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03화 (303/325)

[303]

중부에선 동욱이 몸을 담았던 클리블랜드가 하위권에서 2위 자리를 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부에서는 뉴욕 양키즈의 챔피언십 진출을 두 번이나 연속으로 막은 시애틀이 1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뉴욕 양키즈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3연전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뉴욕 양키즈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양키즈의 더그아웃에선 여유가 흘러나왔고, 시애틀 매리너스의 더그아웃에는 긴장이 느껴졌다.

하지만 시애틀의 선수라고 전부 긴장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선배, 이제 슬슬 올라가 봐야죠?"

이번에 영입을 한 카를 데이먼. 그의 말에 데미안이 답했다.

"응… 그렇지……."

다른 선수들은 진지하게 준비하는 것에 비해, 카를의 표정은 놀러 나온 것처럼 편했다. 심지어 이번 경기의 선발투수가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까딱하면 패전투수가 될 확률이 높았지만, 카를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카를을 보며 데미안은 생각했다.

'다시 모데스가 계약을 한 사람. 능력은 헤럴드와 동급. 그리고 평상시에도 훈련을 꾸준히 해 왔으니 구위는 헤럴드보다 더 좋아.'

헤럴드는 자신이 얻은 악마의 능력만 믿고 훈련을 게을리 했다. 그 정도만으로도 경기의 승패를 조작할 정도로 강력하고 유용한 능력이었다.

노력을 해봐야 어차피 거기서 거기였으니 태만해졌고, 구위는 가면 갈수록 떨어졌다. 그것만으로도 헤럴드는 뉴욕 양키즈의 챔피언십 진출을 두 번이나 막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니 카를은 오히려 아쉬웠다.

"잘 하면 동팔이 나왔을 때 이길 수 있으면 더 좋은데……."

남들이 피하는 동팔을 그는 직접 상대하고 싶었다.

"어쩌겠어. 넌 아직 5선발이고, 동팔은 1선발이야. 그 정도는 감안하라고."

"알고 있습니다. 선배님. 그래도 너무 숙이고 있는 것은 답답해서요."

이미 시애틀은 후반기로 갈수록 승률을 높이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카를과 데미안이 있음은 당연했다.

데미안과 달리 모데스와 계약을 하여 얻은 힘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싶었다. 반면 그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데미안은 다른 선수들과 다른 의미로 긴장하며 고심하고 있었다.

'헤럴드를 죽이고 나서 다시 새로운 사냥개를 붙이다니… 이러다 나중에 내가 쓸모없으면 그렇게 죽는 것 아냐?'

직접 보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사건 기록을 보면서 헤럴드가 어떻게 죽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헤럴드의 평상시 모습을 보면 적어도 천국은 그를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지옥으로 가게 될 테인데, 그렇게 되면 과연 누구의 노리개가 될까?

뻔하다. 해방되었지만, 계약을 했던 모데스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자신도 헤럴드와 같이 쓸모없다고 판단되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었다.

'어차피 이대로 간다면 내가 어떻게 될지 뻔해. 헤럴드의 구위가 너무 떨어지니 카를로 대체한 것처럼, 내 타격능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하면 주저않고 더 젊은 타자를 골라서 계약할 거야. 어떻게 될지도 전혀 알지 못하고.'

그 증거로 카를은 해방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방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모데스가 실제로 해방시키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건 데미안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들어 실력이 떨어지면, 자신에게 심은 힘을 회수하기 위해 언제라도 죽일 것이다.

오래 살아남을 방법은 실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사냥개로서의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 하지만 그것도 불혹의 나이가 되면 끝난다.

데미안은 겨우 40대 초반의 삶을 살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한 것이 아니다.

'방법이 없을까? 이대로 죽지 않고, 그놈들의 손에서 벗어날 방법이? 아니, 죽고 사는 것은 넘어가고 그놈들에게 내 영혼마저 빼앗기면… 더 이상 방법이 없잖아!!'

10년 이상 남은 미래지만, 지금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당한다. 그러니 데미안의 고민과 갈등은 깊고 또 깊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방법이 떠오를 때까지 생존하는 것이 전부.

'일단 사냥개가 되어 주는 수밖에 없겠지. 원치 않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지 않아도 올스타전으로 인해 동팔의 일정이 조정되었다. 그래서 이번 뉴욕 양키즈의 홈 3연전에 동팔은 선발로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상대 투수가 던지는 구종을 미리 파악할 수 있어도 상대하는 것이 버거운 투수가 동팔이다.

'지금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자. 내 능력을 인정받아야 살아있을 수 있어.'

한편, 간만에 양키 스타디움에 온 목사와 웜우드. 이미 그들의 옆에선 민희가 7개월이 된 아들을 안고 있었다. 혜진도 2년 하고도 8개월인 예은이를 안고 있었다.

언제 야구공이 날아올지 모르지만 그녀들은 걱정을 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건장한 체격으로 위압감을 조성하고 있는 하얀늑대의 벗이 든든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민희야 오랜만."

그럼에도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하얀늑대의 벗의 건장한 체격에 익숙한 사람들. 바로 지예와 민철이었다.

"어머, 지예언니, 민철오빠.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언니는 취재 안 하세요?"

"할거 다 했어. 이젠 결과를 보고, 정리한 다음 마무리 인터뷰하고 가면 돼. 그리고 이거."

"어?"

지예가 준 것은 청첩장이었다. 그러자 민철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아하하… 그게 이번 겨울에 결혼하기로 날을 잡았어. 나도 나이가 있는데 짝이 있다고 하니까 당장 하라고 하시더라고."

