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
'됐다… 이제 어떻게 되던 간에… 무슨 상관이야.'
타격을 허용하자 동팔은 몸을 돌리며 뒤를 보았다. 이제 투수와 타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대로 펜스를 넘어갈지, 아닐지 알 수가 없다.
이제 두 사람의 운명의 결정은 두 사람의 손을 떠났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역할이 끝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타구의 방향을 보자, 중견수인 마크는 이전에 없던 힘을 다해 전력으로 뛰었다. 달리면서 뒤돌아 공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떨어질지를 확인했다.
공은 거의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마크도 자신이 펜스 앞에 부딪칠 수 있었다. 그러나 마크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높인 다음, 오랜 시간 동안 해왔던 대로 높이 뛰었다.
휙~.
공이 펜스를 넘어가기 전, 마크의 손에 들린 글러브가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중계 카메라가 그 순간을 잡으려 했지만, 너무 빨라 제대로 잡지 못했다.
퍽~ 털썩.
마크는 펜스에 강하게 부딪히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마크를 걱정하며 다른 두 외야수가 달려왔다.
"마크!!"
"괜찮아?"
그들의 말에 마크는 너무 아픈지 몸을 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마크는 자신이 웃는 이유, 자신이 잡은 공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와!!!!"
하얀 공이 마크의 글러브 안에 있었다. 펜스 높이 뛴 것과 그의 글러브가 생각보다 높이 갔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정말로 공을 잡았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선명하게 있는 공은 이번 월드시리즈의 우승자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게 했다.
"양키즈~ 우승!!!"
"마크 선수, 대단합니다. 두 매머드의 승부에서 그들의 승패를 결정지었습니다!!"
마크는 기뻤다. 단순히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를 크게 기쁘게 만드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동팔이 형한테 도움이 되다니!! 으아~!!!!'
그리고 마음속의 외침은 그의 기쁨과 함께 큰 소리로 터져 나왔다. 동팔도 더그아웃에서 뛰쳐나온 선수들의 축하를 받으며 우승을 기뻐했다. 하지만 동팔은 마냥 기쁠 수는 없었다.
이제 자신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여 조건을 만족, 해방이 된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동욱은 스크레이치에게 영혼을 곧 강탈당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동욱은 동팔에게 웃으며 작게(이미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들리지도 않지만) 말했다.
"축하 해."
# 에필로그
장례식은 힘들다. 오는 조문객도, 맞이하는 상주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죽음은 주변을 침울하고 무겁게 만든다.
한동욱의 어머니 장례식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른 장례식과 다른 점은 어머니와 가족들과 아는 사람만 오는 소소한 장례식이 아니었다.
지금 동욱의 장례식장에선 메이저리그 중계로만 볼 수 있었던 LA 다저스의 선수와 코치, 감독이 전부 와 있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라 일부 선수를 제외하고 먹는 사람은 없었다. 유명인들이 한 번에 모인 모습을 보며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수군거렸다.
"야, 야. 나 지금 사진 찍으면 안 될까?"
"장례식에서? 너 지금 장난하냐?"
아무리 기자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특히 정치부도 아니고, 설령 그렇다고 한들 사람들이 주목하는 큰 사고로 인해 생긴 장례식장이라면 미리 양해를 구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럼에도 일부 스포츠 기자들은 사진기를 꺼내고 싶은 욕망을 숨길 수 없었다.
"으아… 저기 있는 선수들의 연봉이 대체 얼마야?"
장례식에는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저스 선수들이 단체로 조문을 왔다. 원래는 감독과 선수 대표만 가기로 했지만, 전원이 바라서 오게 되었다.
그들의 말에 한국에 빨리 온 지예가 선배로서 말했다.
"연봉에 신경쓰지 말고 다른 것을 좀 보지 그래? 힘든 일정에도 동욱의 어머니 장례식이 와줄 정도로 동욱의 인간관계가 좋다는 건? 그리고 그들의 인간다움은 보이지 않아?"
