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동팔을 부상시켜 죽이는 것이 정말로 좋을까? 그 녀석이 한 말을 전부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우리 둘이 최악을 피하는 유일한 경우라면?'
그러는 사이, 타선은 삼자범퇴로 물러났다. 공수교대를 하러 가는 사이에도 동욱의 결정은 여전히 내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유격수로 수비에 집중하고 있을 때, 관중들이 전체적으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 강동팔이야."
"설마 대타로 나오는 거야?"
지금은 8회말. 그리고 지명타자제인 아메리칸리그에서 투수가 타자로 나올 일은 많지 않다. 그 중 제일 많은 타석에 보이는 투수가 있다면 강동팔이었다.
하지만 올스타전에도 타자로 나올 줄은 몰랐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올스타전은 단순히 축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오른 타격감은 아니더라도 평범한 타격 능력을 가진 동팔이 타석에 서면 그만큼 다른 타자가 타석에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이벤트인가?"
"내셔널리그도 아니고 투수가 올스타전에 타석에 서다니… 사무국에서도 꽤 신경을 썼나 본데."
관중의 반응과 달리 동욱은 동팔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타격 능력은 나쁘지 않았어. 선구안도 있으니 나쁜 결과는 안 나올 거야…….'
그리고 투수와 몇 번의 볼 싸움을 하던 동팔은 1, 2루를 깔끔하게 가르는 안타를 치는 것에 성공했다.
그 장면을 보자 동욱의 갈등은 더 깊어졌다. 단순히 투수로서만 아니라 타자로서의 강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와~!!"
투수가 친 안타에 관중은 환호했다. 감독은 바로 동팔을 대주자와 교체했다. 하지만 8회말의 아메리칸리그의 타선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동욱의 민첩한 수비에 나온 주자마서 주루사하여 어이없게 마무리되었다.
결국 9회초. 운명의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곧 다가왔다.
따악!!
처음에는 어떻게든 버티려던 투수였지만, 결국 안타를 허용하여 주자를 보내고 말았다. 그래서 아메리칸리그 팀의 감독은 동팔을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침 타석에 서는 순서가 된 동욱이 나왔다.
"와아~!!!"
그러자 관중들은 전부 환호하며 이 순간을 즐겼다. 지금 동욱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모두가 타석을 향하는 동욱을 바라본다. 모두의 시선을 느끼며 타석에 선 동욱은 배트를 고쳐 쥐었다.
'쳐? 아니면 말아?'
어차피 공을 칠 각오로 나왔다. 지금 자신들이 이기고 있지만, 9회말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1점 차이의 리드였다.
동팔에게 끔찍한 부상을 입혀 부상이 회복되는 고통에 의한 쇼크로 죽인 후, 수월하게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지.
아니면 이대로 보냈다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어차피 아무도 몰라. 아니,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이미 악마의 계약과 연관된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헤럴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고 있으니 결코 사고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그들에게 평생 동안 원망을 들어도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 생각을 하는 사이, 동팔의 공이 빠르게 날아왔다.
쉭~ 퍽.
"스트~ 라이크!!"
정확히 존에 걸치는 스트라이크였다. 다른 선수라면 헛갈릴 공이었지만 동욱에겐 뻔히 보이는 공이었다. 하지만 동욱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동욱의 반응에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동팔이었다.
'뭐지? 이전이라면 분명히 배트가 나가 끊었을 텐데. 설마 또 높은 공을 원하나?'
동팔은 동욱을 처음 상대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의 능력을 모르고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다가 첫 피홈런을 허락하고 말았던 그때를.
그러니 지금 동욱이 자신을 죽일지 말지에 대한 고민으로 인해 배트가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남은 기회는 둘…….'
스트라이크가 잡힌 이상, 동욱에게 허락되는 카운트는 두 개의 여유가 전부. 다른 투수라면 언제라도 파울을 쳐 끊을 수 있지만, 동팔은 그게 쉽지 않은 투수다.
최대한 안정적으로 생각해야 하니 동욱도 마냥 생각만 하며 결정을 미룰 수가 없었다.
쉭~ 타악!!
이번에도 아래쪽으로 공이 날아오자 파울로 끊어냈다. 어차피 같은 2스트라이크라도 기세 싸움에 밀릴 수 없었기에 한 선택. 결과로 그에게 남은 선택은 이제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그들의 대결을 보고 있던 다른 선수들이 말했다.
"유인구 안 던지나?"
"볼로 유인해서 헛스윙만 유도하면 딱인데."
그들의 말에 동팔과 같이 올스타에 뽑힌 남궁지완이 말했다.
"불가능해. 동욱이는 어느 구종이라도 구분할 수 있어. 그걸 누구보다 동팔이 잘 알고 있으니까 처음부터 볼을 던질 생각이 없는 거야."
지완의 말에 다른 선수들이 말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그들의 믿지 못하는 말에 지완은 객관적인 기록을 말했다.
"지금 동욱이 이번 시즌 기록에서 삼진은 없어. 단 한 개도. 그리고 볼넷은 많지. 그럼 이해가 갈까?"
지완의 말에 다른 선수들은 더 이상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하긴… 지난 시즌에도 볼넷은 많았고, 삼진은 거의 없었어."
"삼진도 동팔이 대부분 먹인 거였지만…지금은 서로 리그가 다르니까……."
서로의 천적이 없으니 동팔과 동욱 모두 지난 시즌보다 기록이 더 좋아졌다. 지완이 말했다.
