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
2아웃 상태라면 뭘 해도 끝나 수 있으니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작전을 펼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더 많은 득점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황의 차이는 둘째 치고 지금은 희생플라이가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결국 실점하지 않는 것이 투수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일이며, 2아웃 상황에서는 그에 맞는 볼 배합과 작전을 실행하면 그만이다.
'볼넷을 감수하고 던져? 그리고 병살을 노린다? 아냐, 그건 그때가 돼서 선택하면 될 일. 지금은 제일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삼진이 좋아.'
수비는 물론 공격도 안전한 것이 제일이다. 그러니 수비를 할 때엔 삼진이. 공격을 할 때엔 홈런이 제일이다.
하지만 클리블랜드의 타자는 끈질겼다. 풀카운트까지 가는 승부가 이어지자 외야수들도 더욱 긴장했다.
'이거 느낌이 영…….'
'좋지 않아. 좋지 않다고.'
그리고 항상 그렇듯 불길한 느낌은 거의 맞아떨어진다.
따악!!
타자에게 있어 자신이 아웃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3루에 나가 있는 동료가 어떻게든 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예상한 공이 오자마자, 있는 힘껏 공을 때렸다. 다만 조금 아래를 맞는 바람에 약간 더 뜨고 말았다.
타자는 1루로 달리면서 생각했다.
'이거 실수하지 않으면 반드시 잡겠어.'
그렇다고 해서 안 뛸 수도 없었다. 혹시라도 모를 실책이 발생했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일단은 달렸다.
하지만 3루주자는 떨어지는 공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3루 베이스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생각보다 뜨는 바람에 체공 시간이 너무 길어.'
제일 확실하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공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외야수의 위치. 그리고 마침 자신이 있는 구역으로 공이 날아오자 마크는 예상되는 지점에 도착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바람은 거의 없어. 여기에 떨어지는 것은 거의 확실. 그리고 거리는… 멀어.'
온 힘을 다한 덕분인지 타구는 펜스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까지 오고 있었다. 마크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기가 승부!!!'
기다리던 기회가 드디어 왔다. 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으로부터 떼지 않았다. 그러면서 홈플레이트 앞에 기다리고 있는 포수의 위치도 힐끔 보며 파악했다.
턱.
마크가 공을 안전하게 잡았다. 그와 동시에 3루 주자가 홈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승부의 순간. 이 순간에서 승리하기 위해 마크는 저 멀리 보이는 포수의 글러브를 주시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최대한 빨리 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힘이 너무 과했던 것일까.
휘익~ 퍽!!
마크가 던지려던 공은 포수의 미트를 향해 날아가지 않고, 유격수가 대기하고 있던 주변에 떨어졌다.
사실상 패대기를 치듯이 던지는 바람에 공은 바닥을 튕겼고, 마침 구르던 방향에 유격수가 있어 재빠르게 잡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 3루주자는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아……."
마크는 자신의 실수에 아연실색했다. 그러자 마크의 뒤에서 커버하려던 좌익수가 다가와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누가 던져도 실점했을 거리였어. 포기하기 않고 던진 건 잘한 선택이야."
그는 마크의 어깨를 주물렀다.
"긴장하지 말고, 다음에 훈련하던 대로만 하자. 방금 건 너무 의식해서 그런 거였어."
하지만 동료이자 선배의 반응과 달리 뉴욕 양키즈 팬들의 반응은 거칠었다.
"다시 마이너로 가라 이 자식아!!"
"네가 그러고도 메이저리거냐!!!"
그 정도는 약과였다. 그나마 마크가 흑인이라서 인종차별적인 발언까지 나오진 않았다. 물론 그런 말을 했다면 바로 걸려 법원에 가야 하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겠지만.
하지만 펜스 앞에 있으니 온갖 욕설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제발…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주자를 잡지 못한 것보다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린 탓에 실수한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솔직히 지금 당장 교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러나 감독은 이닝이 끝날 때까지 마크를 교체하지 않았다.
