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물론 이 상태로 가지 않고 동욱 선수가 타점을 기록한다 한들, 다저스에서 타격을 허용하게 되면 승패가 또 바뀌긴 할 겁니다."
그리고 이는 중계진만 아니라 양 팀의 감독과 코치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도 조금 여유가 있는 쪽은 양키즈였다.
"동팔이 9이닝까지 던지더라도 그 다음에는 지완이 있어. 그것도 아니면 동팔이가 좌완으로 던질 수 있으니 흐트러지지 마."
"네!!"
마운드가 상대적으로 든든하다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말하면 시간이 갈수록 다저스가 불리해지기 시작한다는 것.
그 증상은 8회초가 되자 점점 뚜렷하게 나타났다. 다저스가 수비를 하던 중, 외야에 있는 한 선수가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홈플레이트를 보다가 잠시였지만 정신이 멍해졌다. 그러다 다시 황급히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제길… 내가 왜… 정신을 놓고 있었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몸은 정직하다. 몸이 바라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몸의 반응은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
경기 초반을 지나 중반까진 어떻게든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투수전과 양키즈의 집요한 타선으로 인해 수비를 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길었다.
거기에 단 한 순간도 느긋하게 있을 여유가 없었다. 약간이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모를까, 긴장의 끈을 계속 놓지 못하고 있었다.
중반까진 어떻게든 버텼지만, 후반이 되어가자 몸에선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다저스의 선수들은 늦가을의 날씨였지만, 식은땀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집중력이 점점 떨어져 눈동자가 원하지 않게 흔들렸고, 뇌는 잠시의 휴식을 강제로 취하기 위해 일부러 몸의 기능을 떨어트렸다.
지금 당장은 표시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건이 터지면 물밑에 있던 증상이 결과라는 현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따악!!
선발인 거쇼가 무실점으로 막아왔지만, 새로 올라온 투수는 그렇지 못했다. 첫 타자는 삼진으로 잡았지만, 다음 타자는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그래서 병살타를 유도하려 했지만 타구의 방향이 나빴다.
'제길! 왜 1,2루 사이로!!'
2,3루 사이라면 무실책의 유격수인 한동욱이 있다. 비록 다저스 안에서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경기에 나서면 투수로선 제일 든든한 선수인 것은 사실.
그래서 동욱이 있는 쪽으로 타구가 빠져나가면 다저스의 투수들은 전부 안심을 한다. 하지만 그 반대로 가게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툭, 턱.
그나마 빠져나간 공을 빨리 잡아서 단타로 끝났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1사에 1,2루라고? 큰 위기라고 할 수 없지만, 득점권에 주자가 나가 있으면 좀 걸리는데…….'
그렇지 않아도 지금 2루에 나가 있는 선수는 발이 빠른 마크였다. 틈이 보이면 바로 3루로 도루하여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도루에 성공하면 자신이 폭투를 하게 되었을 때 바로 실점으로 연결된다. 그렇지 않아도 0대 0의 균형에서 1실점은 바로 패배로 이어지게 된다.
'후… 이번에는 반드시…….'
이왕이면 안전하게 삼진.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병살을 유도하는 것이 최상이다. 그리고 타자에 따라 병살이 가능한 쪽으로 타구가 날아가도록 조종하는 건 그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확률적으로 높다는 것이지만.
그래서 적절히 볼과 스트라이크를 던진 후, 타자에게 불리하도록 볼카운트를 만들었다.
'됐어. 치지 않으면 삼진이야!!'
투수는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면서 타자가 주로 당겨 친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만약에 잘 맞더라도 유격수인 동욱이 있는 방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악!!
그리고 마침 타자가 친 타구가 빠르게 동욱이 있는 곳을 향해 갔다.
'제길!!'
타자는 병살의 예감이 들어도 일단 전력으로 달렸다. 당연히 주자들도 빈 곳이 없으니 무조건 달려야 했다.
