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15화 (315/325)

[315]

"그러실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서 다행입니다."

그러자 지예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뭐야. 설마 내가 기레기처럼 이거다 싶으면 막 써 올리는 사람으로 보여?"

"아뇨, 그럴리가요. 다만 확실히 좋은 소재라 생각하니 저도 욕심이 났거든요."

자신의 말에 동의하는 동팔의 반응에 지예는 즉시 말했다.

"그렇지?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어차피 당장은 무리니까 천천히 설득해 봐야지. 정 안 되면 은진이 로날드와 결혼하게 되었을 때, 짤막한 에피소드로 올리면 되니까."

"바꿔 말하면 결혼하지 못했을 경우, 말할 수 없다는 거군요."

동팔의 말에 지예가 말했다.

"글쎄. 난 두 사람이 거의 결혼할 거라고 보는데."

"네? 어째서요?"

동팔의 물음에 지예는 아직 어리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너도 결혼했으면서 아직도 몰라? 하긴 넌 생각보다 순조롭게 결혼한 경우니까. 잘 들어. 로날드가 활약을 하건 안 하건, 이미 두 사람의 마음은 한 곳을 향하고 있어. 그럼 그것으로 끝이야. 주변의 상황이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의 결혼은 어떻게 되던 성사될 거니까."

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일단 양키즈 분위기가 어떤지 확인하려고 왔어. 어차피 네가 마운드에 서려면 이기고 있어야 확률이 높잖아?"

"그건 그렇지만, 너무 지고 있지 않다면 올라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건 그거대로 좋고. 그럼 화이팅. 오늘 경기는 이겨. 안 그러면 내가 쓸 기사가 줄어들잖아."

"아, 네… 아하하……."

한편, 동욱은 가방을 정리하던 중, 이상한 것을 알아차렸다.

"어?"

엄마에게 선물받은 배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잘못 봤나 싶어서 계속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런 동욱을 보며 타자들은 들리지 않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한 번 찾아봐.'

'어디에 있을지 가슴 좀 졸여…….'

하지만 그들의 비웃음도 동욱의 단 한 마디에 사라졌다.

"누구야……."

살의가 느껴지는 말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아무 말이 없자 동욱은 다시 말했다.

"누구야……."

사실상 범인을 확정. 정확하게 말하면 범인이라 생각되는 무리를 확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동욱의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래도 한 사람은 당당하게 발뺌을 했다.

"뭔데? 뭔지 말하지도 않고 누구냐고 물으면 우리가 어떻게 알아?"

그러자 동욱이 말했다.

"닥치고 당장 배트 가져와."

동욱의 말에 다른 타자가 와서 말했다.

"지금 네가 배트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실수하고 안 가져오거나 잃어버린 걸……."

와락~ 턱!!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동욱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말 안 들려? 닥치고 가져와. 내가 항상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물건이야. 방금 전에도 확인을 했어. 그리고 절대로 쓰지 않는 거야. 그런데 뭐? 잃어버려? 놓고 와? 나 지금 니들 장난에 어울릴 생각 없으니까 당장 가져와. 쳐 맞기 전에."

처음에는 장난이었지만, 동욱이 너무 과격하게 반응하자 그들도 더 이상 장난할 수 없었다.

"야, 너 이거 놓고……."

동욱의 타격의 기술과 힘에 대해 인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순수한 완력은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해 멱살을 잡은 손을 풀려고 했다. 그러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이, 이거 왜 이렇게 힘이 쌔?'

분명히 덩치도 자신이 더 크고, 근육도 더 많다. 하지만 자신보다 얇은 동욱의 팔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잡은 손을 풀려고 해도 마치 쇳덩어리처럼 느껴져 하지 못했다.

"크흑. 큭……."

잡힌 선수가 숨을 쉬지 못하자 다른 선수들이 다급해졌다.

"야, 너 뭐해!!"

"사람 죽이려고 작정했어?"

"당장 안 놔?"

