 진심으로 하는 말이지.”

영화가 아주 나쁘지 않은 이상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기자들의 논조는 다들 칭찬 일색일게 뻔했다.

진짜 반응은 시사회가 끝나고 다른 배급사 직원들이 기자들의 인맥을 타고 실제 영화가 어땠는지 감상을 물어봤을 때 진실이 나온다.

그러니 명진이가 진심이냐고 물어본 거다.

“오오...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저 자신감!”

“자신감은 씻지도 않고 다니는 네가 더 자신감이 있는 거지. 사우나 좀 가라. 인마.”

“오늘 씻고 나왔거든요?”

“그럼 그 수염 좀 깎고 다녀라. 무슨 패션이냐?”

명진은 덥수룩하고 지저분한 턱수염을 사랑스럽게 쓰다듬더니 말했다.

“이렇게 곱게 나는 수염 흔치 않아요. 뭘 모르면서 그러시네.”

“됐고, 이거나 한 번 봐.”

동훈은 후반기 작업이 끝나고 개봉을 준비하는 기간동안 휴식을 가지면서 천천히 준비했던 시나리오를 건넸다.

“이거 뭐에요? 시나리오?”

“응. 네가 처음보는 거야.”

“이야... 영광입니다. 그런데 제목이... 베테랑 형사? 뭔 제목이 이래요?”

“이상하냐?”

“조금 많이 이상한데...”

명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시나리오를 살펴보는데 핸드폰이 지이잉 울리며 문자가 도착했다.

유은진 팀장이 보낸 거였는데 내용이 황당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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