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 운명의 결정
'우승할 확률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지 않겠나? 무엇보다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머니를 생각해야지.'
스크레이치가 한 말이 동욱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살고 싶다. 그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아직 희망이 있으니 포기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잘 되어도 자신과 동팔 중 하나는 우승하지 못하고, 결국 스크레이치에게 영혼을 강탈당하게 된다.
물론 스크레이치가 한 말을 전부 믿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다른 수가 있으니 그렇게 제안한 거겠지. 하지만 그 전에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아. 사실이 아니라면… 나는 동팔을 죽임과 동시에 영혼마저 악마에게 넘기는 놈이 돼.'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어쩌자고? 지금 내 코가 석자인데 동팔을 왜 신경을 써야 하는 거지? 나도 그렇지만 애초에 계약을 한 것 자체가 큰 실수였어.'
목숨을 넘어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길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도 과연 페어플레이 정신을 유지해야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는 중. 전쟁의 제일 중요한 목적은 승리하는 것. 애도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방법으로 살아남는 것이 좋은 걸까? 아냐, 이미 헤럴드를 그렇게 처리했잖아. 그래도 그건 해방된 녀석을 처리한 것이니 끌려가게 만드는 건 아니었어. 결국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어디까지나 사고로 인해 죽은 거니까.'
세는 것조차 지겨울 정도로 위와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려도 올스타전까지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 전반기를 마무리하고, 월드시리즈에서 어느 리그가 약간이나마 더 유리한 고지에서 치를지를 결정하는 순간이 왔다.
바로 올스타전의 시작이었다.
스크레이치의 말대로 동팔과 동욱은 팬들의 투표와 감독의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국과 달리 작더라도 걸려 있는 것이 있으니 단순히 축제처럼 즐길 수 없었다.
팽팽한 긴장을 하고 있는 양쪽 리그의 선수들이지만, 특히 더 신경을 쓰는 쪽은 포스트시즌 진출의 전망이 밝은 팀의 선수들이었다.
특히 아메리칸리그에선 뉴욕 양키즈가. 내셔널리그에선 LA 다저스가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 사실은 올스타전을 중계하는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지 빼먹지 않고 설명했다.
"이번 올스타전은 확실히 양키즈와 다저스의 경쟁 구도가 있습니다. 전반기의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포스트시즌의 진출은 확정이죠."
"진출만 아니라 챔피언십 우승의 확률도 아주 높습니다. 당연히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두 팀이에요.
어쩌면 이 올스타전이 예비 월드시리즈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기가 많고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가 많아서 올스타에 뽑힌 선수도 제일 많죠. 비율도 보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양 팀의 감독 입장에선 난감할 겁니다. 빠져도 너무 빠져서 선발 중에 쉴 수 있는 선수가 많지 않으니까요.
"
"그래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난감하겠지만, 루징시리즈를 거듭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그럼 올스타전에 뽑힌 선수들의 명단을 보시죠."
해설자의 말에 중계 화면에 각 리그에서 뽑힌 선수들의 명단과 사진이 올라왔다.
"아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처음 야구를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겠습니다. 투수는 감독 추천으로 아메리칸리그는 11명이, 내셔널리그는 12명이 뽑힙니다. 이것은 아메리칸리그가 지명타자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 포지션에 따라 팬들의 투표에서 1등을 한 선수가 뽑힙니다."
"올스타에 뽑히기 위해선 실력을 기본으로 갖추어야 하며, 인기도 많아야 하죠. 그 중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올스타에 뽑힌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관리와 평판이 좋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도 미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선수라면 더욱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강동팔 선수와 한동욱 선수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죠. 강동팔 선수는 뛰어난 우완 투구로 압도적인 구위를 가진 것도 모자라 좌완으로는 불펜까지 소화하고 있습니다.
스위치투수가 희귀하고, 그 중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선수는 그가 유일하죠. 동시에 한동욱 선수의 기록도 놀랍습니다. 지금 타율이 자그마치 5할을 훌쩍 뛰어넘어 5할5푼을 찍고 있죠. 거기에 스위치투수보다 많긴 하지만, 스위치타자라는 것도 있습니다.
"
해설자의 말에 캐스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보면 두 선수 다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요소를 갖추었습니다. 뛰어난 실력과 기록을 가진 선수들은 많지만, 그 중에 희소한 능력까지 갖추었으니 팬들의 눈이 쏠릴 수밖에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특히 강동팔 선수의 경우에는 가혹한 시련의 시간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겁니다. 그의 재기 스토리를 알게 되면, 희망을 잃은 사람도 다시 일어나게 만드는 힘이 있죠. 그리고 주변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루시의 이야기는 이미 미국 전역에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은 완쾌했다고 하더군요."
"그거 참 다행이군요. 저도 기억날 때마다 루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다만 한동욱 선수의 경우에는 그런 임팩트가 없죠?"
"임팩트가 없을 뿐이지 한동욱 선수도 무명의 설움을 아는 선수입니다. 한국에서 크게 성공하기 전, 방출되지 않았을 뿐이지 한국 프로리그 2군에서 오랜 시간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열심히 노력하고 버티고, 버틴 덕분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올스타전의 행사가 마무리되고, 곧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이 다가왔다.