여러 사람이 달려들었지만, 여전히 멱살을 잡은 동욱의 손을 풀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동욱을 때릴 수도 없었다. 몸이 재산인 선수들이었고, 이 상황에서 폭력 사태가 더 커지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동욱이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겨우 얻은 2승도 빛을 바라게 된다.

"빨리 안 오고 뭐해!!"

결국 타격 코치가 크게 소리를 지르자 소란은 잠시 멎었다. 동욱도 더 이상 멱살을 쥐지 않고 풀면서 말했다.

"가져 와. 당장."

타격 코치가 지금 왔지만, 평상시 분위기를 알고 있었으니 어떤 상황인지 얼추 감이 왔다.

'이 녀석들이 뭔가 장난을 친 것이 확실한데…….'

그렇지 않아도 동욱에게 반감을 갖고 있었고, 무엇인지 몰라도 장난칠 거리를 찾은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 장난이 동욱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렸다는 것이다.

"동욱아. 지금 당장 경기에……."

"찾기 전까지 안 갑니다."

"너……."

자신의 말을 끊고 항명까지 하자 타격 코치는 호통을 치려했다. 하지만 동욱의 눈동자를 보자 그 생각을 바로 접었다.

'지금 눈이 완전히 돌아갔어. 이 상태에선 뭘 해도 안 돼.'

선수들에 비해 더 많은 사람을 상대했고, 경험했다. 지금 동욱의 눈빛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본능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리고 사라진 물건이 뭔데?"

동욱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도 한 질문이었다.

"배트입니다. 항상 가지고 다니지만, 절대로 쓰지 않는 겁니다. 어머니께서 주신 유일한… 선물입니다."

동욱의 말에 타격 코치는 다른 선수들에게 눈을 부릅떴다. 지금 당장 숨긴 걸 가져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빛에 한 선수가 구석에 숨겨둔 배트를 꺼냈다.

"시바… 장난도 못 치네."

단순한 애장품이었다면 모르쇠로 일관하겠지만, 어머니가 선물한 유일한 물건이라 했으니 그렇게 하진 못했다.

동욱은 그들이 배트를 가져오자 멱살을 잡은 것과 달리 조심스럽게 배트를 받았다. 그리고 가방에 넣은 후, 선수단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 사랑과 질투의 힘으로!?

월드시리즈의 일정은 처음과 마지막의 각 두 경기를 LA에서. 그 가운데 있는 3~5 번째 경기는 뉴욕에서 진행된다.

이것은 올스타전의 우승팀이 내셔널리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셔널리그의 구단인 LA 다저스가 조금 더 유리한 일정으로 월드시리즈를 치르는 것이다.

세부적인 규정은 매번 시즌을 시작할 때마다 바뀌긴 하지만 큰 틀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부터 연속해서 세 경기는 뉴욕 양키즈의 홈에서 하는 만큼, 룰도 거기에 맞추어 아메리칸리그의 지명타자제가 적용되었다.

지금 2연패에 빠져있는 양키즈에게 중요한 것은 연패를 끊고 승리하는 것. 비록 선발을 포함하여 마운드가 앞선 두 경기보다 약해보이지만, 이것은 다저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따악!!

경기 초반부터 뉴욕 양키즈의 타자들이 안타를 치며 진루에 성공했다.

"와아!!!"

단타였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진루하여 홈으로 돌아오는 것이 승리의 열쇠. 승리에 갈급(渴急 : 목이 마를 듯이 몹시 급(急)함. 속이 달아오를 지경(地境)으로 몹시 급(急)함)한 양키즈의 팬들로선 작은 단타 하나라도 소중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응원에 열심히 노력하고 집중하는 선수들에게 마음을 담아 더욱 크게 응원했다. 저들이 왜 이렇게까지 전심전력을 다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절대로 로날드가 크게 활약하게 만들어서 안 돼.'

'오늘의 영웅은 바로 나!!!'

그렇다고 자신들의 욕심으로 팀의 승리를 날려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선을 지키며, 졸지에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된 뉴욕 양키즈의 젊은 선수들.

