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12화 (312/325)

[312]

"맞다. 하지만 지금 그건 네가 생각할 일도, 해야 할 일도 아니다.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미카엘의 말에 웜우드는 자신의 손에 들린 거대한 낫을 보며 말했다.

"그야… 사로잡힌 영혼의 구원입니다."

웜우드의 말에 미카엘은 백염의 칼을 고쳐쥐며 말했다.

"그렇다면 가라. 내가 길을 열 것이다."

웜우드가 말했다.

"설마 천계 군단장인 당신의 호위를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큼 그들을 향한 그분의 마음을 알 것 같군요."

웜우드는 거대한 낫을 고쳐 쥐며 다짐했다.

"그럼 가겠습니다. 당신과 그분을 믿고!!"

*     *     *

뉴욕과 한국 사이에서 오랜만에 거대한 영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전쟁이다."

하얀 늑대의 벗의 말에 동팔이 물었다.

"전쟁요?"

감히 미국에 전쟁을 걸 나라가 있을까? 하지만 하얀 늑대의 말이 의미하는 건 그것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격전지가 멀리 있지만, 이 근방의 악마들이 지원을 가기 위해 그쪽으로 대부분 빠졌다."

"그렇군요. 제가 오해했네요."

동팔의 말에 하얀 늑대의 벗은 이 말을 할까 하다가 하지 않았다.

'이 전쟁은 그대로 인해 생긴 것이다. 그리고…그대와 맞붙고 있는 그를 위해서 생긴 전쟁이다.'

그 전에 하얀 늑대의 벗은 동팔에게 물었다.

"민희는 어떤가? 안정이 되었나?"

"뭐… 조금은……."

민희가 자신에게 안기며 떠나지 말라는 말을 들었던 어제. 동팔은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가도록 했다.

그 이후에 한 것은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두 사람만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혼자서… 연년생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들겠죠?"

"힘들다.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두 명이 되면 당연히 더 힘들다. 나이차이가 나면 아이가 아이를 돌볼 수 있지만, 연년생은 그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이 민희가 바라는 바라면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겠죠."

다행히 동팔과 동욱 둘 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둘 중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다.

전력을 떠나서 두 팀 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비록 양키즈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것이 다저스보다 몇 배는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에 불과하다.

결국 단순하게 생각하면 동팔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50%. 하지만 경기가 계속되면서 생기게 될 결과에 따라 생존율의 분배가 서로 달라진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고, 삶이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오래 살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일만 아니라 한 시간 뒤의 일도 알지 못한다. 그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대로 끝난다 하더라도, 시간이 더 연장되더라도 지금 그대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다."

동팔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죠. 내일 열리는 첫 경기의 선발이니까."

지난 시즌에서 지역이 달라 맞대결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리그가 달라져 따로 보려고 작정하지 않는 이상 만나지 못했다.

1년 사이 서로가 얼마나 바뀌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절대 양보할 수 없다.

단순히 자신을 위해서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     *     *

다음날.

메이저리그 최대의 축제인 월드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이 아니더라도 월드시리즈는 그 자체만으로 야구팬들의 이목을 끌어당긴다.

지구 상 최고 리그에서 열리는 토너먼트 최고의 경기에 최고의 선수들이 맞붙는다. 그 자체만으로 국적이 다르다고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전과 달리 전 세계의 야구팬들이 더욱 주목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경기를 중계할 사람들도 모르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1년에 한 번씩 월드시리즈의 일곱 경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의 월드시리즈는 특별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죠. 저도 오늘 이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이번 시즌의 월드시리즈는 특별하죠.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이전에 했던 월드시리즈는 밋밋한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월드시리즈에 올라왔다면 모든 경기가 흥미진진했겠죠. 하지만 다른 구단을 응원하는 팬들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너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이번 월드시리즈가 재미있는 이유가 몇 가지 있죠? 먼저 동부와 서부에서 강력한 재력을 가지고 많은 팬을 보유한 두 팀이 마주쳤다는 겁니다. 동부와 서부의 대결. 그리고 양 팀 모두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것이 오랜만이라는 것입니다. 유명세와 달리 말이죠."

"그것도 있지만, 다른 구단의 팬들이 제일 관심을 가지는 건 따로 있습니다. 바로 강동팔 대 한동욱. 한동욱 대 강동팔 이라는 슈퍼 매치가 있는 경기거든요."

그 말을 하자 중계화면에선 두 선수를 비교하는 자료가 나왔다.

"각자 투수와 타자라 직접 비교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의 기록을 보면 흥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한동욱 선수가 최근 4년 동안 당한 삼진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

해설자의 물음에 캐스터는 이미 찾아 놓은 자료의 정보를 말했다.

"지금까지 16번의 삼진을 당했습니다. 놀라운 기록입니다. 한 시즌에 고작 삼진이 4개라니요."

"그런데 그 삼진의 대부분. 정확히 10개를 강동팔 선수가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천적처럼 보이겠습니다만, 그것도 아니에요. 강동팔 선수의 피홈런 기록을 보면 재기한 이후 고작 17개 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역시 10개를 한동욱 선수에게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였군요."

"그렇습니다. 특히 한국 프로리그의 기록이지만, 연속 한동욱 선수의 무삼진 기록을 깬 투수가 강동팔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그에게 처음으로 홈런을 친 타자는 한동욱이었죠."

"어떻게 보면 참 닮은 구석이 많은 두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오랜 무명의 시간을 버텼고, 다른 한 사람은 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활하여 다시 마운드에 올라왔으니까요."

