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이거 한 끝 차이로 역적이 될지 영웅이 될지 결정나겠어.'
'동팔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무적인 것도 아니니까.'
특히 클리블랜드에선 희생플라이를 노골적으로 노리고 있으니, 외야수들은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이번 타자를 어떻게 잡느냐, 그리고 보낼 경우 어떤 방식으로 나가느냐에 따라 이번 경기의 승패가 걸렸다.
이런 상황에도 동팔은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하고 공을 던졌다.
휙~ 퍽!
빠른 직구가 스트라이크 존을 약간 벗어났다. 타자는 빠른 공에 움찔했지만, 겨우 참은 덕분에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었다.
'볼넷이 목표는 아니야. 지금은 어디까지나 점수를 내는 것이 더 중요해.'
볼넷으로 만루를 만들어도 점수를 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오히려 주자가 아웃될 가능성도 같이 높아지니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감독이 당부했던 것. 바로 최소한 희생플라이를 노리기 위해 있는 힘껏 때리라는 주문이었다.
그래서 두 눈을 부릅뜨고, 동팔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마침 다시 한 번 아래쪽으로 향하는 공을 보자 바로 배트를 휘둘렀다.
타악!!!
분명히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타를 때리기보다 어떻게든 멀리 보내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하여 퍼 올렸다.
슈욱~.
올라가는 각도가 꽤 높았지만, 힘이 많이 실린 타구는 멀리 날아갔다. 날아가는 방향은 중견수인 마크가 있는 곳이었다.
다다다다다닥.
공이 맞는 순간, 마크는 공이 날아가는 방향을 보고 자신이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방향에 맞추어 먼저 움직인 다음, 공이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자 떨어지는 위치를 예측하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또한 우익수도 혹시 모를 실수를 대비하기 위해 마크의 뒤에서 보조하고 있었다.
마크는 공이 떨어지는 위치와 홈까지의 거리를 가늠했다.
'멀어. 내가 잡는 순간 주자는 뛴다.'
타자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희생플라이였기에 애써 뛰지 않았다. 그리고 1루 주자도 타자가 오는 것을 보고 한 걸음 떨어져 있을 뿐 뛰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마크가 홈으로 송구할 경우, 또 다른 기회를 만들기 위해 2루로 갈 준비를 마쳤다.
또한 3루 주자도 마크가 공을 잡는 순간을 기다리며 고정된 베이스를 이용하여 속도를 빠르게 올릴 준비를 마쳤다.
'아직 루키라서 홈 송구는 약해. 이번에도 점수를 얻을 수 있어.'
이미 마크의 실수를 기억하고 있으니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심하고 천천히 가겠다는 건 아니다.
턱.
그는 마크가 공을 잡자, 더 이상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다다다다닥.
깔끔하게 공을 잡은 마크는 처음부터 2루로 송구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잡은 이상, 더 위험한 2루로 갔다간 아웃되어 점수를 얻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크는 홈에서 기다리고 있는 브라이언 산체스를 향해 공을 던졌다.
휙~.
순간 마크의 눈에 보이는 것은 포수의 미트였다. 평상시에 훈련하고 연습했던 것처럼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그리고 동팔과 같이 투구 연습을 했던 대로 공을 던졌다.
높지 않고, 그렇다고 전에 했던 실수처럼 바닥을 향해 가지도 않았다.
마크가 던진 공은 굉장히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갔다.
"우오오오~!!!"
"으아~!!!"
과연 홈으로 달려들고 있는 주자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이대로 승기를 굳힐지. 아니면 실점하여 경기를 원점으로 돌릴지 짧은 순간에 결정된다.
그러니 어느 팀의 팬이건 비명을 지르며 모두가 홈플레이트에 집중했다.
턱.
브라이언 산체스는 자신에게 정확히 날아온 마크의 송구를 깔끔하게 잡았다. 그리고 슬라이딩과 동시에 몸을 피하던 주자가 내민 손을 막으며 태그했다. 거의 동시에 주자의 손이 홈플레이트 위를 스쳐지나갔다.
그 차이는 거의 보이지 않아서 주자의 손이 먼저인지, 브라이언의 태그가 먼저인지 구분이 쉽지 않았다.
툭.
그런 와중에 주심이 선언했다.
"아웃!!"
그러자 클리블랜드에선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바로 영상판독을 요청했다.
하지만 전광판에서는 마크가 던진 레이저 송구 장면에 이어 홈플레이트에서 승부의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선 브라이언의 미트가 주자의 손을 완벽하게 막으며 태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자의 손이 홈플레이트 위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슬로우 모션으로 보아도 그 차이는 고작 1프레임에 불과했다. 결국 외야플라이와 동시에 마크의 레이저 송구로 단번에 아웃카운트를 채우는데 성공, 8회초의 큰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공수 교대를 하면서 동팔은 마크가 돌아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왔다.
"그것 봐. 역시 잘 하잖아. 덕분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어."
동팔이 격려에 마크는 쑥스럽지만, 마음 한켠에 남아있던, 실수의 만회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좋은 기회를 놓친 클리블랜드는 9회초에 올라온 남궁지완에게 막혔다. 그래서 더 이상 점수를 얻지 못하고 양키즈의 연승 제물로 경기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 * *
한편, 동욱도 LA 다저스의 경기에서 5타석 2볼넷 3타수 2안타의 타격을 하며 2타점과 1득점을 기록했다.
