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13화 (313/325)

[313]

스윽… 휙!!

동팔은 동욱을 상대할 때마다 공의 정보를 최소화시켰다. 팔은 최대한 젖히고, 공을 쥔 그립의 노출은 최소화했다.

동욱은 유인구가 통하지 않고, 느린공은 더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스트라이크 존에 걸리는 것만 치느냐, 그렇지도 않았다. 배트에 걸리는 공이라면 사양 않고 휘둘렀다.

동욱을 상대함에 있어 던져야 하는 구속은 최소 95마일. 그 이하라면 너클볼이나 급격히 떨어지는 포크볼만이 가능했다.

어느 타자를 상대하더라도 다양한 구종을 던질 수 있는 동팔이지만, 동욱을 상대할 때만큼은 구종의 제한을 받았다.

그렇다고 동욱이 동팔을 상대하는 것이 편한 것은 아니다.

'교묘해. 빠질까? 아니, 이걸 쳐도 되나?'

배트를 휘두른다고 끝이 아니었다. 쳤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가능한 정확하게 타격을 해야 했다.

타격을 해도 4할이 범타로 끝나는 것을 생각하면 눈에 보인다고 해서 함부로 휘두를 수 없었다.

휙~ 퍽!!

동욱은 배트를 휘두르려다가 뒤로 뺐다.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할 것처럼 날아오더니 홈플레이트의 앞에 도달하자 중력의 방향이 갑자기 바뀐 것처럼 바깥으로 빠졌다.

첫 공방에 중계진은 감탄을 연발했다.

"좋은 공에 뛰어난 반응입니다. 설마 97마일의 공이 저렇게 큰 변화를 가질 수 있을까요?"

"저는 처음에 존의 아래를 통과하는 포심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슬라이더군요. 어느 타자라도 속아서 헛스윙을 하게 될 공이었지만, 역시 한동욱입니다. 강동팔의 슬라이더를 보고 볼을 골라낼 수 있는 유일한 타자입니다."

"처음부터 흥미진진하군요."

"서로가 잘 알고 있거든요. 하찮은 수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그러니 각자 할 수 있는 최고의 집중력으로 상대하고 있는 겁니다."

초구는 볼이 되었지만 동팔은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배트가 나갔다가 들어갔어. 그만큼 반응이 좋지만, 내 공도 나쁘지 않았다는 증거야.'

'위험했다. 까딱하면 속을 뻔했어. 올해 거의 보지 못해서 그런지 적응이 쉽지 않아.'

간만에 상대하는 동팔의 공이라 동욱은 이전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경기는 한 점 승부. 그리고 나에게 있는 기회는 최소 세 번. 그 사이에 적응하면 이전처럼 느낄 수 있어.'

그 생각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동욱이었다. 그리고 동팔의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이번에 던진 공의 속도는 98마일의 강속구였다. 하지만 동욱은 공이 날아오는 것을 보자 확실히 알아차렸다.

'스트라이크!'

동욱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배트를 휘둘렀다.

타악!!

하지만 빗맞았는지 공은 뒤로 넘어가 파울이 되었다. 내심 범타를 유도하려고 했던 동팔은 아쉬워했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은 동욱은 안도했다.

그리고 이 장면을 보는 양 팀의 팬들은 심장이 쫄깃해 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1볼에 1스트라이크…….'

'쉬운 공 절대 안 던지고, 어려운 공도 어떻게든 쳐 내거나 고르고…….'

어느 한 쪽이 우세하다는 기록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다. 한 치 앞,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긴장하며 지켜보게 만들었다.

동욱은 배트를 가볍게 휘두르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사이 포수와 사인을 교환한 동팔도 자세를 잡았다.

세 번째 대결에서 동팔이 선택한 구종은 패스트볼에서 움직임이 제일 큰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휙~.

궤적만으로 보면 슬라이더나 커브로 보일 수 있는 공이지만, 속도가 빨라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니 타자들은 투심 패스트볼을 상대할 때, 변화구인지 직구인지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상황이 끝나 있었다.

하지만 동욱은 보통에 해당하는 타자가 아니었다.

'투심!! 이번에도 범타 유도?'