더그아웃에 들어온 마크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러자 오늘 선발 투수인 조나단 클리퍼드가 먼저 다가왔다.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마. 어차피 그 거리에서 잡는 건 거의 불가능했어."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잡으려는 것이 더 보기 좋았다. 실점하지 않게 하려던 거잖아. 실수를 하는 건 괜찮지만, 처음부터 아예 던지지 않았다면 그게 더 안 좋아. 그건 포기한 거니까."
그의 말에 마크는 더욱 고개를 드는 것이 미안했다. 동팔이 마크의 등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한 번 쳤다.
쫘악!!
"아!!"
"짜식. 이제 고개를 드네. 조나단 말대로 시도를 한게 더 중요하니까 고개를 들어. 안 그러면 조나단이 뭐가 되냐?"
"동팔이 형……."
"사람이 살면서 실수 안 할 때 있어? 나도 실수를 해.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동팔의 말에 지완이 지나가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이 그 말을 하면 몰라도,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설득력 떨어진다."
지완의 말에 동료들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거 말 되네."
"하긴 동팔이 실투를 한 걸 본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확실히 야구에선 실수가 없지. 대신 다른 쪽에선 실수투성이라며? 네 와이프한테 이미 다 들었어. 처음엔 기저귀 가는 것도 못 했다면서?"
단번에 분위기가 풀리자 마크의 입가에 겨우 웃음이 자리잡았다. 그러자 존 지라디 감독이 마크에게 말했다.
"훈련 중에 네 송구능력의 확인은 끝났다. 겨우 이 정도 실수로 나갈 거면 다시는 메이저리그 올 생각하지마라. 네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야구 인생 끝낼 거라면 그냥 은퇴해."
거칠고 강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마크의 능력을 알고 믿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마크는 방금 전에 했던 실수로 여전히 민망하지만, 각오를 다시 다졌다.
"은퇴하지 않겠습니다. 다음에도 기회가 오면 그때는 반드시 잡겠습니다."
마크의 힘찬 각오에 감독은 물론 동팔을 비롯한 선배들도 마크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 * *
마크의 실수가 있었지만 존 지라디 감독은 교체하지 않았다. 7회초가 되는 사이, 분발하기 위한 마크의 안타와 다른 선수들의 타격으로 2점을 더 얻은 뉴욕 양키즈.
그래서 지금 2대 1로 겨우 이기고 있었다.
1점 차이의 아슬아슬한 리드였기에 7회초가 되자 생각보다 빨리 투수가 교체되었다. 동팔이 이른 시간에 마운드에 오른 것이다.
"조나단, 수고했어."
"수고는 무슨. 잘 부탁한다."
"응. 반드시 승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동팔은 마크를 보며 말했다.
"가자, 마크. 함께 지켜야지."
"네!"
이번에도 활약할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지만, 마크는 4회초때 했던 실수를 반드시 만회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른팔에 비해 덜 익숙할 뿐이지 동팔의 좌완 투구는 객관적으로 봐도 뛰어나다. 그래서 7회초에선 큰 무리할 필요 없이 삼자범퇴로 이닝이 마무리되었다.
그 중에 아웃 카운트 하나는 마크가 직접 뛰어서 잡았지만, 그걸로 성이 차지 않았다.
'후우… 그렇다고 해도 팀이나 동팔이 형에게 위기가 오길 바랄 수는 없지. 지금 동팔이 형은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으니까.'
다른 동료는 동팔이 맺은 악마의 계약을 모른다. 안다면 직접 연관이 있었던 남궁지완이 전부다.
자신의 유명세나 활약을 위해 동팔에게 아주 작은 것이라도 위기가 생기는 것은 싫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 아닌가.
'그래…활약은 언젠가 있을 다음 기회로 미루자…….'
