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23화 (323/325)

[323]

"야, 니들이 말하는 사이 이닝 끝났다. 삼자 범퇴로 깔끔하게 끝."

"뭐? 벌써?"

그의 말을 증명하듯, 벽에 걸린 커다란 TV에선 양키즈 선수들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 이제 9회초지? 그럼 공격 기회는 이번으로 끝?"

"점수를 더 못 내면 그렇겠지. 그렇더라도 9회말에 다저스가 끝내기 안타나 홈런으로 끝낼 가능성이 있으니 방심할 수는 없겠지만."

"그건 다저스 홈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끝내기는 홈팀의 특권이라고."

그러면서 중계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그들은 다저스의 타순을 보자 한 목소리로 외치며 몰랐다.

"어?"

그들의 눈은 단 하나의 이름에 모여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세 번째 타순에 동팔의 이름이 있는 것이었다.

"동팔이가 타석에?"

지금은 다저스의 홈에서 하기 때문에 내셔널리그의 룰로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 내셔널리그는 지명타자제가 아니다. 투수라도 정해진 타순이 오면 타석에 서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

그런데 타순에 동팔의 이름이 올라갔다는 것은 뻔했다.

"잠깐, 그럼 설마 9회말에 올라온다는 거야? 정말? 대체 왜?"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감독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거지. 솔직히 지완이가 타석에 서는 것보다 동팔이가 서는 것이 더 나으니까. 실제로 양키즈의 타자 중에서 동팔이 만큼 안타랑 홈런을 친 투수가 또 있어?"

"없… 지."

"지금 어떻게든 3점 이상을 따라잡지 못하면 그대로 경기가 끝나. 그럼 결국 좌완 동팔이 보다 더 좋은 지완이를 마운드에서 내려 보낼 수밖에 없는 거지."

그리고 그의 말은 중계진에서도 같이 예상했는지 비슷한 말이 나왔다. 그리고 어떻게 될지 모를 그 순간을 사람들은 더욱 집중하며 보게 되었다.

*     *     *

첫 타석은 감각이 좋지만, 다른 타자들에게 밀려 7번 타순이 된 로날드 버드였다.

'은진이가 있어, 이곳에!!'

얻기 힘들다는 티켓을 과감히 은진에게 주었다. 덕분에 가족들의 원성을 듣게 되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어쩔 수 없잖아. 가족들은 떠나지 않겠지만, 은진은 떠날 수도 있어?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하지만 놀란 것은 가족들도 어떻게든 티켓을 구했다는 것. 또한 은진의 언니인 혜진과 형부인 지완에게 배당되는 표로 어떻게든 큰 위기를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로날드는 미안함과 각오가 동시에 강해졌다.

'진루, 진루, 볼넷이든 단타든 홈런이든 진루, 무조건 진루…….'

3점 차이의 점수를 한 이닝에 매우기란 쉽지 않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는 자신들과 같이 고도의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어제랑 같이 실책 좀 하지… 설마 어제 실책들은 오늘의 예방주사였나?'

상대의 상태가 어떻던 간에 지금 중요한 것은 상대의 실수를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 좋은 자리에 있어 은진의 소리가 바로 들렸다.

"안타 치면 오늘 밤 함께 할게요!!"

"……!!!"

그녀의 목소리는 마법과 같았다. 그리고 로날드의 사랑과 종족유지의 본능이 그에게 큰 힘을 주었다.

아주 짧은 시간, 그의 집중은 전에 없을 만큼 강했다. 날아오는 공의 실밥까지 보일 정도로.

휙~ 따악!!!

흘러넘치는 힘은 그대로 공을 빠르게 날려 보냈다. 2루수가 다이빙 캐치를 시도했지만, 벗어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와 있던 우익수가 커버하여 2루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의 안타에 은진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로날드는 오늘 밤의 거사를 기대했다. 하지만…….

"야,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언니의 핀잔에 은진이 말했다.

"그냥 함께 한다고 했지, 단 둘이 있겠다고 말 안 했는데, 왜? 그리고 잘 쳤으니까 됐잖아."

