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09화 (309/325)

[309]

'내가 올라왔을 땐, 최대 3점 이상의 차이도 각오했어. 1점이라면 오히려 할만해. 포기하지 않는다면…….'

감독과 선수들은 연장전을 생각했지만, 지완은 처음부터 9회말까지가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그는 동팔에게 들은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동팔이가 계획한 것이 잘 되어야 할 텐데…….'

지완이 마운드에 자신이 오르자 양키즈 팬들은 한탄을 했다.

"아… 진즉에 지완을 올렸다면……."

"그러면 연장전까지 끌고 갈 수 있었을 텐데……."

아무리 아쉬워도 이미 지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더그아웃에선 또 다른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감독님. 9회말에 저를 타석에 세워주세요."

동팔의 부탁에 감독은 단호하게 답했다.

"안 돼.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어."

동팔이 말했다.

"방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연장전으로 가게 되면 필요없는 계획이지만, 지금은 제일 가능성이 높은 방법입니다."

감독은 잠시 생각했다.

"일단 말해봐. 3분 안으로."

지금은 시간이 금이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1점 이상을 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완이 마운드를 지키게 되었고, 데미안의 타순은 지나갔다.

동팔은 그것을 언급했다.

"상대 공격의 제일 큰 위기들은 다 지나갔습니다. 결국 우리가 2점 이상을 얻으면 승리합니다."

"그건 알고 있어."

"그리고 주자가 나가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 홈런을 치면 경기는 끝납니다. 그것도 9회말에."

"당연한 이야기를 왜 자꾸 하는 건가?"

"간단합니다. 지금 제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느낌이 좋아요."

동팔의 그 말에 감독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객관적인 증거를 가져온 것도 아니고 자신의 말만 믿으라면서 많은 것을 걸라 하고 있다.

적어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건 동팔도 잘 알고 있었다.

"저의 감이 좋다는 증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뭘로?"

"9회말 때, 데니 행크스가 타석에 설 겁니다. 그가 볼넷으로 걸어 나가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러면 저를 타석에 세워주시면 됩니다."

"볼넷으로 걸어나가? 카를이 그걸 허용하지 않을 텐데?"

정규 시즌 중 초반의 카를이라면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각성을 하다못해 몇 단계 이상의 초월한 구위를 보여주고 있었다.

가끔 안타를 허용하고 있지만, 볼넷은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평상시의 동팔과 같이. 동팔이 말했다.

"그러니까 조건부로 말씀드린 겁니다. 무작정 믿어달라고 하는 건 무리란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

동팔의 말에 감독은 깊게 고민했다.

"알았어. 대신 데니가 볼넷으로 걸어 나갔을 때만이야. 안타나 다른 건 안 돼."

"네. 받아들이겠습니다."

감독의 허락이 떨어지자, 동팔은 재빠르게 데니에게 갔다. 그리고 그에게 무언가를 말하자 데니는 의아해했다.

"정말? 그렇게 하면 볼넷이 가능해?"

"응.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한 번 해봐."

"그래… 하긴 지금은 일단 진루를 해야 하니……."

타자의 욕심으론 안타로 출루하고 싶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의 욕심보다 팀의 승리를 우선해야 할 때임을 모르지 않았다.

"알았어. 다른 사람이 말하면 그냥 웃으며 넘어가겠지만, 동팔이 한 말이니까 믿어볼게."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을 때. 지완은 완벽한 피칭으로 8회초에 이루어진 시애틀의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그리고 8회말에 있었던 뉴욕 양키즈이 공격 또한 카를의 교묘한 변화구와 유인구로 인해 막혔다.

시애틀의 마지막 공격은 이어서 올라온 지완에게 막혔고, 이제 뉴욕 양키즈의 마지막 공격인 9회말이 시작되었다.

지금 양키즈의 팬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단 한점. 딱 한점만 나와라……."

"홈런 친 타자에게 내 전 재산을 준다, 진짜."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까맣게 잊을 말이었지만, 지금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대변해주고 있었다.

첫 타석에 오른 타자는 3번 타자인 데이비드 왓슨. 중심 타선부터 시작했으니 양키즈 팬들의 기대는 더욱 컸다.

어떻게 되든 걸리면 무조건 넘길 수 있는 타자들이 연달아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들이 기대와 달리 데이비드는 카를의 유인구에 속아 세 번째 공에서 헛스윙을 하여 삼진으로 물러났다.

"아……."

"이제 겨우 둘 남았네……."

다음에 올라온 선수는 양키즈의 4번 타자인 데니 행크스였다. 팬들도 기대를 많이 하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양키즈 팬들의 반응에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시애틀의 카를이었다.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는 표정을 볼 날이 멀지 않았어. 동팔만 아니라 이것도 나름 좋잖아?'

그 생각을 하며 타석에 선 데니 행크스를 보았다. 그가 바라는 구종이 무엇인지 알았다.

'구종은 딱히 신경쓰고 있지 않다.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것 같으면 일단 때리려는 건가?'

오히려 마지막 기회이니 공격적으로 나오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카를은 적절한 변화구를 생각하고 던졌다. 공을 던지자마자, 데니 행크스는 배트를 휘둘렀다.

'됐어!!'

유인구에 속았다고 생각하고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데니 행크스는 휘둘렀던 배트를 곧바로 회수했다.

퍽!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날아가는 것 같더니 급격히 방향을 비틀었다. 존을 통과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주심의 판정은 볼.

