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18화 (318/325)

[318]

*     *     *

한편, 한국에선 동욱의 어머니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있다. 침대에 달려있는 바퀴로 수술실까지 순조롭게 가고 있었다.

그 뒤로 두 딸이 따라오고 있는 것이 엄마의 눈에 보였다. 울지 않으려 애쓰는 두 딸을 보며 엄마가 말한다.

"죽으러 가는게 아니야. 울지 말고 기다려. 알았지?"

"응… 엄마……."

이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그녀들은 안다. 이렇게 살아서 보는 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확률로 따지면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에게 아쉬운 건 엄마가 회복하는 것이 기적에 가까울 만큼 위험한 상태가 아니었다.

'동욱아…….'

'오빠…….'

마지막 순간에 동욱이 없다는 것이 그녀들에게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얼굴이라도 비출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동욱은 월드시리즈에서 다저스의 타선과 점수를 책임지고 있다.

오가는 왕복 시간만 하루 이상. 그리고 오가더라도 실의에 빠진 동욱이 팀의 중심 전력으로 활약하는 것 또한 기적에 가까웠다.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니 더 아쉬움이 컸다.

"애야……."

"응, 엄마."

"혹시 동욱이가 물어보거든… 나 계속 자고 있다고 말하렴… 지금 중요한 순간이잖니……."

엄마의 그 말에 두 딸만이 아니라 간호사와 의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곧 수술이 있으니 최대한 냉정하고 감상적이지 않으려 해도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알았어 엄마… 꼭 그렇게 전할게……."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말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끝까지 아들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에 주변 사람들은 입술을 깨물며 나오려는 울음을 참는다.

그러던 중, 엄마는 무언가 보게 되었다. 하얀 날개를 한 천사였다. 순백의 검을 들고 주변을 지키는 천사가 있었고, 거대한 낫을 든 천사도 있었다.

거대한 낫을 든 천사가 엄마에게 말했다.

[때가 되었습니다.]

천사의 말에 엄마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제발… 이 아이가 있는 앞에서는…….'

엄마의 마음에 천사가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잠든 후,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고, 당신은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에 엄마는 안심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천사의 말에 엄마는 마지막에도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사랑하는 아들과 만나게 될 겁니다. 지금보다 더 선명하고 건강한 몸으로…….]

*     *     *

동욱은 시계를 본다. 시간을 확인하자 바로 한국의 현재 시각을 계산해서 확인했다.

'지금쯤이면 수술실에 계실 텐데…….'

의사가 이미 말을 했지만, 지금 하는 수술의 성공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있다면 기적밖에 없었다. 그걸 알고 있어도 수술을 결심한 것은 단순한 이유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안 좋게 되었을 때, 아쉬움과 미련이 극히 일부나마 줄어들겠지.

하지만 그 생각을 하더라도 떨리는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동욱은 더그아웃에서 쉬고 있을 때, 평상시보다 더 조급했다.

떨지 않던 다리가 덜덜 떨렸고, 평상시에 거의 보지 않던 시계를 자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찾다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 경기를 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감독의 마음도 답답했다.

'지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도 없고…….'

현민은 동욱의 여동생과 통화를 하면서 더 자세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단 선수가 아닌 감독에게 가서 동욱의 상황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감독은 다섯 번째 경기를 마치자마자 모든 코치를 불러 모았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놀랐지만, 빠진 코치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뉴욕에서 LA로 온 이후, 바로 소집을 했으니까.

그곳에서 감독과 코치들은 동욱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동안 그가 왜 급하게 행동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교성이 부족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이유가 있었다니… 왜 말을 하지 않은 걸까요?"

"말해서 팀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겠지. 나한테도 말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이 상황을 알게 된 것도 순전히 우연한 일로 인해 가능했던 거야."

"거참……."

분위기는 무거웠다. 팀의 간판타자든 아니든, 선수의 어머니가 곧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 그것도 회생가능성이 있어서 하는 수술이 아니라 마지막 미련을 버리는 것과 같은 수술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타자들 사이에서 동욱과 한 차례 말썽이 일어났다고 했지?"

"네, 어머니께서 선물한 배트를 숨겨뒀습니다. 그 때문에 까딱하면 폭력사태가 일어날 뻔 했었죠."

"하긴 그동안 웬만해서 화를 안 내던 친구가 화를 내면 무서운 법이지. 그것도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더욱."

감독이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사소한 장난에 화를 낸 동욱이 속 좁은 소인배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주먹이 바로 날아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말리던 타격 코치도 감독과 같은 생각이었다. 일단 연봉 1억 달러의 선수이니 너무 나선다고 생각했고, 뛰어난 성적이 있으니 함부로 말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장난을 친 선수들을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화가 나는군……."

"말해주지 않은 것 때문입니까?"

"아니. 이런 상황에서도 동욱이 마음이 가라앉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드는 나 자신 때문에 화가 나."

그 말을 하더니 감독은 앞에 있는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치면서 소리쳤다.

콰앙!!

"젠장!!! 어린 친구가 너무 힘들어 하고 있는데, 인생 선배인 내가 고작 성적 따위에 연연하다니!!!!"

자신의 인간성이 바닥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자 다른 코치가 말했다.

"감독이시잖아요. 직책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동욱의 상황이 안타까운 건 다들 같은 생각이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지금 앞으로 생길 일에 대비하거나 어떻게 위로할지 생각하기 위해 모인 것 아닙니까?"

코치의 말에 감독은 마음을 추스렸다.