마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좋은 기회를 이렇게 날리다니!!'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되지만, 몸은 주루 코치의 행동에 따라 전력으로 달렸다. 주루코치는 무조건 3루를 밟고 홈으로 달리라며 팔을 크게 흔들었다.
희망이 없지만, 혹시라도 모를 행운에 의지해야 할 때. 병살의 확률은 높지만, 어쩌면 타자가 1루에 무사히 진루할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빠르게 달리는 마크를 보고 홈에서 승부를 걸도록 만드는 것도 의도 중 하나. 하지만 동욱은 강습형에 불규칙으로 튀는 타구를 오른손으로 가볍게 잡았다. 그리고 바로 2루수에게 토스하듯이 가볍게 던졌다.
예정된 병살코스. 하지만 그 순간, 항상 고도의 집중 상태로 있다 보니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과부하가 걸렸다.
자신에게 오는 공을 잡으면 되는데, 머리가 멍해지면서 몸이 아주 잠시였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으로 인해 2루수는 공을 잡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다.
"으아!!!"
"안 돼~!!!!"
빠져나간 공은 마침 마운드에 있던 투수가 달려가 잡았다. 그리고 이미 늦은 2루는 포기하고 1루에 던졌지만, 전력으로 달린 타자가 이미 1루를 밟았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2루로 달려가던 주자는 2루수가 공을 잡지 못하자 바로 3루로 향해 달렸다. 계속 달리라는 주루 코치의 지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팔만 보는 바람에 생긴 오해였다.
주루코치가 지시한 것은 마크가 홈으로 달려가라는 것. 하지만 그 오해가 오히려 양키즈에게 더 좋은 기회가 되도록 만들었다.
촤악~.
마크는 여유있게 홈을 밟았고, 3루를 향해 달리던 주자는 슬라이딩으로 안전하게 도착했다. 그리고 그가 도착하자 주루코치는 놀라며 물었다.
"야, 너 왜 여기 있어?"
"네? 오라고 하신 것 아니었어요?"
"아니, 난 마크보고 가라고 한 건데… 됐다. 잘 했어."
이 어이없는 실책으로 다저스는 1실점을 허락하고 말았다. 당연히 다저스의 팬과 선수들은 망연자실해졌다. 그래도 선수들은 다시 마음을 빠르게 고치며 경기를 이어나가려 했다.
물론 자신의 실수로 실점하게 되고, 이대로 가면 패배하게 될 2루수는 순식간에 대역죄인이 된 심정으로 경기장에 서 있었다.
그에게 다행이라고 할 것이 있다면, 그 이후에 2루수를 제외하고 두 명의 선수가 실책을 범했고, 투수는 폭투까지 하는 바람에 8회초에만 4실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월드시리즈의 여섯 번째 경기는 뉴욕 양키즈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 * *
콰앙!!!
경기가 끝나고 클럽하우스에서 분노한 동욱은 배트로 강하게 바닥을 쳤다. 그리고 다른 선수를 보며 말했다.
"너희들 우승할 생각이 있기는 해?"
그 말에 실책을 범한 선수들은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순수하게 실력으로 겨루다 운이 없어서 졌다면 이럴 일이 없다. 하지만 실수는 분명히 자신들의 과오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더욱 아쉽고 또 아쉽다. 그러던 중, 실책을 범하지 않은 다른 선수가 말했다.
"경기 하다보면 실책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잖아. 지금이 그때였을 뿐이라고. 우리라고 아쉽지 않을 줄 알아? 우리도 아쉬워!! 여기 이 녀석들은 아쉽다는 것만 아니라 이미 충분히 자책하고 있단 말이야. 위로하고 격려해서 내일 경기에 힘낼 수 있게 해도 모자란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우리가 다 너야? 너처럼 실책하나 없는 야구 기계냐고!!!"
그러자 동욱이 말했다.