물론 이미 이전부터 기사를 써온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그러면서 슬쩍 주변을 보았다.
'프로야구 총재에 선수협회장은 물론 지아의 관계자들까지 전부 왔었지?'
조화는 물론 의례용으로 가져온 깃발들도 화려했다. 그리고 장례식의 마지막에는 동팔과 지완도 와서 위로를 건넸다.
어머니를 화장하고 납골당에 안치한 그 다음날. 동팔과 동욱이 만났다.
"생각보다 멀쩡하다."
동팔의 말에 동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미 항상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어. 그래도 아쉬움과 허탈함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것도 그렇지만, 다른 것도 있잖아."
그건 다름 아닌 동욱의 영혼을 강탈하기 위해 스크레이치가 오는 것이다. 동욱이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왔더라고. 실패했지만."
"실패?"
다행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비록 자신은 살아남게 되었지만, 이대로 괜찮은가 싶었다. 그런데 실패했다고? 분명히 좋은 소식이지만 의아한 사실이었다.
"이유는 계약유지 의무 실패. 그 녀석에겐 월드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어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의무가 있어. 하지만 그 전날에 이미 끝났지. 잠시 잊고 있었는데 그 녀석이 내 영혼을 강탈하려다 실패하는 것을 보자 알았거든."
간단하게 말을 했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스크레이치가 눈앞에 나타나 자신의 영혼을 거두려 할 때, 그의 뒤에서 웜우드가 거대한 낫을 들고 겨누며 나타나지 않았다면 심장마비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웜우드가 말했다.
'안녕, 삼촌. 아쉽지만 어떻게 해? 계약유지 의무 위반으로 영혼강탈 권한을 잃어버렸는데.'
'네 이놈!!'
'소리치지 마. 이 낫이 어떤 낫인지 알면 함부로 난동피우지 마. 지금은 괜찮지만, 나를 공격하는 순간 삼촌의 목을 날려버릴 거야.'
웜우드의 말에 스크레이치는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웜우드는 그를 놀리듯이 말했다.
'아, 계약유지 의무 위반이니 영혼강탈은 당연히 안 되고, 덤으로 강제로 강탈하려 한 위반 추가로 본인의 힘은 절반 밖에 회수할 수 없어. 그거라도 건지고 싶지 않다면 날 공격하던가, 아니면 지금 바로… 도망치던가. 그렇지 않아도 사냥감의 낙인이 찍혀버렸는데 조금이라도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려면 힘이 있어야 하지 않아?'
웜우드의 말에 스크레이치는 주변을 돌아본다. 지하에 계신 아버지가 보낸 낙인이 사라지기 전까지, 자신은 악마들의 사냥감이 되어야 한다. 그런 와중에 죽거나 사로잡히면 모든 힘을 잃고 소멸한다.
'네 이놈…낙인의 시간이 끝나면 가만두지 않겠다.'
스크레이치는 그 말을 하고 동욱의 몸에 서린 자신의 힘의 절반을 회수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남아 있는 웜우드를 보며 동욱이 물었다.
"너냐? 엄마를 죽인게……?"
'부정하지 않을게. 하지만 이 방법이 아니면 둘 모두를 살릴 수가 없었어. 그리고… 이미 너의 어머니는 정해진 수명 이상을 살고 계셨거든. 그분의 허용으로 살아계셨을 뿐이야.'
웜우드의 말에 동욱은 절로 이빨이 갈렸다. 웜우드가 말했다.
'이미 부모님과 만났겠지만, 계속 있어봐야 고생인 이 세상을 떠나, 더 좋은 곳으로 가셨다. 너는 네 사랑하는 어머니가 너의 욕심대로 이 세상에서 고생하다 살기를 바라는 거야? 인생의 반려를 일찍 잃고, 이젠 자신의 품을 떠난 자식을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길 바라나? 물론 죽는다고 다 좋은 곳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웜우드의 말에 동욱이 물었다.
"그럼…그건 꿈이 아니었어?"
