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
"이딴 유희에 자신의 힘을 도박으로 날려먹게 생긴 악마가 누구냐? 바로 네가 아니냐. 네놈이야 말로 어리석다!!"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다른 악마도 같은 생각인지 스크레이치를 노려봤다. 그럼에도 스크레이치는 그의 기세를 맞받아치며 말했다.
"웃기는 소리. 계약의 서야 말로 타락시키지 못할 영혼을 강제로 끌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런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어리석다 못해 미쳤구나!! 어차피 쉽게 타락시킬 수 있는 영혼이라면 계약의 서를 사용할 필요도 없어!!! 네놈들이 안주하는 사이에 영혼들은 원수에게 돌아가고 있다!!!"
스크레이치의 말에 악마들은 서로를 돌아봤다. 그리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하하!!! 정말 미쳐도 제대로 미쳤어!!"
"계약의 서가 생긴 이후로 거기에 빠졌더니 다른 것을 잊은 거냐, 스크레이치?"
그러면서 다른 악마가 말했다.
"타락시킬 수 없는 영혼이라면 그만큼 뛰어나다는 거겠지. 물론 욕심이 날 거야. 하지만 너도 알잖아. 그런 영혼일수록 원수는 더욱 특별하게 사랑하고 관리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직접 살필 정도지. 그 정도의 보호를 받고 있는 영혼을 지하에 계신 아버지께 끌려가도록 두고 보리라 생각하나?"
그리고 그 악마는 스크레이치의 앞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계약의 서는 처음부터 우리를 낚기 위한 함정에 불과해. 목적은 분명하다. 우리의 힘을 깎아내는 작업 중 하나야. 그리고 넌 그 함정에 제대로 걸린 상태. 이대로 가면 너는 적어도 일부의 힘을 잃게 될 거다."
말을 한 다음 악마는 스크레이치에게 놀리듯이 이어 말했다.
"꼴좋다. 고작 몇 가지 좋은 계략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지하에 계신 아버지의 눈에 들었지. 그리고 그분께 힘을 받아 벼락출세해서 우리를 무시하더니, 이젠 네가 원수의 함정에 걸려들었구나."
그 악마는 물론 스크레이치를 제외한 다른 악마들이 키득거렸다.
"우리가 왜 계약의 서를 이용한 계약을 하면서 유흥이라고 하는지 이제 이해가 가는가?"
"우린 처음부터 계약의 서 자체가 원수의 함정인 걸 알았기 때문이야. 그래서 지금도 적당히 즐기는 용도로만 쓴 거지."
"그런데 그걸 모르는, 심지어 자신의 능력과 분수도 모르고 좋은 영혼에 욕심을 내다가 많은 악마들이 힘을 잃었어. 힘을 잃은 악마가 어떻게 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을 네가 아닌가?"
"그리고 지금은 최고위급 악마인 네가, 중하급의 악마가 당했던 것처럼 당하게 생겼지."
그들의 조롱에 스크레이치가 말했다.
"나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계약의 서로 강탈한 영혼의 숫자를 생각하면 그 말이 안 나올 텐데."
그러자 다른 악마가 말했다.
"아, 물론 그렇지. 꽤나 타락시키기 어려운 영혼을 잘 끌고 왔어. 하지만 그거 알고 있나? 타락시키기 어려울 뿐이지 불가능한 영혼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불가능한 영혼 둘을 본 너는 거의 이성을 잃고 덥석 계약을 했지. 그리고 지금 이 모양 이 꼴이야. 우리한테 도움의 손길을 갈구하게 되었지. 안 그래?"
그들의 말에 스크레이치가 말했다.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네가 말한 대로 지금 타락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영혼이다. 그러나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지하에 계신 아버지께로 가게 될 것이다. 그걸 부정할 수 있나?"
스크레이치의 말을 부정하는 악마는 없었다. 이미 동팔과 동욱이 다른 팀에 있는 이상,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죽고, 영혼을 강탈당한다.
"내 힘의 일부를 잃는 것이야 아깝다. 하지만 지하에 계신 아버지께서 기뻐할 영혼을 상납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 그 명단에 자네들의 이름이 올라간다면 그분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분명히 좋게 보셔서 그분께 힘을 더 받을 수 있어. 자네들이라면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분께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악마에게 더 많은 힘을 부여해 주신다는 것을."
악마에게 있어서 지하에 있는 아버지는 절대적인 신이다. 거부할 수 없으며 반드시 따라야 하는 존재.
그리고 그의 말에 따라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결정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앞에 자신들의 이름이 한 번이라도 들릴 수 있게 올라간다면 그 자체만으로 큰 성과이자 영광이었다.
스크레이치가 제시한 당근이 그들에게 있어 너무 강렬한 유혹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크레이치에게 품은 안 좋은 감정을 일단 미루기로 했다.
"상납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라……."
"잃는 것은 없고, 아주 나쁜 제안은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스크레이치의 제안에 무조건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전에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이런 계약은 처음부터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곤란하지."
"확실하게 도장을 찍자고. 네가 상납하면서 우리들의 이름을 적지 않으면 무용지물. 그러니 여기서 맹약을 선언 해. 그러기 위해서 우리를 모은 거잖아?"
그러던 중에 다른 악마가 스크레이치에게 물었다.
