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21화 (21/116)

# 21

오디션(1)

WAS엔터에서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 있을 그 때 동훈은 제작사로 찾아온 세연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 혼자 찾아온 게 아니었다.

그녀의 옆에는 그녀와 전혀 다르게 생겼으면서도 굉장히 예쁜 여자가 함께 동석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옆에 분은?”

“제 동생이에요. 신은정. 인사드려. 이 분이 장동훈 감독님이셔.”

세연의 소개에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벌떡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신은정입니다. 언니가 무작정 끌고 나와서 오게 됐는데 영화감독님을 실물로 뵙게 되고... 하하, 영광입니다.”

신세연에게 동생이 있었던가?

당황스러웠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김영웅 감독이 있던 차원에서는 동생이 연예계에 데뷔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동생이 없었을 수도 있을테니까.

어쨌거나 두 자매는 생긴건 다르지만 성격은 질나쁜 고딩을 혼내준 언니 만큼이나 동생의 성격도 화끈해보였다.

“계약서 작성 때문에 오신 건가요?”

“그렇기도 하고 감독님께서 회사에 계신다고 해서 감독님 계신 날에 맞춰 왔어요.”

“무슨 일인데요?”

“음... 그게...”

궁금해 물어보자 막상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한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동생 은정이 대신 나섰다.

“언니가 소속사를 구했대요.”

“아, 그랬어요? 근데 왜 그렇게 대답을 못헀어요?”

세연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전에 감독님께서 좋은 소속사를 연결시켜 주신다고 했는데 이렇게 결과만 통보하게 돼서...”

“아닙니다. 내가 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연결시켜주면 커미션을 받는 것도 아닌데 미안해할게 뭐가 있어요? 오히려 세연 씨가 내가 연결시켜 준 곳보다 더 좋은 곳으로 했을 수도 있으니까 전혀 미안해 할 필요 없어요.”

순수하게 도와주고 싶어서 이야기했던 건데 의외로 결과가 나쁠 수도 있으니 그녀가 따로 매니지먼트 계약을 했다고 해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뭘...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온 거예요?”

“실은 이번 캐스팅 제의 해주신 거 너무 감사한데, 소속사에서 다른 스케줄을 제시해서 같이 못할 것 같아요. 너무 죄송해서 감독님께는 직접 찾아와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았어요.”

“아... 그러셨구나.”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 말해주니 고마웠다.

이렇게 생각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연예계에 들어오게 해준 보답은 받았은거나 마찬가지니까.

좋은 배우가 된다면 나중에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으니

“같이 참여해야 하는 건데 죄송해요.”

“아니에요. 진짜 괜찮아요. 다른 작품 하셔도 잘 되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어려운 숙제를 끝마친 것처럼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그녀가 마음의 짐을 가진건 아무리 소속사의 의견대로 한다고는 하지만 마음 속에는 배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거다.

그렇게 두 자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다가 문득 든 생각에 입을 열었다.

“혹시 동생분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 고등학생?”

“아, 저요? 하하, 감사합니다. 저 스물하나에요.”

“그래요? 굉장히 어려보였는데.”

원래 그 나이대 또래의 여자들 나이야 쉽게 판별할 수 없다지만 설마 성인이었을 줄은 몰랐다.

“그럼 대학생?”

“네.”

다시 봐도 확실히 언니와 생김새가 무척이나 달랐다.

언니는 성숙한 느낌이라면 동생은 귀여운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쌍둥이가 아니라고 해도 자매면 분명 닮은 점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으니 신기할 뿐이다.

“미인이신데 언니랑 많이 다르네요?”

은정이 입을 가리며 활짝 웃는다.

“하핫! 다들 그렇게 말해요.”

“그런데 왜...?”

뭐라 말을 꺼내기 전에 세연이 경계심어린 표정으로 물어왔다.

동훈은 세연에게 대답할까 하다가 은정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카메라테스트 한번 받아볼 생각 있어요?”

“네? 저기...”

“할래요! 할게요!”

세연이 부정적인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찰나 은정이 잽싸게 동의했다.

동훈은 말리려는 세연에게 물었다.

“동생이 연예계에 들어오는 게 싫으신가요? 그러시면 가족분들이 상의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릴게요.”

“은정이는 아직 어리고...”

“나 안 어려. 나도 해볼래. 감독님 저 카메라테스트라는 거 한번 받아보고 싶어요.”

동훈은 확답 대신 세연에게 다시 물었다.

“괜찮겠어요?”

“후... 일단 알겠어요.”

“괜히 내가 가족간에 분란 일으킨 것 같아서 미안하네. 난 은정 씨도 세연 씨 만큼이나 예뻐서 그냥 보내기 아까웠어요.”

자기가 예쁘다는 말에 은정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은정은 세연의 팔을 잡으며 단호한 시선을 보냈다.

절대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의사표시이리라.

“알겠어, 알겠다니까.”

“앗싸!”

“그럼 잠깐만요.”

마침 촬영장비업체에 반납해야 할 카메라 한 대가 회사에 남아 있었다.

