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96화 (296/325)

[296]

무엇보다 타자라면 종종 스위치타자가 나오지만, 스위치투수가 나오기 힘든 것은 훈련의 양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져도, 계속해서 연습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한 팔이라도 대성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스위치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나오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어느 쪽도 눈에 띌 구위가 아니라 어정쩡하게 있다가 은퇴한다.

그들이 주목을 받는 것은 단 하나. 타자의 상황에 따라 좌우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던질 수 있는 옵션이라는 것. 그리고 아주 희귀하기 때문에 관중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동팔의 실력을 부러워하지만, 구단들은 관중을 끌어 모으기 더 좋다는 것에 부러워하고 있었다.

뉴스를 통해 동팔의 소식을 들은 동욱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하지만 약해. 우완도 상대가 가능하지만, 좌완이라면 더 쉽지. 그냥 작은 옵션 하나 추가된 것뿐이야.'

거기에 동욱은 좌완과 우완을 가리지 않고 강하다. 그러나 이젠 거기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동팔이 스위치투수의 완성을 위해 근 2개월 동안 왼손 투구에 많이 집중했다면, 동욱도 좌타석에서 익숙해지기 위해 훈련을 해왔다.

그리고 타격이 투구에 비해 감각을 되찾고 실력을 올리는 것이 더 빠르다. 이것은 스위치타자가 투수보다 더 많은 이유였다.

동욱이 예비 타석에서 준비를 하는 사이, 앞선 타자가 타격에 성공하여 1루로 진출했다.

자신의 타순이 되자 동욱은 별다른 말 없이 타석으로 갔다. 더그아웃에 있는 동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재수없는 자식. 잘난 척 하기는."

"얼마나 잘 치는지 보자고. 연봉 1억 달러의 이름값을 하는지 못하는지."

같은 팀의 동료건만, 동욱을 향한 눈빛은 좋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틈이 생기면 물어뜯을 것처럼 날카로웠다.

타석에 선 동욱은 그들의 눈빛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지금 내 평판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팀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게 만들어야 해.'

각오를 다지며, 동욱은 마운드에 선 투수를 본다. 투수는 개막전인 이상 1선발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뛰어난 구위를 지닌 투수였다.

그렇다고 한들, 작년에 5할 타율을 기록한 한동욱이 가볍게 보일 수는 없었다.

'나와 있는 주자만 해도 두명. 그리고 지금 상대해야 할 타자는 한동욱.'

만약에 아메리칸리그의 팀이었다면 절대로 한동욱의 앞에 주자를 내보내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한동욱에게 지더라도, 동욱이 있는 팀에게 패배하지 않는 제일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교훈도 어디까지 직접 당한 다음에 각인되는 것. 올스타전이 아니라면 동욱을 경험하지 못한 투수는 그 사실을 잊고, 이렇게 주자를 쌓을 때가 있다.

그리고 동욱은 좋은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는다.

휙~!

빠르게 날아가는 포심 패스트볼. 아무리 빨라도 너무 정직하게 날아오자 동욱의 배트가 빠르게 움직였다.

따악!!!

초구를 노린 동욱. 그 결과는 홈 관중의 환호로 나타났다.

퍼버벙~!!

"홈런~!!!"

"쓰리런 홈런이다!!!"

경기장에선 동욱의 3점포를 축하하는 폭죽이 터졌다. 그리고 관중들은 1회초부터 3점 달아나게 되자 크게 기뻐했다.

"연봉 1억 달러를 주고 데려온 보람이 있잖아."

"그동안 타선이 막혀서 번번이 월드시리즈행이 막혔었는데."

"기복이 거의 없고, 특히 기회가 있을 때 강하다고 하더니… 진짜였네. 우리 팀에 와서 첫 타석인데 3점포라니……."

투수 왕국이니 방어적인 면에서 다른 팀에 밀리지 않는 LA 다저스였다. 하지만 점수를 내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어서, 잘 지켜도 결국 패배한 경기가 얼마나 많았던가.

특히 토너먼트라면 중요한 순간에 한 방 터져야 할 타자들이 물 먹은 방망이 마냥 축 쳐지는 바람에 디비전 통과도 쏟아 부은 돈에 비하면 힘겨웠다.

그런데 첫 타석부터 홈런을 때린 동팔을 보니 막힌 것이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하지만 동욱이 홈런을 치자 마냥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

"……."

동욱이 처음부터 홈런을 치자 두고보자던 동료들은 할 말이 없었다. 실력으로 말하는 프로에서 실력을 증명했으니 말을 하면 오히려 손해였다.

그래도 이대로 지키기만 해도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이 된 상황. 그래서 동욱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형식적이나마 영혼 없는 축하를 해줬다.

그것으로 동욱에게 해주는 축하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던 동욱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 신경을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동팔이었다.

'지금 동팔은 물론 뉴욕 양키즈의 감독은 모든 것을 월드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어. 포스트시즌과 월드시리즈에서 팀의 전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데 리그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긴 조직력을 따로 정비할 필요가 없고, 선수들의 역량이 뛰어나니 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동팔의 능력 또한 극대화시키는 중. 좌완을 준비한 이상… 지명타자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도 준비할 것이 뻔해.'

그래서 동욱은 다른 누구보다 먼저 이번 시즌에서 동팔이 하게 될 제일 중요한 변화를 알아차렸다.

'좌완도 좌완이지만, 앞으로 타석에 서는 것을 많이 보게 될지도…….'

# 운명의 때를 준비하기 위하여

각자의 생존과 영혼의 구원을 위해 동팔과 동욱이 메이저리그에서 전력을 다하고 있을 때.