"그렇지… 그러기 위해 모였지. 일단 내가 동욱에게 말을 할게. 한국에 있는 에이전트를 통해서 가족들이 월드시리즈에 갈 수 있도록 알아보다 알게 되었다고 말하면 얼추 받아들이겠지."

그렇지 않아도 알게 된 이유가 여동생이 말해줬기 때문이다. 그걸 굳이 말해서 남매 사이에 일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딱히 뾰족한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르는 척 하는 건 아니란 생각이었다.

감독은 초조해 하고 있는 동욱의 옆에 가서 앉았다.

"동욱."

"네, 감독님."

"사실 말이야… 얼마 전에 자네 가족들이 월드시리즈에 올 수 있도록 구단에서 조취를 취하려고 했었거든. 그런데… 그러다 알게 되었어.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면서."

"……네."

동욱은 약간의 시간을 두고 사실을 인정했다. 그의 무거운 침묵에 감독도 더 이상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혹시라도 모를 기적을 말했다가 더 큰 절망을 느낄 수 있으니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받아들이라고 할 수도 없고…….'

감독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앉아 동욱의 손을 강하게 잡아주었다. 그 모습을 본 코치들과 현민은 안타까운 마음을 잠시 숨기고 지켜보았다.

*     *     *

동팔이라는 든든한 언덕에 몸을 기대고 있는 양키즈 선수들은 여유를 가지고 긴장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경기에 이기기만 하면 우승을 확정할 수 있는 다저스 선수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점수를 내는 것이 어렵고, 평상시에 펑펑 터트리는 동욱의 배트도 아직까지 타점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동욱의 앞에 주자가 나가면 희망이 있는데…….'

'지금까지 동욱을 빼면 노히트 노런이야. 그럼 첫 경기 때처럼 홈런이 아니면 점수가 안 난다는 건가?'

'그런데 아직까지 공을 던져?'

말을 하면 사기가 떨어질 것 같아서 못할 뿐, 다저스의 선수들은 동팔을 상대하면서 비슷한 느낌이었다. 동욱도 마찬가지였다.

'홈런 하나면 되는데…….'

차라리 지금 능력을 강화시켜 홈런을 때릴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자가 한 명이라도 나가 있으면 어떻게든 승리가 보이니 하겠어. 하지만 만약의 상황을 생각하면 하지 않는 것이 나아.'

동팔로서도 동욱이 능력을 강하게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여기서 능력을 쓰게 만들고, 다음에 있을 마지막 경기에선 쉽게 상대하는 것이 나을까?'

두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동욱이 능력을 강화시키는 타이밍이 언제냐였다. 능력을 강화시키면 강화시킨 것만큼 일정 시간동안, 받은 능력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동욱의 기본적인 역량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주변의 모든 것이 더 느리게 보이고, 신경속도가 일반인과 같다면 다른 타자를 상대하는 것처럼 쉽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동팔이 어떠한 공을 던지더라도 소용이 없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이상적인 변화구인 자이로볼이라도 마찬가지다.

단 그것도 하나의 조건이 붙어 있다. 그리고 동팔은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휙~ 턱.

동팔이 던진 빠른 포크볼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졌다. 동욱은 처음부터 포크볼이고, 배트를 휘둘러도 닿지 않음을 알고 있으니 휘두르지 않았다.

그러니 동욱이 난감했다.

'능력을 강화시켜도 이렇게 날아오면 무용지물이야.'

애써 능력을 강화시킨들, 공이 스트라이크존의 주변으로 오지 않으면 제대로 쳐서 넘길 수 없다. 특히 바닥으로 떨어지는 포크볼은 더 했다.

결국 절묘한 유인구를 던지지만, 동시에 알더라도 치기 어려운 코스로만 던졌다. 당연히 배트가 닿기 힘드니 연속에서 볼이 나왔고, 결국 이번 타석에서 동욱은 볼넷으로 걸어나가야 했다.

동욱을 상대로 연속해서 볼넷이 나왔지만, 대부분의 관중들은 치사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저걸 또 골라내?"

"지금 던진 것들 전부 다른 타자들은 헛스윙하지 않았냐?"

같은 공을 던져도 동욱이 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말대로 다른 타자들은 같은 공임에도 속아 배트를 휘둘렀다. 고의적인 볼넷이 아니었고, 속이려 해도 못 속인 것이니 비겁하다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동욱의 선구안에 대해 더욱 감탄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평상시라면 좋은 공을 안 주겠다는 의지가 노골적으로 보여서 짜증이 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지금의 동욱에겐 다가오지 않았다.

'빨리 경기가 끝나야 해. 그렇지 않으면… 오늘 내로 엄마한테 우승한 걸 보여드릴 수가 없어. 적어도 빨리 전화하지 않으면…….'

그것도 이겨서 끝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동팔이 결코 좋은 공을 던지지 않고 있었지만, 동팔의 상황은 자신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을 상태다.

정면승부를 했다간, 자신이 죽는 것은 물론이며 가족들의 슬픔과 절망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두 사람 사이에 특별히 승패가 나오지 않자 중계진이 말했다.

"지금은 강동팔 선수의 판정승이 되겠습니다. 결국 투수가 이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실점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첫 경기처럼 끝날 때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죠."

"천재지변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무승부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실점이나 득점이 없다면 결국 승부는 어디에서 결정이 날까요?"

"당연히 다른 요인에 의해서 결정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요인은 많죠. 수비실책, 선발 투수 다음에 올라오는 투수의 구위, 타선의 집중력. 하지만 역시 상대적으로 타격이 큰 것은 실책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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