동욱의 타격으로 인해 타선의 물꼬가 트인 LA 다저스는 이번에도 뉴욕 양키즈와 같이 연승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수도승처럼 마저 훈련을 하고 집에 돌아온 동욱. 항상 집에 들어올 때마다 혼자였지만, 이번에는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크레이치? 여기는 왜 왔지?"
누구라도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과는 만나고 싶지 않다. 그것도 영혼을 강탈해가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정확히 말하면 숨통을 끊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악마라면 더욱더 보기 싫다.
처음에는 좋은 것을 줄 것처럼 유혹했지만, 진실을 알게 되면서 스크레이치는 웬만해서 동욱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 마지막이 될지 모를 시즌이 되자 다시 나타났다. 당연히 말하는 모든 것이 의심투성이다.
심지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지금도.
대놓고 정색하는 동욱을 보며 스크레이치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뭘 그렇게 경계하고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너무 과하면 좋지 않아."
"……."
스크레이치의 말에도 동욱은 노골적으로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지우지 않았다. 그러자 스크레이치가 말했다.
"아주 중요한 것을 알려주려 왔는데 왜 그러나? 웜우드가 알려주지 않은 계약의 서의 조건 이행 제약에 대해 말해주려고 힘든 걸음을 했는데 말이야."
그럼에도 동욱의 의심의 눈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의심만 아니라 무시의 눈빛이 섞였다는 것이다.
동욱은 스크레이치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읊어 봐."
노골적인 무시에 스크레이치의 위선적으로 화사한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 하지만 여기에 온 목적과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인내심을 발휘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계약의 서를 이용한 계약은 강제적으로 영혼을 데려갈 수 있는 권한이 악마에게 주어지지. 하지만 그 권한을 얻기 위해선 대상 영혼의 허락이 있어야 하며, 동시에 계약의 조건이 유지되도록 이행해야 하는 의무가 악마에게 부여 돼."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래서 너희들은 계약을 한 대상이 어떻게든 5년 동안 살아있도록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도."
"그걸 알고 있다면 이해가 더 빠르겠군. 하지만 그 조건은 생각보다 엄격하거든. 예를 들어… 경기에 뛸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을 당하여 중도에 탈락하게 된다면 계약은 자동적으로 해지가 된다네."
"그건 왜 그렇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은 나의 원수가 제한한 것이다. 생각해봐. 내가 너와 계약을 한 다음, 그 직후에 사고를 나게 해서 더 이상 경기에 뛸 수 없게 한다면? 그러면 너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영혼을 강탈당할 순간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게 되겠지. 그걸 막기 위한 제약 조건이야."
스크레이치의 설명에 동욱이 말했다.
"동시에 사냥감들이 안심할 수 있게 만들어 더 계약하기 쉽도록 만든다는 점도 있겠지."
스크레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결국 어떻게 이용할지는 사용하는 존재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게 되니까.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얘기를 해주지. 만약 네가 강하고 빠른 타구로 동팔에게 부상을 입히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더 이상 경기에 뛸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이라면?"
그의 물음에 동욱은 예상되는 결과를 말하기 전 더 중요한 사실을 언급했다.
"부상을 당하게 하면 뭐해? 어차피 3일 이내로 회복될 텐데. 그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맞아. 3일 안에 어떤 부상이라도 회복이 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동팔은 격렬한 고통을 당하게 되겠지. 특히 뼈가 부러지거나 신경이 끊어지는 부상이라면 더 심할 거야. 그리고…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이. 그것도 기절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스크레이치의 물음에 동욱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답했다.
"죽겠지. 쇼크로……."
그러자 스크레이치가 정답을 말해줘서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맞아. 바로 그거야. 죽어. 비록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겠지만, 결국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못한 나는 동팔의 영혼을 취할 수 없게 된다.
적어도 죽은 이후에 지옥에 갈 일이 없다는 것이지. 그리고 넌 월드시리즈 우승의 제일 큰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게 되지. 어떤가? 비록 수단은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이건 동팔을 위해서도, 널 위해서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좋은 방법이지 않나?
"
"너를 위한? 아~ 계약이 해지되면서 동팔에게 부여한 너의 힘이 돌아온다는 건가?"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이 말을 왜 했겠어? 지금 상태라면 둘 중에 하나가 해방이 되어 내 힘의 일부를 잃게 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잖나?"
동욱이 물었다.
"그럼 내가 해방되면 결국 같은 것 아닌가?"
스크레이치가 답했다.
"물론 동팔이 없다면 네가 있는 LA 다저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확률이 제일 높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확률일 뿐이야.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것이지. 그러니 나로선 반드시 힘을 잃게 되는 것보다, 모든 힘을 회수할 확률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해. 너도 마찬가지. 우승할 확률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지 않겠나? 무엇보다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머니를 생각해야지.
"
처음에는 말도 되지 않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려 했다. 그러나 스크레이치가 마지막에 한 말이 마음에 걸리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동욱이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자 스크레이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저 말했다.
"7월이면 올스타전이 시작된다. 너는 물론이고 동팔도 올스타전에 나오겠지. 그때가 기회야. 안 그러면 영영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하게 되겠지. 나의 소유가 되어서……."
스크레이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동욱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다가 겨우 이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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