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친구 병문안 오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냐?"
"이상할 건 아니지만…너 바쁘잖아."
"첫 경기 선발로 나와서 다음 선발은 여섯 번째 경기야. 생각보다 일정에 여유가 있어."
지금 일정이 문제가 아니었다. 동팔이 왜 여기에 왔을까. 단순히 놀리기 위해서? 하지만 동욱은 안다. 동팔은 절대로 놀리기 위해 여기로 올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왔다는 건 말로만 하는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다.
"발목 좀 보자. 어? 생각보다 안 부었네?"
"넘어지고 나서 최대한 빨리 아이싱했어. 조치가 빨랐던 덕분이야."
"그럼 다행이고. 더 아플 뻔 했는데 이 정도면 괜찮겠다."
동팔의 말에 동욱이 물었다.
"너… 정말 나를 치료하려고 온 거야?"
그게 아니라면 동팔이 여기에 올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알아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어차피 지금은 내가 제일 큰 걸림돌이잖아. 마침 걸림돌이 사라졌는데, 다시 놓겠다는 이유가 뭐야?"
그러자 동팔이 말했다.
"그게… 마음이 불편해서. 이대로 가도 될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고작… 그 이유 때문에? 너 지금 미쳤냐?"
고작 그 이유 때문에 자신은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팔 본인이 죽을 수 있었다.
"그래. 고작 그 이유 때문에. 그리고 나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 건 아니야. 도울 수 있는데 돕지 못하고 그냥 가면 내 마음이 불편해. 그리고 찜찜한 상태에서 월드시리즈를 하면 집중이 잘 안 되어서 질 수 있어. 야구는 심리적인 스포츠니까."
동팔의 말은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곤 감당해야 할 위험이 너무 컸다.
"너…그거 민희한테 한 말이야?"
"그렇지… 아무래도 좀…힘들어 할 테니까."
"좀이 아니라 많이 힘들어하고 있겠지."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발로 찬 상황이니 많이 답답해 할 것이다. 그래서 동욱은 말했다.
"올스타전 때… 널 죽이려고 했어. 헤럴드에게 했던 것과 같이. 그런데도 너는 나를 돕겠다고? 올스타전 이후로 내가 일주일동안 슬럼프에 빠진 이유는 너도 알 텐데?"
이렇게까지 말하면 동팔은 자신에게 실망하고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팔의 말은 의외였다.
"그래서 날 죽였어?"
"그건……."
"갈등이야 했겠지. 하지만 넌 결국 날 죽이지 않고, 홈런을 치는 결정을 했어. 그렇지 않아?"
동팔의 말에 동욱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동팔은 오면서 사가지고 온 마우스피스를 동욱의 입에 물렸다.
"됐으니까 시작하자. 나 시간 많지 않아."
동팔은 자신도 마우스피스를 물었다. 동팔의 확고한 의지에 동욱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동팔이 물린 마우스피스를 더욱 강하게 물었다.
1시간 후. 동팔은 다시 공항으로 가서 시애틀로 향했다. 병원에 남아 있는 동욱은 발목을 살폈다.
붓기는 처음부터 많지 않았다. 하지만 힘을 주거나 체중을 실으면 아팠다. 그런데 지금은 다친 발로 서 있어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굳이 검사를 받지 않아도 완벽하게 나았음을 느꼈다. 동욱은 다시 두 발로 서면서 생각했다.
'자기를 죽일까 고민했던 것을 알고도 치료를 해줘? 그리고 이젠 정말로 서로 목에 칼을 겨누게 된 상대에게?'
자신이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그리고 미련한 선택을 동팔은 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떠올리자, 동욱은 자신에게 말했다.
"바보 같은 자식……."
그렇다고 동욱은 그 사실을 모두 동료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경기에 복귀한 그는 이렇게 얼버무려 버렸다.
"나도 모르지만 기적이야. 아마도 신은 우리가 월드시리즈로 가길 바라는 건지도 모르지."
신의 이름을 팔았지만,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지금 상황이라도 해볼만할지도."
"간만에 기록을 세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챔피언십에서 3연패 후, 4연승해서 진출하는 것도 진귀하니까."
그들의 말에 동욱은 완전히 나았음을 보여주듯 편하게 걸어왔다. 그리고 자신의 라커에서 옷을 꺼내며 말했다.
"점수는 내가 어떻게든 내볼 테니까 수비라도 확실하게 해줘."
그의 말에 다저스의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한 번 미끄러지면 천길낭떠러지인데."
"당연히 이겨야지. 앞으로도 계속."
확실히 동욱의 말은 든든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점수를 못 낸 타자들을 질책하는 것 같았기에 마냥 좋게 들리지 않았다.
'끝까지 재수 없기는…….'
'혼자 다 해 먹어라.'
* * *
동팔은 동욱을 치료해준 다음, 바로 시애틀로 왔다. 선수들이 묵는 호텔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지완이 말했다.
"그래서 정말로 치료해 줬어?"
"응."
"그러냐…? 알았다……."
지완의 표정에는 많은 것이 뒤섞여 있었다. 자신의 방으로 가면서 말했다.
"어차피 네가 결정하는 거니까 내가 끼어들 자격은 없지. 대신 각오는 해둬. 동욱이 있는 LA 다저스는 거의 무적에 가까우니까."
"알고 있어. 하지만 그 전에 시애틀부터 넘어가야지. 지금 우리는 다저스를 생각할 상황이 아니잖아."