그들을 보며 이미 결혼을 한 선수들은 혀를 내둘렀다.

"진짜 메이저리그에 오래 있었지만, 이런 이유로 열심히 하는 건 처음보네."

"거참! 내가 오래 산 것도 아닌데, 나이가 있다는 걸 실감하는구만."

선수들이라 나이가 아주 많아도 서른 중반을 넘어가기 힘들었다. 미인과 어떻게든 이어져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메이저리거라 미인이라면 손을 뻗는 대로 얻을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아무나 만나서 사귀고 결혼할 수는 없지. 얼굴이랑 몸매가 전부는 아니니까.'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성격도 착하고 머리가 좋다면 거기에 미모까지 있기를 바라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로날드를 선택한 계기를 보면 은진의 가치관이 바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영어와 한국어를 잘 구사하고, 뛰어난 언니를 닮아선지 한국의 일류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 대단하건만, 웬만한 모델 뺨을 후려칠 정도로 예쁘다? 한 두 개의 크라운도 쉽지 않지만, 트리플 크라운의 여인을 만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물론 은진과 사귄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희망을 보기 위해선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아야 하는 법.

그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양키즈의 선수들은 이전에 없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오늘 선발 투수인 조던 워렌이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한동욱과 좋은 승부를 걸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실점을 최소화 한다.'

투수로서의 자존심보다 인생의 반려를 얻기 위한 투자를 선택했다. 그 결과.

휙~. 휙~. 휙~. 휙~.

한동욱에게 노골적인 고의 볼넷을 던졌다. 그렇다고 다른 선수들을 상대로 대충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버린 자존심만큼 그에 상응하는 기록의 희생물로 삼아야 했다.

그는 프로 중의 프로인 메이저리거. 당연히 이해타산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휙~ 퍽.

"스트라이크~ 아웃!!"

지금 그가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

'최대한 많은 이닝을. 그리고 최소한의 실점을!!!'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이번 경기에서의 활약이었다. 야구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투수의 비중이 제일 크다.

당연히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은 승리뿐이다. 그렇다고 변경직(?)인 타자이자 수비수들이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휙~.

"……."

이전의 호전적인 타자들조차 이번에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공을 고르고 있었다. 볼넷으로 걸어나가는 것보다 안타가 좋긴 하지만, 방금 전에 한 코치의 말이 신경쓰였다.

'지금 너희들이 어떤 생각인지 알겠는데, 그래도 팀에 피해가 가면 안 되잖아. 욕심을 부리려다 오히려 감점을 받을 수 있어. 그러니 삼진을 당하는 것보다 범타를, 범타보다 볼넷을 고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너희들이 생각하는 착하고 희생적인 것을 좋아하는 은진의 성향을 생각하면.'

이건 그에게만 한 말이 아니었다. 이미 로날드와 사귀고 있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던지려 하는 선수들의 귀에 선명하게 들어갔다.

그래서 지금 양키즈 대부분의 타자들은 투수의 공을 최대한 많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오늘 다저스의 투수는 당황스러웠다.

'이것들이 오늘따라 왜 이래?'

평상시에 본 기록과 다른 모습의 타자들. 그러니 기존의 기록을 토대로 한 대응책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매 이닝마다 주자를 내보냈고, 결국 다저스가 먼저 투수를 교체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한편, 다저스의 감독과 코치진은 양키즈의 달라진 행동에 의아했다.

"생각보다 신중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지켜보는 전략도 아니에요."

"더 이상 질 수 없다는 각오가 있다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런 것 치곤 너무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방법만 안다면 당장에 사용하고 싶군. 이번 시즌 끝나면 한 번 가서 물어볼까?"

그들은 모른다. 지금 양키즈의 선수들이 분발하는 제일 큰 이유가 미인계로 인한 것임을.

이기고 있으니 편하게 보는 코치와 선수들이 있지만, 이와 반대로 다저스에선 앞날을 걱정하는 코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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