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8화 (8/116)

# 8

배우 할 생각 없으세요?(2)

왜 못 알아봤을까?

저쪽 차원에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톱 여배우 신세연을 눈앞에서 못 알아보다니...

화장이 조금 연하고 너무 내츄럴하게 입고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못 알아 봤지만 분명 그녀는 신세연이 맞았다.

연예인과 일반인은 똑같이 예쁘고 잘생겼다고 해도 생긴 것 외적으로 뿜어져나오는 기운이 다르다.

쉽게 말하면 포스라고도 할수 있고 후광이라고도 할수 있겠다.

어쨌거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목을 받으며 수년 이상을 보내오면 눈빛부터가 달라진다.

그래서 너무도 일반인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신세연을 바로 앞에서 보고도 저쪽에서 톱 배우로 활약했던 그녀임을 알아채지 못한거다.

“이런 바보...”

동훈은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후다닥 걸을음 빨리했다.

시야를 벗어나긴 했지만 빨리 쫓아간다면 분명 연락처는 받을 수 있을 거...

“뭐, 뭐에요!”

너무 빨리 달려왔는지 걸어가던 그녀가 달려오던 걸음소리에 놀라 황급히 뒷걸음질을 친다.

“아, 미안해요. 혹시 신... 아니다. 혹시 연기 하세요?”

단박에 이름을 알아내면 더 오해할까봐 이름 대신 현재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무슨 소리에요?”

“연기, 그러니까 직업이 배우시냐구요.”

“아닌데요?”

배우가 아니라는데 이걸 좋아해야 하는건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런가요? 어... 그럼 혹시 앞으로 계획은 있으신가요?”

“무슨 계획이요?”

“배우가 되실...”

“아닌데요?”

스스로가 생각해도 질문이 띨빵 했음을 인정했다.

배우가 되실 계획이 있냐니...

어쨌든 일단 신세연의 눈빛에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든 걸 보고 숨을 고르고 가지고 있던 명함지갑에서 갓 만들어진 명함을 하나 꺼냈다.

“다름 아니라 제가 영화감독을 하고 있는데요.”

“영화감독님이라구요?”

“네. 지금 ‘6급 공무원’이라는 영화 찍고 있어요. 임현주씨가 타이틀롤 맡고 있는...”

“어머, 대박! 임현주 영화를 아저씨가... 아니, 그... 감독님이 찍고 계신다구요?”

“네.”

“와! 나 현주 언니 엄청 좋아하는데! 그런데 전 왜...?”

“혹시 지금 연기쪽 공부하고 있으시면 단역으로 아르바이트 해볼 생각 없는가해서요.”

매니지먼트 회사 사장도 아니고 신세연을 톱스타로 만들기 위해 이런 짓을 하는게 아니었다.

그저 저쪽 차원에서 봤던 아름답고 좋은 연기를 여기서도 보여줄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준다면 그거야 더욱 좋은 일이고.

그런데 신세연의 반응이 뜻밖이다.

“어... 죄송한데 제가 그런 쪽에는 생각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건 없구요. 저는 배우가 딱 천직이실 것 같아서... 혹시 무슨 다른 일 하세요?”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네. 지금 항공사 스튜어디스로 일하고 있는데요.”

세상에... 천하의 신세연이 이곳에서 항공사 스튜어디스로 근무하고 있다니...

예전이었다면 ‘그게 뭐?’ 하겠지만 김영웅 감독의 지식을 알고 나니 이것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문득 그녀가 스튜어디스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무척이나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러시구나... 어... 어렸을때부터 꿈이셨어요? 스튜어디스가?”

“그건 왜요?”

조금 실례되는 질문이라는 생각이었는지 그녀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스튜어디스가 배우보다 안 좋다는 건 절대, 절~대 아니구요. 다만 너무 배우에 어울리는 상이라서... 아, 예쁘시다는 말이에요.”

“그,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예쁘다는 말 싫어하는 여자 없다더니 어렸을때부터 미인이라는 말을 줄곧 들으며 살아왔을텐데도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마 다른 사람도 아닌 영화감독한테 예쁘다는 말을 들으니 더 좋은가보다.

“이런 말하면 믿지 않으실 수 있겠지만 제가 매니지먼트사 소속도 아니고 길가다 아무한테나 명함주고 그러지 않거든요. 이 명함도 은행 대출 받으려고 만든 거라서... 어쨌든 오해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린 거구요. 정말정말 배우하시면 대성할 것 같아서 말씀드린거예요. 생각해보시고 생각 바뀌시면 연락 주세요.”

그녀는 명함을 두손에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차피 처음에는 단역부터 시작이라... 여기 투잡으로 하시는 분도 많으시거든요. 나중에 시간 나실 때 잠깐 알바하신다는 생각으로 부담없이... 분위기만 익힌다고 생각하시고 오셔서 현장 돌아가는 거, 배우들 준비하고 연기하는거 보신 다음에 그러고도 싫으시면 쿨하게 포기하겠습니다.”

