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10화 (310/325)

[310]

동시에 카를은 마지막을 맞이할 동팔의 절망을 미리 즐기며 공을 던졌다.

휙~!!

자신의 운명이 걸린 공이 날아오자, 동팔의 뇌는 생존을 위한 극한이 몸부림을 시작했다. 평상시보다 과도하게 들어오는 피. 피를 통해 많은 영양과 에너지가 공급되자 평상시에 제한하던 기능이 제약을 해제했다.

둥~!!

동팔은 1초에 몇 번을 뛰는지 셀 수 없던 심장박동이 극도로 천천히 뛴다고 느껴졌다. 거대한 북이 울리는 것처럼 온몸을 울리는 둔중함이 느껴진다.

동팔의 눈에선 자신의 숨통을 끊기 위해 공을 던지는 카를의 표정이 선명하게 보였다.

동시에 그가 쥐고 있던 그립의 모양. 팔의 각도, 공이 날아오는 방향은 물론 회전하는 방향까지 전부 다.

그것만 아니라 마운드로부터 자신의 앞까지 부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흙먼지를 통해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승부. 빠른 공으로 스탠딩 삼진을 노렸어. 공의 방향은 유인구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한 가운데.'

방금 전에 던진 공과 초반 궤적이 비슷했다. 만약 각성 상태가 아니라면 유인구로 파악하고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내가 처음부터 유인구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직구를 던졌겠지. 공을 던지자마자 그 짧은 시간에 의도를 바꾸는 건 어느 타자라도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 동팔은 일반 타자가 아니다. 날아오는 공의 궤적과 노려야 할 곳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흡!"

뻔히 보이는데 치지 않으면 그야말로 바보다. 동팔은 무리하지 않고, 힘이 과도하게 실리지 않도록 자세를 잡으며 배트를 휘둘렀다.

모든 것이 느리게 보였기에 자세의 제어 또한 쉬웠다. 배트가 공의 중심으로부터 아랫부분에. 그리고 배트의 스위트 스폿에 맞도록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안타를 통해 주자가 나가는 것이 아닌, 투런 홈런으로 경기를 끝내는 것.

따악!!!

그리고 동팔은 통쾌한 타격으로 공을 멀리 보냈다.

"와아!!!!"

좌석을 꽉 채운 양키즈의 팬들은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굳이 결과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동팔의 타구를 보는 순간, 그들은 이미 알고 느꼈다.

그들의 예상대로 타구는 펜스를 훌쩍 넘어 외야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퍼버벙~!!!

동팔의 홈런에 양키 스타디움은 화려한 폭죽을 터트려 투런 홈런을 축하했다. 폭죽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양키즈의 팬들은 일어선 상태에서 큰 함성을 터트렸다.

"이에!!!!"

"이겼다!!!!!"

"브라보!!!!!!"

그들은 통쾌한 홈런으로 루상을 도는 동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양키즈를 월드시리즈로 진출시킨 그에게 동팔의 응원가를 불렀다.

동팔이 홈플레이트를 밟자, 전광판의 점수판은 1대 1에서 2대 1로 바뀌었다. 이미 기다리고 있던 뉴욕 양키즈의 모든 선수들이 동팔에게 축하의 물을 끼얹었다.

"우리의 영웅이 집으로 돌아왔다!!!!"

"하하하하!!! 절라 좋아!!"

"옛다. 받아라!!! 하하하하하!!!"

그들은 투수인 동팔이 홈런을 쳤어도 질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홈런을 치자 격하게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그들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양키즈의 팬들. 자리에 없지만 중계로 보는 모든 양키즈의 팬들이 기뻐했다.

"흑흑. 드디어 양키즈가 월드시리즈에……."

"아빠 울어?"

"아냐, 안 울어…흑흑……."

아무리 눈물을 훔치고 숨겨도 흐르는 눈물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 흥분의 도가니는 십수분 동안 팬들이 동팔의 응원가를 한 목소리로 부르며 계속 이어졌다.

이 장면은 중계카메라로 촬영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양키즈의 전설적이고 극적인 장면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 월드시리즈, 그 첫 번째

뉴욕 양키즈의 극적인 진출에 밀렸지만, LA 다저스 또한 동욱의 강력한 타격 능력에 힘입어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두 팀 모두 동부의 끝과 서부의 끝을 오가는 강행군을 하게 되었지만,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것만으로 그 부분에 불평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챔피언십이 끝나고 이틀 정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 두 팀 모두 챔피언십에서 무리를 했기에 특별한 훈련을 하지 않았다.

힘겨운 싸움을 하고 난 그들을 쉬게 하는 것이, 월드시리즈에서 능력을 전부 발휘하는데 중요하다는 것을 양 팀의 감독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양 팀의 선수들은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쏟아 붓기 위해, 기력과 체력을 채우고 있었다.

덤으로 뉴욕 양키즈는 첫 경기를 LA에서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LA의 호텔에 와 있었다.

그 중에 한 명인 로날드 버드는 의외의 만남을 하게 되었다.

"으, 은진? 여긴 어떻게?"

그동안 시즌 내내 통화만 했지 만나지 못한 연인이었다. 월드시리즈가 시작되기 전에 이곳에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특히 연락도 없이 왔기에 예기치 못한 기쁨은 더욱 컸다.

"비행기 타고 왔죠. 당신 만나러."

한 두 시간으로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비자를 받는 것은 물론 12시간 이상이 걸리는 비행거리다.

그걸 넘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기쁘고 행복했다. 하지만…….

"크흠……."

"여보, 좀……."

