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21화 (32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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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적지에서 와 있는 양키즈 선수들은 훈련을 하다 쉬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동팔을 보게 되었다. 그의 손에 들린 낡은 글러브와 야구공을 보며 말했다.

"그거 뭐야? 그거 얼마나 오래 쓴 건데?"

"내가 새 것 사줄까?"

동팔이 말했다.

"이거 돈으로도 못 구해."

"정말? 누구의 컬렉션?"

"응. 내가 야구를 처음 했을 때부터 함께 해온 친구."

동팔의 말에 처음에는 낡은 글러브를 가볍게 보던 그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오~ 정말?"

"그럼 이게 동팔의 역사가 새겨진 녀석이구나? 나도 한 번 보자."

동팔이 가지고 있는 낡은 글러브는 어느 유명한 메이커의 제품이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장인이 유명해지기 전에 동팔의 재능을 보고 만들어준 것도 아니다.

스포츠 매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어느 누구나 구할 수 있는 투수 글러브였다. 하지만 동팔이 썼다는 사실만으로 싸구려 글러브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런데 이건 왜 가져온 거야? 너한테 중요한 물건이지만,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확실히 사용하긴 무리지. 몇 번 쓰면 찢어질지도 모르니까. 가져온 이유는 간단해. 내가 왜 야구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야구를 하게 되었는지를 떠올릴 수 있거든. 그래서 가져온 거야. 오늘 아주 중요한 경기지만, 내가 야구를 하는 진짜 이유를 잊고 싶지는 않아."

동팔의 말에 두 사람이 감탄을 하며 말했다.

"오~."

"초심을 잃지 않겠다? 동팔 선생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약한 바람과 같았다. 하지만 동팔의 말은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들어오더니 새로운 바람을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나는 무엇 때문에 야구를 했더라?"

"정신없이 메이저리그에 오려다보니 완전히 잊어버렸네."

처음에는 두 사람이었다. 그러다 동팔과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본 다른 사람들이 점점 붙더니 불어나기 시작했다.

"너희들 거기서 뭐해?"

"동팔아, 그 글러브 뭐냐?"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두 사람이 하고 있는 고민과 같은 고민이었다. 결국 대다수의 선수들이 모여있는 것을 본 감독이 물었다.

"너희들 뭐해?"

데니 행크스가 대답했다.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야구를 시작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지를 말이죠."

"응? 갑자기 그건 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의 갑작스러운 자기성찰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자초지정을 알게 되자 감독이 동팔에게 물었다.

"물건을 가져 왔다면 알고 있겠지? 동팔아, 네가 야구를 하는 이유가 뭐냐?"

"그거요? 그야 당연히 좋아하니까, 그리고 즐거우니까죠."

동팔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말했다.

"응? 그건 당연한 것 아냐?"

그의 말에 다른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감독이 말했다.

"그래서 너희들은 지금 야구가 좋냐? 순수하게 즐길 수 있어?"

감독의 물음에 선수들이 답했다.

"좋으니까 하고 있는 거죠. 그래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역시 언제 나가떨어질지 불안하다는 것 정도?"

"전에는 취미로 즐길 수 있었고, 그렇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많이 벌어 놓아도 선수로 뛸 수 없다는 건 단순히 돈 문제만도 아니고요."

불안하다. 못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프로가 된 이후로는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살아왔다.

특히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기 위해 모진 훈련을 하며 올라왔다. 분명히 뜻 깊은 시간이겠지만, 그렇다고 즐거운 시간이라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말들이 나올 때, 동팔이 말했다.

"그러니까 이번 월드시리즈는 더 즐길 수 있는 거잖아. 지면 많이 아쉽겠지만, 그렇다고 잘리는 것은 아니니까. 물론 아주 큰 실책을 연달아 범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상금에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정도 돈을 못 받는다고 해서 생계가 무너질 선수는 없다. 다만 동팔의 말대로 준우승에 머물게 되면 아주 많이 아쉬울 것이다.

월드시리즈에 올라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힘겹고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니까.

"오~ 동팔의 말을 들으니 그러네."

"져도 크게 손해 볼 것은 없어. 그렇다고 져도 괜찮다는 건 아니지만."

"이왕 즐길 거라면 더 크게 즐기는 것이 좋잖아."

그들의 말에 감독은 잠시 고민했다.

'느슨하게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말할까? 아니, 그러면 오히려 압박을 받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존 지라디 감독은 선수들을 보며 말한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우승하지 못하면 나중에, 아니 그 순간부터 엄청나게 아쉬울 거야. 하지만 전 세계인이 즐기는 축제에 정작 주인공인 우리들이 즐기지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승리만을 즐기지 말고, 경기 그 자체를 놀면서 즐겨."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말을 덧붙이자 선수들은 웃음이 빵 터졌다.

"너희들 스프링캠프에서 게임할 때처럼. 어떻게 감독한테 어떻게 한 번도 안 봐주냐?"

*     *     *

월드시리즈 최종전이 시작되기 전, 민희는 가족들과 같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러다 민희는 우연히 한 가족과 만나게 되었다.

"어? 필립씨?"

"오, 민희씨. 여기서 보는군요. 오랜만이에요."

"네, 오랜만이에요. 혹시 경기 보러 오셨나요?"

"당연한 말이죠. 이 경기를 위해 사표까지 쓸 각오로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하하하."

