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지금 타자들끼리 반목… 아니 동욱을 싫어하는 것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는 걸까?'
이미 다저스 안에 있는 타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수들이 동욱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그건 감독만 아니라 코치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의 타자이며, 지금 다저스 타점의 절반을 책임진 그에게 쓴 소리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슬럼프가 찾아왔다면 또 모를까 그렇지도 않았다. 있었다면 올스타전이 끝나고 일주일동안 다른 때와 달리 타율이 떨어진 것이 전부.
하지만 그때도 다른 타자들보다 뛰어났으니 말할 타이밍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경기를 하기 전에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동욱의 상황을 알더라도 뭐라고 하려고 다짐한 타격 코치. 그러나 동욱의 솔로 홈런으로 인해 막히고 말았다.
따악~!!!
1이닝에서 유지된 0의 균형을 깬 솔로 홈런. 앞으로 경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고, 그렇지 않아도 양키즈의 선수들이 전원 분발하여 상대하는 것이 버거운 상태에서의 통쾌한 득점이었다.
루상을 돌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동욱. 하지만 그를 반겨주는 척 하는 선수들이 있을 뿐, 진심으로 격하게 반기는 선수는 없었다.
그저 자리에 앉은 동욱의 옆에 같은 한국인 선수인 현민만이 앉아 주었다.
이 모습을 보며 타격 코치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다른 녀석들이 잘 하면 몰라도, 타자들이 못하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이 있을까…….'
실력과 기록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프로이니 더욱 그러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신경을 더 쓰기로 하고 지금은 지켜보고 있었다.
* * *
양키즈 선수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점수를 내는 쪽은 다저스였다. 하지만 그 점수는 전부 한동욱의 솔로 홈런이었다.
네 번의 타석에서 두 개는 홈런으로, 하나는 볼넷으로, 남은 하나는 야외플라이로 물러났다. 그래서 점수는 2대 0.
그렇다고 다저스가 편한 건 아니었다.
"이번에 몇 번째 불펜이지?"
"다섯 번째 입니다."
"젠장… 상대는?"
"이제 첫 불펜이 들어왔습니다. 지완인데요."
양키즈는 작은 기회를 잡기 위해서 8회초부터 지완을 올렸다. 그 덕분인지 첫 상대였던 동욱을 범타로 마무리하는데 성공했다.
이마저도 동팔의 생존을 위한 마크의 분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이빙 캐치로 잡지 못했다면 적어도 2루타. 어쩌면 3루타도 가능했을 코스였다.
그 이후는 지완이 다저스의 8회초 공격을 봉쇄했다.
그리고 이젠 8회말이 되어 양키즈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계속 주자가 나가서 다저스의 불펜에 과부하를 건 양키즈의 타자들.
그들은 고작 이 정도로 경기를 끝낼 생각이 없다.
'여기서 어떻게든 점수를 낸다. 그렇잖아도 지금 다저스 불펜은 방금 전보다 상대할만 해.'
'아무리 다저스가 투수왕국이라지만, 자원이 무한한 건 아니야.'
'뛰어난 선수는 앞선 두 경기, 그리고 오늘은 더 앞서서 사용하는 바람에 확실히 믿고 맡길 불펜은 거의 없어.'
그리고 그 결과는 곧 나왔다.
따악!!
"와아!!"
처음에는 볼넷으로 주자가 나갔다. 그리고 후속 타자의 안타로 순식간에 무사 1,2루의 위기 상황을 맞이한 LA 다저스.
"교체할까요?"
"할 사람은 있어? 지금 양키즈의 타선은 이상할 만큼 고양되어 있는데?"
"그래도 아직까지 실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해… 느낌이 좋지 않아. 어느 쪽이든지……."
감독의 말에 코치가 물었다.
"그럼 교체하지 말까요?"
"구위는 나쁘지 않으니 이대로 가자. 그래도 얻어맞으면 운이 없는 거지."
감독이든 코치든 선수든 이왕이면 4연승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고 싶다. 하지만 경기를 하면서 실력이 없는 팀에게 얻어맞는 경우도 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흐름이 있음을 알기에 감독은 선수들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가 탓하는 것이 있다면 본인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는 것. 그리고 태만하여 자신의 실력을 버리는 것이었다.