중계진은 올스타전을 보는 시청자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것을 말했다.
"그나저나 한동욱 선수가 LA 다저스로 가면서 강동팔 선수와 맞대결을 할 일이 없었습니다. 과연 이 올스타전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고민이 많을 겁니다. 이미 타격에서 선발 라인업은 고정되었으니, 결국 아메리칸리그에서 동팔을 언제 마운드로 올려 보낼지를 결정해야겠죠. 한동욱을 피한들, 다른 투수가 한동욱을 감당할 수 있을지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니, 거의 안타나 홈런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최대한 한동욱을 막기 위해 강동팔 선수를 올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세 번의 타석 중, 한 번은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군요."
"그렇게 되겠죠. 특히 아메리칸리그에서 제일 큰 걱정은 올스타전에 뽑힌 투수 중 한동욱 선수가 상대하지 않은 투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전과 다른 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1년도 안 지났으니 크게 변할 것도 없겠죠. 애써 투수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이건 한동욱 선수에게 유리한 상황이에요."
분석을 하는 사이, 양 팀의 선수들이 자리를 잡았다. 먼저 공격을 하는 쪽은 내셔널리그. 그리고 동팔과 동욱은 더그아웃에서 자신이 순서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 * *
올스타전이 열리기 전 준비기간부터 끝날 때까지 다른 선수들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번에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시애틀의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올스타전 휴식기간을 이용하여 각자 휴가를 보내거나 개인적인 훈련을 한다.
그 중에 모데스와 스크레이치가 보고 있는 투수가 있었다.
"상태는 나쁘지 않아. 능력은?"
"헤럴드와 같아. 상대가 원하는 코스를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
"좋군. 그럼 자네가 선택한 영혼이니 사실상 이미 타락한 녀석이겠지?"
"전부 그런 건 아니야. 간혹 탐나는 영혼이 있다면 타락시키기 위해 계약을 하지. 이번에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난 너랑 달리 위험을 즐기지 않아. 지금은 너처럼 위험한 상태에 있는 악마를 지원해주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거니까."
"덕분에 이번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야."
"그러니 이제 과거의 빚은 없는 걸로 해. 언제까지 그 일로 우려먹으려는 거지?"
모데스의 말에 스크레이치가 답했다.
"이왕이면 끝까지."
스크레이치의 말에 모데스의 표정이 나빠졌다. 그러자 스크레이치가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설마 그러겠어. 이번 일이 잘 되면 빚은 없는 것으로 하지."
그의 말에 모데스의 표정이 겨우 풀렸다.
"그 말 꼭 지켜. 이번 일 이후 또 빚 운운하면 나도 네가 어떻게 되던 신경쓰지 않을 테니까."
휙~ 퍽!!
그때, 그들이 보고 있던 투수의 공이 정확하게 원하는 곳으로 찔러 들어갔다.
* * *
올스타전은 난타전으로 진행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뛰어난 타자들과 투수들이 모인 경기지만, 항상 컨디션이 좋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수비의 경우 조직력이 중요하기에 호흡이 맞지 않아 실책이 평소보다 더 많았다.
거기에 투수의 경우 최소 11명이 뽑혔기에 아무리 잘 던져도 1이닝 이상 던지게 하는 경우는 없었다.
8회초까지 진행되는 사이, 동팔은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반면 동욱은 3번의 타석에서 1개의 홈런과 2루타를 기록하여 내셔널리그가 8대 7의 아슬아슬한 리드를 유지하는데 힘을 보탰다.
그러는 사이에 동욱은 여전히 갈등하고 있었다.
'아직 동팔이 올라오지 않았어. 분명히 9회초에 나올 확률이 아주 높아. 아니, 확실해. 그리고 나의 타석도… 그때가 되면 돌아오겠지.'
어림짐작으로 충분히 가능했다. 어차피 이기고 있는 내셔널리그의 입장에선 동팔의 구위에 눌리지 않고 안타를 칠 가능성이 제일 높은 타자는 동욱이다.
그리고 아메리칸리그에서도 더 이상 실점을 용납했다간 따라잡을 마지막 기회조차 날릴 수 있었다. 당연히 최고의 투수를 마지막에 투입하여 9회말의 기회를 살려야 했다.
무엇보다 경기 안에서의 이유보다, 외부의 이유가 더 컸다.
'무엇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선 나와 동팔의 대결이 성사되기를 바라고 있어. 이미 두 감독에게 언질을 주었을 것이고, 마침 상황도 열려 있으니 더 확실해.'
프로스포츠는 팬들의 관심을 기본으로 하여 그들의 돈으로 돌아간다. 당연히 팬들의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가능하다.
그 중 하나가 동팔과 동욱의 맞대결. 리그가 다른 두 사람이 이번 시즌에 맞붙을 기회는 인터리그 이외에 없다.
그러나 이번 인터리그 계획에서 뉴욕 양키즈와 LA 다저스가 맞붙는 일정은 없었다. 그러니 두 사람이 대결하는 구도가 가능한 것은 단 두 가지 경우에 한했다.
그건 지금처럼 올스타전이거나, 두 팀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경우였다.
비록 단 한 번의 맞대결이지만, 그 사이에 동욱은 여전히 갈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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