이전부터 양키즈의 팬인 그라면 월드시리즈 우승이 눈앞에 있을지도 모를 상황에 그냥 있을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적지라지만 하와이에서 근무하는 그에겐 뉴욕보다 훨씬 나았다.

"다행히 티켓이 있었나봐요."

"사실 어제부터 기다려서 샀죠. 아슬아슬했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그들과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지만, 각자 가족이 있으니 그럴 수 없었다. 다시 만나자는 기약없는 약속을 하고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 민희는 지예가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게 정말이야? 그럼 기사 작성만 하고 올리지 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말고, 올리는 시간? 그거야 이 경기 끝나고 바로. 그 전에 가족분들이랑 이야기는 했고?"

한국 사람과 통화를 하는지 지예는 한국어로 통화하고 있었다. 통화를 마치자 민희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 민희구나. 아, 그리고 안녕하세요."

동팔의 가족과는 이전부터 취재를 해온 덕분에 안면이 있었다. 그래서 친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민희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민희야, 지금 동욱이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데. 후배한테 연락이 왔어."

"네? 정말요?"

"응. 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말하진 말고.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조심할 건 조심해야지……."

"네……."

그 사실을 듣자 민희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이걸로 동욱 오빠를 흔들어?'

나쁜 생각인 것을 알지만, 그래도 동팔이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지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아냐…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고, 또 오빠가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잠시의 유혹을 떨쳐내고 민희는 가족들과 같이 경기장에 들어갔다. 이미 양키즈에서 마련한 티켓은 아주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물론 최대 2장이었고, 나머지 두 장은 민희가 에이전트 회사를 운영하면서 알게 된 사람을 통해 얻었다.

덕분에 민희와 동팔의 가족들은 다 같이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으며 동팔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결전을 하는 오늘 등판했으면 했는데……."

"어제 경기에서 등판한 덕분에 오늘이 가능한 경기였으니까요. 저도 아쉽지만, 좌완으로 마운드에 오를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 말을 하면서도 민희는 또 다른 사실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사실 이미 오른팔도 어제 다 회복되었겠지만…….'

어쩌면 동팔은 좌완이 아니라 우완으로 마운드에 오를 수도 있다. 이전에는 휴식의 명목으로 계속된 선발 등판은 불가능했지만, 불펜이로 올라갈 명분이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올라간 다음 좌완이 아니라 우완으로 던지면 그만이니까.

대신 아쉬운 것이 있다면 선발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오늘은 최종전인 이상, 양 팀 다 불펜을 풀가동시킬 것이 뻔했다.

"그렇겠지? 그래도 이겨야 하는데."

"이길 수 있을 거예요. 다저스에 비해 양키즈의 불펜이 더 여력이 있거든요."

동팔이 어제 영봉승으로 경기를 끝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어제 쉰 양키즈의 불펜은 여유가 넘쳤고, 반면 다저스는 실점으로 인해 불펜의 소모가 심했다.

단순히 월드시리즈의 경기라 생각하자 민희를 제외한 가족들은 그녀에 비해 아주 편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민희는 그럴 수가 없었다.

'당연히 우리 오빠가 이기면 좋지만… 어머니를 보낸 다음 악마에게 살해당하는 동욱오빠는……?'

두 사람 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일까? 그 생각에 민희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     *     *

시간이 흐르며 경기의 시작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양키즈의 더그아웃에선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저스 분위기가 어제 안 좋았다고?"

"네, 어제 실책으로 인해 동욱이 많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이면 살얼음을 걷는 분위기겠죠."

"보통은 그렇지. 특히 중요한 경기에선 감정 조절이 쉽게 되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바로 관계가 회복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중요한 경기인 이상 감정적인 것은 최대한 털고 움직이겠죠."

"그럴 거야. 그들은 프로니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팀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걸 알고 행동할 수 있는 선수들이니까."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감독은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분위기가 좋은 우리 양키즈를 상대로는 어림없지. 이건 분명히 좋은 신호야.'

반면 그의 생각과 달리 다저스의 분위기는 전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과 다른 각오가 그들에게 있었다.

다저스가 홈으로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수비로 먼저 나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어제와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달랐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경기에서 나타났다.

따악!!

타자의 잘 맞은 타구가 1,2루 사이로 향했다. 동욱이 아닌 곳이라 안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촤악~ 턱.

하지만 마침 2루수가 슬라이딩을 하며 깔끔하게 잡았다. 그리고 그의 뛰어난 수비에 홈관중도 같이 열광했다.

중계진도 감탄이 나왔다.

"어제 실책으로 분위기가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나 봅니다. 좋은 수비였어요. 까딱하면 초반에 크게 흔들릴 뻔 했는데 수비가 잘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지금 두 팀 모두 사기가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수비가 좋으면 역시 투수 싸움이 되겠죠? 그렇다면 불펜의 여력이 있는 양키즈가 더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팀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다저스엔 한동욱이 있어요. 어느 불펜 투수건 언제 홈런을 쳐도 이상하지 않을 최강의 타자가 있습니다. 특히 한점 싸움이 되면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하니까요."

처음에는 중계진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1회초 양키즈의 공격이 끝나고 다저스의 공격이 되자 예상이 조금 어긋나기 시작했다.

"볼넷으로 출루하는 다저스. 이렇게 되면 위험해지는데요. 지금 나와 있는 주자를 당장 못 잡는다면 마지막 타석에 한동욱이 올라옵니다. 주자가 있는 상태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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