"나도 마찬가지야. 솔직히 아빠는 민철오빠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지만, 이번 기회 놓치면 언제 시집갈지 모르니 그냥 잠자코 계시더라고."

그들의 말에 민희가 말했다.

"으윽. 그거 완전히 나이로 협박한 거나 다를 바가 없잖아요."

민희의 말에 지예가 말했다.

"나이로만 협박 안 했어. 다른 것도 있지. 그렇죠 오빠?"

지예의 말에 민철은 대답하지 못하고 민희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혹시 분석력이 뛰어난 혜진이 아는가 싶어서 물어보려 했지만, 이상하게 혜진도 민희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마주치는 사람은 혜진이 안고 있는 예은이었다.

"이모, 나 승현이 안아볼래요."

"그래? 알았어."

안고 싶다고 하고, 승현이도 예은이에게 종종 안겼으니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이왕 편할 것 단번에 아들을 남의 집 딸에게 넘겼다.

그 사이, 웜우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말했다.

"어? 시애틀에 새로운 계약자가 있는데."

웜우드의 말에 이 민망한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걱정하던 중 전부 웜우드가 있는 곳을 봤다.

물론 웜우드를 볼 수 있는 민희와 목사, 하얀 늑대의 벗만.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지예와 민철은 갑자기 어느 한 곳을 보는 세 사람을 보자 의아해했다.

"거기 뭐 있어?"

"갑자기 왜 거길 봐? 혹시 UFO?"

다만 웜우드의 존재를 아는 혜진은 웜우드가 무언가 말했거니 생각하고 넘어갔다.

"아뇨, 제가 잘못 봤나 봐요."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

그러는 사이, 웜우드는 자신이 파악한 것을 말해나갔다.

"반응하지 말고 들어. 이번에 선발로 나서는 투수가 계약자야. 어떤 능력을 얻었는지 너무 멀어서 알 수 없지만……."

그러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빛이 하얀 늑대의 눈에 깃들었다. 웜우드가 말했다.

"시야 공유? 고마워. 이걸로 좀 나아지겠네……. 어디보자…역시 계약자는 모데스인가? 그리고 능력은…헤럴드와 비슷해. 타자가 원하는 타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 습관과 몸에 가하는 힘의 위치와 강함의 미묘한 차이를 분석하는 것으로 구현이 돼. 하긴 이런 타입이라면 한동욱이 제일 난감한 상대였겠어. 그 녀석이라면 투수가 던지고 난 다음에 반응해도 충분하니까."

웜우드의 말에 민희는 아주 작게 말했다.

"아니, 오히려 이용했어요. 변화구를 노리는 척 하고, 직구를 유도하는 방법으로……."

이건 한국에서 동욱과 우연히 만났을 때 들은 말이었다. 나름 헤럴드에 대한 대비책을 알려준 셈이지만, 순식간에 의도를 바꿀 만큼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아주 작은 소리였고, 주변에 관중들의 환호와 응원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어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은 극히 적었다.

있다면 귀가 밝은 하얀 늑대의 벗. 그리고 영적인 존재라 물리적인 개념이 없는 웜우드가 전부였다.

"역시 그 녀석 답네. 그래도 동욱이가 있다고 한들, 지금의 시애틀을 상대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것은 어려울 거야. 데미안이 평상시보다 더 강한 타격으로 몰아붙일 테니까. 지난 두 차례의 시즌에서 그랬지."

정면승부보다 동욱을 볼넷으로 보내고, 다른 타자는 수월하게 상대한다. 그렇게 상대 타선을 봉쇄하고 데미안이 홈런을 치며 점수를 얻는다. 비열하지만 확실히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다만 이렇게 해도 동욱은 볼인 공을 쳐서 어떻게든 점수를 만들었다는 것.

이 조합을 깰 수 조합은 많지 않다. 있다면 이전에 뉴욕 메츠와 같이 두 계약자가 투타로 활약하는 것.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시애틀이 치고 올라오는 것이 불길했었는데…이런 준비를 하고 있었네. 고전적이지만 확실하게 막았던 방법이었으니 사용하는 건 당연하겠지."

웜우드의 말에 민희의 눈빛이 불안하게 떨렸다. 그렇다고 지예와 민철이 있는 이상, 웜우드가 있는 곳을 향해 말할 수 없으니 더욱 답답했다.

그러자 웜우드가 말했다.

"불안하겠지만, 지금은 지켜보자고. 대책 회의는 이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웜우드의 말에 민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처로운 그녀의 모습에 웜우드는 마저 하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이번에 최소 루징시리즈는 피할 수 없겠어. 동팔이 선발로 나오는 경기도 없으니 어쩌면 스윕패까지 각오해야 할지도 몰라'

다행히 웜우드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인 스윕패는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3연전에서 뉴욕 양키즈는 간만에 루징시리즈를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뉴욕 양키즈의 팬들은 벌써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시애틀이 가을이 다가오니까 점점 더 강해지네."

"이러다가 지난번처럼 디비전에서 또 막히는 것 아냐?"

그래도 유일하게 희망인 점이 있었다.

"디비전은 아니야. 만약 시애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결국 챔피언십에서 맞붙으니까."

지난 시즌에서 디비전에 막힌 것보다 낫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뉴욕 양키즈의 전력을 생각하면 그조차도 아까웠다.

"안 돼!! 이런 승률이 언제 또 오겠어?"

"지금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단 말이야. 동팔과 재계약을 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돈이 나갈 것 같아? 그리고 계약을 못하면 다른 팀으로 가게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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