본선에 진출하기 전엔 예선을 먼저 통과해야 한다. 지금 뉴욕 양키즈의 챔피언십 결과는 1승 1패.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지. 타선에서 어떻게든 점수를 내면 그 다음에는 나랑 네가 나서서 지킬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아. 우리야 네 계획 덕분에 싸울 의지가 생겼지만, 시애틀 분위기를 보니까 천운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고 믿는 바람에 무섭거든. 광신도가 왜 본인의 힘에 비해 훨씬 더 강한지 알 것 같더라."
"그러고 보니 목사님이 말씀을 하셨지. 맹목적인 믿음은 믿지 못할 일도 할 수 있게 만든다고. 다만 그것이 전부 선한 일이라고 확신할 수 없지만."
"신이 인간에게 이성(理性)을 준 이유가 광신을 바라지 않아서라고 하신 말씀이었나? 신을 마냥 믿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그건 어느 정도 공감이 가더라고. 실행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밤이 늦었으니 더 이상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에게 배정된 방에 들어가면서 말했다.
"내일 한 번 해보자. 광신도의 콧대는 부러트려줘야 제 맛이지."
"응."
세 번째 경기는 뉴욕 양키즈의 우세 속에 승리를 했다. 하지만 그 다음 경기에선 방심을 해서인지 거듭되는 실책으로 패배하여 결국 2승 2패가 되고 말았다.
이후에 다섯 번째 경기에서도 시애틀은 승기를 이어갔다. 양키즈는 2승 3패가 되었고, 한번이라도 지게 되면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뉴욕에서 열린 여섯 번째 경기에서 동팔이 선발로 등판하여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고, 이제 누가 챔피언십 우승을 하여 월드시리즈로 진출할지 결정할 단 하나의 경기가 남았다.
# 최종관문
뉴욕 양키 스타디움에선 챔피언십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는 날.
이제 월드시리즈까지 단 한 걸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니 뉴욕에 사는 양키즈 팬들은 이번 경기의 입장권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구했다.
"언제 여는 거야?"
"인터넷 예매는 시작하자마자 1초도 되지 않아서 매진 돼? 챔피언십이 이 정도면 월드시리즈 입장권은 어느 정도야?"
"넌 누르기라도 했구나. 난 누르지도 못하고 튕겼어."
"분명히 암표상들이 대거 매입했겠지. 빌어먹을 놈들……."
"왜? 부러워?"
"그래 부럽다. 분명히 최소 열 배 이상 부를 거 아냐."
"열 배가 뭐냐? 좋은 자리는 분명해 백배를 불러도 살 사람이 있어."
메이저리그 구단 중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구단인 만큼 입장권을 노리는 사람도 많았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월등히 많으니 시장 경제의 원칙에 따라 가격이 비싸지기 마련.
구단에서야 법으로 정해진 선이 있으니 일정 이상의 금액으로 팔 수 없다. 하지만 구단과 달리 법의 제제가 있더라도 피할 수 있는 암표상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놓고 팔지 못해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에게 다가와서 묻는다.
"어디 자리 원해요? 싸게 드릴게요."
그 행동은 많은 위험을 내포한다. 만약 다가간 사람이 사복을 입은 경찰이라면 법 위반으로 잡혀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 놓은 표를 쓰지 못하거나 팔지 못하고 허공으로 사라질 수 있다.
위험을 각오하고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오늘의 대목을 잡으려 했다. 짧고 간결하게 거래를 마친 암표상은 다시 목표를 물색하다 눈에 띄는 흑인 가족이 보였다.
"어느 자리 원합니까?"
상대적으로 흑인이 경찰일 확률이 낮으니 마음을 편하게 하고 갔다. 하지만 대상이 안 좋았다.
보통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표를 구하지 못하지만, 선수의 가족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 표 있습니다. 내야석이에요."
"아, 네……."
암표상이 구한 것은 제일 싼 외야석이 전부. 생각 같아선 익스트림 존이나 내야석과 같이 비싸고 좋은 좌석을 구하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했다.
내심 좋은 좌석의 표를 구한 것을 부러워하며 물었다.
"그거 어떻게 구하셨어요?"
그러자 가족 중에 어린 동생이 말했다.
"형이 구해다 줬어요. 양키즈 선수에요."
자신의 형을 자랑하며 기뻐했다. 암표상도 이들이 왜 표를 구할 수 있었는지 알았다.
'하긴 구단에서 선수들의 가족을 위한 표를 주기도 하니까…….'
특히 구하기 어려운 표라면 더욱 그렇다. 거기에 선발투수가 원하면 공짜로 제일 좋은 자리의 입장권을 준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구단들의 관행. 목적은 선수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함이다.
특히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이니 뉴욕 양키즈에선 홈에서 열리는 이점을 확실히 이용했다.
그래서 마크의 가족은 전부 각자 좋은 자리의 입장권을 얻을 수 있었다.
당연히 양키 스타디움은 경기 시작하기도 전에 관중석이 꽉 찼다. 양키즈의 홈에서 열리는 경기이니 당연히 응원은 양키즈에 집중되었다.
수많은 관중의 응원에 압박을 받을 시애틀 매리너스의 선수들. 하지만 생각보다 압박에 눌리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우리가 이기는데 뭘……."
"월드시리즈 코앞에서 좌절하는 것을 보여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도 보고 싶어. 단체로 얼빠진 표정을 지으면 그것도 웃길 거야."
비록 모든 것이 자신들의 열세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격렬히 저항하고 싸우면 승기는 자신들에게 온다는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기세에 밀리지 않도록 했다.
양키즈에선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하필 오늘 선발은 카를이야. 제일 상대하고 싶지 않은 투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간다."
"네!!"
감독의 말대로 포스트시즌만큼 동팔에 필적하는 공을 던지는 투수와 상대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지금 입장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상태.
어제 선발로 나와 승리를 거둠으로 마지막 기회를 살린 동팔은 동료와 같이 더그아웃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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