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다저스의 타순은 1번부터 시작이다. 충분히 좋은 타순으로 시작하지만, 지금 다저스의 팬들에겐 그조차 아쉬웠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주자가 한 명 이상 나간 상태에서 동욱이 타석에 서기를 바란다. 지금 그만큼 믿을 수 있는 타자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없었다.
동시에 양키즈의 팬들은 반대로 생각했다.
"제발 이대로 끝내자. 동욱이 올라오면 어떻게 될지 몰라."
연장전에 가면 양키즈가 더 유리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이대로 경기를 끝내는 것이다. 점수를 잃지 않고.
각자의 상반된 바람을 등에 업고, 양키즈 선수들은 수비 위치로, 다저스는 어떻게든 공격을 풀어나가기 위해 쉴 수 있는 사람은 쉬고 있었다.
그 중에 이미 나온 1번 타자를 제외하고 2,3번 타자는 동욱에게 가서 물었다.
"동팔의 공을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해?"
그들의 물음에 동욱은 대답하기가 난감했다. 그래도 해줄 말은 있었다.
"볼넷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공이 많다는 의미야. 빠른공이 가운데 오는 것 같으면 일단 휘둘러. 그리고 조금 느리다 싶으면 참고. 그리고 풀카운트가 되면 본능에 맡기는 편이 편해. 동팔의 공은 예상한다고 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동욱의 말에 그들이 말했다.
"어? 그럼 운에 의지해야 한다는 거야?"
"사실 그렇긴 하지. 동팔의 공은 예상하는 건 꼭 안 오거든."
이건 동팔의 능력이라기보다 혜진의 분석력이 뛰어난 결과였지만, 다저스의 선수들이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럼… 어디 이번에는 본능에 몸을 맡겨 보자. 그동안 해온 것이 몸에 새겨져 있는데 설마 그게 어디로 가진 않았으니까."
그 말을 하고 2번 타자는 다시 예비타석에, 3번 타자도 곧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했다. 팀의 4번 타자인 동욱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 있었다.
'이미 능력을 강화시켜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타율은 불가능해. 그리고 그건 동팔이도 알아차렸을 것이 분명하고.'
3점 홈런을 치기 위해 사용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니면 1점 차이가 아닌 4점 차이의 격차에서 승부를 걸어야 했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자신이 타석에 서더라도 확실한 홈런 가능성이 없다는 것. 방금 전에 동료가 한 말대로 그동안 노력했고, 훈련했던 것을 의지할 순간이었다.
그 생각을 하고 배트를 쥐는 순간, 동료는 물론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들렸다.
"야, 동팔이 좌완으로 안 던져?"
"어제 선발인데 우완이라고?"
어제 오른팔로 던진 선발 투수. 그것도 완봉승을 거둔 투수가 그 다음날 오른팔로 던진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양키즈 더그아웃에서도 동팔이 실수했다고 생각해서 오른손에 낄 수 있는 글러브를 코치가 가지고 나갔다.
하지만 동팔은 그대로 던지겠다고 말하고 코치를 내려 보냈다. 다른 사람들은 의아했지만, 동욱은 아니었다.
'이미 다 회복한 오른팔을 두고 덜 익숙한 왼팔로 던질 이유는 없지. 특히 제일 중요한 지금이라면.'
그만큼 동팔은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첫 타자를 가볍게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스트라이크~ 아웃!!"
이제 다저스에게 남은 타석은 두개. 2번 타자가 올라가고, 3번 타자가 예비타석에 들어섰다. 2번 타자는 어떻게든 진루를 하기 위해 기를 썼다. 하지만 그도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경기에 더 익숙한 손으로 던지겠다는 거겠지? 바꿔 말하면 그만큼 체력이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아.'
이것은 그 다음에 올라올 3번 타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 사실을 짐작한 동욱은 예비 타석에 있는 그에게 말했다.
"체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마. 동팔의 체력은 너희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 앞으로 세 이닝 이상은 전력으로 던질 수 있는 녀석이니까 그걸 감안하는 것이 좋아."
믿을 수 없는 말이겠지만, 그들 중에서 동팔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예비타석에 있던 타자는 그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그때, 두 번째 타자가 삼진으로 타석에서 물러났다.
이제 남은 타석은 단 하나.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때, 관중들은 그를 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 들어올지 모를, 예비타석에 들어선 한동욱을 이어서 봤다.
그리고 다저스 팬들의 염원이 이루어졌다.
따악!!
결코 봐 주지 않는 동팔의 공이었지만, 3번 타자는 거의 눈을 감고 휘둘러 안타를 만들었다. 그가 생각한 것은 오직 공의 타이밍. 그리고 동욱의 조언대로 동팔의 상태가 최상임을 감안하여 휘둘렀고, 그 빛을 보게 되었다.
이로서 2사에 주자는 1루. 그리고 타석에 한동욱이 올라왔다.
* * *
"홈런! 홈런! 홈런! 홈런! 홈런!"
다저스의 팬들은 동욱에게 자신들의 바람을 계속 외쳤다.
"아웃! 아웃! 아웃! 아웃! 아웃!"
반면 양키즈의 팬들은 동팔이 동욱을 상대로 삼진이나 범타로 끝내길 바라고 있었다. 상반된 결과를 외치는 양 팀의 관중들 중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심지어 백발 노파마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일어서며 응원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중계진이 말했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벌써 전율이 일어납니다. 점수는 단 한점 차이. 그리고 이번에 홈런을 치면 끝내기로 다저스의 우승입니다. 반대로 아웃되면 양키즈의 우승."
"상황도 극적인데 상대하는 두 선수도 용호상박입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리고 타석에는 역시 메이저리그 최강의 타자가 서 있죠. 지금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하는 중계진들의 다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았지만, 정작 상대하는 두 사람의 마음은 태풍의 중심처럼 평온했다.
