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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두 번의 대결에서 이겼지만, 결국 이번 경기의 최종 승자는 한동욱 선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 맥없이 삼진을 당했을 땐 동팔 선수가 더 우위에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 야구는 끝까지 봐야 하는군요."
"다저스는 거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기록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경기는 기록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데이터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죠. 지금 양키즈의 상황은 암울합니다. 연장전을 노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어요."
"다저스는 이 1점을 반드시 지키려 할 겁니다. 그리고 양키즈는 챔피언십을 거쳐 물이 오른 거쇼와 다저스의 단단한 마운드를 상대해야 하는데… 문제는 9회 초에 6번 타순부터 시작이 됩니다. 다저스는 분명히 볼넷 하나도 허용하지 않으려 하겠죠."
그건 양키즈에서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방금 전 허용한 홈런이 더욱 아쉬웠다.
"교체할까요?"
"아니, 그냥 둬. 방금 전의 홈런은 사고였어. 던진 공이 더 빠졌다는 건 알고 있잖나?"
"그렇습니다만……."
"다른 투수가 나가봐야 맞기밖에 더 하겠어? 그렇다고 지완을 올려 보내면 더 중요할 때 올리지 못해."
패배가 거의 확정이라면, 손실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월드시리즈에서 첫 승을 먼저 가져가는 쪽이 우승할 확률이 높은 건 그들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과도하게 첫 승에 매달렸다가 준우승으로 끝난 사례도 있었다.
이후, 동욱은 흔들리지 않고 다저스의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9회 초에 양키즈의 타선도 막혔기 때문에 그것으로 월드시리즈의 첫 경기는 LA 다저스의 승리로 끝났다.
* * *
다저스는 첫 경기의 기세를 이어가 2연승에 성공했다. 월드시리즈에서 승리하기 위해 4번의 승리가 필요하다는 의미는 4번 패배할 경우 우승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 기회의 절반을 날려버린 뉴욕 양키즈는 경기 일정상 홈인 뉴욕에 와 있었다.
"……."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실력에 밀렸다면 최소한 저항을 하겠지만, 앞선 두 경기 모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라 더욱 아쉬웠다.
약간의 차이를 뒤집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가 없으니 더욱 쉽게 무기력해졌다. 이것은 프로라고 한들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 로날드 버드는 피식 거리며 웃고 있었다.
"크흡. 흐흐흡."
분위기 때문에 참아내고 있지만,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그런 로날드의 모습에 데니 행크스가 물었다.
"야, 너 혼자 좋은 일 있냐?"
분위기 파악을 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로날드는 데니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가에 웃음이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이제 허락 받았어. 경기에서 잘 하거나 우승하면 허락해 주시겠대."
로날드의 말에 다른 선수들은 그를 보았다. 지금 그가 사귀고 있는 사람이 은진이며, 혜진의 여동생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로날드를 본 다음, 지완을 보았다.
그래서 지완은 졸지에 증인 1이 되어 증언을 하게 되었다.
"음… 사실이야. 내가 있는 앞에서 말씀하셨어."
그것은 뉴욕에 돌아옴과 동시에 있었던 일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한 번 가족모임에 참여하게 된 로날드. LA에서 당한 2연패에 의기소침한 그를 보며 은진의 아버지가 한 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좋지 않은 성적에 혜진과 은진이 각기 다른 형태로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혜진은 뉴욕 양키즈의 수석 분석관으로서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걱정이라면, 은진은 로날드가 힘들어하니 같이 힘들어 했다.
그래서 은진의 아버지는 과감하게 이런 조건을 걸어주었다.
"홈런을 치든, 뭘 하든 잘 해봐. 우승하면 좋게 생각해 보겠네."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허락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좋게 생각해 주겠다는 것이었지만, 로날드는 그보다 몇 걸음 더 나아가 허락이라고 받아들였다.
또한 은진의 아버지의 말에는 이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활약이 별로 없다면 은진과 만나는 것을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로날드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그동안 준수한 활약을 해왔고, 그 자체만으로 강한 프라이드가 있었다.
그래서 실패하거나 좋지 않은 경우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닫혀 있던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로날드는 비록 자신의 팀이 2연패에 빠졌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들었지? 나 장가가야 하니까 너희들이 도와줘."
로날드의 뻔뻔한 말에 대부분의 선수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흥! 누구 좋으라고?"
"우승을 하더라도 너의 활약은 없을 거다."
"누가 너 때문에 우승하겠대?"
"넌 평생 방구석에서 혼자 쓸쓸하게 있어. 이제 은진 씨는 나랑 만나면 되니까."
특히 로날드에게 밀려 은진과 만나지도 못한 젊은 선수들이 제일 격렬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다른 선수들, 특히 아직 결혼을 안 한 선수들이 각오를 다졌다.
"이제부터 싹쓸이다."
"로날드가 나올 기회 따윈 없어!!"
방금 전만 해도 2연패에 의해 의기소침하던 양키즈의 클럽하우스 분위기는 바뀌었다. 그리고 어느새 몇 몇 선수를 제외하고 혼자 남은 로날드가 말했다.
"저기… 월드시리즈에서 활약한 선수랑 허락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는데……."
그의 말에 이미 결혼을 한 선수들이 다가와서 말했다.
"아무렴 무슨 상관이야."
"계속 기운이 없는 것보다 훨씬 낫지."
"그래도 너무 과열되는 건 좋지 않지만……."
그건 그 때가 되어 생각할 문제였다. 예상외의 일로 인해 뉴욕 양키즈의 선수들은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질투라는 이름의 불길이….