중계화면에서 나오던 동팔과 동욱의 기록이 다른 화면으로 바뀌었다.

"이걸 알고 보면 이번 경기에서 관전 포인트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됩니다. 두 선수 사이의 엎치락뒤치락 하는 대결에서 과연 누가 이번 시즌에서 어떤 결과를 얻을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쩌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명할 동양인 용병의 대결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겁니다. 즉, 역사의 증인이 되는 거예요."

캐스터가 말했다.

"그렇게 보면 제가 지금 캐스터를 하고 있는 것도 천운이라 생각됩니다."

"왜 그렇죠?"

"안 그러면 제가 이 경기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없었을 테니까요. 이미 입장권은 매표소가 열리고 10분 만에 매진되었습니다. 온라인에 할당된 입장권은 서버가 열리자마자 1초도 되지 않아서 매진되었다고 하던데요."

"두 사람이 직접 마주치는 첫 경기와 여섯 번째 경기는 그럴 겁니다. 그래도 내일 경기는 조금은 나아질 거예요."

"확신하실 수 있는 겁니까?"

"뭐…아마도 말이죠. 그럼 선발 라인업 보겠습니다."

중계진이 해설을 이어가는 그 순간. LA 다저스가 홈이라 양키즈가 먼저 공격을 하게 된다. 그래서 불펜에서 공을 던지며 몸을 풀고 있는 동팔은 다저스의 더그아웃을 바라본다.

그러다 우연히 동욱과 눈이 마주쳤다.

경기 중에 상대 선수와 아는 척을 하거나 대화를 할 수 없는 것은 메이저리그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이라면 딱히 뭐라고 하진 않는다.

눈이 마주치자 동팔은 살짝 웃었다. 적어도 경기의 결과에 원한을 가지지 않겠다는 것. 하지만 동팔의 미소에도 동욱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동욱은 고개를 돌리며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미안함을 밀어냈다. 그리고 시구가 끝남과 동시에 뉴욕 양키즈와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첫 경기가 시작되었다.

# 전초전.

월드시리즈 1차전이 시작되자 한국에서도 중계하고 있었다.

"지난 시간, 월드시리즈에 한국인 선수 한 명만 있어도 대단하다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데 이번 월드시리즈에는 자그마치 4명이나 있습니다. 그것도 전부 선발이죠."

"정확하게 말하면 확실한 선발은 강동팔, 한동욱, 류현민 선수입니다. 남궁지완 선수의 경우는 불펜이라 선발이라고 딱 잘라서 말할 수 없지만, 뉴욕 양키즈의 확실한 마무리 투수인 이상 선발급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사실 어느 팀이 이겨도 한국인 선수 두 명은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각자 좋아하는 선수가 이기길 바라시겠지만, 네 선수 모두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편하게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럼 오늘 경기는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캐스터의 물음에 해설자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예상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해본다면 양 팀의 첫 이닝는 싱겁게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저스의 특급 선발인 거쇼가 오늘 등판하죠. 강동팔 선수와 선발대결을 하는 것도 볼 만하겠지만, 많은 분들은 그거보다 한동욱 선수와의 대결을 더 기다리실 겁니다. 그리고 이 대결이 첫 경기의 승패를 가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동안 두 선수의 대결 기록을 보면 막상막하입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메이저리그 중계진에서도 그 말을 하고 있군요."

그들은 메이저리그에서 중계하는 화면과 자신들이 알아온 정보를 바탕으로 시청자에게 설명을 했다. 하지만 그건 메이저리그 중계진이 한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흥미진진한 경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두 선수의 대결만이 승패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그렇습니다. 두 선수가 막상막하라면 결국 다른 선수들의 활약에 따라 승패가 정해집니다. 특급 투수라고 해서 항상 삼진으로 타자를 돌려세우진 못합니다. 범타를 유도했는데 수비가 실책을 범하거나, 송구 에러 및 타선이 터지지 않으면 아무리 투수가 잘 던져도 이길 수 없습니다."

중계진의 말대로 1회 초는 뉴욕 양키즈가 거쇼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삼진과 범타로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1회 말에 마운드에 오른 강동팔.

다저스의 타자들 또한 동팔의 마운드를 공략하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이것은 2회 초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데니 행크스가 단타로 1루로 진루했지만, 후속타가 터지지 않아 그것으로 끝났다.

사람들이 제일 기다리던 순간은 2회 말 첫 타석에 시작되었다.

한동욱이 타석에 서자 사람들은 응원하는 것을 잠시 잊고 그를 보았다. 한순간에 차분해진 다저스 스타디움의 분위기였지만, 그걸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성사된 두 사람의 대결. 동팔은 생각했다.

'능력을 과도하게 강화시키는 것은 현 시점에서 불가능해. 그럼 평상시의 동욱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동팔은 동욱이 능력을 강화시켜 전보다 느리게 느껴질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면 강화시킨 만큼 본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당연히 동욱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함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했다.

'첫 경기에서 사용하면 이후의 경기에 기본적인 능력도 사용할 수 없게 돼. 그러면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치게 되니 사용할 수 없어.'

자신의 능력을 강화시키면 어느 누가 던지는 공이라도 받아쳐 넘길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 때가 있듯 그 능력을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제일 효율적일 때 써야 하는 법이다.

앞으로 치를 경기가 많으니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욱은 상대하는 것이 아주 까다로운 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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