은진의 말에 혜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은진의 말 덕분인지 로날드가 힘을 내서 단타를 쳤다는 것은 분명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래… 하지만 정말 단 둘이 있으면 안 된다. 알겠지?"

"그럼."

일단 지금 동팔의 운명이 걸렸고, 좋게 일이 진행되었으니 넘어가는 혜진.

'다행히 무사에 주자가 진루. 나쁘지 않아. 희망은 있어…….'

그리고 8번 타자인 마크가 볼넷을 골라 나갔다. 순식간에 무사에 1,2루가 되자 다저스를 응원하는 팬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동팔이지?"

"9번 타순이지만, 그래도 투수 중에 타격이 제법 되는 선수인데……."

"그래도 전문적인 타자만큼은 아니잖아. 오히려 병살을 노리기 좋을 거야."

당연히 양키즈의 팬들은 그와 반대를 바라고 있었다. 각자의 바람을 받으며 동팔은 타석에 섰다.

"후… 결국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건가? 그나마 다행이긴 해… 적어도 변명거리는 없을 테니까."

작게 그 말을 하고 배트를 강하게 쥐었다. 솔직한 생각으로 동욱과 같이 이번에도 주변이 느리게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의 말에 하얀 늑대의 벗이 말했다.

'요행을 너무 바라지 마라. 차라리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 안 그러면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가 한 말을 떠올리며 동팔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요행에 의지할 필요는 없어. 그동안 내가 해온 노력과 훈련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리고 동팔이 타석에 서기 전, 앞선 두 번의 타석에서 투수에 대한 분석 정보를 확인했다.

'내가 타석에 서는 것을 알면 저쪽도 고민을 하겠지. 하지만 대체적으로 교체하기보다 상대하는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야. 나는 타자가 아닌, 타격을 좀 하는 투수니까.'

상대가 노리는 것은 병살. 또는 삼진이다. 볼넷을 줄 생각이 없는 건 당연하다. 이미 무사에 1,2루에 주자가 나간 이상, 동팔마저 나간다면 무사에 만루가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타순은 1번 타자.

중심타선이 시작되는 이상, 위험을 자초할 수는 없었다.

'초반에는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올리는 방향. 그리고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볼을 노린다. 그렇지 않아도 투수는 방금 전 두 번의 타석에서 전력을 다 했으니 지쳐있어.'

투수였으니 잘 알고 있다. 동팔이 매 이닝마다 전력으로 공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회복능력을 보이지 않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 없는 선발투수는 체력의 분배가 필수.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는 불펜이라 해도 이렇게 세 타자를 전력으로 상대하면 휴식을 취하기 전까지 지치기 시작한다.

특히 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상대의 마지막 공격을 막고 있는 상황이라면 정신적인 압박도 이겨내야 한다.

휙~ 퍽.

초구는 볼. 그리고 유인구임을 알고 있어서 동팔의 배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 정도로 속이는 건 무리인가? 그럼…….'

그래서 빠른공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투수.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포수도 받아들였다.

휙~.

그래서 포심 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가는 방향으로 공을 던졌다. 그리고 마침, 빠른공이 날아오자 동팔의 배트가 움직였다.

따악!!

타구가 2,3루에 있는 동욱이 있는 방향으로 가면 주자는 움직이지 않기로 이미 약속을 했다. 그런데 동팔의 타구는 1,2루를 빠르게 빠지더니, 우익수의 키마저 넘겼다.

"와아!!"

완벽한 2루타. 그리고 주자는 타구를 보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달렸다.

타다다다다닥.

2루 주자인 로날드는 3루를 돌아 홈으로 달려가 발로 밟는데 성공.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마크도 빠르게 달려 슬라이딩으로 홈에 손이 닿았다.

"에!!"

"와우!!"

로날드와 마크는 한 순간에 2점을 얻자 함께 환호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것으로 6대 5. 점수는 한점 차이로 줄어들었다.