문제는 은진만 온 것이 아니라, 그녀의 부모님까지 같이 왔다. 그들을 보자 로날드 버드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그의 한국어 인사에 은진의 어머니가 말했다.

"이젠 한국어 잘 하네. 많이 노력했나봐."

"네, 많이 대화했습니다."

은진의 아버지가 물었다.

"누구랑? 은진이랑?"

그의 물음에 로날드는 천진난만하게 사실대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동팔이랑 지완, 그리고 혜진과도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같은 팀에 한국인이 많으니 한국어 공부를 하는데 있어 좋은 환경이었다. 덤으로 은진과 종종 영어와 한국어로 번갈아 가며 대화를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 것을 떠나 통화를 많이 했다는 것에 아버지가 슬쩍 노려보자 은진은 당당하게 말했다.

"난 영어 배우고, 로날드는 한국어 배우고 좋죠. 뭘. 평상시에도 영어 공부 열심히 하시라면서요. 그렇지 않아도 통화할 수 있는 현지인이 있잖아요."

"끄응…말이라도 못하면……."

이미 딸들에게 말로 이길 생각은 이전에 버린 그였다. 그는 여기에 온 이유를 말했다.

"사위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고 하니 특별히 온 거야. 보름 정도 있다 갈 생각이니 그렇게 알아."

그 말을 증명하듯이 마침 지완과 혜진이 나왔다.

"오셨어요?"

"미리 말씀하고 오시지 갑자기 오면 로날드도 당황스럽잖아요."

딸의 핀잔과 사위의 인사에 은진의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리고 로날드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 가족끼리 식사를 할 건데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네? 저요? 제가 가도 되나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수는 없지. 그래서 올 거야, 안 올 거야?"

예비 장인어른의 말에 로날드는 바로 답했다.

"가겠습니다. 꼭 가고 싶습니다."

로날드의 적극적인 답변에 은진의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냥 온다고 하면 될 걸, 뭘 그렇게 소리를 쳐. 따라 와. 그렇지 않아도 LA에 한인 타운이 있으니 한국 음식 적응도 할 겸 거기로 가지."

한편, 역시 LA에 있는 동욱은 자신의 집에서 나가지 않고 있었다. LA 다저스를 월드시리즈로 끌어올린 그를 모르는 LA시민은 없다.

그가 나가거나 얼굴을 보이는 순간, 사인을 받기 위한 인파에 휩싸일 것이 뻔했다.

그래서 동욱은 집에서 자체적으로 훈련을 하며 경기를 준비했다. 그러던 중 전화를 받게 되었다.

"네, 여보세요."

-동욱이구나. 나다.

"엄마?"

-그래, 이 목소리가 엄마 말고 또 있어?

"아뇨. 그렇지 않아도 전화드릴까 했어요."

항상 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누나와 여동생에게 듣기로 상태가 악화되고 있으며, 일주일 중 절반은 깨어 있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전에도 최대한 자주 전화를 했다. 하지만 이렇게 엄마가 먼저 전화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차가 많이 차이나는 바람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저녁을 넘어 밤이 되어가는 시간이었고, 경기가 아닌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동욱은 엄마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경기가 있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뉴스에서 네 이름 많이 나오더구나. 전에 밥 같이 먹었던 동팔이라는 친구도.

"네. 이번에 월드시리즈에서 맞붙게 되었어요."

-그래. 운동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래도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결과를 내야 하는 건 알고 있지.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그렇지. 우리 아들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힘들어 하지 말고, 반대로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그러렴.

지금 동팔과 동욱은 월드시리즈이 결과에 따라 어느 한 쪽이 죽고, 다른 한 쪽은 산다. 어머니가 한 말은 상식적이며 일상적인 내용이지만, 적어도 이 두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말할 수 없었고, 엄마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됐어. 잘 되든, 안 되든. 누가 뭐라 해도 넌 내 아들이니까.

그 이후로도 두 사람은 계속 통화를 했다. 동욱은 오늘따라 엄마의 목소리가 깨끗하고 맑다고 느껴졌다.

"많이 건강해지셨나봐요. 목소리가 더 좋아진 것 같은데."

-그러니? 나도 요즘은 그렇게 느껴지더구나.

동욱은 동시에 불안함이 느껴졌다. 혹시 이것이 회광반조인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말을 내뱉고 싶지 않았다.

-이제 슬슬 의사선생님이 오실 때네. 수술 전에 검진을 더 자주한다고 말씀하셨거든.

수술이라는 말에 동욱은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 이제 곧 큰 수술이 있는데…….'

사실 더 이상 가망이 없는 엄마의 상태였다. 그래도 수술을 받는 것은 혹시라도 모를 아주 작은 회생의 희망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혹시라도 모를 마지막 미련을 버리기 위해서였다.

-동욱아.

"네, 엄마…."

-사랑해.

"……."

마치 마지막 인사와 같은 엄마의 말에 동욱은 잠시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대로 사랑한다 말하면, 자신도 역시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동욱은 선택했다.

"네… 저도 사랑해요… 엄마……."

*     *    *

모두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동팔도 미국으로 온 가족들과 만나고 있었다. 부모님과 누나만 아니라 민희의 부모님도 같이 있었다.

"이번에 첫 경기랑 여섯 번째 경기에 등판한다면서? 거기까지 갈 필요 없이 양키즈가 우승하면 좋겠는데."

"그랬으면 싶지만, 월드시리즈에 올라온 팀을 가볍게 상대할 수는 없잖아요. 거기에 동욱이를 계속 상대해야하니 많이 힘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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