그 기준으로 봤을 때, 팀의 선수 중 나무랄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중, 이번에 타석에 오른 마크는 긴장하고 있었다.
'무사에 1,2루. 좋은 기회지만, 내가 실수하면 삼중살이 되어버릴 수 있어. 특히 동팔이 형이랑 잘 안다는 동욱 선수가 있는 곳에 절대로 보내면 안 돼.'
타자가 수비를 하다보면 의도치 않게 실책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걸 하지 않는 유일한 선수가 있다면 다저스의 유격수로 있는 한동욱이었다.
특히 다저스에서 한동욱이 만들어낸 병살타는 그가 유격수의 포지션에 있다는 것도 이유지만, 다른 구단의 유격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니 지금 삼진을 당할지라도 절대 병살은 안 돼. 분명히 내가 치기 좋은 공으로 유인할 거야.'
이것은 마크가 타석에 서기 전, 타격 코치가 한 충고였다. 충분히 가능한 충고라 생각했으니 전보다 더 신중했다.
'은진 누나랑 사귀는 건 별로 상관없어. 지금 중요한 건 양키즈가 우승하는 것. 그래서 동팔이 형이 계약에서 해방되는 것이야.'
남들과 다른 이유로 분발하는 마크. 오는 공을 최대한 골라낸 끝에 풀카운트 승부까지 왔다.
'생각보다 끈질겨. 병살을 유도하려 했는데 안 속고…….'
반면 마크의 끈질긴 승부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마크의 가족이 아닌, 동료들. 특히 은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선수들이었다.
'됐어, 마크. 볼넷을 골라서 무사 만루를 만들어. 그러면…….'
'내가 바로 만루홈런을!!!'
마크 이후 세 번째 타석에 서는 로날드는 마음이 조급했다.
'어떻게 될까? 설마 저 녀석들이 홈런이나 싹쓸이 2루타를 치는 건 아니겠지?'
모처럼 활약을 할 무대가 갖추어졌는데,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순서가 멀었다.
팀의 승리를 무엇보다 바라지만, 그래도 자신이 무언가 큰 도움이 되길 바라는 건 같았다. 이유는 다르지만.
그리고 마크는 끝내 볼넷을 골라 진루에 성공했고, 무사에 만루 찬스가 만들어졌다. 고대하던 무대가 만들어지자 양키즈의 타자들이 갑자기 불타올랐다.
"됐어!!!"
"잘 했어, 마크!!"
이걸로 자신이 돋보일 절호의 찬스. 하지만 너무 좋은 기회가 만들어졌는지 타자들의 스윙이 커졌다. 그리고 왜 그런지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다저스의 투수는 갑자기 생긴 타자의 빈틈을 정확히 노리고 던졌다.
휙~ 퍽!
"스트라이크~ 아웃!!"
한 순간에 무사 만루의 기회가 어느새 2사 만루로 바뀌었다. 맥없이 삼진을 당한 두 타자에게 동료들이 말했다.
"어쩌겠냐. 포기해."
"그럼 마음이 편할 거야."
"결국 임자가 있었던 거지."
그러자 앞서 아웃당한 두 타자가 말했다.
"아니. 끝나기 전까지 끝난 건 아냐."
"로날드가 친다는 보장은 없어."
그러는 사이, 타석에 선 로날드는 조마조마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내가 만루상태에서 타석에 서다니……."
많은 변수가 있었다. 지금처럼 두 타자가 삼진을 당하는 것도 있지만, 병살이나 삼중살을 당해 이닝이 종료될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의욕이 너무 앞서 스윙폼을 너무 크게 한 나머지 두 타자 전부 삼진되었고, 지금은 자신이 타석에 선 상태.
'칠 수 있을까? 쳐야 하는데…….'
지금은 적어도 볼넷으로 나가 밀어내기 득점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점수 차이가 적으면 따라잡는 쪽에서 유리하지만, 한 점 차이는 홈런 하나로 동점이 되기에 희망이 더욱 커지게 만든다.
활약을 하는 것도 좋지만, 망치지 않는 것에 더 집중을 하는 로날드. 그러던 중, 저 멀리 외야석에서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은진?!'
