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08화 (308/325)

[308]

"알고 있어… 그러니까 닥쳐."

카를도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대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LA 다저스의 기세가 무섭던데요. 3연패를 하더니 다시 3연승으로 달리지 않나. 그리고 지금 우리처럼 단판 승부를 하고 있던데… 역시 한동욱이 무섭긴 무섭습니다."

*     *     *

카를이 말한대로 LA 다저스는 챔피언십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인기 구단임을 증명하듯 다저스 스타디움은 문을 열기도 전에 관중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월드시리즈 진출이 걸린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 입장권을 구입하는 것과 기다리는 것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 월드시리즈 진출의 코앞에 왔다는 것에 흥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라서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3연패 당했을 땐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최종전까지 오게 되다니……."

"한동욱이 타석에 서니까 경기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잖아."

"그렇게 두들겨도 무너지지 않던 마운드가 단번에 무너졌다니까."

"챔피언십에서만 타율이 9할… 타점은 15점에 득점도 6점… 도루도 4번 시도해서 전부 성공시켰고 실책은 전무… 어떻게 이런 타자가 있나 싶다."

"역시 연봉 1억인가……?"

처음에 동욱을 영입한 소식을 들은 LA 다저스의 팬들은 프런트의 결정을 비난했다. 분명히 동욱이 뛰어난 선수인 것은 맞지만, 연봉을 비롯해 영입하면서 든 비용을 생각하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 말하는 LA 다저스의 팬은 아무도 없었다.

"진짜 연봉 1억이 안 아깝다."

"이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나면 다른 선수들의 연봉을 깎아야지."

"그것까지는 좀 그렇고, 그냥 챔피언십 우승 상금을 동욱에게 양보해야지. 사실 동욱이 우승을 만든 거랑 뭐가 달라?"

그래서 지금 구단 상점에서는 동욱의 유니폼과 이니셜이 새겨진 물품이 매진되었다. 매진이 되자 화를 내는 사람이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없으면 만들어야지 언제까지 매진이야!!"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오자마자 나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습니다."

구단이라고 이 좋은 기회를 놓칠까. 그래서 계속 동욱과 관련된 상품을 만들고 있었지만, 팬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남녀노소는 물론하고 동욱의 인기는 LA 다저스에서 압도적이었다.

이런 상황에도 동욱은 자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선수들보다 이른 시간에 훈련장에 나왔고, 성실하게 훈련을 했다.

그 모습을 보는 동료들은 생각했다.

'재수 없는 녀석이지만, 이건 인정해야지.'

'조금이라도 안주하고, 아니 하루라도 늦게 온 날이 없었어.'

그러나 대단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존경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찾으려 했지만, 딱히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짜증날 뿐이었다.

그래도 동욱이 없으면 이렇게 최종 결전까지 못 왔을 것이고, 오늘 경기에도 제일 중요한 선수였다.

심지어 선발투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동욱은 챔피언십 마지막 경기에 나왔다.

*     *     *

이제 막 경기가 시작된 서부와 달리, 시차로 인해 더 빨리 시작된 동부는 이미 4회초가 지나고 있었다.

양키즈의 선발인 조나단은 데미안과 승부를 피하면서 다른 타자들은 상대로 삼진과 범타로 돌려세웠다.

하지만 그것도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해서 가끔 안타를 맞거나 볼넷으로 주자를 보낼 때가 있었다.

그러나 투수만 아니라 모든 수비가 유기적인 플레이를 펼침으로써 투수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반면 시애틀은 양키즈와 전혀 달랐다. 4회말이 되어 마운드에 오른 카를은 자신에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멍청한 것들에게 기댈 수도 없고……."

대체로 삼진보다 범타로 뉴욕 양키즈의 타자들을 돌려세웠다. 하지만 자신들이 반드시 이긴다는 안일함 때문인지 범타를 처리하다 실책이 두 번 나왔다.

'고작 세 이닝 사이에 실책이 셋? 이러다 실책으로 점수가 날지도 몰라. 그리고…지금 이 녀석들은 내가 최대한 많은 공을 던지게 만들려고 스윙을 자중하고 있어.'

카를이 원하는 것은 한 두 개의 공으로 범타를 만드는 것이다. 동팔과 달리 회복의 능력이 없으니 투수 숫자를 취대한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양키즈의 타자들은 스윙을 하기보다 최대한 보는 방향으로 가다보니, 한 타자당 최소 3개에서 많으면 6개의 공을 던지게 되었다.

계획한 것보다 더 많은 투구를 하게 되자 카를은 짜증이 났다.

'내가 아닌 다른 투수를 노리겠다는 거겠지? 하긴 지금 나를 이기려면 그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짜증나. 왜 데미안은 홈런을 안치고 있어? 정말 재미를 위해서?'

하지만 그건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카를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이었다.

휙~ 퍽.

"스트~ 라이크!!"

계속해서 공을 지켜본다면, 역시 공격적으로 공을 던져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 하지만 양키즈의 타자들은 두 번째 던지는 공은 끝까지 버티며 치지 않았고, 세 번째로 공을 던지게 되었을 때가 되서야 배트를 휘둘렀다.

그리고 소극적인 공격으로 인해 양키즈는 여전히 점수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시애틀도 굳건한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양키즈의 마운드를 공략하지 못하며 8회초까지 가게 되었다.

8회초가 되자 마운드에 올라온 투수를 보자 의아했다.