포수가 바로 데니 행크스의 배트가 돌아갔는지 심판에게 물어봤지만, 판정은 돌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중간에 알아차렸지?'

카를은 의아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데니 행크스의 배트를 유인하기 위해 변화구를 던졌다. 하지만 데니 행크스는 처음에 칠 것처럼 휘두르더니, 곧바로 배트를 회수했다.

아슬아슬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상황이 연속적으로 4번 반복되자 그제서야 카를은 알아차렸다.

'설마 내 능력을 역이용해서?'

그러나 이미 늦었다. 데니 행크스는 볼넷으로 1루까지 걸어갔다.

"잘 했어."

주루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보호대를 넘겼다. 그와 동시에 동팔은 감독에게 말했다.

"감독님……."

"……."

동팔의 말에 존 지라디 감독은 갈등했다.

'분명히 좋은 기회야. 이대로 홈런이라면 경기를 끝내고 월드시리즈로 갈 수 있어.'

상식적인 판단이라면 대타 기용에 있어 최고의 타자를 보내야 한다. 아직 타자로서 평균적인 동팔이 나오는 건 합리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방금 전에 한 약속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볼넷으로 나가면 대타로 보내겠다고 약속했는데…….'

동팔을 보낼까. 아니면 다른 타자를 내보낼까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할 시간이 너무 없었다.

"어차피 동팔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지. 가봐. 네가 못치더라도 원망할 사람은 없을 거다. 아마도……."

감독의 말에 동팔은 배트를 들고 일어났다.

"네!!"

*     *     *

타자가 올라오지 않자 양키즈 팬들은 알아차렸다.

"대타지?"

"그게 아니면 왜 아직 안 올라왔겠어."

분명히 타격감이 좋은 타자를 보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타석에 오른 타자는 투수인 강동팔이었다.

지금의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버텨온 그였으니 욕을 하는 관중은 없었다. 다만 이런 선택을 한 감독에게 욕을 하는 건 가능했다.

"존 지라디, 이 미친!!"

"지금이 여유를 부릴 때야!!!"

하지만 이 정도 반응은 수많은 세월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감독으로서 예상한 범위였다.

"이제 남은 것은 동팔이 한 방 날려주는 건데…가능할까?"

감독의 자조적인 말에 쉽게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 9회초 때 시애틀의 타선을 막고, 어깨에 얼음찜질을 하고 있던 지완이 말했다.

"가능합니다. 오늘 동팔의 감각은 좋거든요. 그리고 걸리면 날릴 수 있는 힘도 있습니다."

"그럼 당연히 좋지만……."

생각한대로 경기가 흘러간다면 그건 이미 신의 경지라 부를 것이다. 동시에 타석에 선 동팔은 이미 각오를 했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을 멈출 수 없었다.

'할 수 있을까? 내가 놓치면 이대로 끝인데?'

적어도 다른 사람의 손에 자신의 운명이 달린 것보다 나았다. 하지만 더 강력한 타자의 도움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동팔은 안다. 한동욱이 아니라면 지금 카를을 상대로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는 없다. 안타도 버겁다.

그리고 동팔은 아주 가끔이지만, 특별한 상태가 된다. 동욱의 능력과 같이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이는 것.

그 상태만 된다면, 카를의 어떠한 공이라도 받아 쳐 넘길 수 있다.

타석에 선 동팔만 아니라, 관중 속에 있는 민희와 다른 사람들도 이 순간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인 민희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정말로… 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확신할 수 없는 물음에 하얀 늑대의 벗은 확신하며 말했다.

"가능하다. 지금 동팔의 상태는 어떤 때보다 좋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확신할 수 없었다. 적어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하얀 늑대의 벗이 말했다.

"얼마 전, 동팔은 지완의 부상을 회복시켰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왜요? 설마 착한 일을 했다고 하늘이 선물을 주는 건가요?"

그러자 하얀 늑대의 벗이 말했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

"네?"

"그때, 지완의 부상을 회복시킴으로 인해서 동팔의 뇌는 강한 자극을 받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온 강력한 자극에 의해 그의 뇌는 주변의 상황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태다."

혜진이 물었다.

"그럼…그 이후로 종종 자신이 이 세상에 있지 않은 것 같다는 감각이 든 이유도……."

"그렇다. 뇌가 극도로 활성화되기 전의 전조 증상 중 하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때처럼 각성한 것과 같이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함은 존재했다.

"그런데 그 상태가 지금 당장 될까요?"

그렇지 않아도 그 말을 할 때, 동팔은 카를의 유인구에 배트가 나가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젠장… 이번 건 완전히 속았어.'

선구안이 있어 두 개의 볼을 얻어냈지만, 이것으로 인해 1스트라이크가 되었다. 남은 기회가 두 번인 상태에서 공을 기다렸다.

그리고 공이 날아오자 유인구라 판단하고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공은 존을 통과했다.

"스트~ 라이크!!"

현재 볼카운트는 2볼 2스트라이크. 어이없이 남은 기회 중 하나가 사라졌다. 그 순간, 동팔은 정말로 자신의 목숨이 이번 공에 달렸다는 생각에 절로 강력한 압박을 받았다.

몸은 지금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온몸에 힘을 공급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고, 그 현상은 심장이 더욱 거칠게 뛰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동팔은 의식이 멀어지는 것을 버티며 마운드에 오른 카를에게 집중했다. 순간, 동팔의 상태를 본 하얀 늑대의 벗이 말했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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