환호하는 양키즈와 달리 다저스의 팬들은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한점 차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무사에 주자는 다시 2루……."

이 상태에서 1번 타자부터 시작하는 중심타선이다. 그 중에 한 명이라도 적시타를 때린다면 점수는 동점. 9회초에 경기를 끝내고 싶은 다저스의 입장에선 절대로 일어나고 싶지 않은 일. 하지만 양키즈의 입장에선 반드시 그 이상의 일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었다.

그 이후 다저스의 입장에선 다행히 두 타자가 연속으로 삼진과 범타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에 타석에 오르는 타자는 3번 타순으로 바뀐 데니 행크스였다.

첫 클린업 트리오. 비록 타순이 이번 경기에서 4번에서 3번으로 바뀌었지만, 타격 능력이 갑자기 떨어진 건 아니다.

그래서 모든 관중과 선수들이 긴장하며 지켜볼 때, 데니 행크스는 감독이 순번을 바꾸어 조금이라도 더 많은 타석에 서도록 한 빛을 보게 했다.

따악!!

데니 행크스는 투수의 실투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받아쳤다. 타구는 멀리 날아갔다.

"설마 가나요? 이대로 넘어가면 역전이지만, 조금 위험합니다."

우익수가 열심히 달려가 펜스에서 높이 뛰어 올랐다. 그만큼 아직 희망을 버리긴 일렀다. 그리고 타구의 높이도 생각보다 높지 않아서 펜스에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저스에게 아쉽게도 공은 우익수의 글러브를 살짝 벗어났다.

퍼버벙!!

폭죽이 요란하게 터지며 데니의 홈런, 그리고 1점 차이로 역전을 한 양키즈를 축하했다. 그러나 그 장면을 보는 다저스의 팬들은 기뻐할 수 없었다.

'9회초에 역전……?'

'어쩐지 방금 전부터 불길하더라니.'

하지만 적은 수여도 양키즈의 팬들은 크게 환호하고 있었다.

"와아~!!!"

"역전!!! 만세!!!"

방금 전만 해도 지고 있던 상황. 그리고 남은 기회는 이번 한번 뿐. 그런 상황에 3점 차이를 넘어 역전을 했다. 또한 그들보다 더 기뻐하는 사람이 있었다.

"휴……."

격정적인 반응이 없을 뿐, 민희는 이번 역전으로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안다. 경기가 끝나기 전까진 끝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저스의 9회말 타선은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제부터 마운드에 오를 사람이 강동팔이라는 것.

한편, 데니의 홈런으로 다저스의 투수는 크게 흔들렸다.

'어떻게 하지……? 이렇게 되면 우승이… 그리고 동욱이에게 무슨 말을 해?'

어제 동욱이 실책에 화를 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젯밤 그의 어머니께서 소천(召天)하셨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죄책감이 더욱 크게 밀려 올라왔다.

그러던 중, 그의 뒤로 동욱이 나타났다.

"어, 동욱아……."

"괜찮아.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사고였잖아. 흔들리지 말고 던져. 이 다음은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으니까. 아직 기회가 남아 있잖아."

제일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 격려를 하자 투수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다저스의 감독은 올라오려다가 말았다.

'내가 올라올 필요는 없겠어. 그러다 괜히 더 긴장할 수가 있으니까.'

대신 포수에게 사인을 보내 투수의 마음을 진정시키라고 했다. 그 덕분인지 투수는 더 이상 실투를 하지 않고 노아웃 상태에서 아웃카운트를 2개를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다음 투수에게 맡기고 내려왔다.

그 투수도 전력을 다해 공은 던져 양키즈의 마지막 타자를 아웃시켰다.

*     *     *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공수교대를 하자 다저스의 팬들은 물론 양키즈의 팬들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겨우 1점 밖에 차이가 안 나.'

'아직 확정된 건 아니라고.'

어느 팀이나 희망과 불안이 남아 있다. 특히 다저스에서 제일 바라는 것은 이것이었다.

"제발 한 사람만이라도 진루해라……. 그러면 마지막에 동욱이 타석에 설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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