그런 생각을 하고 이번 경기에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미련을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7회초부터 9회초까지 동팔과 지완이 등판하면 상대에게 더 이상 점수를 얻을 기회가 사라진다.
볼넷을 주지 않기로 유명한 두 투수다.
당연히 지극히 안정적으로 경기가 진행되니 뉴욕 양키즈 팬이나, 상대하는 구단의 팬이나 두 사람이 등판하면 더 이상 보지 않고 채널을 돌리거나 경기장을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간혹, 잘 던지는 투수도 흔들릴 때가 있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좌완으로 던지는 동팔은 우완에 비해 상대적으로 타자는 압박을 덜 받는다.
따악!!
그러다보니 잘 던진 투구라도 간혹 맞는 경우가 발생했다.
단타를 통해 1루로 진루한 주자는 행운에 기뻐하며 1루 베이스를 밟았다. 하지만 우익수가 공을 잡았기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거…느낌이 안 좋은데……."
그래서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다. 하지만 그 다음이 좋지 않았다.
따악!!
동팔을 상대로 하기에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나가는 클리블랜드. 그래서 1아웃 상태였지만, 1루 주자는 맞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달렸다.
이러다 라인드라이브로 타구가 잡히면 단번에 아웃되어 위험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툭, 퍽.
우익수가 달려가서 잡았지만, 이미 공은 바닥에 한 번 튕기고 말았다. 그 사이에 이미 1루 주자는 2루 베이스를 밟고 3루로 돌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타자는 1루를 향하여 전력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우익수는 주자를 목적으로 하는 베이스와의 거리, 그리고 자신의 위치와 각 베이스의 거리를 파악했다.
어찌되었건 1루나 3루로 송구해야 하는 상황. 우익수의 판단은 1루였다.
휙~!!
빠르게 날아가는 공은 아주 약간의 차이를 두고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결국 지금 상황은 1사에 주자 1,3루가 된 상황.
진루타든 희생플라이든 뭐든지 가능한 실점 위기였다.
'이거 어떻게 한다… 다시 오른쪽으로 던져?'
지금 타자가 서는 방향은 왼쪽 타석이었다. 처음 공을 던지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했지만, 곧 선발로 서야 하는 일정을 생각하자 이대로 던지기로 했다.
'정 안 된다 싶으면 볼넷으로 보낸 다음 던지면 되니까.'
실전만큼 감각을 끌어올리기 좋은 것은 없다. 그래서 조금 위험하겠지만, 더 많은 승리를 위해 지금은 외나무다리의 승부를 걸기로 했다.
설령 볼넷을 주게 되어 만루가 되더라도, 그때 던지는 손을 바꾸면 그만이었다.
한편, 불펜에서 동팔의 다음으로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하는 지완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저 녀석, 설마 볼넷도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자칫 내가 1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하게 되는데……."
물론 주자를 홈으로 보냈다고 해서 그게 자신의 자책점이 되진 않는다. 지금 나와 있는 주자는 전부 동팔이 내보냈으니 동팔이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들, 2대 1의 아슬아슬한 리드중인 상황에 실점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보다 안전한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선 단 하나의 승리라도 놓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아무리 봐도 희생플라이를 노리는 것이 뻔한데……."
그렇지 않아도 클리블랜드가 유일하게 낸 점수가 희생플라이였다. 지금은 1점이 더욱 절실한 상황. 아직 아웃 카운트의 여유가 있으니 누가 보더라도 클리블랜드의 작전은 뻔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클리블랜드는 바로 대타 카드를 꺼냈다.
내야 안타를 친다는 보장이 없고, 1루에 주자가 있으니 병살의 위험도 높았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 기회가 온다는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 남궁지완이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는 것을 보니 클리블랜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더욱 좁았다.
간만에 위기 상황을 맞이한 동팔. 더불어 동팔이 여전히 좌완으로 던지니 내야와 외야수 모두 바짝 긴장의 끈을 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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