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사공이 되고 싶은 사람들(1)
수월했던 첫날의 촬영 이후 사흘간 이어진 촬영은 조금씩 삐끄덕거리는 마찰음을 내기 시작했다.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엎어졌다 생각했던 작품이 다시 일어선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스태프들이 점차 신인감독의 디렉팅에 하나씩 태클을 들이대기 시작했던 거다.
“씬 넘버 12 다시 3, 집중하고, 땡겼다가 천천히 밀면서... 레디 액션!”
조금 쉰 동훈의 목소리가 현장을 울렸다.
“네가 먼저 날 떠났잖아.”
떠났다가 돌아온 남주를 향해 고함을 지르는 현주, 그런 그녀에게 애틋한 눈빛을 보이는 대호.
“네가 거짓말 했잖아. 아침에 울릉도에 있다던 애가 오후에 놀이공원에 있다는 게 말이 돼?”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어.”
서로간의 감정이 오가는 이때,
“컷!”
동훈이 촬영을 중단 시켰다.
현주와 대호는 자신의 연기가 문제가 있었는지 의문의 눈빛을 보냈지만 동훈은 배우가 아닌 촬영감독에게 시선을 보냈다.
“배우 얼굴 너무 클로즈업 하시면 안 됩니다. 몇 번을 말씀드려요?”
촬영감독인 오동철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이렇게 해야 관객들이 확 몰입한다고.”
“아뇨, 이게 드라마도 아니고 로맨스 코믹 액션 영환데 감정을 깊게 잡을 필요가 없어요. 쉽게쉽게 가면 되는데 갑자기 마스크를 확 빨아들이면 보는 관객도 부담스러워요. 쉽게 가자구요.”
동훈의 말이 마음에 안 드는지 오동철 촬영감독이 불만 어린 목소리를 토해냈다.
“장 감독은 욕심이 없네. 신인감독답지 않게... 아니면 영화를 너무 쉽게 보는건가?”
뼈가 있는 말이다.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욕심이 없어 보인다는 말은 실력도 없는데 노력도 안 한다는 말이나 진배 없었다.
만약 인맥이 탄탄한 신인감독이었다면 이런 수모는 겪지 않았을 걸 안다.
그럼에도 크게 충격받지 않은건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요 며칠간 촬영이 너무 순조로워 더 이상할 지경이었다.
“사람 잘못 보셨네요. 저 욕심 많습니다. 제가 만든 영화 무조건 성공시킬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오동철 촬영감독은 천친히 동훈 앞으로 걸어와 다른 스태프들이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볼 때 장 감독 고집은 센데 디렉팅엔 철학이 없네.”
동훈은 누가 듣던 말던 목소리를 죽이지 않았다.
“철학은 없을지 몰라도 제 영화에는 관객이 많이 들어올 겁니다. 그리고 철학에 대해 가르침을 주고 싶으면 지금 대학가서 강사하시면 됩니다. 가시겠어요?”
동훈의 말이 꽤 직설적이었는지 오동철 감독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지금 오 감독이 물러서면 이 자리에 있는 수많은 스태프들이 보는 앞에서 개쪽을 당하게 된다.
그렇다고 관두겠다고 하다간 계약 위반으로 지금까지 받은 돈을 다 토해내는 건 물론이고 제작사 ‘영화세상’과 앞으로 같이 일할 생각은 말아야 할 것이다.
신입 감독이라 쉽게 보고 기선을 잡으려다가 오히려 진퇴양난에 빠진 거다.
이때 또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다.
“장 감독 말이 너무 심하네. 오 감독도 작품 잘 되자고 하는 말인데 그렇게 몰아붙이면 쓰나. 그리고 내가 현주 위해서 조명을 얼마나 깔아줬는데. 괜찮은 마스크 최대한 살려야지 왜 죽이려고 그래.”
조명감독인 유세훈 감독이었다.
또 있었다.
“오 감독 말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야. 그리고 여기 소품들도 이해가 안 가는게 많은데 난 그냥 참고 있는 거였다고.”
하얗게 센 머리의 송병호 미술감독이다.
김영웅 감독의 경험에 따르면 여기서 밀리는 순간 앞으로 계속 저들에게 끌려가야 한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강하게 찍어 눌러야 한다.
“그럼 참지 마시고 그때그때 알려주시지 그랬어요.”
“어허... 장 감독이 지금 너무 화가 나 있는 것 같은데...”
“진짜 화내 볼까요? 지금 현장에서 뭐하는 짓입니까? 저 엿먹이자고 이러는 거예요? 영화 다시 엎어지길 원해요? 그렇게 해드려요?”
“아니, 누가 그렇다나? 장 감독 흥분하지 말고...”