"어? 강동팔이 아니네? 8회에 좌완 강동팔이 올라오고, 9회에 남궁지완이 올라오는 것 아니었어?"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건 이기고 있을 때 이야기고. 지금은 0대 0이잖아. 어쩌면 연장전까지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좋은 카드를 벌써부터 쓸 수 있겠냐. 아마 단 1점이라도 이기고 있다면 네가 말한대로 되겠지."

"그래도 지금 너무 지루해. 심심해. 주자는 거의 나오지도 못하고, 계속 투수전만 하고 있잖아. 이게 챔피언십 마지막 경기가 아니었다면 나가도 훨씬 이전에 나갔을 걸?"

"그건 나도 동감……."

0대 0의 균형으로 인해 처음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하지만 과도한 긴장으로 인해 체력을 많이 소모하다보면 저절로 긴장이 풀어지기 마련. 관중이야 그래도 되지만, 선수들은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정신 바짝차려.'

'한 순간의 실책이 양키즈 역사에 영원히 박제된다.'

'거기에 내 이름을 올릴 수는 없어!!'

이유는 달라도 수비에 나온 선수들은 전부 고도의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올라온 시애틀의 타자는 데미안이었다.

그동안 볼넷으로 출루하던 그. 하지만 지금도 고민하고 있었다.

'쳐? 말아? 그냥 볼넷으로 전부 출루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모데스가 가만히 있을까?'

자신이 해방되던 재작년에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계약에서 해방된 이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월드시리즈 우승에 목을 맬 이유가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은 계약과 전혀 다른 이유로 생명을 위협당하고 있다.

'차라리 몰랐다면. 아니 처음부터 계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이번 타석이 어쩌면 이번 시즌 마지막 타석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모데스에게 버림받을 가능성도 아주 높았다.

그래서 데미안은 결심했다.

'어차피 나와 있는 주자는 없어. 이 상태에서 홈런이나 장타를 치면……?'

홈런이 된다면 1점을 얻게 되니 그 점수를 지키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동팔이 죽게 되겠지만, 자신이 죽는 것보다 나았다.

데미안은 생각했다.

'고작 1점이야. 다른 때처럼 3점 이상을 내는 것도 아니고 고작 1점… 이 정도도 넘어가지 못해서야 이 다음을 감당할 수 있겠어? 한동욱은 나보다 더 절박한 녀석인데?'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홈런이다. 딱 1점만 내자. 그러면 모데스도 그걸 가지고 뭐라 하지 못하겠지. 그리고 이래도 양키즈가 카를을 상대로 2점 이상을 내서 승리하면……?'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하지만 데미안은 내심 그러길 바랐다. 그러면 자신이 동팔을 죽게 했다는 양심의 가책을 피할 수 있었다.

'만약에 이래도 양키즈가 승리하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자. 고해성사를 해서 죄를 고백하고… 신부(神父)가 되면… 그게 아니더라도 성직자의 길을 선택한다면 모데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라.'

마음의 결정을 내리자 이제 더 이상 고민은 없었다.

8회초. 아직 동팔이나 지완이 올라오지 않은 상태에서 데미안은 간만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는 결심한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오는 초구를 제대로 받아쳤다.

따악~!!!

쭉쭉 뻗어 나가는 데미안의 타구는 빠르게 펜스를 넘었다. 분명히 축하를 받을 홈런이었지만, 홈팀인 양키즈의 팬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1대 0으로 시애틀이 앞서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루상을 도는 데미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가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시애틀의 선수들은 데미안의 홈런을 격렬하게 축하해 주었다. 카를도 마찬가지였다.

"양키들 심장이 아주 쫄깃해졌겠는데요. 역시 선배님입니다."

이로서 카를은 이대로 마운드를 9회말까지 지키기만 해도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짓는다. 그리고 월드시리즈에서 어느 팀이 올라오건 우승하면 자신은 계약에서 해방된다.

그러니 데미안의 홈런이 안 기쁠 수 있을까. 그런 그에게 데미안이 충고했다.

"방심하지 마. 상대는 강해."

이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데미안의 유일한 충고. 그러나 카를은 충고를 가볍게 여겼다.

"어차피 제 공을 칠 수 있는 타자는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크크큭."

*      *     *

한편, 결국 1점을 허용하고 만 뉴욕 양키즈의 더그아웃은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제일 먼저 움직인 건 동팔이었다.

감독에게 가서 말했다.

"아직 경기 안 끝났습니다. 흐름을 끊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그렇지 않아도 감독의 눈에 망연자실한 투수의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그만큼은 아니지만, 그동안 지켜온 0점을 허무하게 잃게 되자 수비들의 눈빛도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존 지라디 감독은 바로 마운드로 올라갔다.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그 사이, 지완은 별다른 지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펜에서 나와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침, 마운드에서 선수들을 독려하던 감독이 손가락으로 지시하여 지완을 불렀다.

지완이 투수와 교체를 하자, 감독은 모여있는 선수들에게 말했다.

"겨우 한 점이야. 8회말과 9회말에서 점수를 더 얻을 수 있어. 그러니 그 전에 포기하지 마. 아직 안 끝났다. 이러다 맥없이 더 실점하면 여기 온 팬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응원하는 팬들의 얼굴을 어떻게 볼 거야? 자자, 전부 심호흡 하고. 화이팅!!!"

"화이팅!!"

방금 전의 충격이 사라질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분위기가 전환은 되었다.

그리고 지완은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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