멀리 있어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하필 타석에 선 상태에서 보는 바람에 그의 몸이 잠시 굳었고, 그 사이에 투수의 공이 날아왔다.
휙~ 퍽.
"스트~ 라이크!!"
주심의 판정에 로날드의 정신은 다시 타석으로 돌아왔다.
'내가 지금 무슨…….'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지… 지금 여기에 은진이…….'
앞서 두 경기에도 은진과 가족들이 같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은진의 모습이 더 크고 선명하게 다가왔다.
눈이 마주치자 은진은 옆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도 과감하게 양팔로 하트를 그렸다. 이어서 미리 준비한 '홈런'이라 적힌 팻말을 들었다.
"후우……."
로날드가 이 순간에 대해 다시 이런 순간이 올까 싶다고 증언했었다. 정확히 말을 할 수 없지만, 그 순간 로날드의 머리는 깨끗하게 비었다. 아무 생각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잡념이 사라졌다.
당시 로날드에게 떠오르는 기억이라면 투수가 공을 던지는 모습.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자 로날드는 그 즉시 어떤 공인지 직감했다.
휙~ 따악!!
어떻게 쳐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머리가 인지했고, 몸은 알아서 움직였다. 그동안 해온 훈련의 정수가 담긴 로날드의 타격 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심지어 손에 느껴져야 하는 저항감도 없었다. 타격에 쓰인 모든 에너지가 배트에 몰렸고, 그 에너지는 전부 공에 실려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갔다.
"꺄!"
은진은 자신을 향해 타구가 날아오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야구를 하는 애인을 둬서 글러브는 가지고 있었다.
휘익~ 턱.
로날드가 날린 타구는 우연인지 몰라도 은진이 눈을 감고 내민 글러브에 쏙 들어갔다. 그 모습에 은진은 신기하게 생각했고, 로날드는 크게 환호했다.
"에~!!!"
로날드의 환호의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만루 홈런으로 한 순간에 4대 2로 역전하자 양키즈 팬들은 크게 환호했다.
"우와~!!!!"
"쩔어!!!"
9회말은 아니지만, 8회말의 대역전에 환호하지 않을 양키즈 팬은 없었다. 하지만 정작 승리를 눈앞에 둔 양키스의 선수들 중 일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있었다.
"쳇……."
"정말로 칠 줄이야……."
"하필 공은 왜 거기로 갔데……."
다른 곳으로 갔다면 어떻게든 다시 도전할 마음이 있다. 하지만 로날드의 홈런볼은 정확히 은진의 글러브에 들어간 것을 봤고, 전광판의 중계 화면에서도 그걸 보여 주었다.
마치 두 사람이 이어지는 것은 운명이니 끼어들지 말라는 것 같은 모습. 심지어 은진의 옆에 있던 그녀의 아버지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만루홈런이 결승타점이 되었고, 양키즈는 1승 2패로 다저스를 추격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 * *
경기를 패배로 마무리하자 다저스의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까딱하면 제일 밉상인 사람이 다치기 마련. 지금 다저스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은 바로 동욱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동욱에게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낸 2점도 동욱이 솔로 홈런으로 만든 점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욱은 혹시라도 엄마가 선물해준 배트를 다른 선수가 또 훔쳐서 숨긴 건 아닌가 걱정했다.
"휴……."
하지만 그럴 정신이 없었는지, 의도가 없었는지 배트는 멀쩡히 잘 있었다. 동욱은 가방을 정리한 다음 선수단 버스로 갔다.
그러던 중, 다른 선수들과 같이 정리를 하고 다음 경기 선발을 준비하고 있던 현민은 익숙한 핸드폰을 보았다.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는지 자신의 핸드폰 옆에 덩그러니 있었다. 주변을 돌아봤지만, 핸드폰을 가져가야 할 사람은 자신만 남아 있었다.
"누구 거지?"
이대로 둘 수 없고, 어차피 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다. 여기 맡겨진 핸드폰이라면 다저스 선수 중 한 사람의 것이 분명하고, 그 전에 버스에서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착각했다면 다시 돌려주러 오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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