"그 전에 방법이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계약의 서를 작성한 이상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은 우리도 불가능. 간접적인 방법에도 한계가 있지. 거기에 대한 너의 계획과 전략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맹약의 선언은 겉치레에 불과하잖아."
그의 물음에 스크레이치는 굳은 표정을 지웠다. 그리고 밝게, 또한 아주 위선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이미 방법은 다 생각해 두었다. 너희들은 내가 말한 대로만 하면 돼."
* * *
악마들의 계략이 보이지 않게 진행되는 사이, 메이저리그 또한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전반기의 절반이 지나가고, 인터리그의 시간도 지난 때. 뉴욕 양키즈는 클리블랜드와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중계진은 지금까지 있었던 두 팀의 기록을 시청자들에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지금 양키즈의 기세는 매섭습니다. 연승이 있으면 이후에 후유증이 있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죠. 시즌 초반부터 6연승을 하더니 그 이후에 2연패가 고작입니다. 이후로도 위닝 시리즈를 달성했고, 스윕도 두 번 있었습니다. 루징 시리즈는 1번이 전부였죠."
"현재 뉴욕 양키즈의 승률은 7할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습니다. 그 중심에는 역시 강동팔 선수를 비록한 단단한 선발진. 거기에 강력한 마무리 투수인 남궁지완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만이면 다행이겠죠. 간간히 중간 계투진으로 강동팔 선수가 좌완으로 올라옵니다. 그래서 뉴욕 양키즈가 7이닝까지 승기를 잡고 있다면 뒤집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방금 말씀하신대로 7할 승률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뉴욕 양키즈가 상대하는 클리블랜드에 대해 설명했다.
"작년 2회 연속으로 챔피언십에 진출한 클리블랜드는 이번 시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역시 한동욱의 빈자리를 쉽게 매울 수 없었습니다."
"클리블랜드 구단에서 밝히고 있지 않지만, 계약기간만큼 상당한 금액을 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지난 이적시장에서 상당히 뛰어난 투수와 타자를 영입했었죠. 챔피언십을 넘지 못한 제일 큰 이유는 한동욱 선수의 컨디션에 따른 승률 변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 마운드였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를 보면 썩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군요. 겨우 5할 승률을 지키고 있습니다."
해설자의 말에 캐스터가 물었다.
"5할 승률도 나쁘진 않습니다. 워낙 뉴욕 양키즈가 강세라 아메리칸 리그의 다른 팀의 승률은 전반적으로 낮아요. 특히 동부지역의 경우 양키즈를 제외하면 5할 승률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현재 2위인 토론토입니다."
"그렇습니다. 뉴욕 양키즈와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승률이 5할을 넘지만, 나머지는 4할이나 3할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러면 동부에서 와일드카드로 나올 수 있는 팀이 생길 수 없겠군요."
"뉴욕 양키즈가 갑자기 연패를 계속 당하거나, 다른 팀이 크게 분발해야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론 많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클리블랜드로선 다행인 점이 강동팔 선수가 선발로 등판하는 경기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에요."
그러던 중, 중계 카메라에서는 왼팔로 공을 던지는 강동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 강동팔 선수의 좌완 구위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번 시즌의 또 다른 변화가 있었죠. 바로 타격입니다. 인터리그에서만 투수가 타자로 나서는 것과 달리, 강동팔 선수가 대타로 나오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대타에 비하면 적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죠. 그러나 투수에 비하면 타석에 서는 경우가 확실히 많습니다. 보통 아메리칸리그 투수가 타석에 서는 경우는 말씀드린 대로 인터리그가 전부입니다. 인터리그 경기가 10경기인 것을 감안하면, 한 명의 선발이 타석에 서는 것은 1년에 평균 4번이죠. 대부분은 아웃이나 볼넷입니다. 안타나 홈런을 치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합니다만."
"그 중에 강동팔 선수가 있는 거죠? 작년에 있었건 감동적인 홈런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중계화면에선 작년 인터리그에서 동팔이 홈런을 친 순간의 장면이 나왔다.
"그럼요. 사실 강동팔 선수의 경우는 이미 파워를 한국에서부터 갖추고 있었습니다. 타격폼도 마찬가지죠. 양키즈 타격코치의 말로는 타자로서도 손색이 없는 폼이라고 합니다. 다만 유일하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더군요."
"뭐가 부족하다는 겁니까?"
"감각이라고 합니다."
해설자의 말에 캐스터가 말했다.
"감각이라면 결국 실전을 거치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럼 계속 강동팔 선수가 타석에 서는 이유도 알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초반에 1할에 있던 타율이 최근 다섯 경기에선 2할로 올라갔습니다. 평균은 역시 1할대이지만, 점점 감각이 좋아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그럼 이번에 중간 계투진으로 나오거나, 대타로 나서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경기가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많은 점수 차이로 이기고 있다면 타석에 들어서겠죠. 하지만 아슬아슬하다면 불펜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그들은 뉴욕 양키즈만 설명하지 않고 클리블랜드도 집중적으로 설명해 나갔다.
"한동욱 선수가 LA다저스로 간 이후, 타선이 꽉 막히고 있는 클리블랜드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예상했던 문제였죠. 중요한 것은 다른 것에 있습니다. 바로 실책입니다."
"실책이요? 아, 그러고 보니 한동욱 선수의 5할 타율에 가려졌을 뿐, 도루 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유격수로서 실책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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