아이돌 가수들 중 종종 드라마나 영화를 하고 나서 다시 아이돌 생활을 하지 않으려 하는 이들이 있다.

아이돌 데뷔를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인사하는 건데 데뷔하게되면 가장 막내니 어딜 가든 전부 인사할 사람들밖에 없다.

PD는 말할 것도 없고 작가나 스태프들, 그리고 아이돌 가수들이 한둘인가?

처음에는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다니는 아이돌을 꿈꿔왔다고 해도 막상 생활을 시작하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마치 ‘남자라면 해병대를 다녀와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해병대에 신청했다가 입대하고 나서 후회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허리를 접고 다니다 운이 좋아 조금 뜬다고 해도 그 지위를 제대로 누리는 시간도 없이 행사 다니기 바쁘다.

하루 종일 커다란 밴에서 전국을 누비며 행사를 다니다 보면 무대위의 화려한 순간보다 차에서 골아떨어져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도 모른채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정신없는 생활을 하다 소속사 빽으로 드라마 하나 꽂히고 나서 촬영장에 간 순간, 여기저기서 ‘배우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생활을 반복하다 갑자기 주변 스태프들이 떠받들어주기 시작하면 고달프기만 했던 연예계 생활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는 거다.

심지어 배우들은 하루에 세 번에서 많게는 다섯 번도 넘게 전국을 돌아다니는 행사 따위도 다니지 않는다.

놀고 싶을땐 재충전 한다는 명목으로 쉬다가 작품 하나 꽃히면 몇 달 바짝 일하고 수억을 땡긴다.

돈은 가수가 많이 벌지 몰라도 배우들의 자유로운 생활을 맛보기로 조금 입에 대기 시작하면 눈이 돌아가는 거다.

신세연에게 잠깐 현장에 와서 알바좀 하다 가라는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현장에 와서 그녀가 동경하는, 또는 동경하지 않더라도 공주처럼 대접받는 여배우들을 보면 지금까지 배우가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부터 저들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질 거라고 확신했다.

“괜히 실례될 것 같은데...”

그녀의 눈빛에 갈등이 어린 걸 보면 꼭 배우를 안 좋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실례는요. 괜찮아요. 미리 연락만 주시면 촬영 스케줄 보고 적당한 때 맞춰서 오시면 되니까 절대 우리쪽에서 불편할 건 없어요. 대신에 그...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제가 이름을 몰라서...”

이름을 물어본 건 혹시나 자신이 잘못 알고 있을까봐 하는 걱정 때문과 나중에 이름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말해버릴까봐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음... 이름은 제가 연락드리게 되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녹록치가 않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럼 전 이만...”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총총거리며 멀어져갔다.

과연 그녀에게서 연락이 다시 올까?

잘 모르겠다.

*

“대박! 야, 너 내가 방금 누구 만나고 온 줄 알아?”

신세연은 집으로 들어와 침대에 엎드려 만화책을 보는 동생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아! 아파!”

아직 대학도 들어가지 못했을 것 같은 그녀는 언니인 신세연 만큼이나 예뻤다.

“야, 이것 좀 봐.”

“뭐, 뭔데?”

“이거 보여? 영화감독 장동훈.”

“영화감독 장동훈? 그게 누군데?”

“음...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번에 임현주랑 같이 영화 찍는다고 하던데?”

“임현주? 그 임현주?”

“그래, 그 임현주 말고 다른 임현주가 어디 있니?”

“그런 사람을 언니가 왜 만나?”

“글쎄... 왜 만났을까?”

잠시 어깨를 으쓱이며 므흣한 웃음을 짓던 신세연은 여동생에게 브이자를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몸이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단 말씀! 나더러 촬영장에 한번 오래!”

“대박! 언니 그래서 간다고 했어?”

“아니, 내가 왜 그런데를 가니?”

“근데 왜 그렇게 좋아해?”

“다른 사람도 아닌 무려 영.화.감.독에게 이 미모를 인정받았잖아. 이 언니가 이 정도라 이말이지.”

자랑하는 세연에게 동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해할 수가 없네. 좋은 기회 아니야? 언니 혹시 남친 때문에 그래?”

“아닌데?”

“맞네 뭘... 언니, 남친 너무 믿지 마라. 사장 아들이면 뭐해? 언니한테 프로포즈 한 것도 아니고.”

세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 언니 남친한테 심한 말 하지 마.”

“심한 말이 아니라 그렇잖아. 그 재벌 3세 남친 눈치본다고 잡지 모델 제의온 것도 거절하고, 언니네 회사서 모델 제의한 것도 거절했잖아. 그렇다고 남들 다 받는 고가의 백 하나를 받아봤어? 난 정말 언니가 이해가 안 돼.”

“내가 돈 보고 남자 만나는 줄 알아? 어휴, 됐다. 그만하자.”

“난 그 감독이란 사람 잘 모르지만 잘 알아봐. 제발 아무짝에도 도움 안되는 남친한테 휘둘리느라 언니 인생 꼬이게 하지 말고.”

세연은 뭐라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왠지 동생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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