배트를 휘둘러도 정타가 우연히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운에 맡길 생각이 없는 동욱이다. 명백하게 의도가 보이지만, 그렇다고 안 칠 수도 없었다.

동팔이 던진 공은 이번에도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휙~ 타악!!

그래서 동욱은 다음에 조금 더 유리한 기회를 얻기 위해 공의 밑을 노렸다. 이번에도 역시 파울이 되어 볼카운트는 2스트라이크에 1볼. 타자에게 지극히 불리한 볼카운트가 되었다.

그러나 상대하는 두 사람이니 중계진은 다른 말을 했다.

"볼카운트는 한동욱 선수가 불리합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군요."

"사실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리고 볼카운트가 유리해도 타자가 한 방을 치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입니다.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되죠. 한동욱 선수가 초구를 잘 치긴 하지만, 지금처럼 몰린 상황에서도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동욱은 몰려 있는 상황이 익숙해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저 지금 동팔이 던지는 공을 어떻게 공략할지 고심하고 있을 뿐이었다.

'함정을 파? 당할까? 그 전에 내가 더 빨리 적응을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첫 경기에서 능력을 강화시킬 수는 없어. 그러면 내일과 모레 경기를 놓치게 돼.'

강적을 상대로 이기는 것도 좋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상대로부터 얻는 승리도 같은 승리가 된다.

1승을 얻으려다 2패를 당하는 것 보다 오늘 경기에서 동팔에게 지더라도 그 뒤의 경기를 잡으면 된다 생각했다.

이왕이면 동팔이 다시 마운드에 서지 못하도록 2~5번째 경기를 다 잡아버리면 월드시리즈는 그대로 끝난다.

'중요한 것은 월드시리즈 우승. 그리고 그건 동팔을 상대로 반드시 이겨야 가능한 건 아냐. 그럼…….'

그 생각에 동욱은 앞으로의 계획을 지금 타석에서 바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느끼고 있던 대결의 압박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4승 1패의 우승보다 더 좋은 길이 있었다.

'잡는다. 첫 경기부터 전부.'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감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 첫 발을 위해 동욱은 바깥쪽 아래로 빠지는 공에 아슬아슬한 차이로 일부러 헛스윙을 했다.

휙~ 퍽!

"스트라이크~ 아웃!!"

이번 시즌에서 정말로 오랜만에 삼진을 당한 동욱의 표정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동욱의 삼진에 다저스의 팬들은 망연자실했고 양키즈의 분위기는 크게 올라갔다.

동팔도 앞으로 겪을 큰 세 개의 고비 중 하나를 넘어갔다는 것에 일단 안도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과 걱정이 들었다.

'분명히 좋은 공이었고 걸치며 들어가는 공이라 판단하는데 최대한 흔들리도록 했지만 헛스윙을? 간만에 만나서 적응을 못한 건가?'

지금 월드시리즈에 걸린 것을 생각하면 일부러 헛스윙을 하리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대결에서도 비슷한 공에 헛스윙을 하자 동팔의 의심은 조금 거두어지고 말았다.

*     *     *

"스트라이크~ 아웃!!"

다저스의 3번 타자가 동팔의 공에 속아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결국 3아웃으로 공수를 교대했다.

7회 말까지 양키즈와 다저스의 선발투수가 호투를 이어 0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이 이목을 끄는 것은 역시나 동팔과 동욱의 대결이었다.

"감이 떨어진 걸까? 두 번 맞대결에서 처음은 삼진, 두 번째는 범타로 물러나다니……."

"공에 적응하지 못한 거겠지. 계속 상대하다보면 나아질지도 몰라."

"하지만 계속 비슷한 공에 배트가 나가다가 그대로 끝났잖아. 첫 경기는 끝났어. 차라리 내일을 기대하는 것이 낫겠다."

기대했던 팽팽한 대결이 아니라 김이 샌 듯 맥이 빠졌다. 그래서 이번에 공수교대를 하면서 동욱이 타석에 들어섰지만, 다저스 팬들의 기대는 많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저스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천하의 한동욱도 역시 동팔에게는 무리였나?"

"맡기라고 하더니 계속 같은 공에 헛스윙이야. 이번에도 볼 거 없겠네."