한편, 이제 어웨이로 온 LA 다저스는 아직 경기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호텔에 묵고 있는 그들은 각자 정해진 스케줄에 맞추어 휴식과 훈련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정해진 훈련장에서 각자에 맞는 훈련을 할 때였다.
월드시리즈에서 2연승을 했으니 분위기는 당연히 좋았다. 항상 훈련만 하는 것은 아니라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쉬는 시간에 타자들끼리 모여 있었다.
"오늘 올라오는 선발이 누구지?"
"3선발이지만 만만치 않을 거야. 기록도 만만치 않고 구위도 좋아."
"그것도 그렇지만, 어쩌면 이번에는 이기든 지든 지완이랑 동팔이 올라올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까딱하면 다음 경기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데."
오늘 있을 경기에 대해서 활기차게 말을 할 때, 동욱이 배트를 들고 왔다. 그러자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대화는 단시간에 사라졌다.
2연승을 이끈 주역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걸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동욱이 자신의 가방에서 배트를 고르는 것을 슬쩍 보기만 했다. 동욱은 어떤 배트를 들었다가 미소를 지었다.
평상시에 항상 무표정하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동욱은 그 배트를 선택하지 않고 다른 배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동욱이 자리를 떠나자 타자들이 수근 거렸다.
"뭐야? 나 저 표정 처음 봤어."
"항상 무시하는 얼굴만 하는 줄 알았는데 저런 표정도 지어? 사람이긴 했구나."
"그런데 저 배트가 뭔데 그래? 애인이 사줬나?"
"애인이라면 우리도 알고 있었을 텐데, 뭘. 현민이가 이야기 해봤는데 애인은 없다더라."
"그럼 대체 뭐야?"
그 말을 하고 동욱이 주변에 없는지 두리번거렸다. 동욱이 보이지 않자 조심스럽게 그의 가방을 열었다. 그러자 거기엔 여러 개의 배트가 있었고,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은 한국어로 글씨가 쓰인 배트였다.
"이거… 그냥 평범한데. 메이커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야."
그는 그 말을 하고 툭툭 쳐 봤다. 소리가 맑지 않고 끊기는 것처럼 둔탁하자 다른 배트를 잡아서 손으로 툭툭 쳤다. 이번에는 맑은 소리가 나오자 어떤 상태인지 알았다.
"이건 멀쩡한데… 이건 깨졌어. 쪼개진 걸 다시 붙인 것 같아."
"그래? 하긴 그러니까 소리가 이상했겠지. 그런데… 이걸 왜 가지고 다니는 거야? 어차피 사용도 못할 거잖아."
이미 한 번 쪼개진 배트는 규정상 사용할 수 없었다. 타격능력이 더 높아져서가 아니라 안전을 위해서였다. 쪼개진 배트는 다시 쪼개지기 쉽고, 날카로운 편이 그물 사이를 통과하여 관중이나 선수 및 심판들에게 큰 위험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중한 거겠지. 누가 줬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에 다저스의 타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악동 같은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럼……."
"이게 사라지면 동욱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도 보통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리 심하지 않는 장난이라 생각했고, 경기력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판단으로 인해 그들의 선택은 빨랐다.
"그럼… 어디다 숨기면 될까?"
그들은 동욱의 엄마가 선물한 배트를 숨기기 위해 빼낸 후, 가방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놨다. 이 일로 인해 얼마나 심각한 사태가 생길지 전혀 모르고…….
* * *
다른 사람들은 구단 내의 분위기가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는 바로 언론에 속한 기자가 쓴 기사 하나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기사를 쓸 수 있는 기자는 구단에서 정식으로 출입 허가를 받은 사람이었다. 신지예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로 조심해야 할 그녀지만, 그녀의 전담 인터뷰 상대는 주로 동팔이었다. 덤으로 지완도 있었지만, 같은 한국인에 안면이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기를 시작하기 얼마 전, 지예는 동팔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상태는 어때?"
"괜찮아요. 지금이라도 선발로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그 정도로? 잘 됐네."
동팔이 한 말은 사실그대로지만, 지예는 상태가 좋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였다.
"지금 양키즈 분위기 어때? 2연패잖아."
친분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민감한 문제라도 쉽게 물을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고 있죠."
물론 그 전의를 불태우게 된 계기는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기자의 정보력을 가볍게 본 동팔의 착각이었다.
"하긴 사랑과 질투의 불길이 보통 강렬한 게 아니니까."
"어, 어떻게 알고……."
"어떻게라니? 내가 지완이랑도 친해졌잖아. 그리고 혜진이랑 민희랑도 친하고. 그럼 당연히 은진이 일도 알게 되는 거지."
확실히 알게 되는 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동팔이 놀라는 점은 알았다는 것보다 '빨리' 알아차렸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동팔아, 네가 소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러는데, 여자들끼리의 네트워크는 남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강해."
"강해요? 뭐가요?"
"과장(誇張)이."
자신이 그녀들 앞에서 말 한 마디 실수할 경우, 그 여파가 어떨지 동팔은 두려워졌다.
"그나저나 이번 관전 포인트는 재밌겠다. 로날드가 과연 이번에 활약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말이야. 그리고 과연 아버님께 허락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안 그래?"
"저기… 설마 정말 기사로 쓰실 생각이세요? 은진이네는 일반인인데."
"쓰기는 쓸 거야. 하지만 기사로 올라갈지 말지는 은진이랑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올려야지."
그러면서 지예는 아깝다는 듯이 말했다.
"이거 정말 재미있는 건데 함부로 올릴 수도 없고 아쉽네. 올라가더라도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난 다음에야 가능하겠지만."
지예의 그 말에 동팔은 안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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