그때, 엄마와 아빠의 젊었을 적 모습을 보았다. 그땐 사실이라 생각했지만, 깨어나자 꿈이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허탈했던가. 그래도 자신이 생각하는 어머니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라 생각하고 실책을 한 선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꿈 맞아. 하지만 현실이기도 하지.'
그리고 웜우드는 거대한 낫을 치우며 말했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도 얻었고, 삼촌한테 통쾌하게 복수도 했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또 보자고. 가능한 좋을 일로.'
그 말을 남기고 웜우드는 사라졌다.
그때의 일을 동욱이 말하자 동팔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 휴~ 다행이다. 솔직히 우승을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쁘진 않았거든. 그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확 놓이네."
그러면서 혹시나 하며 물어보았다.
"설마 나를 안심시키려고 거짓말 하려는 건 아니지?"
그러자 동욱이 답했다.
"다음 시즌 시작하기 전에 드러날 거짓말을 해서 뭐해?"
그리곤 동팔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뭐 할 거야? 해방도 되었겠다. 월드시리즈 우승에 목을 맬 이유는 사라졌잖아."
* * *
한편, 세계의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스크레이치는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운을 최대한 숨기고 있었다. 그래서 중급 이하의 악마들은 그가 바로 옆에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상급 이상부터는 아니었다.
"찾았다."
"한때 악마장관이었던 사냥감이라… 오랜 만에 몸보신을 할 수 있겠어."
"공평하게 삼등분이다. 그렇지 않아도 도망치느라 힘을 소모한 것 같으니 빨리 처리하자고. 다른 놈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그들은 스크레이치를 발견하자 입맛을 다셨다. 상급 악마 셋과 동시에 상대하게 되었지만, 스크레이치는 오히려 웃었다.
"멍청한 놈들… 이러니 원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스크레이치는 숨겨 놓은 힘을 개방했다. 그러자 자신을 노리려던 세 상급 악마가 있는 곳을 휘감았다. 그리고 말했다.
"사냥감과 사냥꾼은 한 끝 차이다. 먹으면 사냥꾼, 먹히면 사냥감."
그 말을 하곤, 자신의 힘으로 세 악마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강하고 빠르게 휘감았다.
"이, 이런!!"
"우릴 속였어?"
스크레이치의 힘에 속박된 악마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자신을 향해 입을 쩌억 벌리는 스크레이치의 모습을.
인간의 형태가 사라지고, 거대한 뱀이 입을 벌리듯 그의 머리가 변화되었다.
우적, 우적!
세 악마를 단번에 먹어치운 스크레이치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주변에는 세 악마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그러다 스크레이치는 자신의 주변에 이상함을 느꼈다.
"휴~ 늦지 않게 도착했군."
"역시 미끼를 깔아놔야 한다고 말했잖아."
"세 악마를 먹고, 다시 본인의 힘이라… 나름 괜찮겠어."
"그런데 너무 많지 않아? 할당량을 생각하면 좋지 않은데……."
이미 주변에는 자신과 동급인 최상급 악마들이 여섯 있었다. 이 상황을 염두하여 빨리 먹어치웠지만, 그것도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으득.
그렇다고 순순히 먹잇감이 될 생각은 없었다.
"와 봐. 제일 먼저 달려드는 놈부터 먹어주지."
그의 말에 한 악마가 나와서 말했다.
"동시에 달려들면?"
"……."
그 악마는 손에 든 돌을 악마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돌을 위로 던지고,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악마들은 스크레이치에게 달려들었다. 배고픈 이리떼가 사냥감에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물어뜯는 것처럼.
* * *
동욱의 물음에 동팔이 답했다.
"물론 우승하도록 노력해야지. 할 수 있다면 최대한 해보는게 좋잖아. 넌 안 그러냐?"
"그야 그렇지……. 지기 위해 경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그거 말고도 다른 목표가 있다면… 역시 악마의 계략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겠지. 마크처럼."
<완결>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더욱 좋은 작품으로 여러분들을 찾아뵙겠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