“흥분하고 자시고 할 거 없이 여기서 결정하세요. 손 떼고 싶어요? 떼고 싶은 사람 나가세요. 물론 계약 파기되는 거 알고 있죠?”
오동철 촬영감독이 급기야 버럭 소리질렀다.
“장동훈 감독! 지금 협박하는거야?”
“협박이 아니라 사실을 다시 인지시키는 겁니다. 오 감독님 경력 많은 거 인정합니다. 하지만 경력만 가지고 영화 흥행시키는 거 아닙니다. 오 감독님의 촬영기법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올드하다구요.”
“뭐? 오, 올드하다고? 장 감독이 촬영기법에 대해 뭘 알아?”
역시나 이들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단순히 감독의 지시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그들이 보기에 영화학과나 영화아카데미를 나오지 않은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거다.
“제가 실력이 떨어지는지 아닌지는 개봉 후 관객들이 평가할 겁니다. 그 전에 촬영 중에는 여러분들에게 실력을 평가받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제 실력 평가하고 싶으시면 교단가서 평가하세요. 안 말립니다.”
“허...”
오 감독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헛웃음만 흘렸다.
“없으시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정말 촬영 접자는게 되니 그 어느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동훈은 그들을 찬찬히 둘러보고는 말했다.
“그럼 제 말을 따르는 걸로 알겠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의견을 제시하는 건 언제나 환영합니다만 일방적으로 본인의 생각대로 움직인다면 영화 촬영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계약 파기하겠습니다. 아시겠죠?”
“네!”
눈치 빠른 연출부 이경수 조감독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다른 스태프들 모두 대답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동훈은 그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어차피 점심 시간이니까 잠깐 쉬겠습니다. 경수야, 연출부 데리고 식사 나눠줘라.”
“알겠습니다.”
동훈은 도시락 하나를 들고 모니터 앞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이런 일이 언젠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벌어지고 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김영웅 감독이 있던 곳에서는 배우와 감독이 주먹다짐하면서 싸운 적도 있었고 여기서도 종종 촬영하다 언쟁이 벌어졌기에 크게 마음 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안타깝기는 했다.
입맛도 없어 도시락을 깨작거리며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드세요?”
“아, 네. 식사하시...”
밥 먹었냐고 물어보려고 하니 그녀가 도시락 하나를 들고 있는게 보인다.
“혼자 쓸쓸하게 식사하시길래 같이 먹자고 하려구요.”
“불편하지 않다면야... 앉으세요.”
그녀의 매니저인 석태가 쪼르르 다가와 그녀의 전용의자를 재빠르게 셋팅한다.
“놀라셨어요?”
“뭘요?”
현주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동훈을 보더니 이내 배시시 웃음 지었다.
“우리 감독님 의외로 쎈 구석이 있으시네?”
“아... 방금 전 일 때문에요?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촬영감독의 경력이 18년, 조명감독의 경력이 14년, 미술감독의 경력이 무려 21년이잖아요. 영화학과나 영화아카데미를 나오지 못한 저의 디렉팅이 그들이 보기에 참견할 거리 투성이었던 겁니다.”
“완전 부처의 마음인데요?”
“부처는요 무슨... 현주씨는 게임 안 좋아하시죠?”
“게임이요?”
“네. 게임을 하거나 바둑을 두다 보면요 자신이 남보다 더 잘안다고 자부하면 자부할수록 훈수질을 하고 싶어지거든요. 그게 정말 참기 힘들어요. 저들도 그랬을 겁니다.”
“후후... 꼭 그런 마음은 아니었을걸요?”
눈빛을 반짝이는 그녀는 확실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독을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동훈은 그녀의 아름다움이 어쩐지 조금 꺼려졌다.
“그런 마음뿐만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촬영은 무사히 끝낼 거고 영화는 성공할 테니까요.”
무덤덤하지만 강한 확신을 내뱉는 동훈이 특이했는지 그녀는 배시시 웃기만 하며 한참동안 말없이 도시락을 먹었다.
도시락을 다 먹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특유의 나른하면서도 도도한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 잘해봐요. 주인공 캐릭터 딱 좋아요.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 꼭 초보 감독님들이 각본 잘 써놓고 중간에 삐딱선을 타시거든요? 콘티가 잘 안 나오면 저랑 상의하셨으면 좋겠네요.”
결국 그녀도 이걸 이야기하고 싶어서 같이 밥을 먹자고 온 것이었다.
동훈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보자 그녀가 채자 말을 이었다.
“싸우자고 온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나 부탁하러 온 거거든요. 그리고 촬영장에 적 밖에 없으면 무사히 촬영 마치기 힘들어요. 아군 하나쯤은 있어도 되지 않아요? 나 정도면 꽤 괜찮은 아군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깽판만 안 쳐주면 감사할 뿐이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