"실책? 물론 실책이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오늘 실책은 아마추어나 할 실책이었어. 내가 받기 힘들게 공을 줬어?
손만 움직여도 잡을 수 있는 공이었잖아. 그것만 잡았으면 연장전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고, 잘하면 이번 경기에서 우승을 했겠지.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보고 있을 경기에서 집중하지 못한 건 엄연히 컨디션 조절을 못한 본인 책임이야. 틀려?
"
쾅.
동욱은 그 말을 하고 더 이상 그들과 같이 있지 않고 나왔다. 동욱의 말에 첫 실책을 범한 선수는 더욱 고개가 떨어졌다. 그러자 다른 선수들이 다가와서 말했다.
"어쩔 수 없었어. 솔직히 너만 아니라 우리들도 슬슬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었는걸."
"그냥 네가 첫 희생이 된 거지 뭘……."
그러면서 동욱에 대해 욕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씨바, 아무리 잘 못해도 그렇지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어?"
"고개가 뻣뻣하게 굳어도 아주 제대로 굳었잖아.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앞으로 계속 지금처럼 할 줄 아나?"
그들의 말에 현민은 난감했다.
'사실을 말해줘야 하나? 그렇다고 봐줄까?'
동욱의 상황에 대해 말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은 현민만 아니라 코치와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감독이 나서서 실책한 선수를 다독이고 다음 경기에 분발하자고 말하려 했지만, 동욱이 먼저 화를 내고 나가는 바람에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던 상황에서 동욱의 거친 말로 인하여 균열은 눈에 드러나는 분열이 되어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 감독도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잠시 당황했다. 그리고 잠시의 침묵이 생기자 그 틈에 감독이 말했다.
"동욱이를 두둔하려는 건 아닌데, 지금 동욱이가 예민한 이유가 있다."
그러자 다른 선수가 말했다.
"아무리 예민해도 그렇지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을 것 아닙니까? 차라리 전처럼 그냥 말없이 나가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좀 있으면 엄마가 죽기라도 합니까? 그거 참 소설에서 눈물 빼내기 좋은 소재겠어요. 엄마에게 월드시리즈 우승하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보여주지 못하고 비장하고 슬픈 엔딩이 되는 거죠."
그의 말에 다른 선수들이 킥킥 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그 말에 감독은 물론 코치들과 현민은 같이 웃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표정은 더 굳었다.
처음에는 웃다가 감독과 코치, 현민이 웃지 않자 말을 했던 그 선수가 말했다.
"저기… 감독님. 저 지금 그냥 웃으라고 한 말이었어요. 설마 사실이라고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그럼 이 자리에 동욱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말이 나온 이상, 감독도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그게 말이지……."
이제 슬슬 사실을 말하려 할 때, 현민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누가… 저기 잠시만요. 동욱이 여동생한테 전화 왔습니다."
"뭐?"
이런 때 갑자기 왜 동욱의 여동생에게 전화가 온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수술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경기 전에 들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 동욱의 여동생에게 전화가 온다? 그것은 결국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결과가 나왔다는 것.
현민의 말에 감독은 말을 하지 않고, 다른 선수들도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보냈다. 그리고 현민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 *
한편, 집으로 돌아온 동욱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수술이 잘 되었을까? 큰 수술이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쯤이면 어떤 상황이지?'
궁금하다. 너무나도 알고 싶다. 하지만 전화하는 것이 두려웠다. 확률은 사실상 0. 이런 상황에 전화를 한다는 것은 절망의 확인밖에 안 된다는 것이라며 머리가 강하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지금 전화해 봤자, 수술중이라던가. 아니면 수술이 잘 돼서 주무시고 있다는 말을 할 거야. 엄마와 직접 통화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마지막까지 일말의 희망을 품고 싶지만, 사실 잘 해봐야 내일까지가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사실을 미리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당장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고민을 하다가, 동욱은 겨우 뒤척이면서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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