목사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웜우드는 여전히 그의 곁에서 맴돌고 있었다.

교회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목사는 웜우드를 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데, 언제까지 있을 건가? 여기 온지 벌써 두 해가 지났고, 삼년차가 되었다고."

목사의 말에 웜우드가 답했다.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엔 움직일 거야. 어차피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네 옆에 있을 수 없는 건 잘 알고 있거든."

"그럼 다행이지만… 그나저나 악마들의 방해가 생각보다 적어. 왜 그렇지? 까딱하면 자신의 힘의 일부를 잃을지도 모르는데."

목사의 물음에 웜우드가 답했다.

"그 작자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보이지 않는 준비를 할 거야. 그렇지 않아도 지금 뉴욕 양키즈랑 LA 다저스를 보면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둘 중 하나가 해방되어도 삼촌한테 상당한 타격이 되니 그것만은 막으려 하겠지."

"그럼 나머지 하나는 얻을 수 있을 텐데도? 악마 장로(모데스)는 실제로 간간히 계약에서 해방 되었잖나."

"그건 악마 장로(모데스)의 계략이야. 어차피 천국에 못 갈 놈을 골라서 사냥개로 만들어 버리는 수작. 그러니 해방되어도 결국 죽게 되면 자신의 힘이 되돌아오거든. 이번에 헤럴드가 죽은 다음, 영혼을 잡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힘도 회수했을 것이 뻔해."

본인이 악마이니 악마들의 습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그때 상황을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이번의 표적은 동팔과 동욱의 영혼이 될 것이고, 당연히 둘 다 놓치려 하지 않겠지."

"당연히. 악마 장로와 달리 삼촌은 일반적으로 타락시킬 수 없는 영혼을 계약 대상으로 삼거든. 그러니 둘 중 하나만 해방되어도 부여한 힘을 회수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덤으로 천상에선 삼촌의 힘이 되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해방이 된 사람을 우선순위로 지원할 거야. 항상 그랬듯이."

웜우드의 말에 목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모 아니면 도라는 거군. 해방되면 그자의 힘을 사실상 소유하게 되니 뛰어난 활약과 동시에 천상에 입성을 할 수 있게 되고. 반대로 해방되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고 악마들의 손에 농락당하는 최후를 맞이하게 되니."

"그렇지. 중간은 없어. 계약을 미루거나 취소할 방법도 없고. 한 번 계약된 이상, 둘 중 하나가 완수하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아. 그래도 다행인 점이 있다면 계약의 이행을 위해서 직접적인 간섭을 막는다는 것이 있지만."

"그 말은…그들이 계약자에게 힘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맞아.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직접적으로 쓸 수 없다는 것이지 간접적인 건 아니야. 물론 그것도 선을 넘을 수 없지만."

웜우드의 말에 목사는 궁금했다.

"선? 어느 정도 선을 말하는 건데?"

그러자 웜우드가 답했다.

"죽게 하는 것은 금지. 그러면 계약 불이행으로 간주하고 계약자는 죽는 것으로 끝. 반면 계약을 한 악마는 계약을 하면서 부여한 힘을 잃어.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지. 그리고 지금 같은 경우는… 경기에 뛸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을 입게 하는 것이 포함되지. 자잘한 부상은 괜찮다는 거야."

웜우드의 말에 목사의 표정이 굳었다.

"그거 위험하잖나. 아주 약간이라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 가능하겠어?"

"맞아. 그래서 내가 의아한 거다. 자잘한 부상을 입게 하는 방법이 무궁무진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어. 그러니까 더 불안한 거야. 그것보다 더 효과가 좋은 함정을 삼촌이 준비했다는 거니까."

"어떤 함정이라고 예상하나?"

목사의 물음에 웜우드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몰라. 그 양반의 영혼 공략 수법은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면서도 항상 신박(매우 참신함)했거든."

*     *     *

한편, 스크레이치는 뉴욕 어딘가를 가고 있었다.

대도시의 지하 수로에 들어간 그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지상과 가까운 곳에 집이 없는 사람들이 치안의 부재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더 깊은 곳에 사람은 없고 크고 작은 쥐가 살아가고 있었다. 쥐들은 얼마 되지 않는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여기 저기 몰려다녔다. 간혹 상처를 입어 약해진 개체가 보이면 동족이라도 습격해서 잡아먹었다.

끔찍한 지옥도의 모습이 보였지만, 진짜 지옥을 보고 그곳으로 영혼을 인도하는 스크레이치에게 이 정도는 일상보다 못한 일이었다.

그가 도착한 지하수로의 심층에선 그를 비롯한 다른 악마들이 속속 모이고 있었다.

"웬일이야. 우리를 다 부르고."

"지금 상황이 꽤 난처하다고 하던데 사실인가봐?"

"고작 유흥 따위에 위기에 처하다니, 천하의 스크레이치도 늙었나?"

이미 스크레이치의 상황을 알고 있는 최고위급 악마들은 그의 처지를 조롱했다. 스크레이치는 여전히 굳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들의 조롱이 멈추자 스크레이치는 그들을 보며 딱 한 마디를 했다.

"어리석은 놈들."

그의 말에 조롱하던 악마들의 표정이 단번에 변했다.

"뭐? 감히 누구보고 어리석다 말하는 거냐!!"

그 악마의 노기로 인해 주변에 있던 쥐들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도망치려 했다.

찍찍.

하지만 이미 늦었다. 최고위급의 악마의 분노만으로 주변에 있던 쥐들은 버티지 못하고 몸이 터져서 죽었다.

찍, 찍!!!

퍼걱, 퍼걱.

쥐들이야 죽건 말건, 분노한 악마들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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