'뭐부터 던지지? 능력이 있을 때보다 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했다간 그대로 넘어갈 텐데.'
'분명히 내가 능력을 강화시키는 바람에 지금은 사용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냐.'
동팔이 포수 브라이언 산체스와 사인을 교환한 다음 던질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동욱도 칠 준비를 마쳤다.
스윽~ 휙!!
항상 같은 동작으로, 간혹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거나 속이기 위해 약간 다르게 던지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니 동욱은 동팔의 투구폼을 분석할 생각도, 여유도 없었다.
날아오는 공의 초반 궤적을 보자 동욱은 생각했다.
'가운데?'
그래서 순간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본능적인 경고에 즉시 배트를 회수했다.
휙~ 퍽!
투구는 한 가운데로 오는 것 같더니 바깥쪽으로 빠졌다. 그래서 볼카운트는 동욱에게 아주 조금 유리했다. 그러나 동팔도 나쁘지 않았다.
'다른 때라면 움직이지도 않을 공이었어, 그런데도 움찔거렸다? 잘하면 속일 수도 있다는 건가?'
하지만 방금 전에 던진 공도 타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위험한 공이었다. 첫 경합의 순간, 모든 관중들은 동팔의 공에 집중한 나머지 응원하는 것도 잠시 잊었다. 하지만 이내 소리를 높여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다시 응원했다.
거친 응원소리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집중하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럼 이번에…….'
동팔은 승부를 보기 위해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공을 던졌다.
쉭!
빠른공이 날아오자 동욱은 자신도 모르게 배트를 휘둘렀다.
타악!!
공은 아랫부분을 맞더니 높이 떠서 뒤로 넘어갔다. 파울볼이라 스트라이크가 하나 추가되었다. 하지만 동팔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걸 쳐? 어떻게?'
지금 구속은 동팔이 던질 수 있는 최고 구속인 시속 167km였다. 동욱의 능력이 있다면 충분히 감당할 속도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도 동욱은 배트를 휘둘렀고, 건드리는 것도 성공했다.
'능력이 없어도 역시 기본이 되어 있다는 거겠지.'
동팔은 동욱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동욱은 나타나지 않았을 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운이 좋았어. 보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든 건드리다니…….'
그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이어서 생각했다.
'동팔이 아는 나는 어디까지나 악마의 능력으로 강해진 나야. 지금의 나에 대해선 잘 모르니까 감이 안 오겠지. 어차피 어느 쪽이든 전력을 다하겠지만, 나에게 맞는 공을 생각하려면 머리가 복잡해질 거야.'
동욱의 생각대로 동팔은 머리가 복잡했다.
'이전의 동욱이라면 감을 잡던가 볼넷으로 보냈겠지… 볼넷?'
확실히 좋은 방법이다. 이대로 동욱을 보내고 다음 타자를 상대하는 것이 더 편하다. 하지만 동욱은 그 생각을 버렸다.
'보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라고… 내가 틈이 있어 보이면 기세가 오를 거야. 흐름을 타면 나도 종종 위험해지니 그럴 수가 없어. 그리고… 그 방법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럼… 안달나는 공으로 한 번?'
그래서 동팔은 볼넷으로 보낼 생각을 버렸다. 이어서 선택한 공은 유인구였다.
휙!
하지만 이번에도 동욱은 속지 않았다. 높은 곳으로 와서 치면 장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노골적인 유인구라 처음과 달리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던진 공은 강속구.
쉭~ 퍽!!
빠르게 날아간 공은 빠르게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기 때문에 볼로 선언이 되었다.
'3볼 1스트라이크. 안 좋아. 볼넷으로 나가는 건 사양하겠어.'
그렇다고 삼진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 순간에 결정될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다.
서로가 바라지 않는 볼넷. 그리고 던질 수 있는 공의 구종만이 아니라 궤적도 제한이 걸렸다.
'온다. 무조건 스트라이크존 안에. 모든 것이 걸린 이 싸움에 모험보다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너라면 반드시!!'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 하지만…물러서지 않아!!'
스윽~ 휙!!
이미 동팔이 정한 공은 뻔했다. 빠른 패스트볼.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가더라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그대로 스트라이크가 된다.
타악!!
동팔의 빠른 공에 동욱의 배트가 이번에도 공을 건드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윗부분에 맞는 바람에 아래로 빠지고 말았다.
퍽!
아래로 떨어지면서 공은 뒤로 빠졌다. 이번에도 파울. 그리고 이젠 정말로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있다면 오직 파울로 끊어내는 것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풀카운트? 그게 뭐? 어차피 맞으면 소용없잖아?'
'이제 와서 카운트의 의미는 없어. 남은 것은 넘기느냐. 아니면 지나가느냐의 차이 뿐.'
이들의 대결에 관련된 사람들은 눈을 감지도 못하고, 떼지도 못하고 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 사람인 마크는 지금 자신이 본 것이 사실인지 몰라서 다시 보고 있었다.
"어? 웃음이… 이런 상황에도……?"
둥팔과 동욱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분명히 지금 던지는 이 공에 두 사람의 생명과 죽음이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은 자신의 그대로를 맞부딪혔다.
휙!!
이번에도 동팔이 던진 공은 강속구였다.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공. 하지만 방금 전에 갔던 방향과 달랐다.
동욱은 능력이 마비되어 더 이상 느리게 보이지 않는다. 전과 달리 아주 위험한 상황에서 함부로 휘둘렀다간 순식간에 삼진으로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욱은 주저하지 않고 강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경쾌한 소리가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크게 울렸다. 맞는 순간 동욱은 제대로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동시에 힘이 밀렸다는 것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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