동훈은 능숙하게 카메라를 세팅하고 사무실 벽면을 향해도록 한 뒤 은정에게 말했다.

“한번 와서 서 볼래요? 원래는 스튜디오가서 제대로 된 조명 받고 헤어메이크업도 받은 다음에 찍어야 하는데 느낌만 보는 거니까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언니도 처음에 그렇게 했다고 들었어요. 부담 전혀 없어요.”

보통 카메라테스트를 받는다고 하면 평소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긴장되기 마련인데 은정은 전혀 떨리지 않는 것 같았다.

언니를 닮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 상황이 재밌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테스트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기 좋았다.

“정면 좋구요, 오른쪽 보고 옆으로 서 볼까요? 네, 좋아요. 잠깐 웃어보세요. 네, 좋아요.”

역시 카메라로 보는 은정의 얼굴은 세연 못지않았다.

테스트가 끝나고 나서 동훈은 잔뜩 기대하는 은정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혹시 오디션 나와볼래요?”

“오디션이요?”

세연의 연기에 대한 가능성은 이미 김영웅 감독이 있던 차원에서 수많은 작품을 통해 알고 있었다고 봐야 했다.

반면 있었는지도 몰랐던 동생이 어느 정도나 연기에 대한 잠재력이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기에 세연처럼 당장 연기를 해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시간을 두고 연습을 한 뒤에 어느 정도의 연기력이 나올지 보고 싶었던 거다.

“네. 사실 은정 씨 언니를 해당 배역에 캐스팅하려고 했는데 이번에 무산이 됐잖아요? 그럼 어쩔 수 없이 오디션을 봐야 하는데 은정 씨도 그 오디션 한번 보는 게 어떤가 하구요.”

“할게요. 할 수 있어요.”

다른 무엇보다 그녀의 성격이 참 급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얼굴에 시선을 떼지 않는 그녀가 그렇게 예쁠 수 없었다.

“그럼 일정 나오면 연락 줄 테니까 직원에게 연락처 주고 가세요. 대본 메일로 보내줘야 하니까 메일도 남겨 주시구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은정은 동훈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황당해하는 세연의 팔을 붙잡고 사무실을 나갔다.

*

허름한 골목의 사무실을 나온 세연은 자신의 팔을 붙잡고 희희낙락하는 은정을 떼어내며 자못 엄하게 말했다.

“너, 그렇게 함부로 하겠다, 말겠다 하면 어떻게 해? 너 아직 학생이야.”

은정은 정색하는 세연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 나 학생이야. 학생이면 공부해야 한다고? 그럼 아르바이트는? 나 대학등록금만 일 년에 천만 원이야.”

“등록금 내가 보태줬잖아. 그러니까...”

세연의 반박에 은정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언니가 엄마 노릇 한다고 어느 정도 도와주긴 했지. 그거 받으면서 내가 얼마나 속상하고 미안했는지 알기는 해? 언니 비행가기 전날이면 혹시라도 신경 거슬릴까 봐 집에서 큰소리하나 못 냈어.”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이제부터는 언니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기회를 잡아서 그래. 대학공부? 이거 잘 안 되면 그때 가서 해도 돼. 어차피 대학 나와봤자 또 회사 입사 스트레스받을 건데 나한테 이런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몰라.”

“후... 너 그러다 후회해. 언니 남친이 그러는데...”

은정은 세연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소리질렀다.

“남친 얘기 그만해!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인 그 남친이 도대체 세상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안다고 그래? 언니가 그 남친 말 듣고 이번 소속사 결정한 거 나 솔직히 되게 별로였어. 따지고 보면 장동훈 감독님 때문에 언니가 배우 될 수 있었던 건데 어쩌면 뒤통수 치는 거일 수도 있잖아?”

“그게 무슨 뒤통수야?”

“언니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나 억지로 데리고 온 거잖아? 혼자 오기 부끄러워서. 아니야?”

세연은 은정의 다그침에 대꾸를 하지 못했다.

“...”

“언니 힘들게 살아온 거 알고 거기에 대해 나도 부채의식 있어. 그래서 나도 돈 벌겠다고. 언니가 그 재수 없는 재벌 3세 남친 만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그건 언니 인생이기 때문에 뭐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언니도 내가 이번 오디션 준비하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하지 마. 나도 성인이고 내 인생 내가 사는 거니까.”

*

대학로의 한 소극장,

이제 서른 중반을 바라보는 남자가 종이를 들고 갈등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가 물었다.

“뭘 보는 거야?”

“어? 어... 영화 오디션 공고가 나서.”

“나가보게?”

“그냥 뭔가 해서 봤지.”

“나가봐. 아무리 연극이 좋다지만 제수씨도 생각해야지. 그리고 다다음달이 출산일이라며? 혹시 알아?”

“나간다고 다 되나?”

“그렇지. 나간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고민하고 앉아 있어?”

그 말이 묘하게 설득되는지 남자는 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동료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한 마디를 더 보탰다.

“가서 연극계에 인재가 있다는 걸 증명하고 와. 황정훈이가 어떤 놈이지 보여주고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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