"동욱이를 상대로 볼을 던지는 것은 비효율적이야. 처음부터 볼넷이 목적이 아니라면……."
그들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동팔과 동욱은 마지막 기회를 두고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어차피 볼은 던지지는 않아. 그렇다고 내가 치기 좋은 공을 던질 일도 없어.'
'이미 자신의 대처법에 대한 적응은 완료되었겠지. 주자가 나가 있지만 승부를 봐야 하나?'
각자의 생각과 상대의 전략을 예측하였다. 동팔의 세 번째 공이 포수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후읍.
동팔이 공을 던지기 직전, 동욱은 작정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것이 50배 느리게 보였다.
동욱의 눈에는 지금 동팔이 공을 쥐고 있는 그립, 팔의 각도와 눈이 방향까지 파악했다. 마지막에 공이 동팔의 손을 떠나자 동욱은 구종과 속도의 파악에 들어갔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 속도는 높고 스트라이크 존을 걸쳐. 놓치면 그대로 아웃.'
일차적인 판단을 내린 동욱은 일단 배트를 쥔 손과 팔을 움직였다. 온몸의 힘이 배트에 이상적으로 전달되도록 다리와 허리, 어깨를 움직였다.
'궤도 산출, 완료. 그리고 타격 목표는……?'
이대로라면 홈런을 쳐서 2점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동팔의 머리를 향해 타구를 보내 즉사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회복의 고통으로 죽게 하느니 차라리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이전부터 보아온 동팔의 투구폼이니 타구가 날아가는 방향과 타이밍을 잡는 것은 쉬웠다. 남은 것은 단 하나. 자신의 결단과 선택뿐.
하지만 동욱은 배트를 휘두르는 이 순간에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대로 배트를 더 아래로 해서 홈런? 아니면 약간 위로 올려서 가격?'
그러던 중, 동욱의 머릿속에 어머니가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동욱아… 넌 이미 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야…….'
결국 그때 떠오른 말로 인해 동욱은 결정을 내렸다.
따악!!!
* * *
월드시리즈의 전초전이라 볼 수 있는 올스타전은 동욱의 2홈런과 안타에 힘입어 내셔널리그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올스타전이 끝나고, 공식적인 행사를 전부 끝낸 동욱은 호텔에 혼자 남아 드디어 쉴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앞에 스크레이치가 나타나 물었다.
"왜 하지 않았지?"
그의 물음에 동욱이 답했다.
"내 맘이야."
"……."
사실상 대답을 거절한 말에 스크레이치는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후회하게 될 걸세."
스크레이치는 그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후, 동욱도 움직이지 않고 침대에 누운 상태로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만 들릴 만큼 작게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잖아… 엄마한테 떳떳하게 말하려면……."
그래서 동욱은 동팔을 가격하는 것보다 월드시리즈에서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을 얻는 것으로 타협했다.
즉, 올스타전에서 승리한 내셔널리그의 팀이 1, 2, 6, 7번째 경기 때. 즉 일곱 경기 중 네 경기를 홈에서 치르게 되었다.
한편, 동욱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자 더 이상 보지 않고 나왔다. 그의 옆에는 언제 왔는지 모데스가 있었다.
"실패했군. 둘 다 취할 수 있는 기회였을 텐데."
모데스의 말에 스크레이치가 말했다.
"그렇지. 오늘 동팔이 죽으면 그 영혼은 잃어도 나의 힘은 잃지 않아. 그리고 동욱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더라도 우리가 만들어 놓은 함정을 간파하지 못하면 어이없이 우승을 놓치게 될 테니까."
동욱의 계약 조건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을 엄마가 보게 되는 것이다.
그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스크레이치는 수시로 한국에 오가야 하지만, 수고한 만큼 얻는 것을 생각하니 감수할 수 있었다.
바로 동욱이 영혼과 몸에 심어 놓은 자신의 힘의 회수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함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면서 뉴욕 양키즈를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게 하면 돼. 또 다른 준비도 진행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스크레이치의 말에 모데스가 물었다.
"걱정? 누가 걱정을 해? 내가? 어차피 내가 잃을 것은 없는데?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잃는 악마는 너야. 스크레이치."
모데스는 스크레이치를 보며 한껏 웃으며 말했다.
"너야말로 많이 조급한 것 같군.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혼잣말을 하는 버릇은 네가 새끼 천사였을 때부터 바뀐게 없어."
스크레이치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딴 말 하지 마라. 내가 천사였다는 사실은 아주 끔찍한 사실이야."
모데스가 답했다.
"뭘 그것 가지고 그래? 예민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나도 그렇지만, 지하에 계신 아버지도 이전에는 천사였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천사가 되길 거부한 거니까."
그 말을 남기고 모데스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스크레이치는 자신에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어. 그렇지 않으면 즐길 수 없는 것을……."
# 루징시리즈
과거 왕조의 시절이 부활한 듯한 뉴욕 양키즈. 승승장구하는 팀과 상대하는 것은 어느 팀이라도 부담스럽다.
자신들도 승승장구하고 있다면 호승심이라도 생긴다. 하지만 양키즈가 독보적으로 잘 나가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승리를 헌납하려는 팀은 없다. 어떻게든 최대한 저항하고 또 저항해서 승리를 따내면 그것만으로 다른 팀에 비해 더욱 유리한 고지를 얻을 수 있다.
어차피 아메리칸리그 동부 지역에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팀은 양키즈로 거의 고정되었지만, 다른 지역의 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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