동욱이 타석에 나가 있으니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반면, 동욱을 무시하는 그들과 달리 동팔은 여전히 경계하고 있었다.

'설마 자신이 헛스윙한 공으로 계속 던지도록 유도하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동욱이 잘 쓰는 수법이었고, 동팔 본인도 그 방법으로 나름 좋은 기록을 냈었다.

당연히 같은 공에 헛스윙을 하니 의심만 늘어났다. 그런데 포수인 브라이언 산체스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슷한 공을 던지라는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동팔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볼넷으로 보내버려?'

그러면 경기는 훨씬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양키즈의 타선이 거쇼의 구위에 눌려 아직까지 점수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동팔과 지완의 가세로 인해 양키즈의 마운드가 튼튼하지만, 이전부터 투수왕국이라 불리던 다저스 쪽이 전반적으로 보면 더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동팔도 앞선 두 번의 타석에서 거쇼의 공을 제대로 치지 못하고 헛스윙과 범타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9회 말까지 0의 균형을 유지할 확률이 아주 높았다. 물론 동팔이 이번에 상대할 동욱에게 홈런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조건이 붙어야 했다.

세 번째 대결은 첫 번째와 달리 긴장감이 떨어졌다. 그래서 동팔도 아주 잠시 가볍게 생각하고 말았다.

'그래. 어쩌면 정말로 이번 경기에 한해서 동욱의 약점일 수 있어. 그렇다고 너무 같은 코스로 보내면 당할 것이 뻔해. 앞서 두 번의 타석에서 특히 그 공에 익숙해진 상태니까.'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듯 상대해도 부족한 타자가 한동욱임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 1점 차이로 승패가 결정된다.

지금까지 아무리 잘 던지고 잘 막아도 단 한 방에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었다. 물론 그 한 방을 꼭 한동욱에게 당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한동욱에게 가려졌을 뿐이지 치면 펜스를 넘길 수 있는 타자들이 다른 타순을 채우고 있었다.

이는 다저스만이 아니라 양키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동팔은 동욱이 헛스윙을 한 공과 비슷하면서도 더 빠지게 던지기로 했다.

스윽~ 휙!!

힘차게 던진 공은 빠르게 포수의 미트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동욱은 배트를 휘둘렀다.

'왔다!!'

동욱은 처음부터 자신이 헛스윙을 한 공이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바라지도 않았다. 다른 선수와 달리 자신을 인정하고 경계하는 동팔이라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예상대로 헛스윙을 유도하면서 안전하게 가기 위해 더 빠지는 공을 던졌다. 예상된 공. 그리고 배트 컨트롤을 통해 칠 수 있는 공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다 생각한 동욱이 있는 힘을 다 해 떨어지는 공을 받아쳐 퍼 올렸다.

따악!!!!

동팔의 공은 빠르게 날아오며 많은 회전으로 정확한 타격이 어렵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동욱의 타격은 어려운 상황을 뚫고, 힘을 실어 타격하는 데 성공했다.

뻗어나간 타구는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갔다.

"어, 어, 어……?"

"어디까지 가는 거야?"

각도가 높으면 외야플라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각도가 높아도 펜스를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동욱의 타구는 좌익수가 열심히 따라가 높이 뛰었지만, 약간의 차이로 펜스를 넘었갔다.

퍼버벙!!!

다저스 스타디움은 동욱의 솔로 홈런을 축하하며 폭죽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이번 대결에서 기대를 버리고 있던 다저스의 팬들이 전부 일어났다.

그리고 동욱이 루상을 돌고 홈플레이트를 밟자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환호했다.

"우와~!!!"

"이겼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저스의 팬들은 월드시리즈 첫 경기에서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도 이 경기가 1점을 누가 먼저 얻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투수 싸움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한대로 경기는 점차 흘러갔고, 지금은 8회 말이었다. 이후에 동팔이 계속 다저스의 타선을 완전히 막아도 양키스의 공격 기회는 단 한 번, 세 개의 아웃카운트만 남아 있었다.

거기에 타순도 중심타순이 아니라 하위타순부터 시작했다.

중계 카메라는 한숨을 내쉬는 동팔과 충격을 받았을 그에게 다가가 격려하는 브라이언 산체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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